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32화>
정신없는 아침이 지나가고, 옥탑방에는 요플레를 하나씩 든 천문석과 특급 헌터만 남았다.
“정신없었다. 좀 쉬자. 으아-.”
“완전 찬성이야! 우리는 좀 쉬어야 해! 으아- 힘들었다!”
크게 기지개를 켠 천문석과 특급 헌터.
젊고 어린 두 사람은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꾹-
특급 헌터가 능숙하게 발가락으로 리모컨을 누를 때.
같은 동작으로 요플레 뚜껑을 따는 두 사람.
찌이이익-
찌이이익-
다음 순간 천문석과 특급 헌터는 동시에 요플레 뚜껑을 핥았다.
천문석은 새삼스러운 얼굴로 옆자리 꼬맹이를 봤다.
놀러 온 동네 꼬맹이처럼 익숙하게 리모컨을 누르며 요플레 뚜껑을 핥는 특급 헌터.
그러나 특급 헌터의 엄마는 장강 유통의 대표, 장민이고.
삼촌은 서울 수복 작전에 참전한 1세대 헌터 장철이었다.
엄마는 재벌 총수이고, 삼촌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 등 세계 각국의 최고등급 훈장을 받았다.
재력과 무력.
명예와 영향력!
모든 면에서 특급 헌터는 대한민국 상위 0.01%! 금수저를 넘어서는 다이아수저였다!
그런 다이아수저가 자신의 옆에서 요플레 뚜껑을 핥고 있었다!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와- 너도 요플레 뚜껑을 핥는구나?”
“당연하지! 뚜껑에 엄청 많이 묻었잖아! 우리 삼촌도 요플레 따면 뚜껑부터 핥아!”
“…….”
명예 훈장 서훈자, 오함마로 마수 머리를 깨는 장철 헌터가 요플레 뚜껑을 핥는다고?
풉-
상상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때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장철 헌터가 그렇다면 장민 대표는!?
왕족처럼 기품과 부티를 두르고 다니는 장민 대표도 요플레 뚜껑을 핥을까!?
참을 수 없는 의문에, 천문석은 은근슬쩍 물었다.
“특급 헌터. 혹시 장민 대표님도 요플레 뚜껑 핥냐? 장민 대표님은 아니지?”
순간 벌떡 일어나 외치는 특급 헌터!
“장민 장난 아냐! 내가 조금만 늦게 핥아도 장민이 내 뚜껑 뺏어서 다 핥아 먹어!”
다다다닥-
특급 헌터는 번개같이 냉장고로 달려가 문을 열고 쪼그려 앉아 뚜껑을 핥으며 외쳤다.
“집에서 요플레 뚜껑 뜯으면 여기서! 바로 여기서 핥아야 해! 아니면 장민한테 뺏긴다니까! 장민 장난 아냐!”
기품과 부티를 두르고 다니는 장민 대표의 숨겨진 모습을 알게 된 순간.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깊게 탄식했다.
‘……장민 대표님 뭘 하신 건가요? 하아-’
이때 어느새 돌아와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 특급 헌터가 물었다.
“그런데 알바 그건 왜 물어? 요플레 뚜껑은 다 핥잖아? 키즈 카페 친구들도 요플레 따면 뚜껑처럼 핥는데?”
특급 헌터는 왜 당연한 사실을 묻냐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해?’
고민하는 순간 텔레비전에 나오는 드라마가 보였다.
재벌 가문의 복수와 치정극을 그린 전형적인 드라마다!
천문석은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진짜 부자들. 그러니까 저기 드라마 속 재벌들은 요플레 뚜껑 안 핥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물었어.”
“뭐, 정말로!? 진짜 부자는 요플레 뚜껑을 안 핥아!?”
특급 헌터는 심각한 얼굴로 드라마에 집중했다.
그러나 한껏 집중한 얼굴에 곧 의아함이 깃들었다.
“재벌이면 엄청엄청 부자 아냐?”
“맞아. 엄청난 부자.”
“……저 사람들이 엄청엄청 부자라고? 좀 이상한데? 별로 부자 같지가 않아!”
천문석은 드라마 속 재벌의 모습을 봤다.
총수 아버지를 중심으로 식탁에서 식사하는 일가족의 모습이 보였다.
-대화가 힘들 정도로 커다란 대리석 식탁.
-집에서 입기에는 너무나 불편한 화려한 옷.
-밥 먹는데 얹히게 옆에 서서 내려다보는 도우미.
