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19화>
천문석은 광화문 광장으로 달리며 재빨리 주위 건물을 훑었다.
자신이 세기말에서 한 일들로 발생한 나비 효과를 확인해야 했다!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봤던 폐허가 된 서울 시가지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그러나 주위 건물에는 게이트 전쟁의 흔적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체감은 며칠이나 실제로 흐른 시간은 2000년에서 2020년까지, 20년! 당연했다!
“이게 바뀐 거야? 안 바뀐 거야?”
도로, 건물, 지하철, 인도, 상점, 카페…… 아무리 살펴도 변화의 확신이 서지 않았다.
천문석은 곧 거리를 살피던 걸 그만뒀다.
몇 번 지나가지도 않은 서울역 주위에서 변화를 찾는 건 불가능했다.
설령 무언가 통째로 바뀌었다고 해도 알아채지 못할 가능성이 더 컸다.
너무 익숙하고 자주 봐서 보는 순간 변화를 알아챌 수 있는 장소, 사람을 확인해야 했다.
생각과 동시에 머리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광화문 광장!
-광화문 게이트 지역, 의인 광장!
-사무실에서 기다릴 철수형과 직원들!
-제주도에서 올라와 옥탑방 앞에서 신나게 놀고 있을 특급 헌터!
천문석은 재빨리 동선을 짰다.
‘광화문 광장’을 거쳐 게이트 지역 ‘의인 광장’을 확인한다.
리볼버를 영치한 후에 ‘김철수 사무실’에 들려 철수형과 직원들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가 ‘특급 헌터’를 만난다!
동선이 세워지는 순간 천문석은 전력으로 달려 광화문 광장에 도착했다.
광화문 게이트까지 직선으로 쭉 뻗은 광화문 광장.
줄줄이 이어지는 헌터 상점들, 높은 빌딩 사이사이 웅장하게 솟은 성채 빌딩들.
그리고 광장과 주위 인도에 가득한 헌터와 관광객들까지!
광화문 광장에는 변화가 없어 보였다.
“여기는 별로 변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천문석은 바로 광화문 광장을 지나 광화문 게이트 지역으로 넘어갔다.
높게 솟은 성벽과 분리 필드로 격리된 광화문 게이트 지역도 큰 변화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아직 모른다!
자신이 과거에서 일으킨 수많은 사건!
그중 한강에서 일으킨 사건의 여파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장소가 이곳 광화문 게이트 지역에 있었다.
의인 광장!
자신과 서리 늑대가 한강에서 한 일들로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다면 의인 광장이 변했을 거다!
천문석은 바로 의인 광장으로 달렸다.
멀리 건물 위로 맹호 건 스미스 간판이 보이는 순간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맹호 건 스미스 바로 앞에 의인 광장이 있다!
마침내 20년 전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한 일들이 만들어 낸 여파, 나비 효과를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다!
천문석은 건물 사이를 달려 의인 광장으로 들어갔다.
* * *
“……!”
의인 광장에 도착하는 순간 천문석은 넋 나간 표정으로 주위를 훑었다.
변화를 알 수 없던 서울 시가지와 달리 의인 광장은 보는 순간 변화를 알 수 있었다!
광화문 게이트 지역에서 가장 입지가 좋았던 의인 광장, 광화문 게이트 지역 최고의 입지가 더 좋아졌다!
어지간한 빌딩 3채는 들어갔을 넓이가 2, 3배는 더 넓어졌고, 정면으로 광화문 게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게다가 출입을 막았던 의인 광장 안에는 수많은 헌터가 즉석에서 팀을 만들고.
일반인, 관광객들이 광화문 게이트로 들어가는 열차를 바라보며 탄성을 터트리고 있었다!
엄청난 유동인구!
의인 광장은 명실상부한 광화문 게이트 지역의 중심이 됐다!
천문석은 열기 어린 눈빛으로 의인 광장 주위를 바라봤다.
높게 솟은 빌딩과 건물 사이에 있는 빈 공간 광장.
광장과 허허벌판은 빈 공간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과 달리, 밀집된 도심에 빈 공간이 생기고.
이 빈 공간에 인파가 모여들면 엄청난 부가가치가 생겨난다!
지금 광장에 모인 엄청난 유동인구를 보는 순간 그 누구라도 의인 광장의 가치를 알 수 있었다!
의인 광장을 바라보는 천문석의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광장에 세워지는 건물!
