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84화>
“하필이면 지금!”
천문석의 시선이 광화문 앞에 펼쳐진 군대를 훑었다.
게이트에서 돌연 빛이 쏟아지자, 다급히 움직이는 국군과 미군!
경복궁에 펼쳐진 진지는 낮에 봤을 때보다 몇 배나 보강됐다!
게이트 주위에는 돌진을 막기 위한 철조망과 철제 구조물이 쫙 깔렸고.
그 뒤로 수백 대의 전차, 장갑차가 벽처럼 세워져 게이트 앞에 사선을 만들었다.
후방에는 보병 진지가 셀 수도 없이 이어지고, 경복궁이 내려다보이는 고층 빌딩 층마다 진지를 쌓고 중기관총을 거치했다.
게다가 경복궁 뒤편 북악산 방향에는 수십 대의 다연장과 K9 자주포가 포신을 게이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때 육중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타타타타타-
장갑차, 주위 빌딩에 거치된 중기관총에서 화염이 쏟아졌다.
일반 탄환 사이사이에 끼워진 예광탄 줄기가 게이트 앞에서 십자로 교차했다.
화망 구성이 예술이었다!
좌우, 공중까지 15도에서 35도 각도로 쏟아진 탄환이 게이트 앞으로 모두 모였다.
게이트에서 쏟아진 마수와 몬스터는 1차 저지선, 철조망에 도착하기도 전에 교차하는 화망에 갈려 나갔다!
타타타타타타-
피 주머니가 터지듯 퍽, 퍽- 터져 나가는 머리와 툭 끊어져 사방으로 날아가는 팔다리!
랩터, 오크 같은 하급 마수와 몬스터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장난감처럼 나뒹굴었다.
트롤, 검치호 같은 중급 마수와 몬스터는 반발장으로 중기관총 사격을 버티고 1차 저지선까지는 달렸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콰아앙-
전차 포탄을 맞고 반발장이 날아가는 순간.
타타타타타-
사방에서 쏟아지는 대물 저격총과 중기관총 사격에 전신에 구멍이 뚫려 죽었다!
2차 웨이브가 시작됐다고 긴장한 게 우습게 전투는 일방적으로 진행됐다.
게이트에서 쏟아지는 마수와 몬스터는 첫걸음에 죽느냐 몇 걸음 걷고 죽느냐 차이일 뿐 1차 저지선을 넘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이때 돌연 하늘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쐐애애애애액-
전투기 편대가 높은 하늘을 비행하고.
타타타타타타-
공격 헬기가 북악산 방향에서 떠올라 경복궁 방향으로 날아오고 있다.
게이트가 처음 열리고 기습적으로 마수와 몬스터가 쏟아진 밀레니엄 축제 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수십 년 동안 전쟁을 대비한 국군은 유능했다.
전황이 유리한데도 방심하지 않았다.
하늘에는 전투기와 미군 공격 헬기가 날고, 북악산 방향에는 자주포와 다연장 포대가 포격을 쏟아부을 준비를 했다.
국군과 주한 미군은 게이트에서 쏟아질 적을 상대할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지금 말 그대로 갈아버리고 있었다!
이 정도 화력이라면 십만 단위의 마수와 몬스터가 쏟아져도 갈려 나갈 뿐이다!
문제는 강력한 반발장을 지닌 거대 괴수!
중기관총 사격으로는 거대 괴수의 반발장을 뚫을 수 없었다.
하지만 거대 괴수가 강력한 반발장으로 중기관총을 버티며 전진해도.
전차 포탄, 자주포 포격이 끝없이 쏟아지면 결국 발이 묶인다.
이렇게 한번 발이 묶이면 반발장이 완전히 깎일 때까지 두들겨 맞다가 박살 날 뿐이다!
국군과 미군은 물이 새어 나오는 수도꼭지를 막아 버리는 것처럼.
게이트 주위에 단 한 마리의 마수와 몬스터도 새어 나가지 않을 저지선을 펼쳤다!
이대로라면 2차 웨이브는 별 피해 없이 막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천문석의 얼굴은 어두웠다.
“하필이면 지금……!”
탄식을 흘린 천문석의 시선이 북쪽, 북한산 방향으로 향했다.
명멸하는 태양이 떨어지고, 마력 폭풍이 하늘로 치솟고 있다.
이 둘이 만나는 순간 EMP 마력 폭풍이 터진다.
2시간 후.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때.
EMP 마력 폭풍이 터지고 전자기기와 화약 무기가 무력화된다.
