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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525화 (526/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25화>

카캬카카캌-

펜던트를 번쩍 들고 옥상을 달리는 특급 헌터.

“특급 알바가 특급 로봇을 줬어!”

왕, 왕왕-

그 뒤를 따라 달리는 하얀 강아지.

전 서리 늑대, 현 탱탱이.

이세계 쿠팡맨 시즌 2.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얻은 두 가지 보상이 날아갔다.

펜던트에 봉인된 나이트 아머.

시고르자브르 광장의 주인, 서리 늑대.

“…….”

천문석은 하늘을 향해 마음에서 마음으로 말을 걸었다.

하늘님, 이래서군요?

보상을 막 퍼 주셔서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큰 그림을 그리셨던 거군요?

하하하-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하하하-

‘인정, 또 인정입니다!’

하하하하하-

‘방심하는 순간 이렇게 뒤통수를 때리시다니!’

천문석이 하늘을 바라보며 가슴으로 외칠 때.

류세연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설마, 지금…… 울어?”

‘그럴 리가!’

자신은 울고 그러는 사람이 아니다!

천문사를 낚여서 물려받았을 때!

천마신공에 어쩌다가 우연히 입문했을 때!

천강의 불로 한 방에 훅 간 마지막 순간까지도!

전생 천마 천문석은 웃었다!

얼굴을 가로지르는 한 줄기 뜨거운 느낌이 눈물일 리 없다!

그렇기에 천문석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땀이다.”

그리고 가슴속에서 메아리치는 웃음을 입 밖으로 터트렸다!

하하하하하-

“이건 땀이다! 하하하-.”

“오늘 날씨가 참 덥네! 하하하-.”

“하늘 참 더럽게! 진짜 더럽게! 푸르네! 하하하-.”

……

하늘을 향해 삿대질하며 연신 외치는 천문석.

“…….”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천문석을 본 류세연은 직감했다.

‘진짜로 펜던트에 나이트 아머가 들어 있구나!’

류세연은 자신도 모르게 신나게 달리는 특급 헌터의 모습을 뒤쫓았다.

작은 아이 손에 쏙 들어가는 작은 펜던트!

저런 펜던트에 나이트 아머가 들어 있다고!?

나이트 아머가 코어의 힘으로 크기와 무게를 변화시킬 수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거대 괴수 코어를 이용해서 최대한 줄여도 10미터에 수십 톤!

나이트 아머는 던전에는 거의 진입이 불가능하고, 비행기, 화물차 운송도 쉽지 않다.

항모와 대형 수송기를 대규모로 운용하는 미국이 아니면 빠른 전개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크기와 무게를 변화시키는데도, 코어 와 최상급 정제 마석이 소모기에 쉽게 변화시킬 수도 없다.

나이트 아머를 저 작은 펜던트에 봉인하는 데 성공했다면 그야말로 혁신!

저 펜던트 안의 나이트 아머는 그냥 나이트 아머 한 기가 아니었다.

헌터 업계를 넘어 세계정세까지 변할 정도로 엄청난 일이다!

이 모든 걸 돈으로 환산한다면, 오빠의 오랜 꿈 건물주를 넘어 도시를 하나 세울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

‘그런 나이트 아머를 그냥 넘긴다고!?’

‘단지 약속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오빠. 지금 제정신……!”

외침과 동시에 류세연은 깨달았다.

옥탑방 오빠, 천문석은 그런 사람이었다.

아이와 한 약속이어도.

그 약속에 상상을 초월한 돈이 날아가도.

한점 아쉬움 없이 반드시 지키는 그런 사람.

“오빠…….”

마음이 크게 움직인 류세연이 떨리는 목소리, 떨리는 손을 뻗는 순간.

하하하하하-

미친 듯이 웃던 천문석이 돌연 웃음을 멈추고 하늘을 향해 외쳤다.

“에라이! 진짜 못해 먹겠네!”

“안 해! 오늘로 끝이다! 오늘부터 하늘은 안 믿는다!”

“앞으론 땅이다! 앞으로는 뿌린 만큼 내주시는 공명정대한 땅님을 믿는다!”

* * *

옥탑방 거실.

류세연이 후식으로 먹을 수박을 자르고 있을 때.

파바바밧-

천문석은 러그 위에서 빠르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내력을 터트려 가늘게 찢은 가죽끈을 엮어 목걸이 줄을 만들고, 목걸이 줄을 펜던트에 단단히 고정한 고리에 꿰었다.

금세 완성된 펜던트 목걸이!

천문석은 펜던트 목걸이를 건네며 말했다.

“야, 다 됐다. 잃어버리지 말고 목에 잘 걸고 다녀 라.”