상상을 초월한 임대료 수익을 거둘 거다.
당장 돈이 없어도 건물을 세우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광장을 담보로 대출을 일으키고, 월세 수익으로 원리금을 갚으면 1년도 안 돼서 차입금을 모두 갚고 순이익이 날 거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다.
이 광장 귀퉁이에 조립식 건물을 세우고 편의점만 열어도 한강 공원 편의점 못지않은 순이익을 올릴 거다!
의인 광장은 예전에도 알짜였지만 이제는 먹는 순간 재벌이 부럽지 않은 땅이 됐다!
나비 효과가 좋은 방향으로 일어난 것이다!
뭐가 어떻게 연쇄 반응을 일으켰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건 중요한 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이 ‘의인 광장’의 정당한 주인, ‘의인’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
그러나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1. 서리 늑대가 돌아오는 데 실패했고.
2. 의인의 이름을 ‘이세기’라고 말했다.
이제 이 광장을 먹는 조건이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해야 했다.
천문석은 심호흡하고 의인 광장 중앙을 봤다.
광장 중앙에 있는 거대한 늑대 동상 아래, 의인 광장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방법이 새겨진 명판이 있다.
“어, 저 늑대 동상!?”
쿵, 쿵, 쿵, 쿵-
광장 중앙을 보는 순간 천문석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의인 광장 한가운데는 예전처럼 거대한 늑대 동상이 서 있었다.
그런데 이 늑대 동상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다!
천문석은 홀린 듯 광장 중앙으로 달려갔다!
광장 중앙이 가까워지자, 높은 화강암 단 위에 세워진 거대한 늑대 동상이 자세히 보였다.
쫙 빠진 날렵한 몸과 불꽃처럼 흩날리는 털!
늠름한 모습으로 단 위에 서서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늑대!
예전 단 위에 있던 그린듯한 거대 늑대 동상이 완전히 변했다!
동글동글 한 몸과 털 뭉치 같은 털!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혀를 쭉 내민 늑대!
늑대라기보다는 커다란 탱탱볼처럼 생긴 늑대 동상이 단위에 세워져 있었다!
너무나 생생한 늑대의 얼굴에는 ‘이걸 도대체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라는 의문이 떠올라 있었다!
서리 늑대!
광장의 늑대 동상은 2000년 대한민국에서 돌아오지 못한, 서리 늑대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이 생생한 모습을 보는 순간 머리를 스치는 장면이 있었다.
시민들이 건너갈 얼음 다리를 가능한 한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서, 서리 늑대를 데리고 넓은 한강 위를 20번도 넘게 달렸다!
‘자 한 번만 더 얼리자!’
‘이제 진짜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진짜 진짜로! 최후의 한 번만 더 달리면서 얼리자!’
……
나중에는 혀를 빼문 채, 확 그냥 누워 버릴까 고민하던 서리 늑대.
서리 늑대의 그 모습이 그대로 동상에 드러나 있었다!
천문석의 얼굴이 환해졌다.
서리 늑대를 이 정도로 비슷하게 만들었으면, 자신에 대한 기록도 자세히 남겼을 거다!
그렇다면 일이 쉬워진다!
20년 전!
긴 시간이지만, 당시 자신을 본 사람은 많다!
이세기와 천문석으로 이름은 달라도, 당시 의인을 직접 본 사람들의 증언이 있다면 쉽게 의인 광장을 먹을 수 있다!
그전에 명판에 새겨진 의인 광장의 유래와 소유권을 확인해야 한다!
“잠시만요. 확인할 게 좀 있습니다!”
천문석은 서리 늑대 동상 주위를 겹겹이 둘러싼 인파를 헤치고 들어가 명판을 확인했다.
[시고르자브르]
[이 광장은 정부의 대 몬스터 전, 전술 부대 서울 헌터 부대의 창립 멤버이자, 한강을 얼려 수십만의 시민이 탈출할 얼음 다리를 만들어 낸. 초능력 개 ‘시고르자브르’를 기리는 공간입니다.]
-시고르자브르!
-대 몬스터 전 전술 부대, 서울 헌터 부대!
농담처럼 던진 서리 늑대의 견종이 이름이 됐고, 적당히 꾸며댄 이세기 대령의 소속이 서리 늑대의 소속이 됐다.
‘이세기’란 이름이 남기는커녕, 이름 모를 ‘의인’ 이야기조차 쏙 빠져 있었다!
