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27화>
세계가 닫힌 분기점!
너무나 의미심장한 이 단어를 듣는 순간 아리엘의 머리에 떠오른 게 있었다.
이 닫힌 세계에 떨어진 셋!
자신과 눈앞의 에코.
공방 도시에서 만난 워커 실트.
이 셋을 하나로 잇는 키워드, 타대륙!
이때 알 수 없는 어떤 느낌에 아리엘은 문득 고개를 돌렸다.
안전 호텔 창문 밖 밤하늘, 인간이 만들어 낸 인공의 빛이 밤하늘에서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전능 옥좌!
타대륙에 밝혀진 문명의 빛을 그 자체!
순간 아리엘은 홀린 듯 외쳤다.
“마도 황제!? 설마, 분기점이 마도 황제인 거야!?”
에코, 시간 오류 수정자는 엉망으로 뒤엉킨 빛의 나무를 가리키며 고개를 저었다.
“가능성은 있지만, 높지는 않습니다.”
“뭐, 야 생각해 봐! 저기 전능 옥좌도 있잖아! 운명조차 벗어난 그 격이라면 존재만으로 세계가 분화…….”
아리엘은 말을 하다가 스스로 깨달았다.
문명의 빛이 꺼져 가던 타대륙에 홀연히 나타난 보석과 강철의 황제.
마법과 타이탄의 힘으로 수많은 고대신과 악신을 압도하고 인류의 시대를 열어 낸 존재.
마도 황제!
세계의 본질에 새겨진 대륙어 와 마법.
그리고 모든 인류를 아우르는 약속, 대협약까지.
세계의 법칙조차 변화시키는 마도 황제의 힘이라면 오류가 생겼더라도 금세 바로잡을 수 있다!
아리엘의 표정을 보고 생각을 짐작한 에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마도 황제시라면 설령 오류가 생겼더라도 바로 해결하셨을 겁니다.”
“혹시 차원압으로 세계가 무너지려 한 거 아닐까? 스스로 힘을 봉인하셨다면?”
“저게 하늘에 떠 있잖아요?”
에코는 밤하늘에 떠 있는 전능 옥좌를 가리켰다.
“……!”
전능 옥좌가 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도 황제가 힘을 사용했다는 증거!
아리엘은 자기 생각에 모순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분기점, 오류일 가능성이 가장 큰 건 마도 황제다.
그러나 마도 황제의 힘이라면 오류가 이렇게 남아 있는 게 말이 안 된다.
오류가 발생했다는 걸 인지한 즉시 오류를 수정했을 거다.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즉시 오류 수정을 못했어도, 이렇게 닫힌 세계가 커지게 내버려 뒀을 리 없다!
혹시 마도 황제가 힘을 잃어 오류를 수정하지 못했다면?
그러나 저 밤하늘에 떠 있는 전능 옥좌가 그 가능성마저 부인한다.
아니, 이 모든 게 말이 되는 상황이 있다.
마법의 지식, 기억은 곧 힘이다!
마도 황제의 기억이 깜빡깜빡한다면?
그래서 힘이 돌아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면?
아니, 그보다 기억을 잃고 자신의 어떤 존재인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면!?
“에코! 혹시 이런 거 아닐까!?”
아리엘은 바로 자기 생각을 전했고.
에코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말은 되는데…… 마도 황제가 어떻게 기억을 잃었는데요? 악신, 허신, 고대신. 이런 존재 수십이 몰려 와도 상대가 안 될 텐데…….”
“…….”
여기서 다시 한 번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 지금 말하는 존재는 마도 황제, 살아 있는 마도의 신이다!
악신 수십이 달려든다고 해도 마도 황제가 기억을 잃을 정도의 타격을 받을 리가 없다!
“젠장!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아리엘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에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간신히 냉기 지대를 벗어났는데! 도착한 세계가 이런 난장판이라니! 뭐가 이따위야!”
아리엘이 터질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분통을 터트릴 때.
에코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아리엘님. 제게 계획이 있습니다!”
