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26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전혀 변하지 않은 장철의 얼굴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 폭풍이 몰아쳤다.
-의인 광장.
-김철수 사무실
-특급 헌터
자신의 일으킨 과거 사건으로 의인 광장은 크게 변화했다.
그러나 김철수 사무실의 사람들과 특급 헌터에게는 눈에 띄는 변화가 없었다.
서리 늑대가 힘을 잃었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만한 범위 안.
걱정했던 게 무색하게도 나비 효과로 인한 악영향이 보이지 않았기에 내심 안심했다.
그래서 무의식중에 장철 가족의 일도 잘 풀렸을 거라고 확신했다.
특급 헌터와 장민 대표.
장철 헌터와 부인 그리고 딸 장세린.
환하게 웃는 다섯 명의 가족을 볼 거라고 예상했다.
“…….”
그 예상이 틀렸다는 걸 지금 알았다.
가족사진 속에는 특급 헌터와 장민 대표, 장철 헌터 셋뿐.
자신이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만난 장철 헌터의 딸, 장세린은 사진 속에 없었다.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들어 거실 구석에 놓인 배낭을 봤다.
저 배낭 속에는 세린이가 던져 준 곰 인형, 곰곰이가 들어 있었다.
“…….”
천문석은 벌떡 일어나 배낭을 열어 곰 인형을 꺼냈다.
아직 어린 세린이에게는 아주 컸던 곰 인형, 곰곰이.
그러나 천문석의 손에 들린 곰곰이는 팔꿈치에도 오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이렇게 작았구나. 세린이도, 곰 인형도.’
손때 묻은 곰 인형에서 주인의 체취가 느껴질 때.
천문석은 문득 고개 돌려 창문 밖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검은 하늘에 점점이 박힌 별빛과 그 가운데 환하게 밝혀진 인공의 빛.
언제나처럼 천의는 무심하고, 인과가 어디로 이어졌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당장 뭘 해야 할지는 분명했다.
이 곰 인형, 곰곰이를 돌려줘야 했다.
인형에 남아 있는 아이의 체취가 사라지기 전에 아빠에게.
천문석은 바로 고개 돌려 물었다.
“특급 헌터. 장철 헌터님 연락되냐? 지금 던전에 있는 거야?”
“삼촌 어제 집에 와서! 이렇게 누워 있어! 이제 나보다 더 까매졌어! 카캬카캌-.”
특급 헌터는 소파에 척 모로 누워, 리모컨을 발가락으로 잡고 흔들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삼촌한테 연락 좀 해 줄래? 가능한 한 빨리 만나야…….”
“앗! 그렇지! 여기로 삼촌 불러서 자랑하면 되잖아! 장민은 전혀 모를 거야! 카캬카캌- 바로 부를게!”
특급 헌터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헌터용 시계를 누르고 다급히 외쳤다!
“삼촌! 큰일 났어! 긴급사항이야! 당장 알바 집으로 와!”
그리고 재빨리 시계 전원을 껐다.
“……너 뭐하냐?”
“아, 이거 긴급 호출 약속이야! 이렇게 하면 삼촌 진짜 엄청 빨리 와! 카캬카캌-.”
특급 헌터의 말은 사실이었다.
잠시 후 벨 소리가 울렸다.
띠리리리리-
천문석과 류세연의 휴대폰에서.
그리고 거실 창문 아래에서도 벨 소리가 들려왔다.
띠리리리리-
보지 않아도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알 수 있었다.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대기 중인 제임스와 경호원의 휴대폰.
그리고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하나 더 있었다.
“봐! 내가 맞지!? 이렇게 하면! 삼촌 엄청 놀란 얼굴로 엄청엄청 빨리 와!”
“…….”
천문석은 직감했다.
철없는 꼬맹이는 지금 삼촌‘만’ 부른 게 아니다.
분노한 아니 분노한 것보다 더 무서운, 아이를 걱정하는 엄마를 같이 부른 것이다.
장민 대표!
잠시 후 특급 헌터의 운명이 생생히 보였다.
* * *
종로.
한국 헌터 업계의 중심지에 사방이 빌딩으로 막힌 섬처럼 고립된 공간이 있었다.
아는 사람만 알고 있는 가로세로 100미터가 훌쩍 넘는 이 고립된 공간에는 잘 관리된 넓은 정원이 있고.
이 정원 중심에 20층이 넘는 현대식 호텔이 세워져 있었다.
-길드와 기업, 여러 단체에 찍힌 도망자.
