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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538화 (539/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38화>

“최설 대리!?”

최설이 여기서 왜 나와!?

천문석은 재빨리 벽에 쌓인 A4용지 박스 곳곳으로 귀를 움직였다.

그리고 소리만으로도 누군지 알 수 있는 익숙한 목소리가 잇달아 들려왔다!

[소리 멈춘 거 같은데?] - 엠마

[맞아. 이제 안 들리네.] - 클릭스

[찾아가서 말해야 하는 거 아냐?] - 폴리머

[안 돼! 사장님이 절대 트러블 일으키면 안 된다고…….] - 게릭

……

“설마, 여기!?”

경악한 천문석이 비품 창고를 돌아보는 순간 멀리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친구! 알아냈어!?”

“알바! 혼령 잡았어!?”

천문석은 재빨리 문을 닫고 공방을 향해 외쳤다.

“잠깐만 혼령 추적 중이야! 그대로 아니. 이제 밖에 나가 있어도 괜찮아! 정밀 탐색을 해 봐야 할 것 같아!”

문 뒤에서 살그머니 머리를 내밀며 말하는 두 사람.

“진짜로 나가 있어?”

“정말로 우리 필요 없어?”

“이것도 중요한 임무야! 밖에서 다른 사람 못 들어오게 막아줘! 그동안 혼령은 내가 처리할게!”

“알…….”

핏-

쾅-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혼자 남게 된 천문석은 재빨리 비품 창고 문을 열었다.

“뭐지!? 여기서 왜 우리 사무실이 나와!?”

순간 얼핏 머리에 떠오르는 가설이 있었다!

“설마!?”

그렇다면 확인이 먼저다!

천문석은 일기일원공의 내력을 굉천수의 구결에 따라 움직였다!

폭발할 듯한 굉천수의 내력이 모이는 순간.

가볍게 손을 흔들어 A4 박스에 굉천수를 뿌렸다.

탁-

아무 위력도 없는 가벼운 소리가 났다.

그러나 이 손에 담긴 무리는 극한의 격공장!

격산타우(隔山打牛)!

겹겹이 쌓인 비품을 뛰어넘은 내력이 벽마저 지나쳐 허공에 닿는 순간.

우득-!

천문석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콰아아아앙-

순간 비품 너머 허공에서 굉천수의 굉음이 터졌다!

천문석은 재빨리 비품 상자에 귀를 가져다 댔다.

[으아악-! 이런 썅! 고무망치! 내 고무망치!]

최설의 분노한 외침과 함께 소리가 들렸다!

쾅쾅쾅, 쾅쾅쾅쾅-

느껴진다!

이 소리가 진동되어 강화 철근과 기둥을 타고 흐르는 것이!

진동이 흐르는 천장과 벽이 스피커처럼 울리는 것이!

콰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아-

그리고 혼령의 울음소리가 시작됐다!

암살검과 특급 헌터를 공포에 떨게 한 혼령은 김철수 사무실의 최설 대리였다!

혼령의 정체를 깨달은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쌓여 있는 비품을 선인장 재배실로 꺼냈다.

A4 상자, 사무 비품, 복사기, 세제, 밀대…….

비품이 쏟아지듯 빠져나오고 곧 벽이 나타났다!

벽에 손을 올리자 바로 감이 왔다.

가벽(假壁)이다!

순간 머릿속에 13층의 구조가 그려졌다.

재금 빌딩 13층에는 두 사무실이 있다.

승객용 엘리베이터와 연결된 ‘오리온 길드’.

화물용 엘리베이터와 연결된 ‘김철수 사무실’.

같은 13층에 있는 오리온 길드와 김철수 사무실!

처음 철수형을 만나 사무실에 가던 기억이 떠오른다.

-사무실 사방에 쌓여 있던 비품들!

지금 보는 것과 같다!

-사무실 안쪽 끝에 있던 커다란 강화 유리창.

선인장 재배실의 유리창과 같다!

-게다가 사무실 철문에 붙어 있던 명판!

[지원 9팀]!

오리온 길드의 지원 9팀 비품 창고!

사무실 가득한 비품을 보며 어이없어하던 자신에게 철수형은 말했다.

‘저기에 오리온 길드 창고로 이어지는 문이 있어. 원래는 여기랑 한 사무실이었는데 벽을 만들어서 쪼갠 거야.’

그리고 사무실을 울리는 무거운 진동이 들려왔다.

궁, 궁, 구웅-

당시 철수형의 해탈한 스님 같은 얼굴!

그 얼굴이 지금 앞에서 보듯 생생히 떠올랐다!

이것만이 아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다시 한 번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추이린 수석 연구원의 배송 의뢰를 받으러 사무실에 왔을 때.

쿵, 쿵, 쿵-

벽에서 진동이 울리는 순간.

최설은 고무망치를 꺼내 미친 듯이 벽을 두들겼다!

쾅쾅쾅, 쾅쾅쾅-

“……!”

