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98화>
킥, 킼킼키기기기킼-!?
‘내가 물었던 거야!?’
혼란에 빠진 니케가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강아지 앞에 쪼그려 앉아 물린 자국을 살피던 특급 헌터가 벌떡 일어났다.
특급 헌터는 아주아주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 특급 헌터는 니케에게 아주아주 실망했다!”
-……
니케는 말없이 일어나 화분을 잡고 엎드려 뻗쳤다.
그리고 두 가지 소리가 옥탑방 앞에서 울려 퍼졌다.
퐁퐁, 퐁퐁퐁-
퐁퐁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울려 퍼지는 경쾌한 소리.
찰싹, 찰싸악-
니케의 복실복실한 엉덩이에 퐁퐁검 회초리가 떨어질 때마다 나는 소리.
퐁퐁검 회초리를 맞는 니케는 외쳤다.
퐁퐁, 찰싹-
킥키키키키킼ㅋ-!?
‘뭐지!? 언제 물었지잌!?’
퐁퐁, 찰싸악-
킥키, 키킼키키킼ㅋ-!?
‘어젠가!? 자기 전에 물었던 건가앜!?’
……
원래 자주 깜빡하는 케페니안 황금 다람쥐 일족이고, 니케는 아직 어린 다람쥐라 더 자주 깜빡깜빡했다.
완벽한 증거가 나온 순간.
니케는 자신이 물고는 깜박했다고 생각했다.
이런 니케의 생각은 어이없게도 사실이었다.
단지 그 기간이 하루, 이틀 전이 아니었다.
2000년 1월 1일.
20년 전 광화문 빌딩 옥상에서였다.
20년 전 케페니안 차원 용병 시절 니케는 서리 늑대를 아프게 물어 서리혼을 쪽쪽 뽑아냈었다.
그러나 그 직후 균열에 삼켜지고 20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그래서 니케는 서리 늑대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하지만 하늘의 인과는 인지로는 헤아릴 수 없는 법.
20년이 지난 2020년에 오늘, 니케는 오래전 그 업보를 받았다.
그리고 또 다른 원인과 결과, 인과의 빠진 조각이 맞물리고 있었다.
검성은 빛의 나무와 수십 개의 균열을 하나로 엮은 후 흑전의 힘으로 둘로 잘라 냈다.
이렇게 생겨난 두 개의 균열은 서리 늑대와 차원 용병을 각각 삼켜 버렸다.
서리 늑대를 삼킨 첫 번째 균열은 강아지처럼 작아진 서리 늑대를 2020년의 특급 헌터에게로 인도했다.
그리고 지금 차원 용병을 삼킨 두 번째 균열이 열리고 있었다.
거대한 늪지 한가운데 자리한 숲, 이 숲 위 까마득히 높은 하늘에서!
* * *
파스슥-
까마득한 하늘 위.
섬광이 터지고 균열이 열렸다.
그리고 이 균열에서 다람쥐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케페니안 황금 다람쥐 일족.
신입 차원 용병, 새끼 다람쥐였다.
데굴데굴데굴-
정신없이 바닥을 구르다가 어느새 균열에 삼켜졌던 새끼 다람쥐!
휘이이이이-
새끼 다람쥐는 까마득한 하늘에서 숲을 향해 떨어지며 분통을 터트렸다!
킥, 킼키기기키킼기킼키킼-!
‘마법사! 먹튀 한 마법사!’
완전히 놓쳤다!
먹튀 한 마법사를 완전히 놓쳐 버렸다!
분노, 슬픔, 억울, 고통!
온갖 부정적 감정이 폭발하듯 치솟아 새끼 다람쥐의 작은 머리에 가득 차는 순간.
툭, 두두둑, 콰아앙-
새끼 다람쥐는 굵직한 나뭇가지를 몇 개나 부러뜨리며 숲에 떨어졌다!
그리고 픽 정신을 잃었다.
새끼 다람쥐가 정신을 잃는 순간.
하늘에 생겨난 균열의 모습이 변했다.
갑자기 균열이 커지더니, 새하얀 안개가 폭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쏟아진 안개가 커다란 숲에 자욱하게 깔리는 순간.
구으, 구으응-
안개가 쏟아지는 균열에서 작은 빛의 고래가 튀어나왔다.
