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09화>
“아…… 그래서 얼굴이…….”
천문석은 까맣게 탄 최설을 보며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번쩍 정신을 차렸다!
“앗!?”
재빨리 잡낭을 열어 히든 포켓을 확인했다.
지갑 안 몇 장의 지폐 사이에 있었다.
이번 임무에서 경비로 사용한 김철수 사무실 공용 카드와 수표책이…….
“……아!”
며칠 전 기억이 떠올랐다.
북한산으로 서리 늑대를 찾으러 갈 때, 김철수 발명가와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화폐를 추렸다.
그때 이 헌터용 카드와 수표책을 봤다.
하지만 세기말 대한민국에서는 사용할 수 없어서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천문석은 고개를 들어 낯익은 운송선을 몰고 선착장으로 가까워지는 최설을 봤다.
눈처럼 피부가 하얗던 최설.
하지만 이제는 강에 반사되는 강렬한 햇살에 얼굴뿐 아니라 몸 전체가 까맣게 탔다!
“아니, 왜 해도 빡센 운송선 일을 한 거야…….”
“앗!”
말하는 순간 다시 한 번 며칠 전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 공방 도시에 올 때 탔던 운송선 선장님!
일 잘해 줘서 고맙다고 언제든 찾아오면 배를 소개해 준다고 했다.
다시 보니 최설이 탄 낯익은 운송선은 처음 공방 도시에 올 때 탔던 그 운송선이었다!
최설은 공방 도시에 타고 온 운송선에서 일주일 동안 일하며 자신을 기다린 거다!
“와, 이게 또 이렇게 되네!”
최설이 일주일 동안 운송선에서 일한 덕분에, 사면초가 상황을 벗어나 도망칠 수 있게 됐다!
이것이야말로 새옹지마!
고난이 복이 된 것이다!
순간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야! 이거 새옹지마다! 하하하- 긍정적으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분노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뭐!? 긍정적!?]
[와, 이 사기꾼 녀석!]
[너 또 뭐라고 입을 털려고!]
……
부산 던전 7층까지 내려 오면서 수없이 설득당한 최설.
그러나 일주일 동안 운송선에서 빡세게 일해 검게 변한 최설에게는 설득이 안 먹혔다.
검은 최설은 분노한 외침을 빠르게 쏟아 냈다!
[야, 너 내가 일주일 동안 어떻게 굴렀는지 알아!]
[하루에 강 하류 개척 도시까지 7번 운항을…….]
……
부아아앙-
이때 바이크 엔진음이 빠르게 가까워졌다!
‘이럴 때가 아니다!’
정신을 차린 천문석은 마법의 단어를 외쳤다.
“최 대리! 급해!”
[…… ]
‘대리’라고 불린 순간 쉴 새 없이 쏟아지던 성난 외침이 뚝 멈췄다.
그리고 최설의 표정이 빠르게 변화했다.
환희, 고통, 기대, 실망, 기쁨, 좌절…….
그리고 자괴감!
자괴감을 마지막으로 복잡하게 변해 가던 표정이 사라지고 결연한 외침이 들려왔다.
[부사장님! 바로 접안 하겠습니다!]
이미 바이크가 선착장으로 돌진하고 있다.
운송선을 멈추고 접안하고 출발하면 꼬리를 잡힌다!
“접안 할 필요 없어! 저곳! 선착장을 스치듯 지나가! 바로 뛰어오를게!”
천문석은 선착장 한쪽 빈 공간을 가리켰다.
[알았어!]
최설이 운전하는 운송선이 부드럽게 회전해 빈 선착장으로 속도를 높일 때, 천문석은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레이 실트에게 외쳤다.
“들으셨죠!? 저 배 타야 합니다! 혹시 모르니 먼저 올라가세요!”
“알았어!”
기잉, 기이잉-
자전거가 앞으로 치고 나가는 순간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저기다! 저놈들이다!”
“이세기가 선착장에 있다!”
“이세가 놈이 배 타고 도망치려고 한다!”
‘걸렸구나!’
직감하는 순간.
부아아아앙-
직선으로 질주하는 바이크들이 보였다!
목표는 자신과 레이 실트!
이때 선착장 위로 파도가 쏟아졌다.
촤아아아아-
최설이 운전하는 운송선이 선수를 크게 돌려 선측으로 선착장으로 접근했다!
“야! 바로 올라와!”
운송선 갑판으로 달려온 최설이 널빤지 다리를 선착장으로 내리며 외쳤다!
그르르르르륵-
널빤지 다리가 선착장 바닥을 긁는 순간!
위이이잉-
자전거를 탄 채로 단숨에 널빤지 다리를 오르는 레이 실트!
쾅-
그러나 빠르게 움직이는 널빤지 다리에 바퀴가 닿는 순간 자전거가 튕겨 나가고 레이 실트가 공중으로 날았다!
“으아악!”
이때 최설이 움직였다.
밧줄을 잡고 손을 뻗어 날아가는 레이 실트를 낚아채는 최설!
으아악-
최설과 레이 실트가 뒤엉켜 갑판에 떨어질 때.
