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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536화 (537/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36화>

“부탁한다! 이건 너만 할 수 있는 일이다! 너한테 한 가정의 평안함이 달렸다!”

최후식 이사는 몇 번이고 강조했다.

천문석은 혹시 농담하는 건가 싶어 최후식 이사의 얼굴이 다시 한 번 살폈다.

그러나 최후식 이사의 얼굴은 한없이 진지했다.

“……네 알겠습니다.”

천문석이 고개를 끄덕이자, 최후식 이사는 확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최 비서. 이 친구 한경석 공방으로 안내해 줘. 모든 편의 다 봐주고 말이지. 아주 중요한 손님이니까 최고의 대우를 해야 한다!”

이사실 바로 앞 책상.

최 비서라 불린 직원이 일어나 바로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한경석 헌터님의 공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천문석은 앞장서 걷는 최 비서를 따라오리온 길드 사무실을 가로질렀다.

오리온 길드 사무실은 면접 때와는 분위기가 180도 변해 있었다.

대형 길드 특유의 느긋했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완전무장한 헌터들이 굳은 얼굴로 사무실 곳곳에 모여 있었다.

얼굴뿐만이 아니다.

몸도 경직돼 있고 낮은 목소리를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조심스러웠다.

그 수가 하나둘이 아니었다.

탱커, 딜러, 서포터.

직군, 팀별로 모여 있는 헌터의 수가 보이는 것만 100명이 훌쩍 넘었다.

레이드 팀이 나올 정도의 인원수가 사무실에서 무장한 채 대기 중이다!

숫자와 장비만 보면 당장이라도 레이드 출동을 위해 대기 중인 것 같지만, 이들의 모습에는 긴장과 지루함, 짜증과 권태가 뒤섞여 있었다.

‘뭐지?’

의문을 품는 순간 천문석의 시선을 눈치챈 최 비서는 바로 설명했다.

“신서울-신동대문 지하 터널 생긴 것 아시죠? 지금 그것 때문에 무기한 레이드 출동 대기 중입니다.”

“신동대문 도로 건설단 말씀하시는 건가요!?”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원래대로라면 도로 건설단에 참가해서 길을 뚫고 있어야 하는데…….”

더 듣지 않아도 돌아가는 사정이 짐작이 갔다.

신서울-신동대문 사이에 도로를 뚫기 위해 출범한 도로 건설단!

이 도로 건설단에는 몇 개의 대형 길드가 ‘연합 레이드 팀’을 만들어 참가했다.

이 연합 레이드 팀의 목적은 도로 건설에 방해가 되는 마수와 몬스터, 마경을 정리하는 것!

그런데 갑자기 마수와 몬스터, 마경을 정리할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신서울-신동대문 사이에 ‘지하 터널’이 뚫린 것이다!

천문석도 직접 이 지하 터널을 이용했다.

빠르고 안전한 지하 터널과 위험한 지상 도로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야심 차게 출발한 도로 건설단은 시작부터 맥이 빠졌을 거다.

“그 지하 터널 때문에 일정이 붕 뜬 건가요?”

힐끗 천문석을 살핀 최 비서는 어디까지 정보를 줘야 할지 생각했다.

지금 자신이 안내하는 헌터는 최후식 이사와 친분이 있고, 암살검 한경석이 친구라고 부르는 사람. 게다가 모든 편의를 봐주라는 지시까지 받았다.

‘헌터 업계에서 알려진 정보는 줘도 괜찮겠지.’

빠르게 생각을 마친 최 비서는 대답했다.

“네. 지금 그 터널 때문에 헌터부와 길드 간에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헌터부!?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툭 튀어나왔다.

“헌터부요? 헌터부랑 문제가 생겼다고요?”

“네. 지하 터널이 너무 대단한 게 문제가 됐습니다. 구조적인 강도가 엄청나고 공간 축약 기술까지 걸려 있어서…… 헌터부 쪽에서 신동대문 도로망 건설 계획을 무기한 연기시켜 버렸습니다.”

지하 터널이 대단해서, 도로망 건설 계획을 연기 했다고?

‘이게 뭔 소리야?’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머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이 지하 터널을 만든 건 초거대 사슴벌레다!

‘설마, 이 사람들!?’

그리고 생각 그대로의 대답이 돌아왔다.

“헌터부 쪽에서는 이 지하터널을 만든 ‘존재’가 지성과 문명을 갖추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 존재와 협상해서 이세계 거점 도시를 전체를 지하 터널로 잇는 계획을 추진 중입니다.”

최 비서는 깜짝 놀란 천문석의 얼굴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주장이죠. 그 존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설령 찾는다고 해도 협상에 내놓을 조건이 문제입니다.”

