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10화>
콰아앙-
갑판을 밟고 뛰는 순간.
휘리리리리-
팔에 감은 로프가 빠르게 풀려 나갔다.
콰아앙-
천문석은 단숨에 십여 미터를 뛰어넘어 경호원들이 모인 고속선 갑판으로 넘어갔다.
“어!?”
“지금!?”
경호원들이 움찔한 순간.
천문석은 이미 달리고 있었다.
목표는 고속선 후미 마력 엔진!
탓, 탓, 탓-
세 번 뛰어 도착하는 순간!
후우우웅-
주저 없이 떨어지는 강철봉!
“으아악!”
“어어엇!”
경호원들이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으나 이미 늦었다!
콰아앙-
마력 엔진은 일격에 박살 나 떨어져 나갔다!
“그럼 고생해라!”
천문석은 바로 고속선 갑판을 박차고 달려 뛰었다!
“잡아!”
“저놈 잡아!”
다급한 외침이 터질 때 이미 관성으로 나아가는 고속선에서 뛰어내린 천문석.
몸이 허공에 뜬 순간.
천문석은 팔에 감긴 로프를 낚아채며 내력을 실었다.
파아앙-
운송선에 묶인 로프가 크게 한번 출렁이고.
촤르르륵-
빠르게 회전하며 저절로 팔에 감겨들었다!
천문석은 감겨드는 로프를 낚아채며 원을 그리며 날았다!
탁-
그리고 두 번째 고속선에 내려섰다!
“바로 덮쳐라!”
“움직일 공간 없애라!”
“엔진! 엔진부터 지켜야 한다!”
이미 다른 고속선이 당한 걸 본 경호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었다.
천문석은 내력이 실린 발로 갑판을 내리찍었다!
쿠웅, 쿠우웅-
고속선이 당장이라도 뒤집힐 듯 크게 요동치고 달려드는 경호원들은 균형을 잡으러 휘청였다.
긴 시간은 아니었다.
불과 2, 3초!
그러나 이 2, 3초면 충분했다!
휘청이는 다리를 후리고.
목깃, 소매 깃을 낚아채서 집어던지는 데는!
천문석은 고속선 후미로 걸으며 손발을 뿌렸다.
탁, 탁, 탁-
가볍게 후리는 다리에 무게 중심이 쏠리는 순간.
휙, 휙, 휙-
깃과 소매, 단추, 벨트를 낚아채며 집어던졌다!
별다른 위력이 없는 던지기였다.
그러나 이곳은 강 위를 달리는 고속선이었고, 경호원들이 날아가는 곳은 급류가 흐르는 강이다!
첨벙-
경호원들은 강으로 떨어진 순간 전투력을 상실했다.
첨벙, 첨벙, 첨벙-
8명의 경호원을 모두 던져 버리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잠시! 잠시만! 레이 실트만 넘겨주면 3배를 지급…….”
마지막 남은 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다시 한 번 엔진에 강철봉을 내려쳤다.
콰아아앙-
엔진은 단숨에 아작이 나서 강으로 떨어져 나갔다.
“강에 빠진 애들은 네가 알아서 구해라! 카캬카-.”
천문석은 강을 가리키며 외치고, 갑판을 박차고 다시 뛰었다.
파아아앙-
로프를 낚아채 원을 그리며 다른 고속선으로 이동!
그리고 비슷한 양상의 전투가 반복됐다.
배 위라는 좁고 불안정한 공간에서 벌어진 전투였다.
강화 전투복으로 충격을 막아 내도, 체술에 당해 배 밖으로 던져지는 순간 무력화됐다.
천문석에게 당한 경호원들은 바로 전술을 바꿨다.
힘과 무게에서 자신 있는 경호원들은 어떻게든 붙잡고 늘어지고.
레슬링, 유도, 유술. 그라운드 기술에 자신 있는 경호원들이 온갖 기술을 걸어왔다.
진흙탕 개싸움을 만들어 체력을 깎고 발목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경호원들이 상대하는 사람은 천문석이었다.