천문석은 모든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실체적 진실을 깨달았다!

김철수 사무실과 한경석 공방은 벽 하나를 두고 나란히 있다!

김철수 사무실을 울리던 진동은 한경석이, 한경석 공방을 울리던 진동은 최설이 만들었다!

이번 혼령 사건의 진실은 층간. 아니, 벽간 소음이었다!

* * *

벽간 소음!

실체적 진실을 깨닫는 순간, 최후식 이사의 의미심장한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가서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이건 너만 할 수 있는 일이야!’

‘그 귀신 절대 퇴치하면 안 된다! 아니, 가능하면 더 심하게 만들어 주라! 한경석이 무서워서 아예 집으로 들어가게!’

최후식 이사는 혼령의 정체가 벽간 소음, 김철수 사무실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최후식 이사의 말이 맞았다.

‘귀신이 더 심하게 날뛰어 한경석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

이건 자신만이 할 수 있었다!

김철수 헌터업 사무실의 부사장인 자신만이!

모든 진실을 깨달은 천문석은 고심했다.

선택지는 두 가지다.

1. 한경석에게 혼령 사건의 진실, 벽간 소음을 알린다.

2. 최후식 이사의 부탁대로 혼령이 날뛰게 만들어 한경석을 집으로 돌려보낸다.

사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천문석은 바로 결심하고 밖으로 빼낸 비품을 제자리로 돌려놨다.

그리고 선인장 재배실과 공방을 훑으며 계획을 세웠다.

‘한경석 귀가 계획!’

혼령의 공포를 극대화해, 한경석을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려보낸다!

최후식 이사가 말한 대로 귀신, ‘최설’이 미쳐 날뛰게 만드는 건 안 된다!

암살검 한경석은 대인전 세계 랭커!

지금은 초자연적인 현상에 겁을 먹어 합리적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약간의 아주 약간의 빈틈만 보여도 순식간에 최설의 존재를 눈치챌 거다!

보다 세련된 계획이 필요했다!

그리고 자신에겐 그런 계획을 세울 능력과 경험이 모두 있었다.

전생에 천문사를 이어받았을 때 이미 해 봤던 일이니까!

카캬카카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는 순간.

계획이 얼개를 갖추고, 구체적인 시행 방법이 순식간에 세워졌다!

천문석은 바로 움직였다.

끌어올린 내력을 굉천수의 구결로 운용해, 일종의 소리 폭탄을 만들었다.

탁탁, 탁탁탁-

내력에 반응하는 이 소리 폭탄을 공방 천장과 벽, 바닥 곳곳에 심었다.

그리고 공방에 놓인 구리선을 끊어 30cm 길이의 ‘L’자형 다우징 로드 두 개를 만들었다.

준비가 끝난 순간 천문석은 가볍게 심호흡하고 철문을 열었다.

문 옆 벽에 나란히 쪼그려 앉아, 양손으로 귀를 막은 두 사람.

특급 헌터와 한경석.

두 사람은 문이 열리는 순간 번쩍 고개를 들고 외쳤다.

“알바! 어떻게 됐어!?”

“혼령! 혼령 잡은 거야!?”

가면 너머에서 기대와 두려움, 공포와 희망이 뒤섞인 감정이 느껴졌다!

두 사람의 간절한 시선에 가슴이 아렸으나,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도 필요한 법!

천문석은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슬쩍 손을 내밀었다.

“내가 이 다우징 로드로 확인했는데…….”

말끝을 흐리는 순간 특급 헌터가 바로 외쳤다.

“앗! 나, 이거 본 적 있어! 퇴마사가 들고 다니는 거야!”

“친구! 진짜로 전문가였구나!”

신뢰가 가득 담긴 시선이 쏟아졌다!

밑밥은 모두 깔린 상황!

천문석은 진짜 퇴마사처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우선 안으로 들어와. 혼령의 흔적을 보여 주면서 설명할게.”

몸을 돌려 공방으로 들어갔으나 따라 들어오지 않는 두 사람.

“…….”

“…….”

깊은 망설임이 느껴질 때, 천문석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지금은 임시로 제압한 상태라 안전해. 아니, 어쩌면 혼령이 문밖으로 도망칠지도 모르니. 안이 더 안전해!”

타다닥-

다급히 달려와 옷자락을 잡고 외치는 두 사람.

“그런 건 미리 말하란 말야!”

“맞아! 미리 말해 줘!”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껏 진지하게 말했다.

“알았어. 그럼 바로 시작할게!”

그리고 바로 다우징 로드를 든 양손을 들어 올렸다.

위잉, 위이잉-

그 즉시 좌우로 흔들리는 다우징 로드!

“……!”

“……!”

특급 헌터와 한경석의 눈이 확 커지는 순간.

천문석은 천천히 공방 안을 걸으며 전문가처럼 말했다.

“이 공방 터가 굉장히 안 좋아! 다우징 로드 흔들리는 거 보이지?”

