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99화>
새끼 다람쥐는 멍한 얼굴로 주위를 돌아봤다.
우수수수수-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후드드드득-
비 오듯 쏟아지는 도토리, 도토리, 도토리…….
모든 곳에서 도토리가 떨어진다!
빗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수많은 나무!
이 나무 하나하나가 모두 도토리나무였다!
-……!
순간 눈물이 핑 돌고 가슴에서 무언가 뜨거운 게 벅차올랐다.
보육원을 나와 뿌리 아래 축축한 방에서 살며, 한 달에 나무 열매 10개를 벌기 위해 알바를 엄청엄청 많이 했다!
그런데 주위에 가득한 이 많은 나무가 모조리 도토리나무라니!
의욕을 잃고 축 처졌던 몸에 힘이 들어가고 멍한 눈에 빛이 반짝였다.
차원 용병으로 취직하면서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시원한 높은 나무집을 사는 게 꿈이었다.
10년쯤 걸릴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 엄청난 양의 도토리를 고향으로 가져가면, 당장이라도 나무. 아니, 엄청엄청 큰 숲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도토리를 그냥 가지고 갈 수는 없었다.
소환한 마법사가 먹튀 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갈 소환 술식이 사라졌다!
게다가 도토리를 ‘그냥’ 가지고 케페니안 차원으로 넘어가면 모조리 썩어 버린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문제 모두 해결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그전에 꼭 확인할 게 있다.
새끼 다람쥐는 도토리를 하나 주워 씹었다.
콰드드드득-
씁쓸한 맛이 몸에 퍼지는 순간.
털끝이 쭈뼛 일어서고, 황금빛 줄무늬가 반짝인다!
그리고 케페니안의 빛이 아주 약간이지만 강해졌다!
처음 느꼈던 대로!
킥, 키킼키키킼키-
‘됐다! 해결 방법이 있다!’
새끼 다람쥐는 손을 번쩍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건 의뢰를 하면 된다.
스카라베 지하 왕국의 마법사들에게!
언제나 합리적인 가격으로 성실하게 의뢰를 수행하는 케페니안 차원 용병들과 다르게.
스카라베 지하 왕국의 마법사들은 바가지를 씌우고 이상한 거로 대가를 받는 아주아주 나쁜 놈들이다!
하지만, 스카라베 마법사들은 대가를 치르면 그 무엇이든 한다.
케페니안 차원으로 이어지는 구멍을 몰래 뚫는 것도 대가만 내면 해 줄 거다.
이걸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건 해결됐다!
이제 도토리를 가지고 ‘안전’하게 케페니안으로 넘어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새끼 다람쥐의 시선이 숲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를 훑을 때, 방금 도토리를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도토리를 먹을 때 아주 약간이지만 케페니안의 빛이 강해졌다!
‘이 도토리에 케페니안의 빛을 아주아주 많이 담으면!?’
케페니안의 빛을 꾹꾹 눌러 담은 ‘보물 도토리’는 케페니안 차원으로 넘어가도 썩지 않는다!
번쩍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
저절로 계획이 세워지고, 가슴속에서 야망이 꿈틀거렸다.
-도토리를 먹어 케페니안의 빛을 모으고.
-모은 케페니안의 빛을 도토리에 꾹꾹 눌러 담아 ‘보물 도토리’를 만든다.
-스카라베 지하 왕국의 마법사들에게 의뢰해 집으로 갈 구멍을 뚫고.
-열심히 모은 ‘보물 도토리’를 가지고 이 구멍을 통과해 케페니안 차원으로 돌아가는 거다!
너무나 완벽한 계획이었다!
여기서 정해야 할 것은 하나뿐이다.
‘보물 도토리 몇 개를 가지고 돌아갈까!?’
생각 순간 바로 튀어나오는 숫자!
‘143개!’
새끼 다람쥐는 자신이 생각하고도 깜짝 놀랐다.
보물 도토리 143개라니!
빚을 모두 갚고, 커다란 숲을 사고도 남을 정도로 엄청난 양이다!
킥, 키키키기기기키-!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엄청난 숫자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143개의 보물 도토리를 만들려면 긴 시간이 걸릴 거다.
수많은 도토리를 먹어 케페니안의 빛을 모으고, 이렇게 모은 빛을 도토리에 차곡차곡 쌓아 ‘보물 도토리’로 만들어야 하니까.
그리고 케페니안 차원에 구멍을 뚫기 위해선 스카라베 마법사들에게 엄청난 대가를 줘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다 하려면, 얼핏 계산해도 20년은 걸린다!
그러나 이 계획이 성공하는 순간 자신은 낮은 나무 다람쥐가 아닌, 커다란 숲을 가진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어 고향에 돌아간다!
