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28화>
“…….”
천문석은 말없이 특급 헌터를 봤다.
특급 헌터의 꼭 감은 두 눈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당장이라도 터질 듯 입가에 그려진 장난스러운 미소만으로도 특급 헌터의 눈빛이 짐작됐다.
별처럼 반짝이는 눈에 장난기가 가득 담겨 있을 거다!
천문석은 깨달았다.
자신만 성장한 게 아니다.
특급 헌터도 레벨업했다!
키즈 카페의 악마 꼬맹이는 이제 장강 유통 비서실의 악마 꼬맹이가 됐다!
“너 이런 장난 몇 번이나 친 거야? 자꾸 이러면 진짜 늑대가 나타나도 아무도 안 도와줘!”
천문석은 한껏 목소리를 죽여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이런 장난 친 거 대표님, 엄마가 알면 분노할 거야. 너 두렵지도 않냐?”
“장민? 알바 걱정할 것 없어! 장민 지금 엄청엄청 바빠! 무슨 협상이 깨져서 그거 처리하느라고 집에 안 들어온 지 한참 됐어! 지금이 기회야!”
크크킄큽크킄-
특급 헌터는 몸을 들썩이며 웃다가 번쩍 펜던트를 내밀었다.
“그리고 나한테는 강철이 있어! 늑대 오면 강철 로봇으로 때려 주고! 장민 오면 강철 로봇 타고 번개같이 도망칠 거야!”
카캬카캌카캌-
특급 헌터가 손에 쥔 펜던트를 흔들며 통쾌하게 웃는 순간.
왕, 왕왕-
목을 할짝이던 서리 늑대, 탱탱이도 용맹하게 울었다.
“탱탱이 너도 도와준다고!? 훌륭해! 아주 용감해! 우리는 무적이야! 카캬카캌-.”
특급 헌터의 웃음소리가 커질 수록, 뒤통수에 느껴지는 열기도 뜨거워졌다!
정신이 혼미해지려는 찰나!
천문석은 재빨리 정신줄을 잡고 특급 헌터를 다시 한 번 설득했다!
“야, 그래도 이런 장난 치면 안 돼! 특급 헌터 너 반성하고 앞으로 이런 장난 안 칠 거지? 그렇지? 얼른 그렇다고 말해!”
“아닌데? 난 앞으로도 이런 장난 마구마구 칠 건데?”
“……조금만, 조금만 자제하면 안 될까? 이따가 삼촌 오면 화낼지도 몰라!”
“삼촌은 절대 화 안 내! 흐허허허- 웃고는 아이스크림 사줘! 짠돌이 장민처럼 쌍쌍바 사주고는 한쪽 떼어가지 않아!”
“……쌍쌍바?”
“앗! 쌍쌍바!”
특급 헌터는 돌연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분통을 터트렸다!”
“쌍쌍바! 장민이 떼가는 쪽이 항상 커다래! 이상하다니까! 분명 뭔가 있어! 항상항상! 장민이 더 큰 쪽을 떼간다니까!”
“야, 갑자기 쌍쌍바는 뭐야?”
“알바! 이거 엄청 중요한 일이란 말야!”
대화의 주제는 언제나처럼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특급 헌터는 장민과 쌍쌍바 회사에 분통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쌍쌍바는 처음부터 안 잘라 나오는 거야!? 맨날맨날! 나는 작은 거만 먹잖아! 이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쌍쌍바에는 정의가 없어!”
“……야, 쌍쌍바 다음에 내가 대신 떼 줄게! 그보다 이런 장난…….”
“진짜!? 알바! 그러면 내가 큰 거 먹게 해 줘! 장민은 가운데 뚝 부러진 거! 작은 거 먹게 해 줘! 내 소원이야!”
순간 솔깃한 표정으로 외치는 특급 헌터.
“…….”
천문석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쌍쌍바에는 정의가 없다고 분통을 터트리던 꼬맹이는 상황이 변하는 순간 번개같이 태세 전환을 했다.
“알았어. 그렇게 해 줄게. 대신에 이제 장난은 그만 치는 거다. 알았지?”