30cm 남짓한 빛의 고래는 영체와 실체에 걸쳐진 생명체, 어린 하늘 고래였다.
어린 하늘 고래는 신나게 지느러미를 흔들며 쏟아지는 안개 폭포를 타고 미끄러졌다!
구으, 구으으응-
하늘 고래의 즐거운 울음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지고.
부우, 부우우-
숨구멍에서 념(念)이 담긴 안개가 솟아 올라 사방으로 흩어졌다.
균열에서 쏟아진 안개는 물이 차오르듯이 거대한 숲에 가득 깔렸고.
어린 하늘 고래는 물놀이에 정신이 팔린 꼬맹이처럼 안개가 깔린 숲에서 신나게 놀았다.
휘이이잉-
쏟아지는 안개를 타고 미끄러지고.
데굴데굴, 빙글빙글-
높게 솟은 나무를 타고 흐르는 안개 위로 구르고 회전했다.
퐁, 퐁, 퐁-
어린 하늘 고래가 날아가는 궤적을 따라 호수에 돌을 던지는 듯한 파문이 퍼져 나가고.
부우, 부우웅-
숨구멍에서 쏟아진 념(念)이 숲에 가득 차오른 안개를 활성화 켰다.
허공의 바다를 유랑하던 하늘 고래의 선조를 부른 존재의 소망.
‘모든 것을 풍요롭게 하리라.’
념이 활성화된 안개가 이 거대한 숲에 가득한 수많은 나무를 변화시켰다.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참나무에 속하는 수많은 도토리나무가 하늘 고래의 념으로 활성화된 안개를 흡수했다.
줄기가 더 튼튼해지고, 잎이 더 푸르고 무성해지고, 열매가 더욱 크고 훌륭해졌다.
퐁, 퐁, 퐁-
나무 사이를 나는 어린 하늘 고래는 도토리나무들이 쑥쑥 자라자 더욱 신나게 념을 뿜어냈다.
부우, 부우우웅-
어린 하늘 고래는 노는데 완전히 정신이 팔려, 자신이 나온 균열이 닫히고 있다는 걸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숲에 가득한 안개를 어느새 도토리나무가 모두 흡수하고, 어린 하늘 고래가 이제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구으, 구으응-!?
집으로 돌아갈 문이 닫혔다는 것을 발견했다!
깜짝 놀란 하늘 고래는 균열이 열렸던 높은 하늘을 빙글빙글 돌았다!
퐁, 퐁, 퐁-
물결치듯 파문이 공중으로 퍼져 나가고, 빛으로 만들어진 듯한 몸이 허공으로 스며들었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균열!
안개가 폭포처럼 쏟아지던 구멍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구으, 구으으으-
하늘 고래는 재빨리 숲으로 내려갔다.
념이 담긴 안개!
숲에 가득한 안개를 도로 모으면 고향으로 갈 문을 열 수 있었다!
그러나 숲을 아무리 뒤져도 이미 도토리나무가 모두 흡수한 안개는 보이지 않았다!
퐁, 퐁, 퐁-
충격받은 하늘 고래가 우뚝 서 있을 때!
통-
머리에 맞고 떨어지는 작은 열매.
문득 고개를 내리는 순간 하늘 고래는 발견했다.
숲에 떨어진 나무 열매, 도토리.
그리고 도토리에 담긴 념이 느껴졌다!
도토리에 담긴 념을 모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늘 고래는 영체와 실체에 걸친 생명체지만, 아직 어린 하늘 고래는 영체에 더 가까웠다.
실체를 가진 도토리를 먹어 그 안에 담긴 념을 흡수할 수 없었다!
퐁, 퐁, 퐁, 퐁-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늘 고래가 빙글빙글 제자리를 돌며 생각할 때.
우오오오오-
도토리 숲에서 하울링이 울려 퍼졌다.
문득 고개를 돌리는 순간 하늘로 흩날리는 냉기 불꽃이 보였다!
그리고 이 냉기 불꽃에 담긴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하늘 고래는 반색해서 냉기 불꽃이 솟구치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발견했다!
새하얀 털에 마른 진흙과 나뭇잎, 지푸라기가 잔뜩 붙은 늑대들!
늑대들은 며칠 동안 굶은 것처럼 땅에 머리를 박고, 정신없이 하늘 고래의 념이 담긴 도토리를 먹고 있었다!
