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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515화 (516/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15화>

파아아아아-

백곰권 꼬맹이는 초대형 뱁새에게 낚여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천문석은 위풍당당하게 선 채로 이 모습을 바라보며 승리를 음미했다.

꼼수 vs 꼼수.

잔머리 vs 잔머리.

서로 뒤통수를 치기 위해, 비장의 수를 감추고 펼친 승부!

백곰권이라는 사기 기술에 나이트 아머까지 사용하는 저 꼬맹이는 만만하지 않았다!

나이트 아머의 마력 파동으로 마법을 캔슬하고!

굉천수를 터트리자 그 틈에 최루탄을 비처럼 쏟아부었다!

초절정 고수라도 당했을 연속 2중 통수 공격!

그러나 자신은 마도 18문의 지존 천마(전)다!

1차. 굉천수와 마력 각성자의 마법!

2차. 암살검 한경석의 연속 점멸 이동!

3차. 초대형 뱁새의 신속 기동 낚아채기!

승부는 3중 통수를 때린 자신의 승리로 끝났다!

3중 통수에 패배한 백곰권 꼬맹이는 초대형 뱁새에게 잡혀 공방 도시 주위 산맥 위에서 크게 원을 그리며 날고 있었다!

패배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듯이!

서로의 모든 것을 걸고 겨룬 승부에서 완벽하게 승리했다!

승리야말로 무인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최고의 영약!

가슴속에서 엄청난 충족감이 솟아오르고,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차올랐다!

천문석은 커다란 원을 그리며 정신없이 날고 있는 백곰권 꼬맹이를 향해 내력을 실은 승리의 외침을 집어 던졌다!

[네가 졌다!!]

공방 도시 하늘 높은 곳에서 터진 천둥 같은 외침이 겹겹이 펼쳐진 산에 부딪혀 끝없이 메아리쳤다.

[네가 졌다아-]

[네가 졌다아아-]

[네가 졌다아아아-]

곧 초대형 뱁새에게 잡힌 낙하산에서 분노 어린 외침이 돌아왔다.

"으아악- 빌어먹을 재수 없는 흑전! 으아악- 내가 뒤통수 싸움에서 지다니! 재수 없는 거 옮았어! 으악, 으아아악!"

카캬카카카카카카-

천문석은 패배자에게 통쾌한 승리의 웃음을 돌려줬다.

하지만 이 순간, 너무 멀어서 워커 실트는 보지 못했지만, 천문석의 얼굴에는 눈물, 콧물이 흐르고 있었다.

최루 가루!

귀식 대법을 펼쳤을 때는 최루 가루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하지만 한경석과 초대형 뱁새에게 공격 타이밍을 외치고, 지금 승리의 선언과 웃음까지 터트렸을 때 어쩔 수 없이 최루 가루를 들이켰다.

이 미친 최루 가루는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절정을 넘어서는 내력으로도 막을 수가 없었다….

눈물과 콧물이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줄줄줄 쏟아지고, 입에선 당장이라도 외침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시바, 시밧! 이거 도대체 무슨 가루야?! 커억-’

그러나 천문석은 버텼다!

그냥 버티는 게 아니라 통쾌한 웃음을 계속 터트려 최루 가루를 연신 마시면서도 버텼다!

카캬카카카카카카카-

정말 오랜만에 모든 것을 걸고 싸워 이겼다!

승리만큼 중요한 게, 승리 후 보여주는 모습이다!

천문석은 초대형 뱁새에게 잡혀 날아가는 백곰권 꼬맹이에게 완벽한 승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쿵, 쿵, 쿠우웅-

백곰권 꼬맹이가 계곡, 나무, 바위 등등에 연속해서 충돌하고, 공방 도시 북쪽에 솟은 만년설에 던져져.

쿠르르르릉-

눈사태를 일으키며 완전히 삼켜질 때까지!

카캬카카카카카카카-

백곰권 꼬맹이의 모습이 눈사태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

천문석은 뚝- 웃음을 그치고 전원이 끊긴 기계장치처럼 픽- 쓰러지며 마지막으로 외쳤다.

"내가 이겼다!!!"

이때 암전되는 시야에 다급히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너무나 익숙한 오색으로 반짝이는 빛과 흔들리는 형체.

암살검 한경석, 믿을 수 있는 동료!

천문석은 안심하고 정신줄을 놓았다.

컥-

이렇게 공방 도시 난장판의 마지막을 장식한 승부는 끝났다.

워커 실트는 분노한 초대형 뱁새에 잡힌 채 사방에 충돌하다가 눈사태에 파묻혔고.

천문석과 동료들은 리클레 가루 수백 kg이 쏟아진 절벽 정상에 기절한 채 널브러졌다.

천문석, 최설.

아리엘, 에코.

그리고 얼떨결에 같이 백곰권을 맞고 기절한 케인 이사까지.

모두가 쓰러진 난장판에서 유일하게 정신을 차리고 있는 건. 카멜레온 은신 망토로 상반신 전체를 가린 암살검 한경석뿐이었다.

