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501화>
“차원 도약?! 역시 그렇지! 도시에 숨어 있었으면 내가 못 찾을 리가 없지!”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을 어린아이가 지붕에 선 채로 연신 탄성과 악당 같은 웃음을 터트렸다.
카카카카카캌-
야구 모자에 고글을 걸치고.
두꺼운 작업용 재킷에 공구 벨트를 차고.
손에는 번쩍이는 스패너까지 들고 있는 꼬맹이.
꼬맹이는 야구 모자에 걸친 고글을 내리고 재빨리 하늘을 훑었다.
기이이잉-
순간 고글의 배율이 조정되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존재들이 선명하게 비췄다!
“누구냐, 누구로 위장했냐?!”
꼬맹이는 고글에 비추는 존재들을 빠르게 훑었다!
초대형 뱁새.
뱁새 발에 잡힌 마력 각성자 둘!
초대형 뱁새가 물고 있는 밧줄.
밧줄에 줄줄이 매달린 마력 각성자 둘과 마지막으로 무공 각성자!
모두 다섯 명!
이 중의 한 명으로 위장했다!
레이 실트!
“마침내 만나는구나! 레이 실트! 카카카-.”
그러나 이렇게 멀리서 고글로 살피는 것만으로는 누가 레이 실트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냥 모조리 잡아다가 확인할까?!”
불쑥 튀어나온 생각이지만, 아주 마음에 들었다!
원래 가장 간단한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인 법!
재빨리 주머니를 뒤져서 동그란 구슬들을 꺼냈다.
리클레 가루로 만든 특제 연막 최루탄!
이 최루탄을 맞으면 그 누구라도 무력화된다!
이걸로 난장판을 만들고 모조리 잡아가는 거다!
카카카캌-
악당 같은 웃음을 터트리고 먹잇감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는 순간.
“어?!”
꼬맹이는 흠칫 놀랐다.
밧줄 끝에 매달린 남자!
무공 각성자로 보이는 남자에게서 왠지 모를 익숙한 느낌이 전해졌다!
순간 머리에서 저절로 재생되는 장면들!
-축제로 들썩이는 항구 도시 추격전.
-사법 기사들이 쫙 깔린 도시 탈출.
-마침내 시동을 건 마도 엔진 폭발 사건.
-자본 주의 그 자체 스카라베 지하 왕국에 떨어져 개 같이 일하던 경험.
-사령 군단의…….
꼬맹이는 번쩍 정신을 차렸다.
“앗! 이럴 때가 아니지!”
이 중요한 순간에 딴생각하고 있다니!
꼬맹이는 고글 배율을 조정해 무공 각성자를 자세히 살폈다.
“내가 아는 사람인가?!”
“설마!? 걘 가?!”
“아닌데…… 얼굴이 완전히 다른데?!”
“위장했을 리도 없는데…….”
“뭐지? 뭐가 이렇게 익숙한 거지?!”
……
아무리 살펴도 처음 보는 사람이다.
그런데 무언가 아주 익숙한 느낌이 왔다!
생각이 날락 말락 머리가 간질간질하고.
말이 튀어나올락 말락 가슴이 답답했다!
“왜 생각이 안 나는 거야?!”
꼬맹이는 버럭 소리치며 스패너로 지붕을 내려쳤다.
콰직-
순간 스패너에서 쏟아진 마력광이 단단한 시멘트를 깨트리고.
깨진 시멘트 조각이 지붕 장식을 맞고 튀어 올라 머리를 때렸다.
쾅-
으악-
비명과 함께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을 때.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외침.
“뭐가 이렇게 재수가 없어!!”
순간 꼬맹이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굳어 버렸다.
‘재수가 없다!’
“설마…… 설마……?!”
번개같이 공구 벨트에 걸린 주머니를 열고 유리병을 꺼냈다.
검은 가루가 담긴 유리병!
꿀꺽-
긴장된 얼굴로 마른침을 삼키고.
검은 가루가 담긴 유리병을 하늘로 들었다.
그리고 고글로 봤다.
왼쪽 렌즈로는 검은 가루가 담긴 유리병을!
오른쪽 렌즈로는 밧줄을 잡은 무공 각성자를!
기이이잉-
렌즈가 회전해서 초점이 맞고 고유 파장 비교를 하는 순간.
결과가 나왔다.
[99.99999퍼센트]
유리병에 담긴 검은 가루와 무공 각성자의 몸에서 나오는 미세 파장이 같다!
순간 꼬맹이의 시선이 유리병에 담긴 검은 가루에 꽂혔다.
이 검은 가루는 금속 조각이었다.
불의의 사고로 산산조각이 난 동전 조각!
이 순간 나올락 말락 머리와 가슴에 걸려 있던 단어가 튀어나왔다!
“흑전!”
* * *
“흑전이 왜 여기서 나와!”
경악한 꼬맹이는 납작 엎드려 재빨리 은신 마력장을 뿌렸다.
운명을 사는 화폐, 흑전!
흑전은 원인과 결과, 인과.