킥키, 키키키키킥-
‘이렇게 재수가 좋다니!’
새끼 다람쥐는 번쩍 손을 들고 연신 환호성을 터트렸다.
키키킼-!
킼키키킼-!
키키키키킼-!
……
우수수수수-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사이로 새끼 다람쥐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지금 새끼 다람쥐의 상황은 절대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엄청난 빚을 졌고 먹튀 한 마법사를 잡는 데 실패했다.
갑자기 나타난 송죽검에 데굴데굴 구르고, 균열에 삼켜져서 숲 한가운데 뚝 떨어지기까지 했다.
게다가 보물 도토리를 만드는 20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몰랐다.
그러나 케페니안 황금 다람쥐 일족은 원래 잘 까먹는 종족이고, 아직 어린 새끼 다람쥐는 더 잘 까먹었다.
엄청 맛있는 전설의 열매 ‘도토리’를 발견하고, ‘보물 도토리’를 만들어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는 순간.
새끼 다람쥐는 암울한 기억은 모두 잊고 희망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높은 나무집을 산다!
아니, 나무집이 잔뜩잔뜩 있는 숲을 산다!
착하고 성실하게 살길 잘했다!
하늘님이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복을 주셨다!
킥, 키키킼키키킼-!
새끼 다람쥐가 다시 긍정적 마인드를 찾고 신나게 도토리를 모으는 순간.
우오오오오오-
도토리 숲에 하울링이 울려 퍼졌다.
순간 환하게 웃던 새끼 다람쥐의 눈빛이 변했다!
침입자!
킥, 키키키키킼키-!
‘감히 내 소중한 도토리 숲에 들어오다니!’
타다다다다닥-
새끼 다람쥐는 단숨에 나무를 박차고 날아올라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발견했다!
도토리 숲이 끝나는 곳.
새하얀 늑대 다섯 마리가 영체로 이뤄진 작은 고래를 쥐어박고 있었다!
구우, 구우웅-
쥐어박힐 때마다 영체로 이뤄진 작은 고래에서 튀어나오는 파르스름한 불꽃.
파르스름한 불꽃을 새하얀 늑대들이 삼키고 있었다!
새끼 다람쥐는 어떻게 된 상황인지 바로 알아챘다.
‘삥을 뜯고 있구나!’
하지만 차원 용병은 의뢰 없이는 분쟁에 끼어들 수 없었다.
새끼 다람쥐는 그냥 몸을 돌리려 했다.
이 순간 보였다!
새하얀 늑대 한 마리가 주둥이를 땅에 박고 혀를 날름거리고 있다.
순간 귓가에 천둥 치듯 들려오는 소리.
콰드드득-
도토리 씹는 소리!
늑대가 도토리를 씹었다!
내 숲에 떨어진 내 도토리를!
‘143개의 보물 도토리’를 만들기 위한 자본을!
-……!
예전이라면 이러시면 안 된다고 좋게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첫 임무에서 뒤통수를 맞고 빚쟁이까지 된 새끼 다람쥐는 이제 완전히 달라졌다!
어차피 첫 임무에서 사기를 당한 상황!
킼키키, 킼키킼키킼-!
‘차원 용병은 이제 은퇴다!’
당당히 외친 새끼 다람쥐는 번개같이 새하얀 늑대를 향해서 떨어졌다!
차원 용병을 그만둔 이상 거리낄 것은 없다!
새끼 다람쥐는 분노를 노래하였다!
꽈드드득-
깨앵-
깨애앵-
깽, 깨애앵-
서리 늑대의 고통스러운 울음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지고 순식간에 상황은 정리됐다.
아프게 물린 서리 늑대들은 재빨리 북쪽으로 달렸다.
그러나 도망치는 것은 아니었다.
서리 늑대들은 뿔뿔이 흩어진 일족을 모두 모아 이 숲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이 숲에 떨어진 도토리를 먹는 순간 서리혼이 강해지는 걸 느꼈다!
저 악마 같은 다람쥐를 내쫓고 이 숲을 차지한다면 서리 늑대 일족은 더욱 강해지리라!
일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 강적들을 압도할 정도로!
우오오오오오오-
서리 늑대들은 흩어진 동료를 찾아 달리며 하늘을 향해 하울링 했다!
이 하울링은 맹세였다.
악마 같은 다람쥐와 싸워 이겨, 반드시 도토리 숲을 차지하겠다는 맹세!
새끼 다람쥐는 하울링 하며 후퇴하는 서리 늑대를 향해 용맹하게 울었다!
킥, 키키키키킼-!
이 숲은 이제 내 거다!