“고마워 알바! 이제 강철이랑 나는 언제나 같이 다니는 거야! 카캬캌-.”

“강철? 아, 로봇 이름! 너 벌써 이름까지 정했냐?”

“맞아! 보는 순간 딱 느낌이 왔어! 얘는 강철이야! 뭐든지 다 때려 부수는 강철!”

카캬카카캌-

목걸이를 걸고 신나게 외치는 특급 헌터.

천문석은 문득 든 생각에 물었다.

“너, 그런데 그 안에 로봇 있는 건 어떻게 알았냐?”

“엇!? 이렇게 보면 로봇 보이잖아!”

재빨리 펜던트를 벗어 LED 형광등에 비추는 특급 헌터.

펜던트 한가운데 말간 돌이 형광등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이 돌 안에 로봇이 보인다고?”

특급 헌터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을 쏟아 냈다.

“맞아! 그냥 보면 안 되고, 아주 열심히 보면 로봇 보여! 몸에 커다란 무늬도 있어! 엄청엄청 멋있어!”

카카캌-

“강철이랑 같이 있으면 뭐든지 다 때려 부술 수 있어! 이제 내 쌩쌩이 가져간 로봇 누나도 안 무서워!”

카카캌컄-

“그런데 이상하게 불러도 안 나와? 왜지? 왜 나오지 않지!? 강철이도 탱탱이처럼 영양실조 걸린 건가!? 뭘 줘야 힘을 차리지!”

“앗!”

신나게 외치던 특급 헌터는 천문석에게 잘 보라고 펜던트를 건넨 후.

“알바! 자세히 봐봐!”

쪼그려 앉아 구슬, 돌, 병뚜껑, 돌려받은 화로를 늘어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강철이한테 뭘 줘야 힘을 차리지!?”

이때 류세연이 수박과 감귤이 가득 담긴 쟁반을 들고 왔다.

“삼촌. 특급 헌터. 수박이랑 감귤 먹어.”

“수박이닷! 어, 감귤? 감귤이 아직도 있는 거야!? 어제 내가 열심히 먹은 게 마지막이라며……!”

“…….”

말없이 천문석을 가리키는 류세연.

“왜? 감귤이 왜?”

천문석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류세연의 손가락이 거실 구석으로 움직였다.

특급 헌터의 티피가 있는 구석 자리 옆!

잘 접힌 감귤 상자가 잔뜩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낯익은 감귤 상자가 놓여 있었다.

자신이 사무실에서 가져온 감귤 상자다.

“내가 가져온 감귤 상자?”

천문석이 의아해하는 순간.

특급 헌터가 깜짝 놀라 외쳤다!

“으앗-! 알바가 감귤 가져왔다고!? 알바! 왜 그랬어! 감귤 왜 가져 온 거야!?”

“맞아! 왜 그런 거야! 간신히 감귤 다 처리했는데! 삼촌이 감귤 또 받아왔잖아!”

류세연이 바로 맞장구를 치고 천문석 앞에 감귤 10개를 몰아 줬다.

“할당량이야. 삼촌 무조건 감귤 10개 먹어.”

“맞아! 할당량이야! 우리는 감귤 매일매일 엄청 열심히 먹어서! 간신히 다 먹었어!”

“…….”

“으으으. 할머니 장난 아냐. 감귤 보기만 해도 셔!”

“이제 감뀰아냐! 감굴! 으악! 감굴이 줄지를 않잖아! 계속계속 나와!”

류세연과 특급 헌터는 감귤을 보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

천문석은 어떻게 된 일인지 바로 알아챘다.

김철수 사무실에 높게 쌓였던 감귤 상자.

집구석에 놓인 잘 접힌 감귤 상자들.

두 감귤 상자에는 같은 이름이 인쇄돼 있었다.

[임옥분 농업 법인]

범인은 당연히 한 사람이었다.

임옥분 여사님!

임옥분 여사님께서 김철수 사무실과 옥탑방에 감귤 폭탄을 떨어뜨리셨다!

역시 농업과 생활의 달인!

감뀰, 감뀰 노래를 부르던 특급 헌터마저 훅- 갔다!

하하하하하-

웃음을 터트린 천문석은 감귤을 흡입하듯이 먹어치웠다.

할당량 10개 + 류세연과 특급 헌터가 은근슬쩍 밀어 놓은 감귤까지!

그리고 류세연과 특급 헌터가 텔레비전에 집중할 때.

천문석은 형광등 불빛에 펜던트를 비추고 중앙의 투명한 돌을 살폈다.

그러나 아무리 내력을 일으켜 살펴도, 투명한 돌 너머 형광등 불빛만 보일 뿐 돌 안에 로봇 형상은 보이지 않았다.