이미 확정된 운명조차 비틀 수 있다!
그래서 예전 자신은 흑전을 손에 넣기 위해 안간힘을 썼었다.
‘멍청하게도 말이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야구 모자로 손이 움직이고, 흑전과 얽혀서 했던 장대한 삽질과 개고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머리에 났던 상처는 아물었지만.
삽질과 개고생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빌어먹을 흑전! 퉤, 퉤, 퉤-!”
흑전이 운명을 사는 방법은 완전히 사기다!
흑전이 운명을 바꾸는 방식은, 그 주인에게 쉴 새 없이 고난과 불운을 몰아줘 업을 쌓는 거다.
즉, 상상을 초월하는 불운이 끝없이 밀려온다!
피뢰침 옆에 있어도 벼락을 맞고, 우산에 우의까지 입었는데도 옷이 젖게 된다!
흑전의 주인들은 보통 운명을 바꿀 업을 쌓기 전에, 끝없이 터지는 사건·사고, 불운 연타를 맞고 훅 가는 게 보통이다!
흑전의 불운 연타를 이겨 낼 수 있는 사람은 극도로 적었고, 어이없게도 이런 사람들에게는 흑전이 필요 없었다.
그냥 스스로의 힘으로 운명을 개척하면 되니까!
흑전은 마물이나 마찬가지다.
주인뿐 아니라 그 주위까지 불운으로 휩쓸어버리는 마물(魔物)!
흑전을 가진 저 무공 각성자에게 절대 얽혀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지금 하늘에서 떨어지는 5명.
아니, 흑전을 가진 사람을 제외한 4명 중에 꼭 찾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
레이 실트가!
“아, 시바. 이거 어떻게 하지!?”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중앙 광장을 둘러싼 건물들이 보였다.
그리고 이 건물에서 기다리고 있는 녀석들이 떠올랐다!
레이 실트를 찾으라고 경쟁을 시켜놨더니, 서로 간에 야합하고 힘을 합친 놈들!
W. S. 인더스트리의 이사들과 그들이 고용한 용병들!
순간 한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흑전을 가진 사람과 동료들이라면 당연하단 듯 이곳 광장으로 떨어질 거다!
자신들을 노리고 있는 W. S. 인더스트리의 이사들과 용병이 모여 있는 광장으로!
원래 흑전이 업을 쌓는 방식이 불운 연타를 때려 박는 거니까!
그렇다면 방법이 있다!
[흑전을 가진 일행 vs W. S. 인더스트리 이사와 용병들]
둘 사이에 난장판이 벌어질 때, 흑전을 가진 재앙을 피해서 4명의 ‘레이 실트’ 용의자만 잡으면 된다!
꼬맹이는 바로 통신기를 잡고 이사 중 한 명에게 문자를 넣었다.
[하늘에서 광장으로 떨어지는 애들 사이에 레이 실트가 끼어 있다.]
짧은 문자지만, 음흉한 이사들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뻔했다.
“빨리 내려와라! 크크크-.”
꼬맹이는 납작 엎드린 채 숨소리마저 죽여서 웃었다.
휘이이이이잉-
이때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려오고, 초대형 뱁새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예상한 그대로.
중앙 광장을 향해서!
* * *
휘이이이이잉-
도시가 가까워지자 초대형 뱁새는 날개를 펼치고 속도를 줄였다.
부드럽게 날아가는 초대형 뱁새 아래 부서진 건물과 집이 스쳐 지나갔다.
증기관 폭발로 뒤집힌 도로, 부서진 벽, 무너진 건물들과 복구가 끝난 시설이 뒤섞여 있었다.
히리히리히리-
피리 소리를 닮은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자, 깜짝 놀라 하늘을 보는 사람들!
도시에 가득한 사람들 대부분이 긴급 복구 작업 중이었다.
천문석은 도시를 훑는 것만으로도 감이 왔다.
중앙 지열봉 냉각에 성공해 도시를 구했다.
최악의 상황 마그마 챔버가 솟구쳐, 분지 전체가 용암 호수가 되는 사태를 막았다!
게다가 이미 복구가 끝난 건물과 도로를 봐서는 증기압 폭발이 멈추고 복구를 시작한 지 대략 5일에서 8일 정도는 지난 것 같았다.
‘시간이 많이 흐르지는 않았구나!’
내심 안도의 한숨이 나왔지만.
아직 완전히 안심하기는 일렀다.
20년 전 과거로 가서 한 일들이 현재를 어떻게 변화시켰을지 모른다.
나비 효과.
이제 자신이 한 일들의 결과를 확인해야 할 때였다.
이때 레이 실트의 마법 메시지가 전해졌다.
[중앙 광장에 착륙할게!]
그리고 도시 한가운데 넓게 펼쳐진 중앙 광장이 가까워졌다.
공방 도시의 중심부.
시청 건물과 여러 상업 건물이 주위를 둘러싼 중앙 광장은 텅 비어 있었다.
초대형 뱁새는 텅 빈 중앙 광장 위에서 원을 그리며 감속했다.