탄환이 나가지 않는 총은 그냥 몽둥이고, 시동이 꺼진 장갑차와 전차는 쇠로 만든 관일 뿐이다.
지금은 장난처럼 죽어 나가는 랩터, 오크 같은 하급 마수와 몬스터와 근접전을 벌이는 순간.
국군과 미군은 궤멸적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 * *
기이이이잉, 탁-
마법 도르래가 멈추고 옥상 난간에 발이 닿는 순간.
추이린의 외침이 들려왔다.
“야! 왔어!? 출발지 좌표 고정에 성공했다! 지금 목적지 좌표 따고 있다! 곧 우리 집에 간다! 하하하-.”
“1시간! 아니, 40분이면! 목적지 좌표도 잡을 수 있다!”
바로 김철수 발명가의 외침이 이어지고, 옥상을 달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타다다다다-
서리 늑대는 단숨에 옥상을 가로질러 와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처럼 짖었다.
컹, 컹-
서리 늑대는 펄쩍 뛰어 천문석의 배낭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따가! 이따가 줄게!”
천문석은 서리 늑대를 달래며 추이린에게 물었다.
“레이님은요? 아직 인가요!?”
“하, 걔 연락 안 돼! 미친 녀석 이런 상황에 뭘 하는 거야!?”
추이린은 분통을 터트리면서도 인이어 통신기를 짚고 레이 실트에게 쉴 새 없이 통신을 넣었다.
“레이! 들리냐? ‘문’ 열리면 바로 넘어간다! 너 그냥 버리고 갈 거야! 당장 와라!”
“마력장이 요동쳐서 통신이 안 된다. 아까 연결된 건 정말 운이 좋았던 거야.”
김철수 발명가가 이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젓더니 난간을 가리켰다.
[01:57:43]
마법으로 만든 시계.
점차 줄어드는 시간을 보는 순간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EMP 마력 폭풍이 터질 시간인가요?”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김철수 발명가.
“맞아! 정확하지는 않지만, 크게 차이 나지는 않을 거다! 좌표 잡을 시간은 충분하다!”
김철수 발명가의 말을 듣는 순간.
천문석의 시선이 광화문 게이트 방향으로 움직였다.
게이트에서 쏟아지는 마수와 몬스터와 전투를 펼치는 국군과 주한 미군이 보였다.
2시간 후 궤멸적 피해를 입을 군대.
이 군대를 보는 순간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어차피 2000년에 와서 친 사고가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렇다면 하나 정도는 더쳐도 되지 않을까?
지금 전투 중인 국군에게 달려가 EMP 마력 폭풍을 경고한다면?
일반인의 경고를 군에서 진지하게 생각할 리 없었다.
하지만 한강에 거대한 얼음 다리를 만들면서 수많은 사람에게 서울 헌터 부대 이세기 준장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상황이다.
그리고 정확히 EMP 마력 폭풍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전자기기와 화약 무기가 무력화될 가능성을 만났던 군인과 경찰들에게 알렸다.
한 번 더 서울 헌터 부대 이세기 준장의 이름을 팔아 EMP 마력 폭풍이 터지기 전에 후퇴시킨다면?
그러나 난장판이 된 한강에서 장교 한두 명 속이는 것과 지휘체계가 제대로 살아 있는 군부대를 설득하는 건 천지 차이다.
자신에게는 제대로 된 신분증도 2시간 후 일어날 EMP 마력 폭풍의 증거도 없었다.
지금 전투 중인 부대로 찾아간다면, 100이면 100 장교 사칭으로 영창에 끌려 갈 거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순간 번쩍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EMP 마력 폭풍의 증거가 있어도 국군은 뒤로 물러서지 않을지도 모른다!
천문석은 주위를 돌아봤다.
난장판이 된 도로와 박살 난 건물, 텅 빈 빌딩들.
육포를 찾아 종로 시가지를 달리는 동안 일반인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은 인구 천만의 대도시고, 게이트가 열린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강북에 사는 수많은 사람이 모두 한강을 건넜을 리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강을 건너기 위해 초조하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엄청날 거다.
2차 웨이브가 시작된 게이트에서 병력을 빼는 건.
마수와 몬스터들에게 시민들이 대피 중인 한강으로 갈 수 있게 길을 열어 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
이 순간 천문석은 깨달음의 탄성을 터트렸다.
게이트 사태 초기, 비효율적인 군의 대응과 엄청난 피해!
그 이유를 지금 알게 됐다.
