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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505화 (506/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05화>

‘기다려라! 곧 잡으러 가주마!!’

호기롭게 맹세했으나!

밧줄에 꽁꽁 묶여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몸!

“으븝븝큽브브브읍!”

이대로라면 로롤로 이사를 호출하기는커녕, 레이 실트가 부두에서 배를 타고 도망칠 때까지 묶여 있게 생겼다!

여기서 레이 실트를 놓치면, 천공탑으로 들어갈 문을 여는 데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른다!

가능한 한 빨리 천공탑으로 들어가야 한다.

옐로스톤에 있는 제국 군단의 동태가 심상치 않았다!

마그마 챔버와 연결된 게이트를 지키는 제국 군단이 자꾸 경계지대에 나타나고 있었다!

마치 옐로스톤을 벗어나 ‘누군가’를 찾으려는 것처럼!

제국 군단이 누군가를 찾는 중에 혹시라도 자신의 존재가 알려진다면?!

“……!!”

생각만으로도 전율이 일었다.

지금 옐로스톤에 있는 제국 군단, 군단장은 하이브리온 가문의 사람이다.

하이브리온 가문 놈들은 약속을 지키겠다고, 천 년 동안 대를 이어 맹세를 전하는 놈들이다.

이놈들과는 협상. 아니,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다.

자신의 존재가 알려지는 순간, 더럽게 끈질긴 제국 기사와 전투 마법사 수백 명이 몰려올 거다.

천공탑을 항해 할 때 마도 제국에서 겪었던 것처럼!

하지만 그때와 달리 자신에게는 장비도 동료도 없다.

제국 기사의 파상 공세에 무너져 잡히는 순간.

악명 높은 제국 법정이 열리고 구형과 선고가 떨어질 거다.

스카라베 지하 왕국 유배형!

생각만으로도 암담했다.

‘하, 시바! 괜히 회사 이름을 W. S.로 지어서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했지만, 이미 늦은 후회!

어떻게든 여기서 레이 실트를 잡아 천공탑으로 들어갈 문을 열어야 한다!

천공탑으로 돌아가 동료들이 있는 배만 찾으면 더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제국 기사들이라고 해도 감히 그 배에 오르지는 못할 테니까!

꼬맹이는 다시 한번 악을 쓰며 몸부림쳤다.

“읍브브! 읍브크브븝큽!”

‘하, 시바시바! 흑전 주인 놈! 더럽게 튼튼하게 묶었네!!’

분통을 터트리는 순간 불현듯 방법 하나가 떠올랐다!

흑전의 주인!

소유주에게 끝없는 사건·사고, 불운을 배달하는 마물, 흑전!

흑전을 이용하는 거다!

바로 온 마음을 모두 모아 강하게 맹세했다.

‘흑전! 내가 고난이 돼주마!’

‘흑전의 주인을 키우기 위한 사건·사고, 불운이 돼주겠다!!’

‘내가 네 주인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을 선사하겠다!’

‘그러니까 이 밧줄 좀 풀어 줘!!’

세 번 연속해서 맹세했을 때 돌연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이쪽으로 도망쳤다고? 반대 방향인데?!”

[여기. 맞음.]

그리고 나타나는 두 사람.

강화 전투복을 입은 남자.

카멜레온 은신 망토를 입은 헌터.

강화 전투복을 입은 남자는 W.S. 인더스트리의 케인 이사였다!

“읍읍브읍.”

다시 한번 발버둥 치는 순간, 두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아니, 웬 꼬맹이가……?”

케인 이사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잊었던 사실을 새삼 깨닫는 꼬맹이.

‘아, 그렇지. 내 얼굴 아는 건 로롤로밖에 없지…….’

핏-

이때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튀어나온 단검이 몸을 훑었다.

투두두두두둑-

몸을 꽁꽁 묶은 밧줄이 단숨에 잘려 나가고 풀려난 몸을 잡고 다시 점멸이동!

핏-

빙글 회전해서 땅에 내려서는 순간 기계음이 들려왔다.

[아이. 괜찮.]

“고마워! 안녕이다! 나중에 만나면 내가 좋은 거 줄게!”

손을 흔들며 외치고 재빨리 비상계단을 달려 지붕으로 올라, 로롤로 이사가 있는 안가 방향으로 달렸다!

곧 거리를 수색하는 헌터들과 W. S. 인더스트리의 이사와 경호원들이 보였다.

이들 모두 레이 실트를 쫓고 있었다.

하지만 흑전의 주인, 무공 각성자의 실력이 예상을 몇 배나 넘어선다!