천문석은 고개를 돌려 텔레비전에 집중한 특급 헌터를 봤다.

뭐지, 이 녀석.

이제 상상을 눈으로 보기도 하는 건가?

천문석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특급 헌터 눈에만 보이는 로봇, 강철이!

아이가 보물을 가지고 다니면 위험한 법.

하지만 이 펜던트는 그냥 보기에는 별 가치 있어 보이지 않는다.

즉, 다른 사람들이 이 펜던트를 봐도 특급 헌터가 위험할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장민 대표는 특급 헌터가 하고 다니는 펜던트의 정체를 알아야 했다.

장민 대표는 특급 헌터의 엄마니까.

그리고 동네 꼬맹이 같은 모습으로는 상상할 수 없지만, 특급 헌터는 재벌가의 후계자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천문석은 펜던트를 다시 건네며 말했다.

“특급 헌터, 펜던트 나중에 엄마 만나면 말해 줘. 안에 로봇, 나이트 아머 들었다고.”

“뭐!? 장민한테 말하라고!?”

깜짝 놀란 특급 헌터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장민이 알면 압수할 거란 말야! 나 작작작년 세뱃돈 아직도 못 받았어! 장민이 내 세뱃돈으로 이상한 거 샀단 말야!”

“……이상한 거를 샀다고?”

벌떡 일어나 외치는 특급 헌터.

“주식! 그리고 알바! 내 쌩쌩이 1호! 어떻게 됐는지 잊었어!?”

반사적으로 머리에 떠오른다.

-쌩쌩이 1호.

서울 사태 때 랩터 사이를 뚫고 달린 부가티 헌터 미니. 장민 대표가 직접 폐차 처리했다.

“그리고 제주도! 내가 감귤 먹을 때마다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내 쌩쌩이 2호 가져간 로봇! 그 로봇도 장민이 보낸 거 같아! 거의 확실해!”

-쌩쌩이 2호.

제주도 몬스터 사태 때 특급 헌터가 타고 달린 두 번째 부가티 헌터 미니. 갑자기 등장한 나이트 아머가 번쩍 들고 사라졌다.

특급 헌터의 예상 대로였다.

쌩쌩이 2호를 가져간 로봇은 장민 대표가 조종했을 가능성이 99% 이상이다!

“알바 알았지!? 절대 비밀이야! 장민이랑 삼촌한테는 완전 비밀이야! 알바 빨리 약속해!”

작은 손을 내밀며 강하게 주장하는 특급 헌터.

어이없어하며 손가락을 걸려는데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다.

‘장민이랑 삼촌한테는 비밀이야…….’

장민 대표, 장철 헌터.

그리고 나와야 할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천문석은 특급 헌터를 봤다.

“빨리 약속하라니까!”

새끼손가락을 열심히 흔드는 꼬맹이.

천문석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너 혹시 사촌 누나 없냐?”

“사촌 누나? 세연!?”

“아니 세연보다 몇 살 많을 텐데. 너 삼촌 그러니까 장철 헌터한테 딸 없어?”

“뭐!? 삼촌한테 딸이 있다고!? 나한테 누나 있었어? 진짜로? 정말로!?”

깜짝 놀라 연신 외치는 특급 헌터.

“…….”

천문석은 왠지 모를 싸한 느낌에 멈칫했다가 말했다.

“너 혹시 삼촌 사진 없냐?”

“잠깐만!”

특급 헌터는 재빨리 차고 있던 시계를 눌러 화면에 사진이 띄웠다.

작은 사진이지만 알아보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가족사진.

가운데, 특급 헌터.

왼쪽, 장민 대표.

오른쪽, 장철 헌터.

가족사진에 찍힌 사람은 셋뿐이다.

“……혹시 다른 가족은 없어?”

“세연 누나, 특급 알바, 앙꼬, 마술사 아저씨, 관장 할아버지, 육포 할머니, 용 형? 앗! 제주도 할머니! 감귤 할머니 사진 보여 줄까!?”

친한 사람 이름을 죽 늘어놓는 특급 헌터.

“아니…… 잠시만.”

천문석은 특급 헌터를 제지하고 사진 속 장철 헌터를 다시 살폈다.

자세히 볼 필요도 없었다.

보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본 장철은 조각 같은 미남이었다.

그러나 사진에 찍힌 장철은 조각 같은 미남과는 거리가 멀었다.

장철은 당장이라도 육중한 오함마를 내려찍어 몬스터를 박살 낼 듯 거친 얼굴이었다.

자신이 장철을 처음 만난 서울 사태 때와 같은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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