천문석은 최 비서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 바로 감이 왔다.

이 세계 거점 도시 전체를 지하터널로 잇는 건 수백조 규모의 사업이다. 아무리 한국의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했어도 불가능에 가깝다!

“정부에선 서울 헌터 부대를 주축으로 협상단까지 꾸렸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최 비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때.

“그러네요. 찾는 것도 문제고, 협상도 문제인데. 이렇게 일정이 늘어지면 큰일이네요.”

천문석은 마주 고개를 끄덕이다가 흠칫 놀랐다!

특급 헌터의 동물 친구들!

새끼 다람쥐, 니케!

서리 늑대, 탱탱이!

특급 헌터에게는 다른 동물 친구가 더 있었다!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

사슴이, 반짝이!

순간 지하터널을 달리던 초거대 사슴벌레와 사슴이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오버랩됐다.

수십 미터의 톱날 집게로 단단히 다져진 흙과 바위 암반을 모래처럼 바스러트리고 수십km가 넘는 지하터널을 뚫은 초거대 사슴벌레!

그리고 이런 초거대 사슴벌레의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8자를 그리던 황금 풍뎅이.

천문석은 직감했다.

‘같은 존재구나!’

헌터부가 애타게 찾고 있는 신동대문 지하 터널을 만들어 낸 각성 동물이 자신의 집 옥상에 있었다!

어째선지 힘을 잃고 한 뼘 크기로 작아진 채로!

이 순간 또 다른 의문이 머리를 스쳤다!

옥상에 사는 특급 헌터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범상치가 않았다!

서리 늑대, 탱탱이 - 한강 얼음 다리 건설.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 - 신동대문 지하터널 건설.

새끼 다람쥐, 니케 - 신동대문, 제주도 카지노 나이트, 세기말 대한민국…… 다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사고를 쳤다!

그리고 이 모든 각성 동물들은 지휘하는 꼬맹이, 특급 헌터!

‘특급 헌터 이 녀석 도대체 정체가 뭐야!? 진짜 각성자인 건가!?’

천문석이 의문을 품는 순간.

너무나 다급한 비명이 들려왔다!

“으아악- 도망쳐! 형 빨리빨리!”

[알았어! 도망! 빨리 도망!]

핏핏, 핏핏핏-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카멜레온 은신 망토를 입은 한경석과 한경석에게 업힌 특급 헌터가 통로 끝에 나타났다.

“그럼 전 이만! 혹시 필요한 것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해 주세요!”

최 비서는 재빨리 명함을 건네고, 몸을 돌려 도망치듯 사무실로 달려갔다.

이 순간 다급한 외침이 터졌다.

“알바!”

[친구!]

“알바! 진짜야! 진짜 귀신이 있어!”

[친구! 나타났어! 혼령이야!]

공포 영화 속 귀신 등장 장면처럼.

핏핏, 핏핏핏-

공간을 뛰어넘어 다가오는 특급 헌터와 한경석!

천문석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야, 너희가 더 무섭다.”

* * *

핏-

특급 헌터와 한경석이 천문석 앞에 도착하는 순간.

꼬맹이 목소리와 음성 변조된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알바!”

[친구!]

가면을 쓴 특급 헌터가 왼손, 은신 망토를 쓴 한경석이 오른손.

두 사람은 다급히 천문석의 양손을 잡고 폭풍처럼 말을 쏟아 냈다.

“알바! 내가 들었어! 똑똑히 들었어! 경석이 형이 단검 만드니까! 혼령이 ‘쾅쾅, 쾅쾅쾅!’ 하다가 ‘우어우워어어-’ 했어!”

[맞아! 나도 들었어! 내가 단검 만드니까 나왔어! 혼령이야! 분명 후식이가 혼령은 사라졌다고 했는데! 내가 공방에 돌아오자마자 혼령도 돌아왔어!”

한경석은 번개같이 몸을 돌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통로를 가리켰다.

[혼령이 나를 기다린 거야! 분명해! 원한이 더 강해졌어! 나를 쫓아 올지도 몰라!]

“으아악- 그러지 마! 경석이 형! 무섭잖아!”

가면을 쓴 특급 헌터는 천문석 뒤에 숨어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

말없이 이 모든 외침을 듣던 천문석이 말했다.

“지금 혼령이 나왔다고!?”

“맞아!”

“확실해!”

뭐가 됐든 직접 공방에 가서 확인해야 답이 나온다.

천문석은 앞장서 걸으며 말했다.

“알았다. 우선 확인부터 해 보자.”

“잠깐!”

순간 다급히 외친 특급 헌터는 배낭에서 가면을 꺼내 내밀었다.