W. S. 인더스트리의 이사들과 경호원, 수백의 헌터가 달려들어도 물을 먹을 거다.

흑전의 주인 녀석은 전투 능력뿐 아니라 머리도 비상했다.

자신의 백곰권을 한눈에 꿰뚫어 봤다.

게다가 섬광을 터트리고 목소리를 사방에서 울리게 하는 것만으로, 수백 명의 헌터들을 따돌리고 뺑뺑이 돌렸다.

직접 싸워 보니 전투 스타일이 더럽게 싸우기로 유명한 제국 기사보다 더 끈적끈적 천 년 동안 쌓인 타르 웅덩이처럼 질척였다.

감이 왔다.

이 녀석들로는 잡을 수 없다!

아무리 수백 명이 달려들어도 시간 벌이 밖에 안 된다!

밧줄에 묶여 있을 때 생각한 데로 로롤로 이사가 필요했다!

꼬맹이는 재빨리 통신기, 시계를 잡고 외쳤다.

“로롤로! 반성문 깜지 취소다! 당장 준비해라!”

곧 당혹스러워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네, 반성문 취소라고요? 뭘 준비하라는 건지…….

순간 꼬맹이의 두 눈이 위험하게 빛났다.

더는 사리지 않는다!

흑전을 향해 맹세한 대로 한 번도 겪지 못한 재앙이 되어 주겠다!

“마이너 타이탄! 네가 가져온 아공간 봉인한 마이너 타이탄 준비해라!”

* * *

=마이너 타이탄을 준비해라!

통신이 끊기자 로롤로 이사는 몸을 일으켜 책상 위를 봤다.

“…….”

책상 위에는 완전히 검게 변한 종이 수백 장이 놓여 있었다.

반성문 깜지.

지난 일주일 동안 자신에게 내려진 징계였다.

징계 처분의 이유는 마이너 타이탄, 나이트 아머 불법 개조였다.

자신이 이계인들과 접촉해서 나이트 아머를 아공간에 봉인한 걸 아는 순간.

길길이 날뛰더니 반성문 깜지 999장 제출을 명령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아공간 봉인한 나이트 아머를 준비하라고?!

게다가 뉘앙스를 봐서는 뭔가 사고를 칠 게 분명했다!

“뭔 변덕이 이렇게 심해.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하아-.”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나이트 아머를 독점 생산하는 W. S. 인더스트리의 이사면 세계 어디에서건 국빈 대우를 받는다.

자신은 그런 W. S. 인더스트리의 그냥 이사도 아닌 이사회 의장 겸 대표이사 대리였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대표이사라도 ‘오너’가 까라면 깔 수밖에.

그렇다.

방금 전화한 변덕 심한 꼬맹이 같은 사람이, W. S. 인더스트리 ‘오너’이자 ‘창립자’. 그리고 자신의 ‘상사’였다.

너무나 불행하게도 말이다.

하아-

로롤로 이사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고 책상 위에 가득한 반성문부터 그러모아 챙겼다.

벌써 오너와 만난 지 10년이 훌쩍 지났다.

이제 자신도 오너의 성격과 행동 양식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

혹시 모르니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

나이트 아머를 준비하라고 해 놓고, 갑자기 반성문 깜지를 검사할지도 모른다.

“……학생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반성문 깜지를 챙기며 자괴감에 빠지는 순간 문득 친구가 생각났다.

재금 그룹의 박혁 이사.

원래대로라면 자신과 박혁, W. S. 인더스트리와 재금 그룹의 이사는 신동대문 게이트 소멸 공동 조사 협의를 해야 했다.

그러나 공방 도시에 도착하는 순간 중앙 지열봉 과열 사고가 터져 지난 일주일 동안 정신없이 사고 수습을 해야 했다.

거기에 더해서 자신은 반성문을 작성했고.

박혁 이사는 갑자기 내려온 이유를 알 수 없는 명령으로 공방 도시 시민 대부분과 함께 공방 도시 북쪽에서 작업하고 있었다.

“…….”

문득 자신이나 친구나 체스판의 말일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금 그룹의 창립 이사.

W. S. 인더스트리 대표이사 대리.

초거대기업의 이사라는 엄청난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하는 일은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뿐이었다.

재금 그룹의 오너.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

홀로 초거대기업을 압도하는 존재들의 명령을 말이다.

하아-

로롤로 이사는 세 번째로 깊은 한숨을 내쉬며 금고를 열었다.

수정 기둥 형태의 최상급 정제 마석 사이에 펜던트가 놓여 있었다.

로롤로 이사는 펜던트를 꺼내 쥐었다.

찰랑-

손에 꽉 들어차는 커다란 펜던트.

이 펜던트에 아공간 봉인된 나이트 아머가 들어 있다.