‘아니, 이게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의인 광장에 의인 이야기가 왜 없어!?’
천문석은 재빨리 서리 늑대 동상에 세워진 단을 확인했다.
혹시 다른 명판이 있을지 몰랐다!
그리고 예상대로 다른 명판이 보였다!
[…… 박찬석, 이길영, 한호석, 한경석, 최수오, 김경욱, 김통천, 뽀미…….]
수많은 이름이 적힌 명판.
명판 위에는 이 이름들이 무엇인지 기록되어 있었다.
[시고르자브르 동상을 만드는데 기부금을 내신 분들.]
다른 명판은 없었다.
의인 광장에서 ‘의인’의 존재가 사라졌다.
“……!”
천문석은 알 수 없는 불길함에 멍하니 서리 늑대 동상을 볼 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우리 일행 있어요! 오빠! 여기! 우리 여기 있어!”
문득 고개를 드니 인파 너머 교복 입은 남녀 학생 10여 명이 천문석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봤죠? 저희 일행이에요! 현장학습용 사진 몇 장만 찍을게요!”
현장학습을 온 듯한 학생들이 천문석을 향해 눈짓하며 손을 흔들었다.
천문석은 돌아가는 상황을 바로 눈치챘다.
일행인 척하고 사진을 찍으려는 것!
‘잘됐다! 저 학생들에게 확인하면 된다!’
“일행 맞습니다! 길 조금만 열어 주세요!”
천문석은 바로 외치고 학생들이 들어올 수 있게 인파에 길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사진 제출해야 하는데 시간이 늦어서…….”
겸연쩍은 웃음을 흘리며 머리를 숙이는 학생들.
“내가 사진 찍어 줄게. 휴대폰 줘라.”
“앗! 진짜요? 감사합니다!”
“얘들아 모여! 여기 헌터 형이 사진 찍어 준 데!”
“다리 길어 보이게 찍어 주세요!”
“전 얼굴 작고 어깨 넓게 찍어 주세요!”
……
천문석은 몇 장의 사진을 찍은 후 휴대폰을 건네주며 은근슬쩍 물었다.
“그런데 이 광장 뭐라고 불리는지 아냐?”
“감사합…… 네?”
감사 인사를 하다가 의아한 얼굴로 서로를 보는 학생들.
학생들의 시선이 화강암 단 위에 세워진 거대한 늑대 동상으로 모였다.
“이 광장에 이름도 있었어?”
“늑대 동상 있으니까. 늑대 광장 아냐?”
“앗! 형 잠시만요! 꿀벌 쌤이 현장학습 프린트 준거 있어요!”
한 학생이 A4 용지를 꺼내 재빨리 확인하더니 말했다.
“이 광장 정식 이름은 ‘시고르자브르 광장’이라는데요?”
그리고 다른 학생이 현장학습 자료를 읽었다.
“‘시고르자브르 광장. 수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게이트 전쟁 때 수많은 서울 시민을 구한 최초의 각성 동물을 기리기 위한 광장이다.’라는 데요?”
“……혹시 의인 이야기는 없냐?”
“의인이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는 학생들.
“……아니면 이 광장 소유권 주장 방법 그런 거 없냐?”
“잠시만요. 찾아볼게요!”
학생들의 시선이 A4 용지로 모이는 순간 멀리서 외침이 들려왔다.
“너희들 어디 있니! 바로 다음 장소 이동해야 해!”
“앗! 꿀벌 쌤이다!”
“쌤! 저희 여기 있어요!”
“오빠. 저희는 이만 가 볼게요!”
“형! 이거 받으세요! 혹시 뒤에 형이 찾는 내용 있을지 몰라요!”
학생들은 현장학습 자료를 건네주고 다급히 달려갔다.
천문석은 광장 한편에 서서 현장학습 자료를 넘겼다.
촤르르륵-
빠르게 넘어가는 문서의 내용이 눈에 박혀 든다.
-시고르자브르, 개요.
-시고르자브르, 게이트 사태 행적.
-시고르자브르, 뚝섬 공원 얼음 다리 기적.
-시고르자브르, 시골 잡종 모욕 사건.
……
시고르자브르, 시고르자브르, 시고르자브르……!
수십 장의 현장학습 유인물에는 ‘시고르자브르’, 천문석이 농담처럼 던진 서리 늑대의 이름이 수없이 반복됐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의인’이란 단어는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