무공을 배우기 전에도 진흙탕 개싸움에서는 무쌍이던 천문석!
그런 천문석이 무게가 변하는 레이 실트의 강철봉을 들고, 내력까지 사용해 더럽고 치사하게 싸웠다.
발을 밟고 훅을 갈기고.
겨드랑이를 찌르고 후리기를 넣었다.
머리카락을 낚아채 업어치기로 던지고.
전법륜인 딱밤을 갈리고 툭- 밀어 버렸다.
경호원 중 누구도 천문석을 상대로 10초 이상 버티지 못했다!
천문석은 팔에 감은 로프를 이용, 고속선을 뛰어넘으며 경호원들을 처리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을 질주하는 12번째 고속선을 처리한 순간.
천문석은 공중으로 몸을 띄우며 로프를 낚아챘다!
촤르르르륵-
내력이 실린 밧줄이 저절로 팔에 감겨들고, 순식간에 공중을 날아 운송선으로 돌아왔다!
순간 멍하니 자신을 보는 최설과 눈이 마주쳤다.
“……!”
얼굴만 봐도 최설의 내심이 짐작 갔다.
‘뭐야!? 쟤 왜 이렇게 강해졌어!?’라는 듯한 표정!
그렇다!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개같이 구르며 자신은 강해졌다!
막상 스스로는 한번 밟았던 길을 다시 밟는 것이기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다른 헌터들, 특히 무공 각성자가 보기에는 경악할 일일 거다.
불과 일주일 만에, 다시 한 번 각성한 듯 강해졌으니!
최설의 놀란 눈빛을 받는 순간.
가슴속 메마른 무언가가 충족되는 게 느껴졌다.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구를 때는 동료 모두 마력 사용자라 별다른 리액션이 없었다.
간만에 무공 각성자, 최설을 만나니 확실한 리액션이 돌아왔다!
“야, 뭘 그런 눈으로 보냐? 하하하-.”
천문석이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멍한 최설의 얼굴에 표정이 생겨났다.
경악!
그리고 다급히 외쳤다.
“야, 뒤에 뒤! 강 봐!”
“강?”
고개를 돌리자 보였다.
각개격파한 고속선 뒤로 배가 몰려 오고 있었다.
강이 까맣게 덮일 정도로 많은 배가!
그리고 이 배 위에 기세등등한 수많은 헌터들이 있었다!
부아아아아앙-
이때 고속선 엔진음이 울려 퍼졌다!
옆에서!
그리고 앞에서!
빙글빙글 크게 원을 그리는 고속선 뒤로 배들이 나타났다.
어느새 운송선 주위에 성긴 포위망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포위망을 갇혔다는 사실보다 더 큰 충격을 주는 사실이 있었다!
“……배 구하기 더럽게 힘들었는데!? 쟤들 배를 어디서 구한 거야!?”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선착장이 보이고, 이 많은 배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 수 있었다.
선착장은 텅 비어 있었다!
자신이 구할 때는 한 척도 움직일 수 없던 배가 모조리 강으로 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어이없는 상황!
천문석은 내력을 실어 외쳤다!
[아니, 선장님들! 하역 작업 때문에 출항 못한다면서요!]
내력이 실린 쩌렁쩌렁한 외침이 강 위로 퍼져 나가자, 바로 확성기로 대답이 돌아왔다.
[이세기! 질문을 잘못했더군!]
“내가 질문을 잘못했다고?”
이 순간 자신이 선착장을 달릴 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세 명 자리 구합니다. 따따블 냅니다!’
‘8배! 8배 내요! 바로 출발합니다!’
……
“……설마!?”
깨달음이 벼락 치듯 머리를 강타하고 불쑥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제대로 된 답을 얻으려면 제대로 된 질문을 해야 한다.
-무언가를 돈으로 살 수 없다면, 돈이 모자란 건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이걸 놓쳤다니!’
이때 생각 그대로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세기. 이렇게 질문했어야지.]
[얼마면 당장 출항할 수 있습니까?]
