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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508화 (509/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08화>

“…….”

천문석은 순간적으로 머리가 멍해졌다.

처음에는 싸웠지만, 나중에는 같이 고생한 동료, 초대형 뱁새.

초대형 뱁새가 급류에 실려 떠내려가고 있었다.

5미터가 훌쩍 넘는 거대한 몸으로 위풍당당하게 엄청난 속도로 떠내려갔다!

“…….”

“…….”

뭐라 말할 수 없는 거지 같은 상황.

천문석과 레이 실트는 한참 동안 떠내려가는 초대형 뱁새를 봤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두 사람의 표정과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비슷했다.

황당.

문득 두 사람의 시선이 같은 곳으로 움직였다.

천문석의 등에 업힌 기절한 보석 가면을 쓴 마력 각성자.

에코.

“하아- 뭐가 이러냐?”

“하아- 그러게요. 아니 하필이면…….”

동시에 한숨을 내쉰 순간.

천문석은 빠르게 가까워지는 부두를 가리켰다.

“그래도 긍정적인 면은 있습니다.”

“뭐?”

“부두 보세요.”

나이트 아머와 초대형 뱁새가 잇달아 쓸고 지나간 부두에 있는 사람 거의 전부가 강가에 모여 있었다.

고함을 치고 손가락질하며 다급히 움직이는 사람들!

-데굴데굴 굴러 와 물속으로 처박힌 나이트 아머!

-급류에 실려 둥둥 빠르게 떠내려가는 초대형 뱁새!

경비원, 부두 관리인, 기타 등등. 대부분 사람이 이 둘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보이시죠? 선착장까지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경비원도 모조리 달려갔습니다! 이 틈에 재빨리 선착장에서 배 구하면 됩니다!”

진짜 긍정적이라고 생각하는지 환한 얼굴로 말하는 천문석.

레이 실트는 힘없이 대답했다.

“그러네. 긍정적이게 바로 배 타고 도망갈 수 있겠다…….”

“그렇죠! 게다가 어차피 배 타고 도망치는 방향이 초대형 뱁새 떠내려가는 방향이랑 같으니까! 중간에 뱁새 건지면 됩니다!”

계획을 설명한 천문석이 확신을 담아 외쳤다.

“그럼 바로 선착장으로 가죠!”

기잉, 기이이잉-

천문석은 페달을 밟아 급경사를 내려가는 자전거의 속도를 높였다.

“…….”

레이 실트는 말없이 천문석을 따라 이동하며 생각했다.

1999년 광화문 빌딩 옥상에 추이린과 둘만 있을 때였다.

같이 짜장면을 먹던 추이린은 말했다.

‘천문석 이 녀석 이상할 정도로 운이 없어!’

그냥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같이 구르니 어쩌면 추이린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페니안 차원 깡패에게서 도망쳐 간신히 차원 도약에 성공했다!

그런데 돌아온 공방 도시에서도 현상 수배가 걸려 수백 명의 헌터에게 쫓기고 있다.

공방 도시 지하 통제실에서 처음 천문석을 만난 이후로, 뭔가 운이 좋은 것 같으면서도 재수 없는 상황에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하- 뭐가 이렇게 꼬이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을 때 문득 나이트 아머 전성관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기억났다.

‘……더러운 흑전! 재수 없는 거 옮았어!’

뉘앙스로 봐서는 천문석과 흑전이 관계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운(運)과 관련된 흑전은 레이 실트도 하나 아는 게 있었다.

‘운명을 사는 화폐, 흑전.’

순간 레이 실트는 피식 웃었다.

마도왕의 위에 오른 자신도 구하지 못한 게 흑전이다.

타대륙도 아닌 지구의 사람이 흑전, 운명을 사는 화폐와 관련됐을 리 없다.

레이 실트는 앞서 바람을 가르며 나아가는 천문석을 보며 웃었다.

* * *

위이이이잉-

천문석과 레이 실트가 탄 자전거 두 대가 철책이 있던 경계를 지나 부두로 휙- 들어갔다!

평소라면 경비원들이 저지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부두 관리인과 경비원, 응급 구조대까지 대부분 사람이 나이트 아머가 빠진 강으로 모여 있었다.

배가 죽 늘어선 있는 선착장을 막아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천문석은 선착장을 가리키며 외쳤다.

“바로 배 구해서 튀죠! 저는 왼쪽에 정박한 배 확인하겠습니다! 레이님은 오른쪽 확인해 주세요!”

“알았어! 가능한 기중기 있는 배 위주로 구해 볼게!”

“아뇨. 아무거나 빠른 배로 구하세요! 뱁새는 그냥 밧줄로 묶어서 끌고 항해해도 됩니다!”

“알았어!”

바로 선착장 좌우로 흩어지는 천문석과 레이 실트.

그리고 천문석이 정박한 배를 향해 외치려 할 때.

부아아아아앙-

거친 엔진음이 들려왔다!

자신이 달려온 언덕 방향이다!

“벌써!?”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언덕 정상으로 튀어나오는 바이크들이 보였다!

