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39화>
“알바-!”
“친구-!”
한경석과 특급 헌터는 한달음에 달려와 쓰러지는 천문석을 부축해 눕혔다.
“알바! 정신 차려! 역시 특급 알바라도 혼령을 상대하는 건 무리였어!?”
“친구! 이대로 가면 안 돼! 정신 차려! 죽으면 안 돼!”
“뭐!? 알바가 죽는다고? 안 돼!”
……
다급한 외침이 들려오는 순간, 천문석은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제대로 먹혔구나!’
연기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먹혔다!
소리 폭탄을 사방에 심고, 성불의 위험을 무릅쓰고 불가의 무리를 펼친 보람이 있었다!
한경석과 특급 헌터는 자신이 보이지 않는 혼령과 격전을 펼쳤다고 완벽하게 믿었다.
이제 분위기가 무르익는 순간 일어나 마무리만 지으면 된다!
이때 한경석과 특급 헌터의 외침이 달라졌다.
“포션, 포션이 어디 있지? 아니지, 포션은 쇼크 오는데!? 강장제! 맞아! 후식이 강장제 빼돌린 게 여기 있을 텐데!”
“앗! 나한테도 앙꼬 대장 약 있어! 이거 나무에 주니까 엄청 튼튼해졌어! 잠시만! 이거 먹이면 알바 정신 차릴 거야!”
강장제!?
식물 성장 촉진제!?
“빨리! 빨리 먹여야 해!”
“잠깐! 경석이 형 내 약부터!”
“아냐! 후식이 강장제! 이거 효과 엄청 좋아! 이거 먹으면 하루 종일 온몸이 시뻘게져!”
“앙꼬 대장 약 장난 아니라니까! 옥상 나무 엄청 커졌어! 쑥쑥 자라!”
……
한경석과 특급 헌터는 천문석을 내버려 두고 자신의 약을 먼저 쓰겠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뭐지, 이 녀석들 장난인가!?’
천문석은 실눈을 뜨고 두 사람을 살폈다.
한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약이 더 뛰어나다고 주장하는 특급 헌터와 한경석!
장난이 아니다!
두 녀석 모두 한없이 진지하다!
‘와, 이 어이없는 녀석들! 기절한 사람한테 뭘 먹이려는 거야!?’
분위기가 무르익는 걸 기다리다가 정체불명의 약을 강제로 먹게 될 상황!
커어억-
그 즉시 숨이 트이는 외침을 터트리며 벌떡 일어났다!
“알바! 정신 들어!?”
“친구! 이 약 후식이 강장제야! 얼른 먹어!”
“앗! 이거 앙꼬 대장 약이야! 앙꼬 대장 구슬 봤지!? 알바 얼른 내 약 먹어!”
……
천문석은 다가오는 약들을 밀어내며 다급히 외쳤다.
“아직 혼령 처리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어!”
“뭐!?”
“어엇!?”
깜짝 놀라 주위를 살피는 두 사람.
천문석은 가면을 벗으며 말을 이었다.
“우선 가면 줘! 혼령에게 오염됐다! 가면 태워 버려야 해!”
으앗-
아아앗-
특급 헌터와 한경석은 바로 가면을 벗어 줬다.
천문석은 가면을 들고 공방을 빠르게 가로지르며 말했다.
“우선 혼령을 임시 봉인하는 데는 성공했어! 하지만 ‘게이트 맥’의 흐름을 바꾸지 않으면 이번 같은 일이 또 생길 거야!”
“그 흐름 바꾸는 거 친구가 해 주면 안 돼? 잠깐만!”
다급히 외친 한경석은 벽 한쪽에 걸린 네트 망을 끌어당겼다.
위이잉-
네트 망이 스윙도어처럼 열리고 그 안의 금고가 드러났다.
철컥-
바로 생체 인식으로 잠금장치를 풀고 금고를 여는 한경석.
“……!”
금고가 열리는 순간 황금빛이 확 쏟아졌다!
차곡차곡 쌓인 수십 개의 골드바!
“골드바랑 마력 금속이야. 이걸로 어떻게 안 될까?”
