<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42화>
“야! 꼬맹이 봤지!?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야!”
이태성이 당당히 외치는 순간.
특급 헌터는 고개를 갸웃했다.
“드래곤 형. 로봇도 못 구했잖아?”
“…….”
단숨에 말문이 막혀 버린 이태성.
천문석은 이태성의 모습을 보고 슬쩍 물었다.
“로봇? 그게 무슨 소리야?”
“나 제주도 할머니 집에 있을 때, 드래곤 형이 찾아와서 소원 물어봤거든. 그래서 로봇! 아주 커어다란 로봇 사달라고 했어! 그런데 드래곤 형은 로봇 못 구한대…….”
에휴-
특급 헌터는 한숨을 쉬더니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천하의 이태성이 로봇 하나 못 구할 리…….”
말을 하던 중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이태성 길드장도 구하지 못하는 로봇!?’
천문석은 특급 헌터의 목에 걸린 펜던트를 가리켰다.
“설마 그거냐?”
“맞아! 알바가 나준 엄청 커다란 로봇!”
특급 헌터는 옷소매로 펜던트를 쓱쓱- 닦더니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
천문석도 이태성과 마찬가지로 말문이 막혔다.
와, 이 어이없는 꼬맹이 녀석!
이태성 길드장한테 로봇, 나이트 아머를 사달라고 한 거야!?
이때 이태성이 버럭 소리쳤다.
“야, 나이트 아머는 아무도 못사는 거라니까! 그리고 아직 끝난 거 아냐! 내가 지금 사방으로 라인을…….”
“알바는 줬어!”
특급 헌터는 자랑스럽게 펜던트를 내밀었다.
“보이지! 알바가 준 로봇이야! 엄청 커다랗고 대단해! 몸에 번쩍이는 문양도 칠해졌어!”
“……거기에 로봇이 들어 있다고?”
“요기 중간에 돌 보면 로봇 보여!”
어이없어하는 이태성에게 펜던트를 건네주는 특급 헌터.
8개의 부채꼴이 합쳐져 만들어진 손안에 쏙 들어오는 펜던트 중앙에는 투명한 돌이 박혀 있었다.
이태성은 오러를 끌어올려 투명한 돌 안을 샅샅이 살폈다!
하지만 투명한 돌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어이없어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자 당당히 외치는 꼬맹이.
“어때, 보이지?”
이태성은 대답 없이 천문석을 봤다.
“이 펜던트 네가 줬다고?”
“……네.”
천문석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커다란 로봇. 그러니까 ‘나이트 아머’가 들어 있다고?”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주위를 훑었다.
주위에 있는 건 이태성 길드장과 암살검 한경석뿐. 두 사람 모두 이득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다.
상황 판단을 끝낸 천문석은 손을 들어 땅을 가리키며 맹세했다.
“땅에 맹세코 사실입니다. 그 펜던트 안에 로봇, 나이트 아머가 들어 있습니다.”
“…….”
이태성은 한참을 천문석을 바라봤다.
이태성은 최고 등급 오러 능력자.
오러로 예민해진 감각은 거짓말을 거짓말 탐지기 이상으로 정확하게 파악한다!
방금 들은 말은 진실이었다!
어이없게도 천문석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진짜로 이 작은 펜던트 안에 나이트 아머가 들어 있다고!?
도대체 어떻게!?
아니, 지금 중요한 건 ‘어떻게?’가 아니다.
전술 마도구 나이트 아머의 가장 큰 문제점이 그 크기와 무게.
그걸 해결한 펜던트가 지금 눈앞에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했다.
이건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국제 정세까지 변할 정도의 대사건이다!
‘그런 펜던트를 꼬맹이에게 넘겼다고!?’
이태성의 시선이 손에 쥔 펜던트에서 꼬맹이, 천문석을 향해 움직였다.
“……너 무슨 생각으로 이걸 이 꼬맹이한테 준거야?”
천문석과 특급 헌터는 동시에 대답했다.
“……약속했습니다.”
“알바는 나랑 엄청 친하거든!”
“……뭐? 와, 이 미친 녀석!”
하하하하하하-
이 순간 이태성은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사람이 있다.
끝까지 신의를 지키는 사람!
그러나 말은 쉬워도 행동으로 신의를 지키는 사람은 극소수!
천문석 이 녀석은 단지 약속했다고, 깡통 줍는 꼬맹이에게 나이트 아머를 넘겼다.
그것도 펜던트에 봉인된 나이트 아머를!
이태성은 지금 눈앞에 있는 검은 폭풍 복귀 계획에서 만난 천문석, 이 녀석이 정말 미친 듯이 맘에 들었다!
이태성은 웃음 띤 얼굴로 툭 던지듯 물었다.
“너 집이 잘사냐? 10대 그룹 3세 뭐 그런 거야?”
“……그럴 리가요?”
“그럼 재금 그룹 주주야?”