부앙, 부아앙, 부아아앙-

거친 엔진음과 함께 언덕 정상에 멈춰 선 바이크들!

바이크를 탄 십여 명의 헌터들이 주위를 살필 때, 속속 언덕으로 모여드는 헌터와 경호원들이 보였다.

분명 100단위의 헌터들을 무력화시켰는데, 그 몇 배나 되는 헌터와 경호원이 모여들었다!

“아니, 무슨 헌터를 찍어 내는 거야!?”

천문석은 언덕으로 모여드는 헌터들을 살폈다.

초췌한 얼굴과 부자연스러운 몸놀림!

훑어보니 헌터용 외상 패치를 붙인 헌터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이런 헌터들이 이를 갈며 주위 건물을 뒤지기 시작했다.

거리가 멀어 목소리가 들리진 않았지만, 행동만 봐도 뭘 하고 있는지 감이 왔다.

‘레이 실트를 찾고 있구나!’

지금은 주위 건물을 뒤지는 삽질을 하지만, 저 언덕에서는 부두가 정면으로 내려다보인다.

선착장에 가득한 배를 보는 순간 누군가는 감을 잡고 부두로 달려올 거다!

부두에서 싸움이 시작되면 무슨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

저놈들이 오기 전에 어떻게든 배를 구해서 튀어야 한다!

“하, 시바! 뭐가 이렇게 꼬여!”

어이없었지만 선착장에 있는 배의 수가 거의 백 척에 달했다!

이 중 하나만 구하면 된다!

배만 물에 띄우면 꼬리를 끊고 빠져나갈 자신이 있었다!

천문석은 전력을 다해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외쳤다.

“배 구합니다! 승객 3인 따블! 아니, 따따블 냅니다!”

부아아아앙-

이 순간 거친 바이크 엔진음이 터지고 뒤이어 바이크 엔진음을 압도하는 거대한 외침이 터졌다.

우와아아아아-!

“부두다! 이세기 새끼가 부두에 있다!”

“어?”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생각처럼 레이 실트가 부두에 있다는 걸 금방 눈치챈 상황.

그러나 반응이 생각과는 좀 달랐다.

언덕 정상에 모인 수많은 헌터들이 합창하듯 하나의 이름을 외치며 움직이고 있었다.

“이세기 새끼!”

“…….”

현상 수배 걸린 레이 실트를 쫓던 헌터들은, 어느새 레이 실트가 아닌 다른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이세기.

자신의 오랜 친우 이세기의 이름이 부산 던전 7층, 공방 도시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천검.

무림 맹주.

정파의 희망.

천하 십절의 수좌.

더럽게 잘생긴 놈.

무림에선 수많은 이름으로 불린 이세기는 지금 이곳에서 단 한 가지 ‘별호’로 불리고 있었다.

이세기 ‘새끼’.

줄여서 ‘이 새끼’!

이 순간 천문석은 어이없었지만, 유쾌했다.

‘천검, 검절’ 같은 별호보다 이 얼마나 직관적이란 말인가!?

‘와, 이 새끼 게임 좆 같이 하네!’처럼.

뒤를 쫓는 모든 헌터의 머릿속에 각인됐다.

이세기 새끼!

이것이야말로 이세기, 오랜 친우에 대한 최고의 찬사!

천문석은 하늘을 향해 내력을 담은 웃음을 터트리며 도발했다!

[야! 빨리 뛰어와라! ‘이세기’배 타고 도망간다! 카캬카카-]

우와아아아아-

거대한 분노가 담긴 함성이 대답처럼 돌아올 때.

천문석은 자전거로 선착장을 달리며 신나게 외쳤다.

“승객 3명 자리 구합니다! 따따블 냅니다!”

그리고 사방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배는 승객 안 받는다.”

“방금 왔어. 내일모레쯤 출발한다.”

“지금 하역이 지연돼서, 언제 출발할지 모르겠는데?”

“이거 장기 임대한 배야. 개인 승객 못 태워.”

……

“어!?”

상황이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이거 설마!?”

순간 느껴지는 불길함!

기잉, 기이잉-

천문석은 다급히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목이 터져라 외쳤다.

“배 구합니다!”

“운임 4배 내요! 3명입니다!”

……

선착장을 훑으며 계속 외쳤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대동소이했다.

선착장에 정박한 배는 많았으나 대부분 하역 중인 운송선!

몇몇 승객용 고속선이 보였지만, 이미 장기 임대가 끝난 상태였다!

선착장 거의 끝까지 달릴 동안 외쳤으나, 처음 예상과 달리 배를 구하지 못했다!

“배 구하셨습니까!?”

반대쪽 선착장을 이동하는 레이 실트에게 묻는 순간 바로 고개를 젓는다!

“대부분 하역 작업 중이야! 승객용 고속선은 계약이 끝났고! 지금 바로 타고 빠져나갈 배는 없어!”

우와아아아아아아-

이때 자신이 도발한 헌터들의 성난 외침과 거친 바이크 엔진음이 들려왔다!