한경석이 금고를 가리키며 절박한 표정으로 말하는 순간.
특급 헌터가 바로 거들었다.
“알바! 경석이 형 도와줘! 돈 모자라면 나도 이 약이랑 태풍 구슬 보탤게!”
천문석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쉽지만, 이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냐.”
“그럼 어떻게 해야 해!?”
한경석의 진지한 질문이 돌아오는 순간 감이 왔다!
‘지금이 본론을 꺼낼 때다!’
“……내가 보기에는 당분간은 집에서 출퇴근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출퇴근!?”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예리한 눈으로 공방 안을 훑는 천문석.
“…….”
“…….”
한경석과 특급 헌터의 시선이 천문석을 따라 움직여 한곳에서 멈췄다.
난방 텐트가 쳐진 침대!
천문석은 침대를 가리키며 낮고 으스스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석이 네가 저 침대에서 자고 있는데…… 혹시라도 이 공방에 봉인된 혼령이 다시 깨어난다면!?”
으아악-
순간 특급 헌터가 비명을 질렀다.
“경석이 형 여기서 자면 안 돼! 혼령한테 잡혀가! 절대 여기서 자면 안 돼!”
“……하지만 검을 만들어야 하는데!?”
“경석아. 지금은 검을 생각할 때가 아냐. 이걸 봐라.”
천문석은 손에 든 가면을 전기 고로 안으로 집어던졌다.
파스스슥-
순간 새파란 귀화(鬼火)가 고로에서 넘실거렸다!
“알바! 이게 혼령의 기운이야!?”
“이거 설마!?”
천문석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아까 말한 대로 혼령에게 오염된 거야.”
“……!”
“……!”
경악으로 커진 눈과 핏기가 사라진 얼굴!
특급 헌터와 한경석은 똑같은 표정, 벼랑 끝에 매달린 사람이 동아줄을 보듯 절박한 표정으로 천문석을 바라봤다.
당장 다단계 옥 장판을 10개쯤 사야 한다고 말해도 주저 없이 카드를 긁을 모습이었다!
이제 ‘한경석 귀가 계획’의 마무리를 짓는다!
천문석은 재빨리 전생의 모습을 떠올렸다.
전생의 천문사에서 기우제, 산신제, 작명, 우물 찾기…… 기타 등등!
동네잔치를 모조리 싹쓸이했던 그 표정, 몸짓, 말투를 흉내 낸다!
믿음과 신뢰 그 자체, 천문사의 젊은 도사 천문석이 된다!
천문석은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부적을 써줄게!”
“부적이라고!?”
솔깃한 표정으로 되묻는 한경석.
“이 부적이 있으면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 근무 시간에는 혼령이 안 나올 거야. 하지만…….”
“친구! 고마워! 내가 부적값 많이 줄게!”
한경석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금고 안 골드바를 무더기를 꺼내서 건넸다.
천문석은 골드바를 바로 돌려주며 고개를 저었다.
“이 부적은 돈 받고 팔면 부정 타서 안 돼. 그리고 이건 임시방편이다. 경석아.”
“임시방편이라고!?”
“맞아. 임시방편.”
천문석은 정오의 햇살이 쏟아지는 선인장 재배실을 가리켰다.
“저기에 광화문 게이트가 있는 이상. 게이트 맥! 혼령의 흐름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어. 언젠가는 혼령이 다시 나타날거고. 결국, 선택해야 한다!”
“……선택해야 한다고? 내가 뭘 선택해야 하는데!?”
한경석은 마른침을 삼키며 바짝 긴장해서 묻는 순간.
특급 헌터도 두 손을 움켜쥐고 완전히 몰입했다.
계획의 정점, 화룡점정 하는 순간!
천문석은 눈을 딱 감고 구라를 쳤다!
“이 공방을 완전히 폐쇄하고,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 돌아왔다.
하하하하하하하하-
공방을 울리는 커다란 웃음소리!
“어!?”
번쩍 눈을 뜨자, 어리둥절한 표정의 특급 헌터와 한경석이 보였다!
두 사람이 시선이 향한 곳은,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자신의 등 뒤!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자, 배를 잡고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웃고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하와이안 셔츠에 반바지, 선글라스에 슬리퍼를 신은 남자!