“……설마요? 그거 1주 가격이 제 전 재산 10배가 넘는데…….”
천문석은 웃음기 한점 없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런데도 약속이니까 넘겨줬단 말이지?’
“하, 진짜 미치겠네! 하하하-.”
이태성이 연신 웃음을 터트릴 때, 특급 헌터가 앞으로 뛰어나와 외쳤다.
“이제 내가 알바를 믿는 이유를 알겠지!?”
이태성은 펜던트를 돌려주며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신도 믿음이 갔다.
엄청난 가치의 물건을 단지 약속이라는 이유로 주저 없이 건네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한 말이라면 분명 이유가 있을 터!
이태성은 손을 들어 창문을 가리키며 선언했다.
“저 창에서 게이트 맥이 흘러들어오고! 이곳에는 혼령은 실재한다! 나도 믿는다!”
특급 헌터는 자랑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역시 알바의 말이 맞았어! 여기에는 혼령이 존재해!”
[맞아!]
“우리 집에도 혼령 나와서 내가 아주 잘 알아!”
[앗, 그래!?]
“천장에서 우워어어- 엄청 무서워!”
[으으으-!]
“우리 집 혼령은 층간 소음에 아주 민감해! 그래서 집에서 살살, 엄청 살살 다녀!”
[그랬었구나!]
“그런데! 알바가 온 날은 안 나타났어! 그래서 맨날 알바네 놀러 갔잖아!”
[역시!]
……
특급 헌터가 열렬히 외치자, 한경석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두 사람의 감탄 어린 눈빛이 천문석에게 쏟아졌다.
여기에 이태성마저 가세했다.
“하긴…… 저런 펜던트를 그냥 주는 걸 보통 사람이 할 수가 없지! 너 진짜 혼령 보는구나!”
“…….”
그리고 세 사람의 감탄 어린 시선이 모였다.
“…….”
평소라면 당당히 앞으로 나섰을 거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단지 고개를 숙이며 말할 뿐.
“아, 예.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밥이나 먹으러 갈까요?”
“알바 고기! 우리 고기 먹으러 가자!”
“오늘 점심은 이 ‘V’카드로 내가 산다! 모두 근사한 데로 가자! 하하-.”
“출발!”
이태성이 카드를 꺼내고, 특급 헌터가 신나서 외치는 순간.
[아앗-!]
한경석이 깜짝 놀라 천문석을 봤다.
[친구! 부적! 부적을 깜빡했잖아! 당장 부적부터 써 줘!]
“부적? 너 부적도 쓸 줄 아냐? 그럼 나도 한 장…….”
“앗! 기다려! 내가 먼저야! 내가 제일 친하니까 나부터 써 줘야지!”
기껏 마무리된 난장판에 다시 불이 붙을 상황.
천문석은 강화 철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으며 말했다.
“부적은 점심 먹고 써드리겠습니다! 우선 나가죠!”
띠릭-
도어락을 풀고 철문을 여는 순간 육중한 진동과 분노한 외침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
쿵쿵, 쿵쿵쿵-
“들리시죠? 아시겠죠!? 짜증 나죠! 우리 사무실에서는 이거 몇 배로 들려와요! 아니, 진짜 인간적으로 너무 한 거 아닌가요!?”
문밖 복도에 모인 십여 명의 헌터들 너머, 너무나 낯익은 까만 얼굴이 고무망치로 벽을 때리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최설!
* * *
‘최설이 왜 여기에 있어!?’
생각지도 못한 최설의 등장에 굳어진 순간 최설의 입에서 분노한 외침이 폭풍처럼 쏟아져 나왔다!
“아니! 진짜 벽간 소음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 하잖아요!”
“아무리 창고를 임대해서 쓰는 거라고 해도 그렇지!”
“업무를 제대로 못할 지경입니다! 들어 보세요!”
최설은 스마트폰을 들어 올리고 화면을 터치했다.
쿠아아아아아아아-
최대 음량 스마트폰에서 들려오는 너무나 익숙한 굉음!
자신이 소리 폭탄으로 만든 혼령의 울음소리다!
이 순간 천문석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직감했다!
자신이 한 혼령 퇴마의식에 최설의 인내심이 끊겼다!
최설은 고무망치로 벽을 두들기지 않고, 직접 항의하러 오리온 길드로 찾아온 거다!
‘아니, 뭐가 이따위로 흘러!?’
간신히 얼렁뚱땅 일이 마무리되는데, 모든 게 다시 난장판이 될 위기가 왔다!
그러나 다행히 복도의 오리온 길드 헌터들은 최설에게 길을 열어 주지 않았다!
당연했다.
지금 이 공방에는 암살검 한경석과 이태성 길드장이 있었으니까!
즉, 어떻게든 나가지 않고 시간만 끌면 알아서 모든 게 해결된다.
천문석은 재빨리 몸을 돌려 공방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생각해 보니까. 오늘 점심은 중국집에 시켜 먹죠. 탕수육에…….”