천문석은 단숨에 널빤지 다리를 올라 갑판에 올라섰다!
“받아라!”
즉시 업고 있던 마력 각성자를 최설에게 던지고 몸을 돌렸다.
부아아아앙-
바이크 몇 대가 선착장을 달려 운송선 바로 앞까지 왔다!
2, 3초면 운송선으로 넘어오고, 동료들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끌 수 있었다!
그러나 이 2, 3초가 결과를 갈랐다.
“전방 섬광!”
동료들에게 경고하는 동시에, 번쩍 손을 들어 굉천수를 터트렸다.
콰아아앙-
굉천수의 섬광 속에서 잇달아 들려오는 물에 빠지는 소리와 비명!
첨벙, 첨벙, 첨벙-
으악, 끄어억-
섬광이 사라지고 시야가 살아나자 선착장이 훤히 보였다.
끼이이이익, 첨벙, 첨벙-
다급히 브레이크를 잡다가 강으로 곤두박질치는 바이크들이!
“으아악- 이세기!”
피 끓는 함성을 터트리며 돌진하는 수백의 헌터이!
“…….”
그 뒤 경호원에 둘러싸인 채 뭐라고 외치는 이사들이!
바이크, 헌터, 경호원, 이사들이 선착장으로 쏟아졌다!
이 선착장이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천문석은 환한 얼굴로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이제 안녕이다! 만나서 더러웠고!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카캬카카카카-.”
“이 새끼!”
“이세기 이 새끼!”
……
절절한 외침이 하늘을 쩌렁쩌렁 울릴 때.
최설이 재빨리 운송선 운전대를 잡고 돌렸다!
촤아아아-
운송선은 파도를 일으키며 급회전해 강 중앙으로 나아갔다.
최설은 운전대를 잡은 채 잇달아 외쳤다.
“야, 너 일주일 동안 뭐한 거야!?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
“그리고 저 헌터들 레이 실트 찾는 현상 헌터잖아!? 쟤들이 왜 너를 쫓아와!?”
“앗! 레이 실트! 야, ‘레이 실트’ 전단지 사기 아니었잖아!”
“너 사라지고 ‘레이 실트’ 찾는 사람들이 도시에 쫙 깔려서 분위기 장난 아니었어!”
“너 도대체 어디서 뭐 하고 있던 거야!? 같이 온 사람들은 누구고!?”
최설의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질문을 듣자 몇 가지 의문이 풀렸다!
우선 시차.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3일을 보냈는데, 2020년 공방 도시에서는 일주일이 지났다.
4일의 시차가 났다!
‘혹시 나비 효과 때문인가?’
천문석은 대답하지 않고 나비 효과 확인부터 했다.
“최설. 우리가 공방 도시에 온 이유가 뭐지?”
“뭐? 갑자기 그게 뭔 소리야!?”
어이없어하는 얼굴로 반문하는 최설.
“야, 이거 진짜 중요한 거야! 이유는 묻지 말고 대답해 줘!”
최설은 바로 대답했다.
“배송 의뢰 때문에 왔잖아!”
“의뢰인은?”
“하얀 번개 추이린!”
“김철수 사무실 직원 이름은?”
“김철수 사장! 천문석 부사장! 엠마, 게릭, 클릭스, 폴리머! 나!”
“우리 사무실 위치는?”
“광화문 재금 빌딩! 13층 오리온 길드 비품 창고!”
“한국 초능력 각성자 랭킹 1위는?”
“뽀미! 국민대 뽀미잖아! 너 지금 뭐 하냐!?”
“휴-.”
천문석은 안도했다.
사회적 관계에는 큰 변화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자신이 일으킨 정말 큰 변화는 따로 있었다.
장철 헌터 가족!
그러나 이건 최설에게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부산 던전에서 나가 특급 헌터를 만나야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공방 도시에서 탈출하는 게 우선이다!
그러나 그 전에 감사를 표해야 했다.
천문석은 최설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잘했다! 최설! 아주 잘했어! 네 덕분에 빠져나왔다! 자세한 건 여기서 탈출하고 말해 줄게. 너 빠져나가는 물길 아냐!?”
최설은 하류를 가리켰다.
“일주일 동안, 이 강 하류 개척 도시 계속 왕복했어. 그 개척 도시에 ‘5층-7층’ 연결하는 터널로 가는 길 있어.”
“아, 그 터널!”
부산 던전 5층과 7층을 연결하는 터널!
처음 7층 공방 도시로 올 때, 루트 중 하나로 고려한 터널이다!
반색한 천문석은 재빨리 지도를 꺼내 확인했다.
공방 도시 중앙을 흐르는 강 하류, 개척 도시.
최설의 말대로 이 개척 도시에서 5층으로 이어지는 터널로 가는 길이 있었다.
산맥을 넘어가는 험한 길이이지만, 거리는 멀지 않다!
천문석의 지도 위 천문석의 손이 움직였다.
-개척 도시에서 보급.
-산맥을 넘어 ‘5층-7층’ 터널로 진입.
-5층에 도착하면 물류 도시로 이동.
-물류 도시에서 바로 지상으로 올라가면 된다!