전형적인 드라마 속 재벌 집 식사 모습이었다.
“뭐가 이상한데? 딱 봐도 부자 같잖아?”
“고기가 식탁에 없잖아! 고기가! 그리고 알바 잘 보란 말야!”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가 화면을 짚으며 외치는 특급 헌터.
“빵, 생선, 수프, 샐러드……! 봤지!?”
“그건 또 왜?”
“한국 사람이면 밥이랑 고기를 먹어야지! 아니면 뜨끈하고 든든한 국밥을 먹던가!”
특급 헌터, 진짜 재벌 2세는 드라마속 재벌의 모습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밥, 고기, 국밥을 안 먹는다고…….
“…….”
천문석은 잠시 침묵하다가 질문했다.
“나랑 저 재벌이랑 누가 부자 같냐?”
“당연히 알바지! 알바 집에는 이게 있잖아!”
번개같이 냉장고로 달려가, 랩으로 포장된 한우를 번쩍 들어 올리는 특급 헌터.
“맛있는 한우!”
“……그럼 나랑 장철 헌터 비교하면?”
“당연히 알바지! 삼촌 요새 돈 없어서, 장민한테 용돈 받아. 에휴- 내가 같이 깡통 줍자니까…… 그래서 내가 국밥 사 먹으라고 동전도 줬어.”
“……그럼 나랑 장민 대표님이랑 비교하면?”
지금까지 주저하지 않고 대답하던 특급 헌터가 멈칫했다.
그리고 빠르게 움직였다.
다다닥-
찬장으로 달려가 확인하고, 쿵-
침실문을 열고 쓱 훑어본다.
드르르륵-
베란다 문을 열고 창밖을 살피더니.
띠띠띠띠-
현관문을 활짝 열고 옥상을 바라봤다.
순간 깜짝 놀라 다다닥- 도망치는 새끼 다람쥐, 니케.
“음…… 이건 굉장히 어려운 문제야.”
특급 헌터는 수첩과 펜을 꺼내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한참 동안 쓰고 지웠다.
자신과 장민 대표 중 누가 더 부자냐는 질문.
처음 본 사람이라도 보는 순간 누가 부자인지 99% 맞출 거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답하는 건 특급 헌터였다.
재벌 집 식탁에 고기반찬이 없다고 분노하는 진짜 재벌 2세 꼬맹이!
천문석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도저히 예측이 안 되는 꼬맹이를 바라봤다.
‘과연, 특급 헌터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때 수첩을 살피며 고심하던 특급 헌터가 번쩍 고개를 들고 조심스레 말했다.
“……알바가 조금 더 부자?”
“……왜?”
“집이 엄청 좋잖아!”
두 팔을 활짝 펼치고 빙글빙글 돌며 옥탑방을 가리키는 특급 헌터.
[주상복합 펜트하우스 vs 5층 건물 옥탑방.]
이 어어 없는 승부에서 승리하는 순간.
천문석은 거실 구석 인디언 텐트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너랑 나랑 비교하면 누가 부자야?”
“그거야 당연히 알바지! 알바 집은 내 집보다 더 크잖아! 게다가 내 집에는 구멍도 났단 말야!”
“구멍?”
“보여 줄게! 잠깐만!”
이야아아얍-
기합을 지르며 인디언 텐트, 티피를 끌고 오는 특급 헌터.
“여기 보이지!? 제주도 갔다 오니까 여기에 구멍이 세 개나 났어!”
특급 헌터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 티피 입구 위에 구멍이 세 개 뚫려 있었다.
“어, 그러네?”
“맞지!? 이거 도둑이 그런 게 분명해!”
“도둑? 야, 너무 나갔어.”
“아니라니까! 내가 똑똑히 기억해! 세연 전화 받아서, 내가 먼저 옥탑방 올라왔는데! 방 엉망이었다니까! 그래서 내가 열심히 치웠어!”
“뭐?”
옥탑방이 엉망이란 건 처음 듣는 이야기다.
안색이 변한 천문석이 다급히 물었다.
“진짜로 도둑 든 거야? 세연이에게는 말했고?”
“세연이한테 말했는데! ‘크크킄- 내가 속을 거 같냐?’ 이랬다니까!”
특급 헌터는 장난이 약간. 아니, 아주 많이 심하기는 하지만 거짓말을 할 아이는 아니었다.
천막에 난 구멍과 엉망이 된 집!