지금 상황, 장소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자가 미친 듯이 웃으며 외쳤다.
“와, 진짜! 넌 최고다!”
“하- 이 미친놈! 너 지금 그 실력으로 뭘 한 거야!?”
“아, 진짜 미치겠네! 진짜 상상도 못했다! 이런 걸 볼 줄이야!”
하하하하하하하-
* * *
활짝 열린 공방 문 앞.
휴양지에 놀러 온 것 같은 화려한 옷차림의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천문석은 보는 순간 누군지 알아챘다.
제주도 휴가 중, 카지노 유람선의 난장판에서 만난 남자!
이태성 길드장!
‘이태성 길드장이 여기서 왜 나와!?’
천문석이 경악할 때 천천히 선글라스를 벗으며 피식 웃는 이태성!
“와, 이 사기꾼 녀석!”
이태성이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 다급한 외침이 터졌다.
“드래곤 형!”
“……형?”
특급 헌터가 벌떡 일어나 다급히 외쳤다.
“드래곤 형! 빨리 도망가! 여기 혼령 나와! 우리 혼령 퇴치하고 있어!”
크크크크킄-
이태성은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
“혼령! 아, 진짜 미치겠네! 혼령이라니!”
화룡점정의 순간에 불쑥 튀어나온 이태성 길드장!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이태성 길드장은 돌아가는 사정을 모두 알아챈 눈치였다!
자신의 ‘한경석 귀가 계획’이 끝장날 위기 상황!
천문석은 재빨리 표정을 관리하며 한경석과 특급 헌터의 기색을 확인했다.
어느새 한경석은 카멜레온 은신 망토의 지퍼를 끝까지 올린 상황!
다행히 별다른 기색은 느껴지지 않는다.
문제는 특급 헌터였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꼬맹이의 표정이 빠르게 변해 갔다!
의혹, 걱정, 의심, 공포!
정신없이 변해 가는 표정으로 자신과 이태성 길드장, 한경석 그리고 사방을 돌아보는 특급 헌터!
“……!”
특급 헌터는 곧 무언가 굳게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외쳤다!
“드래곤 형! 거기 있으면 혼령 붙어! 혼령 붙으면 전처럼 거지 된단 말야! 여기는 우리한테 맡기고 빨리 도망가!”
“거지?”
[거지?]
모두의 시선이 모일 때.
이태성 길드장은 버럭 외쳤다.
“야, 거지 아니라니까! 노숙! 아니, 노숙도 아니고 하여튼! 그거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해변에 쓰러진 거야!”
“알았어! 그러니까 빨리빨리 도망쳐! 우리는 알바의 보호를 받지만, 드래곤 형은 그대로 있으면 부정 타! 진짜 혼령 붙어! 쿠아아아, 쿠아아아아- 엄청 무서워!”
이태성은 피식 웃으며 천문석을 바라봤다.
“혼령이 있다고? 여기에? 진짜로?”
이태성 길드장이 질문하는 순간.
특급 헌터와 한경석이 동시에 외쳤다.
“당연하지! 방금 알바가 혼령 임시로 봉인했어! 번쩍번쩍 엄청났어!”
[맞아! 내 친구가 혼령 봉인했어! 나도 봤어!]
“진짜 여기에 혼령이 있다고? 광화문 게이트에서 흘러나온 게이트 맥이 흐르고!?”
이태성이 다시 한 번 묻는 순간, 특급 헌터와 한경석의 시선이 천문석에게 향했다.
“알바! 빨리빨리 말해 줘!”
[그래 친구! 이 사람한테 말해 줘!]
이태성은 피식 웃으며 흥미진진한 시선으로 천문석을 봤다.
“그래. 말해 줘라.”
천문석은 웃음부터 터트렸다.
하하하하하-
듣는 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 단 한 점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는 정정당당한 대장부 웃음을!
“너 지금…….”
이태성 길드장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천문석은 번쩍 손을 들고 망설임 없이 외쳤다.
“공명정대한 하늘의 저울을 걸고 단언합니다! 여기에는 ‘혼령’과 ‘게이트 맥’이 있습니다!”