천문석은 바로 탈출 경로를 짜고 최설에게 말했다.
“그 개척 도시로 가면 되겠다!”
“알았어! 바로 내려갈게! 1, 2시간 정도 걸릴 거야!”
이때 잊고 있던 게 문득 생각났다.
“앗! 강 내려가면서 찾을 동료 있다!”
“동료? 무슨 동료를 강에서 찾아?”
천문석은 운송선 주위를 흐르는 강을 가리켰다.
“강에 초대형 뱁새가 떨어졌어! 급류에 떠내려간 뱁새 건져야 해!”
“……뱁새?”
최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뱁새면 이 손에 들어오는 그 새? 버드? 뱁새라고? 야, 작은 뱁새가 강에 떨어진 거를 어떻게 찾아!?”
“그냥 뱁새가 아니라 초대형 뱁새! 5미터가 훌쩍 넘는 새하얗고 동글동글한 뱁새! 걔 아마도 러버덕처럼 물에 둥둥- 떠내려가고 있을 거야! 보는 순간 바로 알아볼 수 있어!”
자세히 설명하는 순간.
최설은 말없이 천문석을 봤다.
“…….”
‘이 녀석 예전에도 이상했는데, 일주일 만에 다시 보니 완전 이상해졌잖아!?’라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최설.
천문석은 최설의 표정을 읽고 말했다.
“야! 나 지금 지극히 정상이야! 하여튼 급류 따라가면서! 커다란 새하얀 뱁새 보이면 말해 줘! 난 쟤들 좀 챙길게!”
천문석이 갑판을 가리킬 때.
날카로운 엔진음이 울려 퍼졌다.
부아아아아아아-
고속선!
흠칫 놀라 고개를 드니, 장기 대여가 끝났다는 고속선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순간 이 고속선에 누가 타고 있을지 감이 왔다.
W. S. 인더스트리의 경호원들!
* * *
뒤를 쫓는 고속선을 본 최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운송선으로는 저 배 못 따돌려! 따라잡힌다!”
“고속선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초대형 뱁새만 확인해 줘! 걔 어떻게든 건져야 한다!”
천문석은 바로 운송선 갑판을 달리며 선착장을 훑었다.
선착장에 계류된 고속선들이 하나둘 튀어나오고 있다!
그러나 선두에서 달리는 고속선은 3척!
부아아아앙-
3척의 고속선이 거리를 두고 운송선을 쫓았다!
서로 간에 간격이 크게 떨어졌고, 배마다 탄 경호원의 수는 대략 7명 남짓!
3척, 7명, 총 21명!
천문석은 팔에 로프를 감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하! 무모한 녀석들!”
발밑이 불안정하고 공간이 한정된 배 위의 싸움이다.
선두의 고속선은 3척이고, 고속선 한 척에 탄 적의 수는 7명 남짓!
게다가 뒤이은 고속선들은 흩어져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각개격파해 달라는 듯이!
하-
다시 한 번 웃음이 터지는 순간 머릿속에서 견적이 섰다!
선착장에서 배를 구할 때 장기 임대 중이라던 고속선의 수는 대략 20여 척.
맞은편 선착장에도 비슷한 고속선이 있다고 생각하면 모두 40척이다!
40척의 고속선에 7명씩 탔다면 280명의 경호원이 몰려 오는 거다!
그냥 일반 기업의 경호원이 아닌 나이트 아머를 생산하는, 초거대기업 W.S. 인더스트리의 이사를 지키는 경호원이!
꼬맹이와 싸울 때처럼 갑자기 나이트 아머라도 나타나면 끝장이다!
하지만 이곳은 나이트 아머가 힘을 쓸 수 없는 강 위다!
게다가 고속선은 넓게 흩어져 한 척씩 다가오는 상황이다!
충분히 꼬리를 끊어 낼 수 있다!
천문석은 바로 최설을 향해 외쳤다.
“저 고속선들 나 혼자 상대할 수 있어! 넌 운전에만 신경 쓰면 된다!”
“알았어!”
최설이 손을 흔드는 순간.
레이 실트가 달려왔다.
“진짜 혼자 되겠어!? 한두 번 전격 마법 쓸 마력은 있는데!?”
“아닙니다! 레이님은 초대형 뱁새 확인하고 저분 좀 돌봐주세요!”
천문석은 고개를 젓고 갑판에 널브러진 마력 각성자를 가리켰다.
“알았어!”
레이 실트는 천문석이 싸우는 걸 몇 번이나 봤다.
길게 이야기하지 않고 바로 몸을 돌려 에코를 살피며 강으로 떠내려간 초대형 뱁새를 찾았다.
부아아아앙-
이때 거친 엔진음과 함께 고속선 한 척이 튀어나왔다!
촤아아아아-
새하얀 물보라가 일으키며 수면 위로 날듯이 접근하는 고속선!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지고, 고속선에 탄 일곱 명의 경호원 사이 팀장으로 보이는 여자가 외쳤다.
“너! 거기 레이 실트만 넘기면 거액의…….”
이 순간 천문석은 운송선 갑판을 달려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