이때 들려서는 안 되는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알바! 큰일 났어!”
“여기에 혼령 피해자가 있어!”
“우리가 퇴치한 혼령이 도망쳤나 봐!”
“이 누나 도와줘야 해! 알바 빨리빨리 와!”
‘으아앗! 이 꼬맹이가!?’
천문석이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최설은 고개 숙여 꼬맹이를 봤다.
“혼령? 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그 소리! 혼령의 울음소리야! 방금 우리가 퇴치한 혼령이 누나네 사무실로 도망친 거야! 이렇게 울었지!?”
“쿠우우우우우웅-
최설은 흠칫 놀랐다.
갑자기 헌터들 다리 아래에서 기어 나온 꼬맹이!
이 꼬맹이가 자신이 녹음한 벽간 소음을 소름 끼치게 똑같이 흉내 내며 혼령이 나왔다고 외쳤다!
‘뭐지, 지금 장난치는 건가?’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으나 복도를 막은 완전무장한 헌터들의 얼굴에 웃음기는 없다.
헌터들 모두 등 뒤에 진짜 혼령이라도 있는 것처럼 잔뜩 긴장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
순간 최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방금 사무실에서 겪은 소음이 다시금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쿠아아아아아-
사무실 전체를 뒤흔들었던 그 비인간적인 소음!
인내심이 뚝 끊겨 저지하는 선배들을 뿌리치고 오리온 길드로 달려 오게 한 그 괴성!
‘그게 혼령의 울음소리라고!’
전신에 소름이 돋은 최설이 자신도 모르게 주춤주춤 물러설 때.
“거기 멈춰!”
특급 헌터는 다급히 외쳤다.
“혼령에 오염됐는데 그냥 가면 큰일 나! 잠자다가 끌려 간단 말야!”
“그럼 어떻게 해야?”
반사적으로 멈춰 선 최설이 묻는 순간 특급 헌터는 외쳤다.
“여기 퇴마사 있어!”
“……퇴마사?”
“쟤 퇴마사라고 한 거야?”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
복도를 막은 오리온 길드 헌터들이 의아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퇴마사라고?”
최설이 혼란스러운 눈으로 반문하는 순간.
특급 헌터는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외쳤다!
“광화문 게이트 맥에서 흘러나온 혼령을 퇴치한! 아주아주 훌륭한 퇴마사가 여기에 있어! 누나도 도와줄 거야!”
모두가 퇴마사의 존재를 궁금해 할 때.
천문석은 이름을 듣지 않아도 그 퇴마사가 누울지 짐작했다.
나!
천문석은 슬그머니 뒤로 물러섰다.
보지 않아도 이 뒤에 일어날 일은 뻔하다. 가능한 한 빨리 여기서 튀어야 했다!
그러나 이 순간 어깨와 팔에 느껴지는 손길.
“아주아주 훌륭한 퇴마사! 너를 원하고 있다! 풉-.”
진지한 얼굴로 어깨를 두들기다가 웃음을 삼키는 이태성.
[친구! 친구의 힘이 있어야 하는 사람이 나타났어!]
카멜레온 은신 망토를 입은 채 팔에 손을 올린 한경석.
“…….”
천문석이 뭐라 말을 하지 못하고 멈칫하는 순간. 특급 헌터가 다시금 외쳤다.
“알바 빨리 와! 우리 출동해야 해! 혼령이 다른 곳으로 도망쳤어!”
그리고 모든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야, 길 좀 터라!”
이태성이 외치는 순간 바짝 긴장해 있던 헌터들이 좌우 벽으로 딱 달라붙어 길을 열고.
[퇴마사! 여기 있어!]
한경석의 외침과 동시에 천문석은 점멸 이동했다.
핏-
익숙한 현기증이 느껴졌을 때.
천문석 앞에는 이미 최설이 있었다.
“지금 이게 무슨……?”
최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하는 순간.
앞과 옆에서 동시에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알바! 이 누나 사무실로 혼령이 도망쳤어! 우리 출동해야 해!”
[맞아! 나 때문에 피해를 주면 안 돼! 친구! 힘들겠지만 다시 출동하자!]
“…….”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혀 있을 때 쓱쓱, 쓱쓱쓱- 슬리퍼 끄는 소리가 등 뒤에서 다가왔다.
그리고 툭- 어깨에 손이 닿는 순간 유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그럼 우리 퇴마하러 같이 가 볼까!”
“…….”
천문석은 주위를 돌아봤다.
앞에는 눈을 반짝이는 특급 헌터.
옆에는 단검에 손을 올린 암살검 한경석.
등 뒤에는 어째선지 신이 난 이태성 길드장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공방 앞은 오리온 길드 헌터들로 막혔고, 눈앞에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최설 대리가 있었다.
“부사장님……?”
짧은 물음에 담긴 수많은 질문이 느껴지는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한경석 귀가 계획은 완전히 망하기 일보 직전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