특급 헌터 말대로 누군가 몰래 침입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천문석이 벌떡 일어나 예리한 눈으로 거실을 훑는 순간.
특급 헌터도 소파 등받이 위에 서서 거실을 노려봤다.
“없어진 건 없는 것 같은데. 너 혹시 뭐 없어진 거 없냐?”
재빨리 주방으로 달려가 찬장에서 배낭을 꺼내 끌고 오는 특급 헌터.
“혹시나 해서 내가 보물들 숨겨 뒀어!”
특급 헌터는 배낭을 열고 자신의 보물을 하나하나 꺼내서 보여 줬다.
“앙꼬 대장 구슬!”
“태풍 구슬!”
“시원한 화로!”
“특급 쌩쌩이 계약서!”
……
그리고 반바지에 꽂아둔 퐁퐁검을 흔들고 책 사이에서 반듯하게 펴진 종이를 꺼냈다.
“여기 퐁퐁검이랑. 이거 알바 종이! 내가 알바가 흘린 거 주워서 책에 끼워놨어!”
“내가 흘린 종이를 주웠다고?”
“어, 알바가 흘린 종이! 이거 엄청 좋은 종이야!”
천문석은 반듯하게 펴진 오래된 종이를 받았다.
종이 앞면에는 알아볼 수 없는 문자가 적혀 있고, 반대쪽 면에는 흘려 쓴 필체로 적은 익숙한 내용이 보였다.
[한동안 잠수 탈거야! 나중에 연락할 게!]
“아, 레이 실트가 준 종이구나.”
순간 깜짝 놀란 특급 헌터가 벌떡 일어났다.
“레이 실트! 그 종이 레이가 준 거야!?”
“어, 맞아. 그런데 네가 레이는 어떻게 알아?”
“어젯밤에 꿈에서 봤어! 앗! 그럼 이 종이가 명령권이잖아!? 레이랑 레이 형한테 명령할 수 있잖아!?”
특급 헌터는 깜짝 놀랐다.
‘레이 그리고 레이의 형?’
천문석은 피식 웃었다.
이 말로 특급 헌터가 말하는 꿈속 레이와 자신이 아는 레이가 동일 인물일 가능성은 사라졌다.
자신이 공방 도시에서 만나 강철봉을 장기 대여한 레이 실트, 캐부자 마도구 제작자는 여자였으니까.
그렇지만 천문석은 손에 쥔 종이 뒷면을 다시 한 번 세세히 읽어 봤다.
그러나 기억대로 뒷면 어디에도 레이에게 명령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적혀 있지 않았다.
사실 당연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이런 종이 한 장으로, 캐부자 마도 제작자에게 명령한다는 건 말도 안 됐다.
레이 실트라면 1억 원짜리 수표를 건네도 코웃음을 칠 거다.
“야, 받아라. 너 줄게.”
천문석은 종이를 특급 헌터에게 건넸다.
“어, 진짜로? 이거 명령권이야! 레이한테 명령할 수 있는데? 이거 쌍방계약이라 이렇게, 이렇게 접으면! 레이 형한테도 명령할 수 있어! 내가 꿈에서 레이한테 들었어!”
특급 헌터는 건네받은 종이를 파바밧- 접어 흔들며 외쳤다.
“네가 꿈에서 만난 레이 실트?”
“맞아! 내가 어젯밤에 꿈에서 고등어 들고 쫓아오는 누나 피해서 도망치다가 만났어! 형 찾아다니는 레이랑 만나서 딱지치기했는데! 레이 딱지 엄청 잘 쳐! 장난 아냐! 내가 보여 줄게!”
언제나처럼 대화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고, 특급 헌터는 배낭에서 딱지를 꺼내 직접 시범을 보였다.
“이렇게 딱지를 높이 들면 파바바밧- 번개가 막 몰아친다니까! 레이는 자기가 딱지치기로는 세계 2등이래!”
세계 1등도 아닌, 2등이라니 묘하게 디테일한 꿈이었다.
“그럼 너도 레이한테 졌냐?”
“그럴 리가 없잖아! 내 꿈속인데 당연히 내가 이겼지!”
카카캌-
특급 헌터는 승리의 V자를 그리며 선언했다!
“이제 레이는 딱지치기 3등이야!”
“오! 특급 헌터! 그럼 네가 딱지치기 세계 1등이 된 거야!?”
“…….”
갑자기 말이 없어진 특급 헌터.
특급 헌터는 급 침울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난 콩 황제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