도토리를 먹을 때마다 늑대들의 몸에서 솟구치는 냉기 불꽃이 강해졌다!
순간 하늘 고래는 깨달았다.
자신은 실체가 있는 도토리를 먹지 못한다!
하지만 저 늑대들은 도토리를 먹고 그 안의 힘을 뽑아낼 수 있다!
‘잘됐다!’
퐁, 퐁, 퐁, 퐁-
하늘 고래는 신나게 날아가 정신없이 도토리를 먹는 늑대들에게 말했다.
구으, 구으으응-?
그러나 늑대들은 도토리를 먹는데 정신이 팔려 아무 대답이 없었다.
몇 번이나 물어도 대답이 없자, 하늘고라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벌렸다.
‘조금만 먹을 거니까 괜찮겠지?’
하압, 하아압-
하늘 고래는 늑대들 주위에 맴도는 냉기 불꽃, 서리혼을 삼켰다.
냠, 냠, 냐얌-
서리 늑대가 하늘 고래의 념이 담긴 도토리를 먹고.
하압, 하아압-
하늘 고래가 서리 늑대의 몸 주위에 맴도는 서리혼을 삼켰다.
서리 늑대는 아무리 먹어도 가시지 않는 허기에 더 빨리 도토리를 먹었고.
하늘 고래는 입안에서 느껴지는 시원하고 재밌는 느낌에 더 빨리 서리혼을 삼켰다.
서리 늑대가 도토리에 담긴 하늘 고래의 념을 흡수해서 서리혼이 강해지는 것보다.
하늘 고래가 서리혼을 먹어치우는 속도가 몇 배나 빨랐다.
월급보다 빠져나가는 카드값이 몇 배나 크면 당연히 통장에 구멍이 나는 법!
강적과 싸우다가 뿔뿔이 흩어져 거대한 늪지대를 건너온 서리 늑대 중 몇 마리가 의아한 듯 고개를 흔들었다가 봤다.
하압, 하아압-
커다란 입을 벌려 신나게 서리혼을 삼키는 하늘 고래를.
-……
-……
-……
어느새 모든 서리 늑대가 도토리를 먹는 걸 멈추고 고개를 돌려 하늘 고래를 봤다.
빛으로 이뤄진 작은 고래가 허공에서 지느러미를 흔들며 신나게 서리혼을 삼키고 있다!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일에, 서리 늑대들은 순간적으로 아무 반응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문득 고개를 든 하늘 고래와 눈이 마주치고.
구으, 구으으응-
하늘 고래가 반갑게 인사하는 순간.
강적과 싸우고 늪지를 넘으면서도 끝까지 서리혼을 지킨 서리 늑대들이 폭발했다!
크아아아앙-
서리 늑대들은 분노가 담긴 포효를 지르며 번개같이 달려들었다.
팡팡, 팡팡, 파앙-
그리고 서리혼을 삼킨 하늘 고래를 사정없이 쥐어박았다!
구으, 구응, 구으응-!
하늘 고래가 쉴 새 없이 두들겨 맞으며 슬피 울 때.
도토리 숲 중앙, 하늘에서 떨어져 정신을 잃고 기절했던 새끼 다람쥐가 번쩍 눈을 떴다!
* * *
킼-!?
번쩍 눈을 뜬 순간!
번개같이 일어나 주위를 돌아보는 새끼 다람쥐!
킥, 키키긱킼-!?
‘여기 어디야!?’
높게 솟은 나무, 두툼하게 깔린 낙엽!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까지!
숲이었다!
마법사는!?
먹튀 한 마법사는 어디로 갔지!?
타다다다다-
새끼 다람쥐는 다급히 숲을 달리며 먹튀 한 마법사의 흔적을 쫓았다!
이때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
하늘을 보는 순간 잊었던 기억이 퍼뜩 생각났다!
균열!
먹튀 한 마법사를 쫓아서 균열로 들어가기 직전!
이상한 놈에게 당해서 저 하늘에서 떨어졌다!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순간.
새끼 다람쥐는 다시금 깨달았다.
마법사를 완전히 놓쳤다!
자신은 이제 빚쟁이다!
-……!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에 새끼 다람쥐는 주춤주춤 물러서다가 무언가를 밟고 발라당 넘어졌다.
-……
새끼 다람쥐는 넘어진 채로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다.
