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41화>
“하, 이 더러운 인맥 사회! 팩트가 인맥에 패배하다니!”
“…….”
인맥으로 팩트를 이긴 당사자, 천문석은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저 마음속으로 탄식하며 감탄했다.
특급 헌터 이 어이없는 녀석!
인간 재해 이태성과 말싸움해서 이기다니!
역시 특급 헌터는 보통 꼬맹이가 아니었다!
이태성과 천문석은 어느새 나란히 서서, 손을 잡고 빙글빙글 재배실 안에서 춤을 추는 특급 헌터와 한경석을 바라봤다.
“우리가 이겼어! 경석이 형!”
[맞아! 우리가 승리했어!]
“카카카캌-.”
[크크크킄-]
“……하, 이 꼬맹이 녀석. 급하게 달려왔더니…….”
천문석은 이태성의 혼잣말을 듣자, 문득 머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특급 헌터가 나무판자에 분필로 적은 메시지!
[드래곤 비서 누나! 혹시 깡통 가져왔을 때 나 없으면! 우리 삼촌한테 연락해 줘! 나 귀신한테 잡혀갔다고! 꼭! 꼭 이야!]
여기에 자신이 몇 줄을 추가했다.
[잡혀간 장소 - 광화문 재금 빌딩 13층, 오리온 길드.]
“……혹시 강아지 옆에 놓인 판자를 보고 오신 건가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태성.
“깡통 가져간 김 비서가 그 판자 보고 나한테 연락했다. 마침 일이 있어서 광화문 게이트 지역에 있었거든.”
천문석은 이태성이 여기 나타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꼬맹이가 귀신에게 잡혀갔다는 판자를 본 이태성은 도와주러 오리온 길드를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오리온 길드라고만 썼지 구체적인 장소는 적지 않았다.
‘어떻게 한경석 공방으로 찾아온 거지?’
의문을 품는 순간, 이태성은 마음속 소리를 들은 것처럼 대답했다.
“오리온 길드 아는 사람 좀 있어. 1세대 헌터는 아니고, 1.5세대쯤? 그 녀석한테…….”
이때 다급한 외침이 복도에서 들렸다.
“……저기다!”
“공방 문이 열려 있다!”
……
타다다다닥-
다급히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오고 완전무장한 헌터 십여 명이 공방 입구에 나타났다!
하나같이 바닥을 구른 듯 전신이 먼지로 엉망이 된 20대 초반의 신입 헌터들!
신입 헌터들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꽂혔다.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이태성!
“드디어 찾았다!”
“하, 이 어이없는 녀석!”
분노가 끓어오르는 음성이 터지는 순간.
이태성은 손을 흔들며 유쾌하게 대답했다.
“뭐야, 너희들 나 찾아다닌 거야? 와- 우리나라 헌터 업계의 앞날이 밝네! 불굴의 정신! 아주 마음에 든다.”
하하하하하-
이태성은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까닥까닥했다.
“뭐해? 덤빌 거면 빨리 와라.”
“조져 버려!”
“똑같이 굴려 주마!”
신입 헌터들은 악을 쓰며 우르르 공방으로 쏟아졌다!
그러나 공방에 들어온 순간 헌터들은 마치 돌이라도 된 듯 굳어 버렸다.
복도에선 보이지 않던 사람이 문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보였다.
빛을 산란하는 오색으로 반짝이는 카멜레온 은신 망토를 입은 사람!
보는 순간 바로 알아봤다.
오리온 길드의 언터쳐블 암살검 한경석!
“어…… 암살검이 왜?”
한 헌터가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그제야 주위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벽에 가득한 수백 자루의 단검과 망치와 모루 대장간 시설!
신입 헌터들은 이제야 깨달았다.
‘암살검 한경석의 공방!?’
선임 헌터들이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몇 번이나 강조한 암살검의 공방에 들어왔다!
신입 헌터들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사라졌다.
이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한경석과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침입자를 번갈아 봤다.
모두의 머릿속에서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고참 헌터 대부분이 회의로 자리를 비운 틈에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온 침입자!
‘설마, 이 침입자 암살검의 손님인가!?’
이때 암살검 한경석이 손을 뻗어 공방 안 사람들을 가리켰다.
-천문석.
[내 친구.]
-특급 헌터.
[내 친구.]
-이태성 길드장.
[친구 아님!]
“……네?”
“뭐? 야, 너…….”
이태성 길드장이 발끈하는 순간.
핏, 핏, 핏-
바람 빠지는 소리가 3번 울리고, 암살검과 두 친구가 멀찍이 물러났다.