그리고 곧 공방 도시에 튀어나와 난장판을 만들 거다.

언제나처럼.

* * *

새는 하늘을 날기 위해서 진화했다고 한다.

양력을 받기 쉬운 날개 형태.

가볍고 공기 저항을 받기 위한 솜털.

무게를 줄이기 위해 가벼운 뼈까지.

모든 것이!

그런데 어쩌면 그 모든 게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강력한 의심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

무거웠다!

더럽게 무거웠다!

동글동글한 초대형 뱁새는 미친 듯이 무거웠다!

으아아악-

천문석 악을 쓰며 초대형 뱁새를 밀어 올렸다!

언덕 위로!

구르르르르-

커다란 돌이 굴러가는 듯한 소리가 울릴 때 저절로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 이렇게 무거운데 하늘을 나는 게 말이 되는 거야?!”

평지에서는 데굴데굴 잘 굴러 갔다!

하지만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자, 힘이 몇 배로 들었다!

게다가 눈을 꼭 감고 눈뽕 맞은 척했을 때와 달리, 지금은 최루 가루를 맞고 진짜로 기절한 상태였다.

당연히 밀어 올리는 게 몇 배로 힘들었다!

이때 레이 실트의 외침이 들려왔다.

“야! 거의 다 왔어! 언덕 정상 보인다!”

됐다!

이 언덕만 오르면 부두까지는 쭉 내리막길이다.

초대형 뱁새를 굴리고 부두로 바로 달리면 된다.

으아아악-

다시 한번 악을 쓰며 언덕 정상으로 밀어 올릴 때.

도로 앞에 익숙한 동업자들이 나타났다.

강화 전투복을 입고 무장한 헌터들.

십여 명의 헌터가 언덕 정상으로 가는 길을 막았다.

“……!”

이들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천문석은 바로 소리 폭탄을 던졌다.

[으아앗- 어떻게 찾은 거야?!]

멀리 시가지 건물 옥상에서 들려오는 긴박한 외침!

“저기다! 잡아라!”

몇몇 헌터가 소리를 쫓아 달리려는 순간 바로 제지하는 헌터들!

“야! 멈춰!”

“어디 가는 거야?!”

“왜? 빨리 잡아야지!”

“그래 언제 도망칠지 몰라! 어서 쫓아가자!”

순간 달려가는 동료를 제지한 헌터들이 손을 들어 언덕 아래 도로를 가리켰다.

“대가리가 금붕어냐?! 저거 안 보여?!”

“야! 그렇게 낚였으면서도 또 낚이냐?”

경사진 도로를 올라오는 동글동글 새하얀 새!

바로 앞에 있는 타겟을 보는 순간 안색이 변한 헌터들이 외쳤다.

“앗! 시바! 반사적으로 달릴 뻔했잖아!”

“역시 부두로 도망치고 있었구나!”

“야, 이 미친놈아! 너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뺑뺑이를 돈 줄 알아!?”

살벌한 외침이 쏟아지고, 분분히 무기와 방패를 꺼내 드는 헌터들.

레이 실트가 재빨리 천문석의 귓가에 속삭였다.

“번개 마법 뿌릴까? 마력이 거의 바닥나긴 했는데 한두 번은 광역으로 뿌릴 수 있다.”

천문석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우선 아껴두죠. 강화 전투복 입어서 마법은 거의 효과가 없을 겁니다.”

천문석은 레이 실트를 제지하고 도로를 막는 헌터들을 살폈다.

10여 명의 기세등등한 헌터들이 언덕을 오르는 길을 막았다.

골목길이 좌우로 보이지만, 초대형 뱁새를 굴려서 이동하기에는 너무 좁았다.

게다가 이 언덕 도로를 우회하면 부두로 가는 시간이 두 세 배는 걸린다!

“하, 시바 여기선 또 어떻게 튀지!?”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천문석은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어……?”

문득 고개를 들어 앞을 자세히 봤다.

헌터들이 도로를 막고 있다.

헬멧에 강화 전투복, 방검방탄복과 안전장갑을 착용하고, 방패와 무기까지 든 완전무장상태.

게다가 포메이션까지 짜고 있다.

전면에 방패를 든 탱커 4인.

그 뒤 단단히 탱커를 받히는 근딜 4인.

후위에서 넓게 퍼져 기회를 노리는 원딜 7인.

전형적인 보스전 포메이션.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노련함이 느껴진다.

이런 노련한 헌터 팀이 길을 막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위기의 순간이다.

하지만 포메이션을 짠 기세등등한 헌터들을 계속 보고 있는 지금, 생경한 감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만만하게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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