“알바 이 가면 써! 혼령이 우리 얼굴 알아보면, 우리 집으로 따라올지도 모르잖아!”

상상만으로도 두렵다는 얼굴로 가면을 내미는 특급 헌터.

가면은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얼굴을 그리고 고무줄을 달아 만든 간단한 가면이었다.

그리고 가면에 그려진 뿔 달린 분노한 도깨비 같은 얼굴이 누군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가면 이마에는 이름이 적혀 있었으니까.

[장민]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들어 특급 헌터가 쓰고 있는 가면을 봤다.

마찬가지로 같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장민]

“나도 하나 주면 안 될까!?”

“당연히 되지! 형은 이 가면 써!”

음성 변조 기능을 끈 한경석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특급 헌터는 바로 가면을 꺼냈다.

이 가면에도 같은 이름이 쓰여 있었다.

[장민]

가면에는 모두 장민이라고 적혀 있었다!

“야, 혼령이 못 알아보게 가면 쓰는 거라며?”

“맞아! 혹시 우리한테 붙어서 집에 따라오면 큰일이잖아!”

“그런데 엄마 이름을 여기다가 왜 써 놔!?”

순간 번쩍 팔을 들고 외치는 특급 헌터.

“당연히 장민 이름 써야지! 장민. 엄청엄청 무섭단 말야! 무시무시해! 혼령이 찾아와도 장민은 잡아서 엉덩이 때릴 거야!”

“맞아! 장민 언니 엄청 무서워!”

한경석은 바로 맞장구치더니 재빨리 장민 가면을 썼다.

“알바! 빨리 가면 써!”

“맞아! 친구 빨리 가면 써!”

“…….”

더는 생각하는 걸 포기하고 그냥 받아들였다.

천문석은 [장민] 가면을 쓰고 공방을 향해 앞장서 걸었고, 그 뒤로 한경석과 특급 헌터가 바짝 붙어 몸을 숨기고 걸었다.

탁탁, 탁탁탁-

아무도 없는 복도에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지고, 세 사람은 곧 한경석의 공방에 도착했다.

비품 창고라고 적힌 문 바로 옆에 있는 강화 철문.

강화 철문에는 익숙한 A4용지가 잔뜩 붙어 있었다.

[노크 살살.]

[방해 금지.]

[잡담 금지.]

[조용! 조용!]

[한경석! 공방.]

[최후식 절대! 출입금지!]

“여기 맞지?”

천문석이 묻는 순간.

타다닥-

한경석과 특급 헌터는 재빨리 벽으로 달라붙어 외쳤다.

“알바! 조심해!”

“친구! 조심해!”

두 사람은 폭발물에 대비하듯 벽에 쪼그리고 앉아 양손으로 귀까지 가렸다.

“…….”

천문석은 단숨에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20평 정도 되는 둘로 나뉜 방이 나왔다.

문 앞에 있는 좁은 생활 공간, 강화 유리 벽 너머에 있는 넓은 공방 공간.

좁은 생활 공간에는 난방 텐트가 설치된 작은 침대와 냉장고뿐이다.

하지만 공방 공간에는 모루와 전기 고로, 전동해머와 자동숫돌 같은 대장간 설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었다.

게다가 팔레트 위에 쌓인 철괴와 사방의 벽에 설치된 환풍기.

네트 망에 고정된 백여 자루의 단검까지 예전과 변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귀신, 영혼, 혼령.

초자연적인 존재의 흔적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한경석의 공방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알바! 혼령! 나왔어!?”

“친구 나왔어? 보여!?”

이때 열린 철문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며 외치는 두 사람.

“야, 들어와 아무것도 없어!?”

“알바! 소리를 들어!”

“맞아! 소리가 중요해!”

조심조심 들어온 두 사람이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내력을 끌어올린 채 공방 안을 천천히 걸으며 소리를 확인했다.

그러나 혼령의 울음이라고 할 만한 소리는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최후식 이사의 부탁을 들어 주려면, 혼령의 정체를 밝히는 게 우선!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혼령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이때 천문석의 발에 툭 튀어나온 팔레트가 걸렸다.

순간 위태롭게 쌓여 있던 철괴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깡-

철괴가 쇳소리를 내며 튕기는 순간 바로 발로 튕겨 올라 낚아채는 천문석.

툭-

천문석은 철괴를 제자리에 놓고 외쳤다.

“야,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혼령 소리가 어디서 들렸다는 거야?

…….

“어디냐니까?”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 문득 돌아보는 순간.

텅 빈 공방이 보였다.

어느새 철문은 굳게 닫혀 있고 특급 헌터와 한경석은 사라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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