암살검 한경석은 천문석에게 달려가며 외쳤다.

[친구!]

암살검 한경석의 기계음이 담긴 목소리가 절벽 정상에 울려 퍼지는 순간.

휘이이이잉-

거센 바람이 불어와 절벽 정상에 두껍게 쌓인 리클레 가루를 흩날렸다.

노란 송화 가루가 흩날리듯, 붉은 리클레 가루가 쏟아졌다.

로프를 걸고 절벽을 오르던 헌터와 경호원.

절벽 아래 다닥다닥 모여 있던 수백 척의 배 위로!

케에엑-

끄어억-

고통스러운 비명이 전염되듯 퍼져나가고, 수백의 헌터와 경호원들이 픽픽 쓰러졌다.

워커 실트가 처음에 예측한 대로, 흑전의 불운은 난장판에 한 발 걸친 모두에게 전해졌다.

* * *

번쩍 눈을 뜨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외침.

흐어억-

천문석은 다급히 숨을 삼키며 주위를 확인했다.

자욱한 안개가 깔린 낯익은 숲속 공터!

"어, 낯익은 숲속 공터라고?"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머리를 굴리려는 순간 한 사람이 보였다.

바위 위에 힙한 자세로 앉은 승복을 입은 사람.

승복을 입었으면서도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게 한눈에 들어왔다!

순간 알아봤다!

전혀 중 같지 않아 보이는 중!

자신에게 마도 18문의 일문 천문사를 물려주고 떠난 전생의 스승님이다!

"아니, 스승님이 여긴 어떻게?!"

말하는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아, 꿈이구나!"

꿈이라는 걸 깨닫자, 꿈꾸기 직전 상황이 번쩍 떠올랐다!

백곰권 꼬맹이와의 정면 승부!

승부에서는 이겼지만, 승리의 모습을 연출한다고 최루 가루를 마시고 기절했다!

지금 자신은 기절 상태에서 꿈을 꾸고 있는 거다!

"아니, 하필 꿈을 꿔도 이런 꿈을 꿔……."

천문석은 꿈속 스승님을 보며 인상을 팍 썼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한다.

천문석의 인생도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그 수많은 선택으로 맞이한 결말은 마도 18문의 지존이 되어 천강의 불꽃 속에서 훅 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선택의 시작은 무엇일까?

바로 앞에 있는 사람!

넬슨-앳킨스 박물관의 수월관음상처럼 힙한 자세로 바위에 앉아 있는 스승님이었다!

마종권 입문 제안을 거절하고, 스승님을 따라 서쪽으로 떠났을 때!

그때부터 인생 계획이 송두리째 엉망이 됐다!

그리고 천문사(天問寺), 스승님께 물려받은 사찰이 화룡점정이 됐다!

잘 가꿔서 소림사처럼 알짜배기 사업체로 만들겠다고 생각한, 그 천문사가 함정이었다!

천문사는 마도의 방계 지파도 아닌, 정통 중의 정통, 마도 18문의 일문이었다!

마도 18문의 일문 천문사를 이어받은 순간!

자신은 원하든 원하지 않던 강호의 은원에 발을 담그고 구르게 됐다!

"젠장!"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힙하게 앉아 있는 스승님에게 외쳤다.

"아니, 스승님. 천문사는 도대체 왜 물려 준겁니까!?"

빙그레 진짜 수월관음상 같은 미소를 짓는 스승님.

"아니, 웃지만 말고 대답 좀 해보시라니까요!"

당연히 대답은 없었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었다.

꿈은 무의식의 발현.

꿈속의 존재에게 묻는 건 스스로의 무의식에 질문하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자신도 이유를 모르는데 계속 질문해봐야, 제대로 된 대답이 돌아올 리 없었다.

그런데도 꼭 대답을 듣고 싶었다!

자신의 무의식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래서 다시 한번 크게 외쳤다.

"야, 내 무의식! 대답해 봐! 스승님이 천문사를 왜 물려 준걸까?! 무공도 모르는 꼬맹이! 객잔 주인이 꿈인 꼬맹이한테 말야!!"

순간 바람이 불어왔다.

휘이이잉-

주위를 둘러싼 안개가 흐트러지고.

짚을 꼬아 만든 줄에 달린 알록달록한 천들이 드러났다.

금줄!

그리고 들려왔다.

금줄 너머 안개 속에서 잔치라도 벌어진 듯 흥겨운 노랫소리와 웃음소리가!

그리고 보였다.

금줄 너머 하늘에 펼쳐진 거꾸로 솟은 끝없는 봉우리가!

천문석이 웃음소리에 홀린 듯 자신도 모르게 금줄 너머를 향해 걷는 순간.

휙-

등으로 날아오는 무언가!

반사적으로 날아오는 물체를 낚아채 손을 펼치자.

검은 동전이 보였다.

순간 뇌리에 새겨질 듯 생생한 목소리로 너무나 뜬금없는 이야기 들려왔다.

"이 귀한 물건을 흘리고 다니면 안 되지. 흑전이 있어야 경계를 넘어가서 도박할 수 있거든. 아, 그 화로 꼭 가지고 가라."