먹튀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불같이 일어난 분노로 마법사를 추적했다.
케페니안 황금 다람쥐 일족은 결코 적을 용서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거세게 일어난 불도 태울 게 모두 사라지면 꺼지는 법.
추격에 실패하고 의욕이 꺾이자, 이제는 너무 힘이 들어서 그냥 깜빡하고 싶어졌다.
-……
새끼 다람쥐는 한참을 멍하니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이때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
꼬륵, 꼬르륵-
배에서 소리가 났다.
-……
새끼 다람쥐는 말없이 볼록볼록 움직이는 배를 봤다.
첫 의뢰를 최대한 빨리 수행하겠다고, 의뢰를 받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열심히 달렸다.
그랬던 의뢰가 사기였다는 게 밝혀지고, 먹튀 한 마법사를 잡는 것도 완전히 실패했다.
이제 빚쟁이가 돼서 집에도 못 돌아가는데, 너무나 슬프게도 배까지 고팠다.
그래도 먹어야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새끼 다람쥐는 힘겹게 일어나 먹을 것을 찾아 움직이려 했다.
이때 무언가 발에 툭- 걸렸다.
방금 밟고 넘어진 물체, 모자를 쓴 것 같은 작은 나무 열매였다.
킥-?
처음 보는 나무 열매인데 왠지 낯이 익었다.
새끼 다람쥐는 별생각 없이 땅에 떨어진 나무 열매를 주워 입에 넣고 씹었다.
콰드드득-
순간 새끼 다람쥐는 경악했다!
전신의 털이 삐죽 솟아오르고, 황금빛 줄무늬가 번쩍번쩍 빛난다!
케페니안의 빛이 아주 약간이지만 강해졌다!
아니 이건 중요하지 않았다!
평생 처음 겪는 이 엄청난 맛!
킥, 킼키킼-!
‘오묘한 씁쓸한 맛!’
킼키키, 킥깈키키키키키킼-!
‘털이 저릿저릿해지는 이 씁슬까끌까칠한 맛!’
새끼 다람쥐는 충격을 받은 얼굴로 씹던 열매를 도로 뱉어 확인했다!
동그란 열매에 모자를 씌운 것 같은 나무 열매!?
‘무슨 열매지!?’
문득 생각하는 순간 깨달았다.
보육원에서 그림책으로 봤던 그 열매다!
엄청엄청 높으신 분을 모시고 아주 오랫동안 재밌고 신나게 여행을 다니고 있다는 전설적인 선조님!
그 선조님이 발견해서 아무도 모르는 탑에 몰래 숨겨 두셨다는 전설적인 나무 열매!
‘도토리!’
새끼 다람쥐는 충격으로 비틀거렸다.
도토리를 발견하다니!
자신이 전설의 도토리를 발견하다니!
그리고 그 도토리를 그냥 먹어 버렸다니!
툭-
이때 충격으로 비틀거리는 발에 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무심코 고개를 내리는 순간 보였다.
나뭇잎 사이에 있는 도토리가!
새끼 다람쥐는 번개같이 나뭇잎을 치우고 도토리를 소중히 품에 안고 일어섰다.
이때 돌 사이에서 보이는 도토리!
새끼 다람쥐는 번개같이 달려가 돌을 치우고 도토리를 꺼냈다.
이때 또 도토리가 보였다!
새끼 다람쥐는 정신없이 움직였다.
낙엽, 흙, 돌, 나무뿌리, 풀 사이!
주울 때마다, 캐낼 때마다 도토리가 보였다!
도토리가 계속계속 쏟아져 나왔다!
어느새 새끼 다람쥐는 두 손으로 다 안지 못할 정도로 도토리를 잔뜩 캐서 벌떡 일어났다!
이때 바람이 불어왔다.
휘이이이이잉-
그리고 소리가 들려왔다.
후두두두득-
이 순간 새끼 다람쥐는 소중히 안고 있던 도토리를 모조리 놓쳤다.
데구루루-
소중한 도토리가 바닥을 구르는데도 새끼 다람쥐는 보지도 않았다.
-……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휘이이이이잉-
숲에 바람이 불어오자 나뭇가지들이 노래하듯 우수수 흔들렸다.
그리고 이 나뭇가지에서 열매가 떨어졌다.
후두두두득-
셀 수도 없이 많은 도토리 열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