-비밀스러운 의뢰를 주고받는 의뢰인과 헌터.
-이너서클 안에서만 도는 정보를 거래하는 정보상과 길드, 헌터팀.
헌터 업계의 그림자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호텔.
안전 호텔!
종로의 이 호텔은 안전 호텔 중에서도 서울 본점이었다!
종로 안전 호텔로 마력 각성자 두 사람이 다가가고 있었다.
“아리엘님. 진짜로 여기는 안전하죠? W. S. 그분한테 잡히면 우리 끝장입니다!”
에코는 워커 실트의 이름조차 말하지 못하고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야, 에코! 나 무겐다흐야! 내가 얼마나 철저한지 알지?”
“…….”
“그런 내가 철저히 조사했어! 안전 호텔은 투숙객의 신변을 철저히 보호해 줘! 그리고 서울은 저거 때문에라도 워커 그 녀석 대놓고 못 들어와!”
확신을 담아 밤하늘을 가리키는 아리엘.
아리엘이 가리킨 밤하늘에는 커다란 빛 덩어리가 떠 있었다.
직접 보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한 하늘에 뜬 섬!
“저 섬이 뭐라고 불린다고요?”
에코가 다시 한 번 이름을 묻는 순간.
아리엘이 희열에 들뜬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 이렇게 분명한 증거가 있는데 엉뚱한 곳을 뒤졌다니! 진작 커뮤니티를 확인하는 건데! 하!”
아리엘은 탄성을 터트리며 타대륙 마탑의 마법사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을 말했다.
“전능 옥좌!”
순간 에코는 전율했다.
전능 옥좌!
모든 마탑과 타이탄을 통제하는 마도 황제의 천공의 섬!
자신이 태어난 시대에는 이미 추락한 전능 옥좌가 이세계의 하늘에 떠 있었다!
“우연히 이름만 같은 건 아니겠죠!?”
“당연하지! 너도 봤잖아? 게이트 안정화 장치! 마탄에 새겨진 마력 조성! 거기에 하늘에 뜬 대지 이름이 전능 옥좌라고? 이건 100%야!”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말했다.
“마도 황제!”
“재금 그룹!”
“분명 재금 그룹이랑 마도 황제가 연관이 있다!”
에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도 제국의 표준 기술과 너무나 비슷한 재금 그룹의 기술력! 거기에 이름까지 같다!
우연이 이렇게 겹칠 리가 없었다!
“워커 걔가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어도! 전능 옥좌가 하늘에 떠 있는 서울에는 대놓고 못 들어와! 혹시라도 걸리면 아작이 날 테니까! 그리고 워커의 행적을 추적할 방법도 이미 준비했어!”
아리엘은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휴- 다행이네요. 그럼 시간을 번 동안 ‘오류’찾을 준비 하죠!”
“너 그거 좀 자세히 말해 봐. 무슨 ‘오류’가 생겼다는 거야?
“방 잡고 말씀드릴게요. 파트너한테 메시지도 보내야 하고요.”
에코는 주위에 놓인 테이블을 힐끗 눈짓하며 말했다.
불이 밝혀진 테이블마다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과 헌터들이 보였다.
이곳은 사방에 듣는 귀가 많은 개방된 공간,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기엔 좋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곧 안전 호텔에 방을 잡고, 정말 오랜만에 씻고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거실에 모였다.
[난 목적지에 도착했다. 당분간은 알아서 잘 숨어 있어. 오류 찾고 움직일 때가 되면 바로 연락할게.]
에코는 미리 박아둔 앵커에 초대형 뱁새에게 전할 마법 메시지를 보냈다.
하루 한 번은 앵커를 확인하기로 했으니, 늦어도 내일까지는 파트너가 메시지를 확인할 거다.
에코는 바로 고개를 돌려 아리엘에게 확인했다.
“아리엘님. 워커. 그분 추적할 방법은 준비됐습니까? 혹시 모르니 항상 위치 확인해야 합니다.”
“30분 후에 전문가 만나기로 약속 잡았어. 그전에 그 이야기부터 해 봐. 도대체 무슨 ‘오류’가 생겼다는 거야?”
아리엘은 지난 며칠 동안 품은 의문을 다시금 물었다.
봉우리 정상 리클레 가루 최루탄에 기절했다 깨어나 도망친 순간부터.
심각한 얼굴로 연신 시계를 찰칵이며 무언가를 측정한 에코.
에코는 오류가 발생한 것 같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안전한 장소에 도착한 지금 설명을 들어야 했다.
“설명하겠습니다.”