암살검의 의도는 명확했고, 눈앞에는 침입자만 남았다!
신입 헌터들은 괴성을 지르며 침입자를 덮쳤다!
“잡아라!”
“아작 내버려!”
“암살검이 우리와 함께한다!”
……
“야, 너희들 진짜 이러기야!”
이태성 길드장이 분통을 터트릴 때, 선인장 재배실 문 뒤에서 고개를 내미는 세 사람.
천문석, 특급 헌터, 한경석.
특급 헌터와 한경석은 공방에서 뒤엉키는 이태성과 십여 명의 신입 헌터들을 향해 외쳤다.
“드래곤 형 화이팅!”
[우리 길드 신입들 화이팅!]
“와! 이 어이없는 녀석들!”
으아아악-
이때 괴성을 지르며 태클을 거는 육체 각성자!
이태성 길드장은 순식간에 십여 명의 신입 헌터들과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일반인도 아닌 완전무장한 헌터 십여 명과의 싸움!
하지만 천문석은 도와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싸우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닌 이태성이다.
길드 랭킹 1위, 태성 길드의 길드장 철벽 이태성!
이태성 길드장은 거대 괴수의 공격조차 피하지 않고 몸으로 버텨내는 사람이다!
게다가 이태성 길드장의 능력은 오러 능력!
극한의 오러 능력으로 거대 괴수의 반발장조차 깎아내는 게 이태성이다!
이태성은 완전무장한 신입 헌터 십여 명이 달려든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천문석은 특급 헌터, 한경석과 나란히 서서 뒤엉켜 싸우는 헌터들을 바라봤다.
“이아악- 다리 잡아! 엉겨 붙어!”
“이 새끼 힘이 엄청나다!”
“염동력! 관절에 염동력 뿌리라니까!”
“강화 전투복 충전이 급격히 떨어진다!”
“육체 능력자!? 타격이 전혀 안 들어가!”
“관절기 걸어! 관절기! 으아악-.”
신입 헌터들은 이태성에게 엉겨 붙어 치열한 개싸움을 펼쳤다!
“…….”
천문석은 이 모습을 보니 뭔가 굉장히 기분이 묘했다.
분명 시작은 한경석의 농담 같은 혼령 퇴치였는데…….
어느새 신입 헌터들과 이태성 길드장이 싸우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
언제나처럼 처음 시작과는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사건이 진행돼 난장판이 됐다.
‘……뭐가 이렇게 되냐…….’
하아-
천문석이 한숨 쉴 때 차가운 냉기가 얼굴 옆에서 느껴졌다.
문득 고개를 돌리니 시원한 캔콜라가 있었다.
[친구. 마시면서 구경해.]
따악-
그리고 들려오는 캔 뚜껑 따는 소리.
“캬아아- 시원하다!”
특급 헌터는 이미 바닥에 편하게 앉아 캔 음료를 마시며 싸움 구경을 하고 있었다.
아니 싸움이 아니라 이태성이 신입 헌터를 쥐어박는 모습을 보며 외쳤다.
“드래곤 형 화이팅!”
그러나 싸움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다급한 외침과 함께 공방 입구에 나타난 고참 헌터들!
고참 헌터들은 한달음에 달려들어 젊은 헌터들을 떼어 냈다.
“허억, 허억- 침입자…….”
“하, 시바- 허억…….”
신입 헌터들은 싸운 지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땀과 먼지로 엉망이 된 채 숨을 몰아쉬었다.
몇몇 헌터들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털썩털썩 주저앉았다.
순식간에 체력과 각성력이 바닥난 모습!
아무리 신입 헌터라고 해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고참 헌터들은 한눈에 알아봤다.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이 남자!
타인의 각성력을 순식간에 깎아내는 오러 능력자다!
신입들이 나뒹구는 모습을 보면 높은 등급의 오러 능력자!
얼굴과 모습은 20대 극 초반.
하지만, 헌터에게 나이는 문제가 안 된다.
오리온 길드의 대인전 랭커 ‘암살검’도 20대 초반이니까!
고참 헌터들은 공방 안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외쳤다.
“혹시 암살검의 친구십니까?”
[내 친구 아님. 싸워도 됨.]
묻는 즉시 한경석이 대답하고, 특급 헌터가 추임새를 넣었다.
“드래곤 형 화이팅! 힘을 내!”
“이 꼬맹이 녀석! 하지만 관객이 원한다면, 당연히 배우는 춤을 춰야지!”
하하하하하-
이태성은 시원한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까딱였다.
“와라- 시원하게 한판 붙자!”