“뭐!? 그런 게 어디 있어!? 그건 내가 너무 손해 잖아!?”
“……도대체 뭐가 손해인데?”
“지금까지 계속 작은 거 먹었다니까!”
어이가 없었지만,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이제 폭발 직전이다!
천문석은 재빨리 타협안을 내놓았다.
“그럼 특급 헌터 일주일에 한 번! 시간 정해 놓고 장난치는 건 어때? 원래 장난은 매일 치면 질리는 거잖아?”
“아닌데? 난 계속계속계속! 매일매일매일! 장난칠 거야! 새로 온 황 비서 누나 엄청 재밌어! 내가 ‘끄억!’ 하면 ‘으앗!’하고 실감 나게 깜짝 놀란단 말야!”
카 카카카카컄-
=#[email protected]#$#%$ !
여전히 황 비서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오는 휴대폰을 배 아래 깔고는 웃음을 터트리는 특급 헌터.
특급 헌터는 신나게 외쳤다.
“장민이 없는 지금이 기회야! 이때 열심히 장난쳐야 해! 언제 이런 기회가 또 올지 모른다니까!”
하아-
천문석은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특급 헌터. 난 최선을 다했다. 나한테 뭐라고 하면 안 된다.”
“뭐!? 벌써 포기한다고? 알바! 왜 그래!? 키즈 카페에서는 안 그랬잖아! 더 열심히 설득하란 말야!”
특급 헌터는 재빨리 일어나 항의하다가 굳어 버렸다.
“어……?”
천문석의 어깨너머, 옥상 방향 창문.
활짝 열린 창문 뒤로 보여서는 안 될 사람이 보였다.
특급 헌터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
“어, 이상하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러나 아무리 눈을 비벼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럴 리가…… 이럴 리가 없는데……!?”
후아, 후아, 후아-
몇 번이나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외치고.
“사라져랏! 사라져 버려랏!”
깜빡깜빡깜빡-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고!
“깨어나! 잠에서 깨어나란 말야!”
탁탁, 탁탁탁-
퐁퐁검으로 손바닥과 다리를 마구마구 때렸지만!
창가에 서 있는 사람은 사라지지 않았다!
“…….”
특급 헌터는 마침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잘못 본 것도 꿈도 아니다.
저기 저 창문 뒤에 서 있는 사람은 진짜다!
“으어, 으어어!”
특급 헌터가 손을 들어 가리키며 바들바들 떠는 순간.
창가에 선 사람은 언제나처럼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알바씨. 오랜만이네요? 제주도에서 보고 처음이네요. 2주 만인가요?”
“네. 정말로 오랜만이네요…….”
‘2000년, 한강에서 헤어지고 20년 만이군요…….’
천문석이 뒷말을 속으로 삼킬 때.
특급 헌터의 말문이 터졌다.
“장민!”
* * *
장민 대표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짠돌이 장민이 왔단다.”
말에 뼈를 담아 던지는 장민 대표!
그러나 이 순간 특급 헌터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드르륵, 탁-
단숨에 거실을 가로질러 장민이 서 있는 창문을 잠그고!
띠리리릭-
현관문 도어락의 잠금장치를 눌러 잠갔다!
그리고 몸을 돌려 다급히 외쳤다.
“알바! 지금이야 도망쳐! 세연! 누나 어디 있어!? 우리 도망쳐야 해! 장민 왔어!”
“나 여기 있는데?”
순간 창문 밖 장민 옆에서 불쑥 얼굴을 내미는 류세연!
경악한 특급 헌터는 외쳤다.
“세연!? 세연이 거기 왜 있어!?”
“언니가 너 놀라게 해 준다고 해서 도와주러 나왔는데?”
“난 놀라는 거 하나도 안 좋아해! 제발 그러지 말란 말야!”
이때 장민 대표가 창문을 두들기며 부드럽게 말했다.
똑, 똑-
“이제 짠돌이 장민한테 문 열어 줄래?”
“……!”
도리도리도리-
특급 헌터는 열심히 고개를 저으며 외쳤다.