에코는 바로 마법봉을 꺼내 마력을 일으켰다.
파스스슥-
마법봉 끝에 빛이 맺히는 순간.
에코는 마법봉을 분필처럼 움직여 거실 한가운데 허공에 죽죽- 선을 그었다.
곧 거실에 사방으로 가지를 뻗은 빛의 나무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에코는 위로 뻗은 나뭇가지 하나에 원을 그렸다.
“세계의 나무? 닫힌 세계? 이거 전에 이야기 한 거잖아?”
2000년 세기말, 닫힌 세계에 있을 때 이미 에코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에코는 세계의 나뭇가지에서 뻗어 나와 둥글게 원을 그린 가지를 마법봉으로 가리켰다.
“며칠 전 우리가 있던 장소가 여깁니다.”
“닫힌 세계.”
“네 맞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여기에 있습니다.”
에코의 마법봉이 원을 그린 가지를 벗어나 위로 뻗은 나뭇가지를 타고 천천히 움직였다.
“정확히는 도약한 거지만, 이런 식으로 20년의 세월을 지나온 거죠.”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다.
아리엘이 의아한 얼굴로 볼 때 변화가 시작됐다!
스으윽-
나뭇가지를 타고 움직이던 마법봉이 천천히 위로 움직였다!
세계의 나무를 벗어나 허공으로 움직이는 마법봉!
마법봉에 맺힌 빛을 따라 허공에 익숙한 원이 그려졌다.
빛으로 그려지는 커다란 원!
이 커다란 원은 2000년의 닫힌 세계, 작은 원을 그 안에 품어 버렸다!
뚝-
그리고 마법봉이 멈추는 순간.
에코는 커다란 원 위를 짚으며 말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시공간 2020년이 이곳입니다.”
“어!?”
아리엘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외쳤다.
“설마! 이 세계가!?”
“네 2000년과 같습니다. 2020년 이곳도 닫힌 세계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에코는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보다 더 안 좋습니다.”
에코는 회중시계를 꺼내 용두를 눌렀다.
찰칵-
순간 작은 원을 그린 나뭇가지에서 가시처럼 길게 뻗어 나오는 가지들!
이 가지들이 큰 원을 그린 나뭇가지와 복잡하게 뒤엉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위와 아래!
다른 공간으로 뻗어 나간 큰 줄기를 향해서 가지를 뻗어 나갔다.
툭, 툭, 툭-
덩굴이 얽힌 나무처럼 복잡하게 가지가 뒤엉킨 세계의 나무!
“이 세계는 뭘 어떻게 손을 댈지 감이 안 올 정도로 엉망으로 뒤엉켰습니다. 아마 과거와 현재의 인과가 뒤죽박죽일 겁니다. 그리고 이 세계뿐만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까지 영향을 줬습니다.”
에코는 아연한 얼굴로 뒤엉킨 세계의 나무에서 뻗어 나와 다른 줄기에 닿은 가지를 가리켰다.
“아리엘님이 이 세계에 온 것. 워커 실트님이 나타난 것 모두 우연이 아닙니다.”
아리엘은 벼락 치듯 깨달았다.
출구가 돌연 사라져 수십 년 동안 천공탑의 냉기 지대에서 헤맸다!
세계의 나무는 인과를 이어 자라나는 나무!
아무런 인과도 없이 천공탑에 있던 자신이 이렇게 뚝 떨어질 리 없었다!
무언가 자신을 끌어당겼다!
이때 아리엘과 에코의 눈이 마주쳤다.
“너! 짐작 가는 게 있어!?”
“뭐가 이런 현상을 일으켰는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이런 일은 고대신과 허신 수백이 모여야 가능한 일인데…….”
“뭐? 허신, 고대신 수백? 야! 그 정도 존재가 쏟아졌으면 차원압으로 벌써 난리가 났지!”
“그러니까요. 이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는데…….”
고개를 젓던 에코는 번쩍 얼굴을 들고 외쳤다.
“결국, 해결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이 모든 오류가 시작된 분기점을 찾아야 합니다!”
“분기점?”
“네. 세계가 닫힌 분기점!”
에코의 마법봉이 작은 원이 시작되는 곳을 짚었다.
“처음에는 김철수 발명가가 분기점이라고 세계가 닫힌 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부일 뿐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었습니다!”
에코의 마법봉이 커다란 원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옮겨 갔다.
“이게 우리가 찾아야 할 근본적인 오류입니다! 이 거대한 닫힌 세계를 만들어 낸 오류, ‘분기점’을 찾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