“계획?”
“네! 예전 제 친구가 항상 강조한 게 있습니다. ‘상황이 복잡할수록 심플하게 생각해야 한다!’.”
“심플?”
“네! 어차피 답이 안 나오는 문제! 복잡하게 이유를 따지지 말고. 지금 해야 할 일만 하는 겁니다! 심플하게 1, 2, 3번만 기억하면 됩니다!”
에코는 복잡하게 뒤엉킨 빛의 나무를 마법봉으로 짚으며 계획을 설명했다.
“1. 분기점을 찾고.”
“2. 오류를 해결하고.”
“3. 다른 나뭇가지로 도망친다.”
에코의 말이 맞았다.
복잡한 상황일수록 단순하게 접근해야 한다!
아리엘은 머리에 가득한 의문을 한구석으로 던져 버리고 의욕적으로 외쳤다!
“그래, 에코! 이 세계가 무너지기 전에 어떻게든 오류를 해결하자!”
“……네?”
에코는 당황한 얼굴로 반문했다.
“……지금 뭐가 무너진다고요?”
“세계의 나무! 닫힌 세계! 그대로 두면 무너진다며? 전에 설명할 때 그렇게 말했잖아!”
하하하-
에코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 닫힌 세계는 전과는 상황이 달라요. 이거 누가 설계한 것인지 아니면 우연인지 모르겠는데 밸런스가 절묘합니다! 게다가 시공간을 연결한 규모가 엄청나요!”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안 무너진다고?”
“당연하죠!”
에코는 커다란 원을 그린 빛의 나뭇가지를 짚으며 설명했다.
“세계의 나무가 닫힌 세계를 만들긴 했는데. 우리가 탈출한 세기말과는 차원이 달라요!”
“보세요! 여기, 여기, 여기! 수없이 다른 가지랑 연결된 거 보이시죠?”
“게다가 아리엘님이 들어간 천공탑이랑도 연결됐었잖아요?”
“이 세계는 사실상 열린 세계랑 다를 게 없습니다!”
아리엘은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외쳤다.
“와! 이 어이없는 녀석! 뭐야, 지금 당장 오류 찾아야 할 것처럼 말하더니! 전혀 심각한 상황이 아니잖아!”
“심각한 상황 맞습니다.”
에코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세계의 나무가 아니라, 저랑 아리엘님에게 엄청나게 심각한 상황입니다!”
“세계의 나무가 아니라? 나랑 너한테 심각한 상황이라고?
에코는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한 이름을 말했다.
“워커 실트!”
“……!”
“워커 실트! 그분은 집념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번에는 진짜 운이 좋았던 겁니다! 그 불운이 연속으로 겹친 동료분 아니었으면 우리 벌써 잡혔습니다!”
에코가 부르르 떠는 순간.
아리엘도 몸을 떨었다.
그렇다! 상대는 그 유명한 워커 실트다!
마도 제국 일곱 재앙의 우두머리!
마도왕의 합공조차 뚫고 전능 옥좌를 떨어뜨린 마도 제국 최악의 테러리스트!
마도 황제의 직계 제자, 우레 폭풍의 마도왕 레이 실트조차 그 형 워커 실트에 비하면 빛이 바랜다!
에코는 밤하늘을 가리켰다.
“전능 옥좌가 떠 있어도. 워커 님이라면 어떤 미친 짓을 할지 모릅니다.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이 닫힌 세계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혹시 모르니 항상 워커님 행적 확인해야 하고요!”
아리엘은 에코의 말에 100% 동감했다.
“알았어! 하- 마도 황제 폐하 탐색법을 쓸 수 없으니. 그 방법밖에 없겠네. 네 계획대로 움직이자.”
에코, 시간 오류 수정자.
아리엘 무겐다흐, 무기제작자이자 마도왕.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마법봉을 부딪치며 계획에 합의했다.
-1. 분기점을 찾고.
-2. 오류를 해결하고.