고참 헌터들은 재빨리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긴급 전체 회의 중 사무실로 밀고 들어온 침입자!
침입자를 그냥 보내 주는 건 길드의 위신과 평판을 깎는 일이다!
위신이 깎이느니 차라리 악명을 쌓는 게 났다!
헌터 업계에서 만만하다는 인상을 주면 사방에서 찔러보기가 들어온다!
“……!”
“……!”
눈빛을 교환한 고참 헌터들은 순식간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서로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붙으려는 순간 복도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모두 그만둬라! 저분 지금 장난하고 있는 거다.”
머리가 하얗게 센 50대 중반의 헌터가 복도에서 나타나 헌터 사이로 걸어 들어왔다.
“강 실장님!?”
강 실장이라는 헌터가 이태성 앞에 서는 순간.
이태성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경욱이는 잘 있냐?”
오리온 길드, 길드장 김경욱!
위계질서가 철저한 대형 길드에서 길드장은 길드의 얼굴!
눈앞의 침입자가 길드장을 친구처럼 부른 순간, 고참 헌터들은 분노했다!
강화 전투복에 마력광이 흐르고 폭발할 듯 살기가 치솟았다!
헌터들이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눈앞의 침입자를 박살 내려 할 때.
강 실장은 바로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만! 이분 길드장님 친구분이시다.”
“……네?”
당황한 헌터들의 시선이 침입자에게 모였다.
40대의 김경욱 길드장.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침입자.
‘두 사람이 친구라고!?’
이때 번개 치듯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20대로밖에 보이지 않는 외모와 엄청난 각성력!
헌터들의 머리에 비슷한 단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곳곳에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신체 노화 역행?”
“최고등급 각성자!”
“길드장님 친구라면!?”
……
“1세대 헌터!”
경악한 누군가가 외치는 순간.
강 실장은 자신의 나이 반도 안 될 외모의 침입자에게 깊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김경욱 길드장은 잘 계십니다. 이태성 길드장님.”
이 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신입과 고참, 모든 헌터들은 숨 쉬는 것마저 잊고 눈앞의 청년을 바라봤다.
하와이안 셔츠에 반바지 슬리퍼를 신은 평범해 보이는 청년.
이 청년이 그 사람이다.
한국 헌터 업계의 전설!
한국 길드 랭킹 부동의 1위, 태성 길드의 길드장!
게이트가 열린 후 20년 동안 탱커로서 정점에선 최고등급 오러 각성자!
철벽 이태성이 눈앞에 있었다!
신입과 고참. 모든 헌터들은 열기마저 느껴지는 눈으로 이태성을 봤다.
1세대 헌터 중에는 이태성을 뛰어넘는 헌터들이 있었다.
-예지에 가까운 전투 감각으로 게이트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술가 검은 폭풍!
-거대한 슬레지 해머로 피의 길을 열어 서울 수복 작전을 성공시킨 강철해머!
……
그러나 헌터 업계에 들어오는 헌터들의 롤모델 1위는 수십 년 동안 항상 같은 사람이었다.
이태성 길드장!
이태성의 거침없는 행보는 수많은 헌터들을 매료시켰다.
조폭 헌터, 조폭 길드, 범죄 조직!
갑질하는 재벌, 정치인, 언론인, 법조인과 을질하는 시민단체와 사기꾼들!
거치적거리는 건 모조리 아작내는 그 과감한 폭력성!
1세대 헌터 염동력자 마혁진을 아작내고.
뒷돈을 바란 정치인의 집에 마수를 떨어뜨렸다.
이태성의 그 거침없는 행보가 수많은 헌터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런 이태성 길드장이 눈앞에 서 있다!
거대한 산악 같은 존재감을 뿜어내면서!
신입 헌터들은 마치 숨이 트이듯 다급한 외침을 쏟아 냈다.
“이태성 길드장님 존경합니다!”
“정말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저 사인 한 장만! 어린 시절부터 팬입니다!”
……
강 실장이 고참 헌터들에게 명령했다.
“모두 내보내라!”
고참 헌터들이 번쩍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신입 헌터들을 공방 밖으로 밀어냈다.
헌터들이 모두 문밖으로 나간 순간.
강 실장은 깊이 고개 숙이며 짧게 인사했다.
“그럼 일 보십시오. 길드장님.”
그리고 바로 공방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쿵-
강화 철문이 닫히는 순간.
거대한 산악처럼 위압감을 뿌리던 이태성은 바로 몸을 돌려 외쳤다!
“야! 꼬맹이 봤지!?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