휙휙, 휙휙휙-

위, 아래로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

천문석은 활짝 문이 열린 선인장 재배실을 가리켰다!

“저기 창문 밖에 뭐가 있는지 알지? 광화문에서 제일 유명한 거.”

“광화문에서 제일 유명한 거?”

“광화문 게이트!?”

“맞아! 광화문 게이트가 밖에 있어!”

“친구. 설마, 혼령이 광화문 게이트 때문인 거야!?”

천문석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왼손을 선인장 재배실로 오른손을 입구 철문 방향으로 놨다.

[선인장 재배실 -> 공방 -> 복도]

문이 열린 세 공간이 직선으로 이어진 상황!

천문석은 심각한 표정으로 외쳤다.

“잘 봐라!”

위이잉, 위이이잉-

순간 왼손의 다우징 로드와 오른손의 다우징 로드가 바람개비처럼 회전했다!

“……!”

“……!”

경악한 특급 헌터와 한경석은 초집중 상태!

“회전하는 거 보이지!”

두 사람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여! 보여! 아주 잘 보여!”

“친구 설마 이게 혼령의 기운!?”

“맞아! 정확히는 광화문 게이트에서 흘러나온 ‘게이트 맥’!”

천문석은 베테랑 퇴마사처럼 막힘없이 설명했다!

“저 재배실 창에서 들어온 기운! 게이트 맥이 이 공방을 정통으로 흐르고 있어!”

“강물의 흐름에 모래와 흙이 쓸려 내려오는 것처럼!”

“게이트 맥의 흐름에 혼령의 기운이 쓸려 오고 있는 거야!”

천문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묵직한 소음을 내며 회전하는 다우징 로드!

위이이이잉-

회전하는 다우징 로드에서 저릿저릿한 기파가 쏟아졌다!

“그게 혼령의 흔적!?”

“진짜 혼령이 나타난 거야!?”

공포에 질린 외침이 터지는 순간.

커어어억-

천문석은 억눌린 비명을 터트렸다.

“알바 괜찮아!?”

“친구 괜찮은 거야!”

“간신히 혼령을 눌러놨는데! 힘이 모자라! 두 사람 내 몸에 손을 얹어 줘!”

“으악- 특급 헌터는 두렵지 않다!”

특급 헌터가 두 눈을 질끈 감고 천문석의 다리에 매달리고,

“……할 수 있다!”

한경석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외치고 천문석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순간 맞닿은 몸으로 선연한 기운이 쏟아졌다!

이 선연한 기운은 천일의 가뭄으로 메마른 논에 내리는 비처럼, 특급 헌터와 한경석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깜짝 놀란 두 사람이 번쩍 두 눈을 크게 뜨는 순간.

천문석은 손을 들며 외쳤다.

“혼령이 나타났다!”

쿠아아아아아앙-

공방 사방에서 굉음이 터지고!

쿠으으으으으으-

벽과 바닥, 천장이 거대한 짐승이 울부짖듯이 떨렸다!

으아악-

으어억-

특급 헌터와 한경석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는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앞으로 나서 두 사람 앞을 막고 외쳤다.

“물러가라!”

그리고 어느새 텅 빈 양손으로 수인을 짚었다.

지권인(智拳印)의 수인으로 지혜의 륜을 밝히고!

전법륜인(傳法輪印)의 수인으로 지혜의 빛을 하나로 모았다!

이 순간 천문석은 움직였다!

지혜의 빛을 손에 담고!

생사팔문의 보법을 펼쳐 혼령을 내리누른다!

쿠아아아아-

쿵, 쿵, 쿵, 쿵-

혼령의 비명과 보법의 발소리가 뒤엉켜 퍼져 나갈 때.

한경석과 특급 헌터는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천문석이 혼령과 격전을 펼치고 있다!

땀이 뚝뚝 떨어지고, 고통으로 경련하는 육체!

커어억-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보이지 않는 공격을 맞은 듯 움찔움찔 수축하는 몸!

“알바! 내가 도와줄게!”

“친구! 나도!”

특급 헌터와 한경석이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접힌 허리를 곧게 펴고, 전법륜인의 수인을 짚은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번쩍-

어두운 밤을 밝히는 등대처럼!

무명(無明)을 밝히는 지혜의 빛이 높이 솟아 올랐다!

이 순간 천문석은 번뇌를 끊어 버리는 사자후를 터트렸다!

“갈(喝)!”

동시에 손에 담은 지혜의 빛이 폭발했다!

물결치듯 퍼져 나가는 사자후와 지혜의 빛에 닿는 순간!

혼령의 진동과 비명이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어느새 공방에 정적이 내려앉는 순간.

특급 헌터와 한경석은 환호했다!

“알바가 혼령을 잡았다!”

“친구가 해냈어! 혼령을 잡았어!”

환호성이 울려 퍼질 때, 천문석은 마치 모든 힘이 다한 듯 휘청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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