-3. 다른 나뭇가지로 도망친다!
여기에 0번 전제 조건이 추가됐다.
-0. 워커 실트의 행적을 파악한다!
두 사람은 0번 계획, 워커 실트의 행적을 확인을 위해 바로 움직였다.
숙박하고 있는 안전 호텔 상업 층, 아리엘이 미리 알아본 사무실을 향해서!
“진짜. 그 사무실에서 그분 행적을 찾을 수 있을까요?”
에코가 미심쩍은 목소리로 묻는 순간.
아리엘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야, 그 사무실! 내가 대한민국 최대 커뮤니티 통해서 알아낸 사무실이야! 사람 찾는 데는 한국 최고래!”
“……그런가요?”
“전능 옥좌! 그 은밀한 이름도 그 커뮤니티에서 알아냈다. 게시물 대부분이 은어로 적혀 있고, 이상한 더미 정보가 많아서 알아내기 엄청 힘들었어!”
아리엘의 설명을 들은 에코는 눈을 반짝였다.
숲에 나무를 숨기는 방식!
비밀 결사가 대도시 광장 카페로 위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아리엘님. 그 커뮤니티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국내야구갤러리.”
“네? 야구요? 그 스포츠 경기 야구요?”
에코가 어이없어하는 순간.
아리엘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 커뮤니티 몇 중으로 보안을 깔았다! 국내야구갤러리! 이 이름도 낚시다!”
“낚시요?”
“맞아 낚시야. ‘국내 야구’, 스포츠 커뮤니티를 위장하고. ‘갤러리’, 사진 동호회를 위장했어! 그리고 그 안에 온갖 더미 정보까지 깔았지! 하지만 그 속에 유용한 정보가 숨겨져 있었다!”
아리엘이 발걸음을 멈추고, 복도 끝 육중한 철문을 가리켰다.
“그 유용한 정보를 선별해 사무실을 찾아냈다! 하하하-.”
“그럼 여기가!? 아리엘님이 말씀하신?”
“맞아! 여기가 사람 찾는 데는 한국에서 최고! 우리에게 워커의 행적을 낱낱이 알려 줄 사무실이다!”
아리엘은 바로 철문을 열고 들어가며 외쳤다.
“사람 찾으러 왔습니다!”
아리엘과 에코 두 사람이 들어간 문 옆 벽에는 반짝이는 명패가 붙어 있었다.
[현대 정보 컨설팅 그룹]
헌터 업계에 처음으로 바이럴 마케팅을 도입해, 폭발적으로 성장한 현대 정보 컨설팅 그룹.
-엠마, 게릭, 클릭스, 폴리머. 악당 4인조.
-W. S. 인더스트리의 케인 이사.
두 의뢰인을 잇는 세 번째 의뢰인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지식인 바이럴이 아닌, 국내야구갤러리에 꾸준 글에 낚인 아리엘과 에코였다.
* * *
거실 러그 위.
왼손에는 펜던트, 오른손에는 마른 수건을 쥔 특급 헌터가 경건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하아아아-
특급 헌터는 펜던트에 커다랗게 입김을 불고는.
파바바밧-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펜던트를 닦았다.
그리고 펜던트를 번쩍 들고 외쳤다.
“어때 알바? 반짝반짝해!? 삼촌 와서 보면 ‘앗 눈부셔!’ 하고 놀랄 것 같아!?”
“……좀 더 닦아야겠다.”
천문석은 휴대폰을 든 채로 특급 헌터에게 대답했다.
“알았어! 파바바바밧-! 강철아 반짝반짝해지자!”
특급 헌터는 입으로 소리를 내며 신나게 펜던트를 닦았다.
방금 장철 헌터를 급하게 부르고, 일방적으로 헌터용 통신기 시계를 꺼버리는 사고를 친 특급 헌터.
그 순간 자신과 세연, 건물 밖 경호원의 휴대폰이 동시에 울렸다.