“얼마면 지금 출항할 수 있습니까?”
* * *
확성기에서 나오는 말과 같은 말을 내뱉는 순간 밀려 오는 아찔한 현기증!
천문석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담아 터트렸다!
[더러운 자본 주의! 으아악-!]
순간 수백 척의 운송선에 가득한 헌터들이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하하하하-
미친 잔머리의 소유자 이세기!
이세기는 절대 정면 승부하지 않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 온갖 치사한 방법으로 싸웠다!
운송선에 탄 헌터들 대부분이 이런 이세기에게 한 번씩은 당했다!
그런데 한 방 먹였다!
미친 잔머리, 더럽게 치사한 이세기 새끼에게 마침내 한 방 먹인 것이다!
하하하하하하하-
수백 명의 헌터들이 터트리는 통쾌한 웃음이 드넓은 강 위에 울려 퍼졌다!
아직 거리는 멀었고,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끝없이 이세기에게 당하던 헌터들은 단 한 번이지만 의표를 찌른 순간 이미 승리한 듯 살벌하게 외쳤다.
“야 이 새끼야! 딱 기다려라!”
“씹새야! 네가 밟아서! 내 안전 군화 찌그러진 거 보이냐!?”
“미친 겨드랑이 찌르기! 시바! 아직도 팔이 안 움직인다!”
“눈뽕! 시바! 그놈의 눈뽕! 내가 반드시 LED 조명을 눈에다가 쏴주마!”
……
수백 척의 운송선에 탄 수백의 헌터들!
외침이 이어질 수록 이들의 기세가 무섭게 살아났다!
충천하는 사기가 대기를 흔들고, 거대한 위압감으로 변해 쏟아졌다!
이 위압감 사이사이, 칼날 같은 기세가 날아왔다.
지금까지 싸운 보통의 헌터가 아닌 진정한 강자의 기세가!
이 순간 천문석은 직감했다.
숨어 있던 진짜 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형 길드 팀장급 강자!
어쩌면 랭커가 끼어 있을지도 몰랐다!
공방 도시에서 벗어나 강으로 들어온 순간.
그동안 나타나지 않던 강자들이 기세를 드러냈다!
이런 강자들이 숨어 있을 거란 건 이미 짐작했다.
초거대기업. W. S. 인더스트리의 이사가 자신이 상대한 고만고만한 경호원들만 데리고 왔을 리 없었으니까!
랭커급 강자들이 은밀히 호위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어째서 지금!?’
천문석은 뇌리를 스치는 직감에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봤다.
끝없이 펼쳐진 산맥에 둘러싸인 분지.
분지에 자리한 거대한 공방 도시.
공방 도시를 흐르는 거친 강.
그리고 이 강에 생겨난 성긴 포위망!
이 순간 천문석은 적의 의도를 깨달았다.
W. S. 인더스트리 이사들은 자신과 동료들이 스스로 사방이 막힌 강으로 도망치도록 몰았던 거다!
숨을 곳이 없는 탁 트인 강 위에서, 수백 척의 운송선과 고속선으로 포위하려고!
즉, 자신들은 스스로 함정에 기어 들어온 것이다!
최설과 레이 실트도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
“야, 너 뭘 한 거야!? ‘이세기’? 너 설마! 이번에도 신동대문처럼 한 거야!?”
최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외치고.
레이 실트가 목소리를 낮춰 은밀히 제안했다.
“광역으로 뇌전 마법 뿌릴 수 있어! 지금 마력이면 한두 번 정도! 아직 포위망은 완성이 안 됐어! 결정적 순간에 날리고 도망치면…….”
천문석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평소라면 그렇게 했을 거다.
그러나 수백의 헌터와 강자들이 쏟아 낸 기세가 가슴에 불을 붙였다!
강(强)에는 강(强)으로!
정면으로 맞부딪혀 깨뜨린다!
“제가 헤집는 사이에 튀세요. 가능하면 중간에 뱁새도 꼭 건져 가시고요.”
“뭐!? 너 뭐 하려고!?”