부앙, 부아아앙-

그리고 보였다.

마치 파도가 밀려 오듯 부두를 향해 달려오는 수백 명의 헌터!

어느새 헌터들은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2/3반 이상 달려왔고.

바이크들은 부두 철책이 있던 곳을 통과하고 있었다!

“…….”

도발할 때는 미처 예상치 못했다.

배를 구하는 게 이렇게 빡셀 줄은!

“남은 배들도 확인해 보죠!”

레이 실트에게 말하는 동시에 선착장 끝으로 달리며 외쳤다!

“선장님!”

“하역 중이야!”

“선장님 승객…….”

“오늘 밤에 출발이야.”

……

“선장님! 운임으로 8배!”

“지금 못 태워! 이 배 한 달 장기 계약 끊었어.”

이 고속선이 선착장에 있는 마지막 배였다.

수많은 배가 있는 선착장이었지만, 천문석과 동료를 태우고 바로 출발할 배는 없었다.

이때 레이 실트가 목소리로 낮추며 손을 슬쩍 흔들었다.

“야, 나한테 방법이 있어! 네가 주의 끌어 주면, 내가 이걸로 한 방에 해결할게.”

파지직-

순간 레이의 손에서 빛나는 전격!

“…….”

듣지 않아도 레이 실트의 방법이 뭔지 감이 왔다.

“그걸로 기절시키고 슬쩍 하자고요?”

“허락을 받는 것보다. 저지르고 용서받는 게 더 빠르잖아!?”

레이 실트는 위험한 눈빛으로 고속선을 눈짓하며 말했다.

그러나 이미 공방 도시로 배를 타고 들어올 때 겪었다.

거대한 용처럼 굽이굽이 흐르는 거센 급류와 암초!

공방 도시 중앙을 흐르는 강은 물길을 아는 선장의 적극적인 도움 없이는 빠져나가기 힘들었다.

즉 협박으로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협박했다가 선장이 격류에서 배째면 끝장입니다.”

천문석은 고개를 젓고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우와아아아-

달려오는 헌터들의 함성이 점점 커지고!

부아아아앙-

이미 부두로 들어온 바이크가 사방을 훑고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눈에 잘 띄는 초대형 뱁새가 물에 떠내려가서 아직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수백 명의 헌터가 부두를 샅샅이 훑으면 자신과 레이 실트를 찾는 건 시간문제다!

뒤는 급류가 흐르는 강으로 막혔고, 앞은 수백의 헌터와 경호원으로 막혔다.

처음 싸우는 거라면 굉천수로 어떻게든 뚫고 도망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달려오는 수백의 헌터 속에는 자신에게 뼛속까지 탈탈 털린 헌터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당연히 더는 굉천수가 먹히지 않는다!

피를 보면 뚫을 수 있지만, 저 헌터들은 선을 지키며 싸웠다.

헌터들은 마수와 몬스터를 사냥하는 사람이다.

사람끼리 피를 보며 싸운다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됐다.

“생각나라! 생각나라!”

머리를 굴리며 외치는 순간, 번쩍 떠오르는 방법이 있었다!

초절정의 벽을 넘으면 된다!

진정한 초인경에 오르면 수백의 헌터를 압도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미 시동을 걸기 위한 준비를 끝낸 상황이다!

천문석은 천지로 기감을 퍼트리며 마음에서 마음으로 불렀다!

‘와라!’

그러나 당연하게도 부산 던전 7층, 공방 도시에는 영맥이 없었다.

“……에라이!”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았다!

천문석은 번쩍 고개를 들고 하늘을 향해 분통을 터트렸다.

“솔직히 이거 너무한 거 아닙니까!”

“지금 세기말에서 개고생하다가 돌아온 지 2시간도 안 지났어요! 도대체 이게 뭡니까!?”

“아니, 무슨 하늘의 저울이 이따위예요! 저울이면 대충이라도 수평은 맞아야죠!”

……

천문석이 쉴 새 없이 분통을 터트리고, 레이 실트가 이런 천문석을 미친놈 보듯이 볼 때.

갑자기 확성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야, 야!]

[야! 여기야!]

[야, 여기 좀 보라니까!]

그리고 들려오는 사이렌!

위이이잉-

“어!?”

하늘을 향해 분통을 터트리던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사이렌 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야, 여기야!]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

눈에 익은 운송선 한 척이 강 중앙에서 선착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재빨리 내력을 실어 운송선을 보는 순간 천문석의 얼굴이 환해졌다!

까맣게 탔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얼굴!

최설!

김철수 사무실 최고의 인재, 최설이 운송선을 몰고 선착장으로 오고 있었다!

순간 천문석과 최설의 눈이 마주쳤다!

“와, 어떻게 이 타이밍에 나타나냐! 하하하-.”

천문석이 반가움에 번쩍 손을 드는 순간.

최설이 확성기를 잡고 외쳤다.

“야, 이 씹! 돈! 야, 돈 주고 갔어야지! 일주일 동안! 어! 일주일 동안! 운송선에서 일하면서 버텼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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