전화가 걸려 온 곳은 장강 유통의 비서실이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받는 3번째 전화도 비서실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정말 괜찮은 거 맞죠? 저 출근한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일이 터지면 정말 큰 일이라서…… 진짜 진짜로 VIP 분 아무 일 없는 것 맞죠?
휴대폰으로 전해지는 떨리는 목소리만 들어도, 비서실 신입이라는 직원의 초췌해진 얼굴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네 진짜로, 정말로 VIP 특급 헌터 아무 일 없습니다.”
천문석은 다시 한 번 같은 대답을 했다.
순간 들려오는 깊은 한숨 소리.
=하아- 죄송하지만, VIP 목소리 한 번만 확인 가능할까요?
“네 잠시만요.”
천문석은 스피커폰으로 전환하고 신나게 펜던트를 닦는 특급 헌터를 불렀다.
“특급 헌터. 비서실 황 비서님이라는데 목소리 확인해야 한데!”
“앗! 황 비서 누나라고!?”
다다다닥-
번개같이 달려와 휴대폰을 받아 들고 외치는 특급 헌터.
“특급 헌터가 왔다! 황 비서 누나! 나야! 괴롭히는 사람 없어!? 누구든지 말만 해! 내가 퐁퐁검으로 때려 줄게!”
=…… 하아-
긴 침묵 끝에 들려오는 한숨 소리.
이 한숨 소리만 들어도 황 비서라는 신입 직원의 생각이 짐작됐다.
천문석이 쓴웃음을 지으며 휴대폰을 돌려받으려는 순간.
특급 헌터는 픽-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외쳤다!
“으아악! 늑대가 나타났어! 황 비서 누나! 큰일 났어. 늑대 마수 나왔어! 어디로 도망가야 해!?”
=어, 잠깐만!? 늑대 마수라고!? 왜 마수가 갑자기……?
의아해하는 순간 터져 나오는 실감 나는 비명!
“으아아아아악- 늑대닷!”
=침착해! 바로 보안팀 움직일 테니까! 멈추지 말고 달려! 잠시만 팀장님! 큰일 났어요! VIP가 위험해요!
“앗 안 돼! 황 비서 누나! 늦었어! 바로 뒤에 무시무시한 늑대갓! 으앗! 잡힐 것 같아!”
=안 돼! 포기하면 안 돼! 힘을 내! 팀장님! 제발 빨리 좀!
……
황 비서의 울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올 때.
거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실감 나게 외치는 특급 헌터!
특급 헌터를 진짜 늑대 마수가 덮쳤다!
왕, 왕-
재앙급 마수, 서리 늑대!
몸길이 30cm의 동글동글한 털 뭉치, 탱탱이가 펄쩍 뛰어 충돌하는 순간.
“끄어어억-.”
특급 헌터는 실감 나게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픽- 죽은 듯 쓰러졌다.
단말마의 비명 뒤로 침묵이 이어지자, 휴대폰 스피커에서 황 비서의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돼! 진짜 이러면 안 돼! 장난이지!?
=제발 장난이라고 말해 줘! 누나 화 안 낼게!
=제발, 제발! 장난이라고 말해 줘! 일어나 특급 헌터!
……
“…….”
천문석은 말없이 거실을 내려다봤다.
휴대폰을 손에 쥐고, 죽은 듯 눈을 꼭 감고 러그 위에 엎드린 특급 헌터.
할짝, 할짝-
특급 헌터의 등에 올라 목을 신나게 핥는 서리 늑대, 탱탱이.
죽은 듯 엎드린 특급 헌터의 몸이 탱탱이가 핥을 때마다 간지럼에 바들바들 떨렸다.
휙, 휙-
이때 특급 헌터가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눈을 꼭 감은 특급 헌터가 재빨리 휴대폰을 뒤집어 내밀며 말했다.
“알바. 황 비서 누나한테 건강해지는 샐러드. 음, 일주일! 일주일 동안 나 대신 먹어 주면…….”
“먹어 주면 어떻게 되는데?”
“……나 살아날 것 같다고 말 좀 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