휘이이이이-
속도가 점점 느려지자, 중앙 광장이 자세히 보였다.
광장으로 이어지는 몇몇 도로를 건물을 무너트려 막았고.
광장 중심부 바닥에는 커다란 구멍을 수십 개나 뚫어 놨다.
중앙 지열봉 냉각에 실패하고, 마그마가 용출할 때를 대비한 모습이었다.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증기탑으로 들어갈 때 공방 도시에 남겨 둔 동료, 최설.
최설은 생각대로 만약의 사태를 제대로 대비했다.
천문석이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을 때.
휘이이이-
몸을 스쳐 지나가던 바람이 약해지고, 팽팽히 당겨진 밧줄이 늘어지기 시작했다.
광장 바닥이 닿을 듯 가까워질 때.
[착륙한다!!]
마법 메시지가 들려오고 초대형 뱁새가 광장 위로 착륙했다.
으아악-
착륙 직전 비명이 터져 나왔다.
초대형 뱁새가 발로 잡고 있던 레이와 에코를 휙, 휙- 집어던진 것!
레이와 에코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를 때.
탓탓, 탓탓탓-
초대형 뱁새는 광장 위를 천천히 달리며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완전히 멈추는 순간.
퉤-
물고 있던 배낭을 뱉고.
빙글-
옆으로 드러누워 버렸다.
마치 완전히 퍼져서 더는 움직일 힘이 없다는 듯.
이때 밧줄을 잡고 광장을 달리던 김철수 발명가와 추이린, 천문석 셋 모두 멈춰 섰다.
“마침내! 드디어! 돌아왔다! 하하하-.”
“그래 돌아왔구나. 하아-.”
추이린이 웃음을 터트리고.
김철수 발명가가 깊은 한숨을 내쉴 때.
멀리 굴러 간 레이와 에코가 몸을 일으켰다.
“……아니. 왜 우리는 집어던지는 거야?!”
“얘는 원래이래요. 그냥 그러려니 하세요.”
동료들이 모두 무사히 착륙한 걸 확인한 천문석은 균열이 사라진 하늘을 봤다.
서리 늑대가 넘어오지 못했다!
[서리 늑대 = 얼음 다리 = 의인 광장 = 광화문 땅 주인]
장대한 계획이 허사가 됐다!
아니, 사실 광화문 땅은 상관없었다.
북한산을 달리고.
쏟아지는 마수와 몬스터를 뚫고.
한강에 커다란 얼음 다리를 만들고.
육포를 먹겠다고 땡깡을 부리던 서리 늑대!
같이 싸운 동지 서리 늑대가 2000년, 20년 전 서울 광화문에 남겨졌다!
침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려는 순간.
“어?”
순간 문득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재앙급 마수, 서리 늑대는 2000년 광화문에 남았다.
그리고 지금은 20년이 지난 2020년이다.
시간은 20년이 지났지만, 공간은 같은 대한민국이다!
즉, 서리 늑대가 20년 존버에 성공했으면 다시 만날 수 있다!
“와! 이게 또 이렇게 되냐!”
실낱 같은 희망을 잡은 천문석이 외치는 순간 돌연 인기척이 느껴졌다.
텅 빈 광장 동쪽이었다.
도로를 막은 잔해 위, 광장을 내려다보는 건물 창에 사람들이 나타났다.
한 명 두 명, 열 명 스무 명.
완전무장한 헌터 수백 명이 나타나고.
3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외국인들이 경호원과 함께 앞으로 걸어 나와 선두에 섰다.
그리고 말없이 광장 중앙을 봤다.
“…….”
“…….”
수백 명의 사람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광장 중앙에 착륙한 천문석과 일행들에게로!
생각지도 못한 상황!
천문석은 은밀히 내력을 끌어올리며 주위를 살폈다.
자신과 동료들이 광장에 착륙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무장한 헌터와 경호원 수백 명이 나타났다!
게다가 이들 앞에 선 사람들에게선 권력자 특유의 느낌이 왔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가? 아니, 어떻게 알고?!’
이때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추 수석님, 혹시 저 사람들 고용했습니까?”
“뭐? 야, 방금까지 같이 굴렀잖아? 내가 그럴 틈이…… 앗! 설마!”
어이없어 하던 추이린은 문득 드는 생각에 김철수 발명가를 봤다.
김철수 발명가는 재금 그룹의 숨겨진 실세,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준비했다면 김철수 발명가다!
얼굴이 환해진 추이린이 질문하려 할 때.
김철수 발명가의 의혹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W. S. 인더스트리 이사들? 저 사람들이 왜 여기에 있어?”
“……네?”
“……W. S. 인더스트리. 이사들요?”
추이린과 천문석이 반문하는 순간 경호원을 대동한 이사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마침내!”
“드디어!!”
“왔구나!!”
이사들은 희열이 가득한 얼굴로 천문석 일행을 가리키며 외쳤다.
“잡아라!!”
순간 수백 명의 헌터와 경호원이 일제히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