“봤지! 봤지!? 알바가 있다잖아!”
[맞아! 내 친구가 있다잖아!]
바로 특급 헌터와 한경석이 환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와, 이 어이없는 녀석! 뭐, 하늘을 걸고 혼령, 게이트 맥이 있다고!?”
이태성 길드장이 가슴을 두들기며 분통을 터트렸으나.
천문석의 당당한 표정은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공명정대한 하늘의 저울을 걸고 한 구라!
그러나 천문석은 한 치의 거리낌도 없었다.
하늘의 저울은 1도 공명정대하지 않다!
즉, 하늘의 저울이 공명정대하지 않으니 맹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게다가 자신은 이미 하늘님에서 땅님으로 갈아탄 지 며칠이나 지났다!
그렇기에 천문석은 당당히 햇살이 쏟아지는 선인장 재배실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 햇살이 쏟아지는 방으로 흘러든 게이트 맥이! 이 공방을 지나가며 혼령을 불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우징 로드를 집어 들고 양손을 좌우로 뻗었다.
위이이잉-
다우징 로드가 바람개비처럼 회전하며 저릿저릿한 기파를 뿜어 낼 때!
천문석은 외쳤다.
“느껴진다! 게이트 맥의 흐름이!”
“알바! 조심해!”
[친구! 조심해!]
“……!”
이태성은 눈을 번뜩였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방을 훑다가 한 장소에서 멈추는 순간 입가에 맺히는 의미심장한 미소.
이태성은 햇살이 쏟아지는 방을 가리켰다.
“그러니까 네 말은 광화문 게이트에서 시작된 ‘게이트 맥’. 일종의 수맥 같은 게, 저 창으로 흘러들어와 이 공방을 지나간다 이거지?”
천문석이 대답하기 전에 특급 헌터와 한경석이 먼저 대답했다.
“맞아! 저 혼령 탐지기가 빙글빙글 돌아가잖아!”
[으으으- 게이트 맥! 친구 부적, 부적부터 써 주면 안 될까!?]
이 순간 이태성 길드장의 입가를 스치는 회심의 미소!
회심의 미소를 보는 순간 번쩍 머리를 스치는 불길한 예감이 있었다.
‘무언가 놓쳤다!?’
천문석이 재빨리 머리를 굴릴 때.
이태성 길드장은 선인장 재배실을 가리키며 외쳤다.
“야! 저기서 광화문 게이트 맥이 어떻게 흘러들어와!?”
“알바가 그렇다고 했잖아!”
[맞아! 내 친구가 그렇게 말했어!]
피식 웃은 이태성은 성큼성큼 공방을 가로질러 햇살이 쏟아지는 유리창을 가리켰다.
“뭐가 보이냐?”
“햇살?”
[햇살?]
‘아차!’
특급 헌터와 한경석의 대답, ‘햇살’을 듣는 순간 천문석은 놓친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햇살!
직사광선!
게이트 맥이 흘러들어오는 저 창으로 정오의 햇살, 직사광선이 들어와서는 안 된다!
반사적으로 이태성 길드장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입가에 어린 의미심장한 미소가 보였다.
그리고 생각 그대로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지금 정오에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오는 건. 이 창문이 남쪽으로 났다는 거지? 그리고 지금 이 빌딩이 있는 곳은 광화문 광장이고.”
“그게 왜……?”
[갑자기 무슨 말이야……?]
의아한 시선이 모이는 순간 이태성 길드장은 반대쪽 복도를 가리키며 외쳤다.
“야! 광화문 게이트는 북쪽에 있잖아! 이 창문은 남쪽으로 났고!”
“……!”
이태성 길드장의 단숨에 판세를 뒤집어 버리는 일격이 가해졌다.
광화문 게이트는 재금 빌딩 북쪽에 있다.
당연히 정오의 햇살이 쏟아지는 남쪽 창으로 광화문 게이트가 보일 리 없다.
즉 광화문 게이트에서 게이트 맥이 흘러들어온다면, 남쪽 창문이 아니라 북쪽 복도에서 흘러들어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