"스승님?!"

번쩍 고개를 드는 순간.

흐어어억-!

천문석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이마에서 떨어지는 검은 동전!

반사적으로 검은 동전을 낚아채는 순간 익숙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친구. 괜찮음?]

"어, 지금 여기?!"

천문석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깊은 숲속 공터, 금줄 너머에서 들려오던 노랫소리.

수월 관음상처럼 힙하게 앉아 있던 스승님.

모든 게 찰나에 사라지고,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눈앞에 길게 뻗은 산속 길이 나타났다.

꿈과 현실의 이동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지금도 꿈꾸는 것만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전신을 살피는 순간 문득 깨달았다.

한 달 동안 자고 일어난 듯 몸과 머리가 개운했다!

며칠 동안 잠도 안 자고 지하 유적, 세기말 대한민국, 공방 도시 추격전을 펼치며 쌓인 육체, 정신적 피로가 모두 사라졌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진짜 한 달 동안 기절했다가 깨어난 거 아냐?!'

이때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주위가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끼익, 끼익, 끼익-

삐걱거리는 건 말이 끄는 수레였다!

자신은 수레에 타고 있었고, 익숙한 모습의 사람이 마부석에 앉아 있었다.

오색으로 반짝이며 흔들리는 형체!

"암살검 한경석?!"

[맞음. 나임.]

[친구. 괜찮음?]

한경석은 자신이 맞다는 듯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신음이 들려왔다.

"으아- 재수. 더럽게 재수가 없어…."

-최설!

"으윽- 제발. 제발! 반성문 깜지는 이제 그만……."

-강화 전투복을 입은 처음 보는 남자!

수레 짐칸에 자신과 최설, 처음 보는 남자가 나란히 뉘어져 있고, 미처 챙기지 못한 배낭까지 실려 있었다.

이때 머리를 스치는 마지막 순간의 기억.

암전되는 시야 속으로 암살검이 달려오는 게 기억났다!

예상대로 한경석이 자신과 동료를 구했다.

게다가 어떻게 했는지 운송선에 놓아둔 짐까지 챙겼다.

하지만 다른 동료들이 보이지 않았다.

레이 실트.

마력 각성자.

초대형 뱁새.

천문석은 재빨리 하늘을 확인하고 말을 쏟아냈다.

"지금 여기가 어딘가요?"

"아니, 그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습니까?!"

"이 배낭은 운송선에서 챙겨오신 건가요?!"

"같이 기절한 다른 사람들은?! 초대형 뱁새는 어디에? 그리고 이 남자는 누구죠?!"

암살검은 주위를 휙휙- 돌아보더니 손을 머리로 가져갔다.

찌이익-

은신 망토의 지퍼가 열리는 순간 암살검 한경석의 어쩐지 신나 보이는 얼굴이 드러났다.

"친구! 드디어 정신을 차렸구나!"

크게 외친 한경석은 폭풍같이 말을 쏟아냈다.

"여기 부산 던전 5층이야! 터널 지나서 물류 도시 가는 중!"

"기절한지 5일 지났어! 저 사람은 내 의뢰인!"

"배낭은 운송선 아저씨한테 받아왔어!"

"그런데 쏟아진 붉은 가루 장난 아냐!"

"붉은 가루 맞은 친구 아무리 기다려도 안 일어나서, 중간에 도시에서 확인했는데!"

"피곤해서 그냥 아주 깊게 잠든 거래! 그래서 물류 도시로 가고 있었어! 탑 타려고!"

"앗! 이거 봐봐! 그 붉은 가루 내가 챙겨왔어! 친구 몫도 내가 챙겼어!"

"이거 장난 아냐! 한 방 맞으면 중형, 어쩌면 대형 몬스터까지 훅 갈지도 몰라!"

"이 붉은 가루는 혁명이야! 친구가 나한테 맡긴 선인장처럼! 헌터 업계의 혁명이 될 거야!"

한경석은 붉은 가루가 가득 담긴 밀봉된 유리병 십여 개를 자랑스레 내밀었다.

기억 속 모습 그대로 한경석은 이야기하다가 다른 곳으로 빠져 붉은 가루 칭찬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폭풍처럼 쏟아진 한경석의 말을 듣는 순간 지금 상황이 파악됐다.

절벽 정상에서 기절한지 5일이 지났다.

한경석은 자신과 최설, 의뢰인을 구해서.

지금 타고 있는 수레에 태워 던전 5-7층을 연결하는 터널을 통해 던전 5층까지 왔다.

목적지는 5층의 물류 도시!

물류 도시에 있는 탑을 이용하면 부산 던전 1층까지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한경석 혼자서 셋을 돌보며, 5일 만에 5층까지 왔다는 건 최소한으로 쉬면서 강행군을 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더해 한경석은 운송선에 놓아둔 짐까지 챙겼다.

한경석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이곳에는 자신과 최설, 한경석과 강화 전투복을 입은 남자만 있었다.

레이 실트.

마력 각성자.

초대형 뱁새.

셋은 하늘과 땅, 그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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