내 도토리를 하나라도 건드는 놈은 아주아주 아프게 물어 줄 거다!
새끼 다람쥐가 용맹하게 외치는 순간.
바로 옆에서 대답하듯 울려 퍼지는 소리가 있었다.
구우, 구으응-
서리 늑대에게 쥐어박히던 하늘 고래.
하늘 고래는 신나게 울면서 자신을 구해 준 새끼 다람쥐 주위를 퐁, 퐁, 퐁- 회전했다!
새끼 다람쥐는 빛으로 이뤄진 고래를 보는 순간 정체를 깨달았다.
전신이 빛과 안개로 이뤄진 생명체!
보육원에서 그림책으로 봤던 하늘 고래다!
선조가 여행 중 만나서 부하로 삼았다는 하늘 고래!
아주아주 무서운 사람이 사는, 안개가 강처럼 흐르는 계단 산맥에 사는 하늘 고래다!
새끼 다람쥐는 영체로 이뤄진 이 작은 하늘 고래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영체는 도토리를 먹지 않으니까!
킥, 키킼키키킼키킼-!
‘넌 특별히 이 숲에 살아도 좋다!’
새끼 다람쥐는 하늘 고래를 탁탁 두들겨 주고, 나무에 영역 표식을 하기 시작했다.
퐁, 퐁, 퐁-
하늘 고래는 영역 표시하는 새끼 다람쥐를 따라 날며 나무에 똑같은 표식을 새겼다.
-……!
이때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이 커다란 숲을 혼자서 온종일 감시할 수는 없었다.
영체로 된 하늘 고래.
늑대한테도 쥐어박힐 정도로 약하지만.
하늘도 날 수 있고, 영역 표식도 새길 수 있다.
게다가 나무나 바위에 몰래 숨어서 감시할 수도 있고, 영체라서 도토리를 먹지 않는 것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
새끼 다람쥐는 자신이 새긴 영역 표식을 흉내 내서 열심히 표식을 새기는 하늘 고래를 유심히 살폈다.
퐁, 퐁, 퐁-
하늘 고래가 지느러미를 흔들 때마다 물결치듯 빛의 파문이 생겨나 주위로 퍼져 나갔다.
감이 왔다.
부하로 삼으면 아주 쓸모가 많을 것 같다는 감이!
새기 다람쥐는 마음의 결정을 하고 물었다.
킥, 키킼키킼키-?
‘너 내 부하로 일할래?’
구으, 구으응-!
하늘 고래는 새끼 다람쥐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킥킼, 키키킼키-
‘그럼 따라와라.’
새끼 다람쥐는 바로 땅을 달려 하늘로 펄쩍 날아올랐다!
할 일이 아주 많았다!
샘을 찾고, 집을 만들고, 숲에 영역 표식을 하고, 도토리나무가 무럭무럭 잘 자라게 열심히 관리해야 했다!
휘이이잉-
새끼 다람쥐가 바람을 타고 도토리 숲 위를 날 때.
퐁, 퐁, 퐁-
어린 하늘 고래는 열심히 지느러미를 휘저으며 그 뒤를 쫓았다.
이세계의 도토리 숲에 두 존재가 살게 됐다.
-먹튀 사기로 빚쟁이가 된, 케페니안 새끼 다람쥐.
-집으로 돌아갈 문이 사라져 미아가 된, 허공도의 어린 하늘 고래.
그리고 동료를 찾아 북쪽으로 달리며 연신 도토리 숲을 돌아보는 존재들이 있었다.
-서리혼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도토리가 가득한 숲을 노리는, 서리 늑대들.
이렇게 원인과 결과, 인과의 빠진 조각들이 맞물렸다.
2000년 1월 1일, 이세계의 도토리 숲.
새끼 다람쥐와 어린 하늘 고래의 20년에 걸친 장대한 계획이 시작되고.
사리 늑대 무리의 도토리 숲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 또한 시작됐다.
하늘의 인과는 인지로는 헤아릴 수 없기에.
도토리 숲을 두고 벌어진 20년에 걸친 장대한 계획과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케페니안 새끼 다람쥐.
-허공도의 어린 하늘 고래.
-서리혼을 키우려는 서리 늑대 무리.
곧 여기에 끼어들게 될 스카라베 지하 왕국의 마법사들까지.
누가 최후에 웃을지는 하늘만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심한 하늘은 천기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법이었다.
그러나 문득 바람이 불어왔을 때.
휘이이이이이-
어째선지 이 바람은 깊은 한숨 소리를 닮아 있었다.
20년 후 보물 도토리 143개가 완성되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가 모든 것을 난장판으로 만들 걸 예언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