“장민.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까 집에 가고 내일 와. 나 피곤해서 이제 집에 자러 가야겠어…….”
“집에 자러 간다고? 잘됐네. 짠돌이 엄마랑 같이 집에 가면 되겠다. 그렇지?”
“아니! 절대 아냐! 그 집은 장민 집이잖아! 내 집은 여기 있어!”
으아앗-
거실 구석으로 달려가 기합을 지르며 인디언 천막 티피를 끌고 온 특급 헌터.
“봤지? 내 집 봤지? 난 여기서 잘 테니까 내일 봐! 잘 가 장민! 난 피곤해서 코- 해야겠다! 탱탱이 우리 같이 자러 가자!”
왕-
특급 헌터가 바로 티피를 밀고 구석으로 움직일 때.
띠리릭-
락이 걸린 도어락이 저절로 풀리고!
현관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으앗! 뭐야!? 왜 문이 열려!”
으아악-
다급히 달려가 문고리를 잡는 특급 헌터.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장민 대표의 웃는 얼굴이 보이는 순간, 특급 헌터의 얼굴은 사색이 됐다.
“알바! 도와줘! 큰일이야! 정말 큰 일이란 말야! 도와줘! 나 지금 엄청 큰일 났단 말야! 으아아-.”
“…….”
너무나 간절한 외침에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천문석은 한달음에 달려가 문고리를 잡고 외쳤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앗! 알바씨가 어떻게 저한테!?”
장민 대표가 충격받은 얼굴로 휘청일 때.
특급 헌터는 자랑스럽게 외쳤다.
“당연하지! 특급 알바는 특급 헌터랑 엄청엄청 친하단 말야! 카카카캌-.”
“진짜인가요? 저보다 특급 헌터랑 더 친한 거예요!?”
장민 대표의 간절한 눈빛이 쏟아지는 동시에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앗! 삼촌! 나도 여기 있어! 류세연! 집주인 대리! 십 년이 넘게 같이 지낸 류세연!”
“알바! 빨리 대답해! 누구랑 제일 친해? 당연히 나지!? 그렇지!? 이 펜던트 준 나 맞지!?”
장민 대표, 류세연, 특급 헌터.
셋의 뜨거운 시선이 닿는 순간 천문석은 입을 열었다.
“특급 헌터…….”
“만세! 역시 나야! 당연히 내가 제일 친하지! 난 알바한테 이 펜던트도 받았거든! 카카카캌-.”
천문석은 환호성을 지르는 특급 헌터에게 끊겼던 말을 계속했다.
“특급 헌터 저기 창문 봐라.”
“응?”
특급 헌터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딸깍-
잠긴 창문 고리가 풀리고.
드르르륵-
창문이 저절로 밀려 활짝 열렸다.
그리고 장민 대표가 가볍게 창문을 뛰어넘어 거실로 들어왔다.
성동격서(聲東擊西)!
“어, 어어어어어어!?”
확 커진 눈과 입!
완벽하게 당한 특급 헌터는 다급히 현관문을 열고 옥상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제임스!?”
현관문 앞 옥상에는 이미 제임스가 서 있었다.
밖에는 제임스!
안에는 장민 대표!
완전히 포위된 위기 상황!
특급 헌터는 양손 사이에 펜던트를 잡고 온 마음을 다해 외쳤다.
“지금이야! 지금 네 힘이 필요해 당장 나왓!”
쿠르르르릉-
이 순간 돌연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우렛소리!
천문석은 깜짝 놀라 외쳤다!
“뭐야!? 진짜로 나오는 거야!?”
‘아니, 그냥 외치면 나이트 아머가 나오는 거였어!?’
“삼촌!? 설마 지금 이거!?”
모두가 놀라고 경악하는 순간.
특급 헌터는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카카카캌- 장민 난 이제 그냥 특급 헌터가 아냐! 특특특급 헌터야! 바로 도망쳐 주겠어! 나와라아아아앗!”
쿠르르르, 쾅-
이 순간 섬광이 번뜩이고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열린 창문으로 휙- 날아 들어와 용맹하게 울었다!