“야, 무슨 소리야! 뭘 헤집어!”
레이와 최설이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내력을 끌어올렸다.
빙글빙글 크게 원을 그리는 고속선이 목표다.
저 고속선을 타고 넘어가 한바탕 격전을 펼친다!
마음의 결정을 하고 뛰려는 순간.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졌다!
히리히리히리히리-
너무나 귀에 익은 피리 소리를 닮은 울음소리가!
* * *
“저거!”
“설마!?”
깜짝 놀란 천문석과 레이 실트는 동시에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류 방향!
삼각형의 부리.
동글동글 새하얀 몸.
짧은 날개를 열심히 휘저으며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새가 보였다!
“초대형 뱁새!”
“초대형 뱁새!”
최루 가루를 뒤집어쓰고 기절한 채로 급류에 둥둥 떠내려가던 초대형 뱁새가 정신을 차렸다!
초대형 뱁새는 순식간에 날아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히리히리히리히리-
까마득히 높은 하늘!
초대형 뱁새는 피리 소리를 닮은 울음소리를 내며 커다란 원을 그렸다.
마치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천문석은 감이 왔다.
가면을 쓴 마력 각성자, 파트너를 찾는구나!
“야! 여기야! 여기 네 파트너 있다!”
천문석은 하늘을 향해 외쳤다!
이때 초대형 뱁새의 시선이 천문석 일행이 탄 운송선으로 향했다.
천문석은 초대형 뱁새와 눈이 마주쳤다!
“……!?”
초대형 뱁새의 까만 눈이 뭔가 달라졌다!
뭔가 알 수 없는 껄끄러움이 느껴졌다.
“뭐지!? 뭐가 달라진 거지!?”
천문석이 머리를 굴리는 순간.
초대형 뱁새는 짧은 날개를 활짝 펼치더니 활강하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잉-
거센 바람이 쏟아지고, 천문석 일행이 탄 배를 향해 초대형 뱁새가 활강했다!
부아아앙-
고속선과 운송선이 다급히 몰려들지만, 이미 늦었다!
바로 하늘을 날아 도망칠 수 있다!
천문석은 생각을 멈추고 바로 팔에 감은 로프를 풀었다!
일행은 모두 4명!
초대형 뱁새의 힘을 생각하면 4명의 무게가 실려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다!
운송선을 버리는 게 문제지만, 마도구 제작자, 캐부자 레이 실트가 동료다!
운송선 선장님한테는 충분히 보상해 줄 수 있다.
“모두 모이세요! 서로 연결하고 활강하는 초대형 뱁새한테 로프 던지겠습니다! 바로 하늘로 빠져나가면 됩니다!”
다급히 달려오는 동료들.
천문석은 재빨리 최설, 레이 실트, 마력 각성자의 허리와 다리에 로프로 하네스를 만들어 연결했다!
네 사람이 로프로 연결됐을 때 거센 바람이 갑판 위로 불어왔다.
후우우우웅-
초대형 뱁새가 수면에 닿을 듯 낮게 날아오고 있었다!
천문석의 의도를 눈치챈 것처럼!
“준비하세요!”
외침과 동시에 천문석은 고리를 만든 로프를 하늘에서 돌렸다!
휭휭, 휭휭휭-
고리를 던질 타이밍을 잡는 순간.
천문석은 초대형 뱁새와 다시 한 번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불현듯 깨달았다.
초대형 뱁새의 까만 눈이 뭐가 달라졌는지를!
처음 봤을 때 착해 보이던 까만 눈은 더는 착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났다.
활강하던 초대형 뱁새는 운송선에 닿기 직전.
파아아아앙-
강물을 걷어차듯 때리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촤아아아아-
수직으로 높게 솟은 파도가 운송선 갑판으로 쏟아졌다.
이 파도는 마치 노리기라도 한 것처럼 한 사람에게만 쏟아졌다.
보석 가면을 쓴 마력 각성자.
기절한 시간 오류 수정자 에코는 파트너의 분노가 담긴 물벼락을 맞았다.
쏴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