킥, 키킼킼킼-
구으으으으으응-
띠딛디디띧띠디-
왕왕, 왕왕왕왕-
새끼 다람쥐, 니케.
사슴벌레, 사슴이.
황금 풍뎅이, 반짝이.
서리 늑대, 탱탱이.
특급 헌터의 동물 친구들이.
“…….”
특급 헌터의 멍한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손에 쥔 펜던트.
용맹하게 우는 동물 친구들.
어이없어하는 얼굴로 바라보는 천문석과 류세연.
그리고 마지막, 거실 한 가운데 무시무시한 미소를 짓고 서 있는 장민!
“친구들 당장 장민을 막……!”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민을 본 반짝이, 황금 풍뎅이가 깜짝 놀라 허공에 ‘8’자를 그렸다.
핏핏피핏피핏-
빛이 빠르게 번쩍이는 순간.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기세를 일으키던, 니케, 사슴이, 반짝이가 깜짝 놀라 재빨리 몸을 돌려 뽈뽈뽈 옥상으로 사라졌다.
“앗! 어디 가는 거야!?”
당황한 특급 헌터가 외쳤지만, 남은 것은 신입 동물 친구 서리 늑대뿐!
왕, 왕왕-
홀로 남은 서리 늑대는 용맹하게 달려들었다!
장민 대표가 손을 뻗어 빙글 돌리는 순간 서리 늑대는 빨려 들 듯이 그 손에 잡혀 품에 안겼다!
특급 헌터는 포기하지 않고 외쳤다!
“탱탱이! 힘을 내! 장민을 물리쳐!”
“배도 통통하고 털도 복슬복슬. 그래서 탱탱이구나? 너 왜 이렇게 귀엽게 생겼니?”
장민은 빙그레 웃으며 서리 늑대의 목과 배, 털을 쓰다듬었다.
쓱, 쓰쓱슥슥-
순식간에 만족스럽게 헤헤- 풀린 눈으로 축 늘어지는 서리 늑대, 탱탱이.
“…….”
특급 헌터가 멍하니 이 모습을 볼 때.
장민 대표는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더할 거 있니?”
특급 헌터는 재빨리 시계를 잡고 외쳤다!
“삼촌! 급해! 진짜 급해! 빨리 안 오면 장민한테 나 죽을지도 몰라! 삼촌 얼른 와!”
하아-
천문석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특급 헌터. 삼촌은 안 와.”
“뭐!? 그럴 리가 없어! 내가 부르면 삼촌은 언제나! 어디서나! 번개같이 온단 말야!”
천문석은 손을 들어 특급 헌터가 애타게 외치는 헌터용 시계를 가리켰다.
“그 시계 전원. 아까 네가 껐잖아.”
“아…… 그렇지. 내가 전원 껐지…….”
특급 헌터에게서 깨달음의 탄성이 터지는 순간.
장민 대표가 서리 늑대를 안은 채 천천히 다가왔다.
“이제 잘못한 거 벌 받아야겠지?”
“…….”
특급 헌터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장민. 그냥 한번 봐주면 안 될까? 원래 야구에서도 2번은 봐주잖아?”
장민 대표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럼 황 비서한테 봐줄지 말지 물어볼까?”
“찬성이야!”
특급 헌터는 환한 얼굴로 아직도 황 비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휴대폰을 번쩍 들고 외쳤다.
“황비서 누나! 나 살아났어! 카카카- 나 봐줄 거 맞지!?”
=……
잠시 후 특급 헌터는 엉망이 된 얼굴로 두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양치기 소년이 되지 않겠습니다!”
“시계 전원을 앞으로 끄지 않겠습니다!”
……
천문석은 특급 헌터에게 다가가 슬쩍 물었다.
“너 엉덩이 괜찮냐?”
“내 엉덩이는 특급이라 이 정도로는 아무렇지도 않아! 완전 멀쩡해!”
천문석은 특급 헌터의 얼굴을 바라보며 깜짝 놀란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런데 너 얼굴이…… 설마, 지금…… 우냐?”
특급 헌터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