국군은 무능해서 비효율적으로 움직인 게 아니었다.
비효율적으로 움직여야만 했기 때문에 비효율적으로 움직인 거다!
한강을 넘고 있는 수많은 시민이 있었으니까!
천문석은 시선을 돌려 난간 위 시계를 봤다.
[1:55:24]
‘시간은 충분하다!’
이 순간 천문석은 마음의 결정을 하고 외쳤다.
“잠시만! 자리 좀…….”
끼이이이이익-
이때 게이트에서 대기를 뒤흔드는 엄청난 포효가 울려 퍼졌다.
“거대 괴수!”
깜짝 놀란 추이린의 외침이 터질 때.
천문석과 김철수 발명가의 시선이 게이트 방향으로 움직였다.
금속질 비늘이 전신에 가득한 도마뱀!
도마뱀 형태의 거대 괴수가 나타났다!
쾅, 쾅, 쾅, 쾅-
수십 대의 전차 포가 동시에 불을 뿜었다.
포구에서 화염이 치솟는 동시에, 도마뱀 거대 괴수의 몸 주위에서 터져 나오는 붉은 마력광!
수십 발의 포탄이 반발장에 들어가는 순간 급격히 느려졌다.
깡, 깡, 깡-
철갑탄은 비늘에 닿기도 전에 운동에너지를 잃고 바닥에 떨어졌고.
파스스스-
구조물을 때린 성형작약탄에서 쏟아진 메탈 제트가 철조망과 구조물을 박살 냈다!
이때 도마뱀 거대 괴수가 움직였다.
쿵쿵, 쿵쿵쿵-
여덟 개의 발이 움직이는 순간 30미터가 훌쩍 넘는 거대한 몸통이 1차 저지선으로 돌진했다!
콰드드드득-
전차 돌격도 막아 내는 피스를 박아 고정한 윤형 철조망이 털실 뭉치처럼 돌돌 말리고 강철 구조물이 납작하게 찌그러졌다!
타타타타, 쾅쾅-
이때 중기관총이 쏟아지고 전차 포탄이 다시 한 번 발사됐다.
그러나 붉은 반발장을 뚫진 못했다.
순간!
파아앙-
엄청난 속도로 튀어 나가는 붉은 덩어리!
콰아앙-
거대한 도마뱀 혀가 장갑차 상부에서 불을 뿜던 중기관총을 박살 냈다.
그리고 이 혀가 옆으로 휘둘러지는 순간.
쾅, 쾅, 콰아앙-
장갑차와 전차가 당장이라도 뒤집힐 듯 요동치고 단단한 철판이 우그러들었다!
단숨에 저지선이 뚫릴 듯한 위기의 순간.
콰아아앙, 쾅, 쾅-
십여 대의 공격 헬기에서 미사일이 쏟아졌다.
도마뱀 거대 괴수의 등 곳곳에 화염이 치솟는 순간 다시 한 번 전차 일제 포격이 쏟아졌다!
1차 저지선을 뚫던 도마뱀 괴수가 좌우, 공중에서 쏟아지는 포격에 비틀거리며 멈췄다!
순간 예광탄 줄기를 따라 중기관총 사격이 집중됐다.
거대 괴수 반발장이 타오르듯 붉게 물들자, 포탄과 탄환은 반발장을 뚫지 못하고 후드득 땅으로 쏟아졌다.
하지만 돌진을 저지하고 발목을 잡은 이상 잡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거대 괴수도 생명체!
반발장이 완전히 깎이고 육체에 포탄이 쏟아지면 결국 죽는다!
이때 게이트에서 다시 한 번 포효가 울려 퍼졌다!
끼이이이이익-
대기를 떨어 울리는 포효와 함께.
쿵쿵, 쿵쿵쿵-
자잘한 마수와 몬스터를 짓밟고 튀어나오는 또 다른 도마뱀 거대 괴수!
한 마리가 아니다!
두 마리가 뒤엉킨 채 게이트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화력은 1차 저지선에 발이 잡힌 거대 괴수에게 집중된 상황.
이대로면 뚫린다!
천문석이 반사적으로 달려가 유인하려는 순간.
“으아악- 시바! 시바! 개 같은 상황!”
추이린이 분통을 터트리며 난간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번개같이 수인을 짚고 마법봉을 그으며, 정제 마석을 바닥에 던졌다.
“위험해!”
깜짝 놀란 김철수 발명가가 외치는 동시에.
팟-
깨진 정제 마석에서 쏟아진 마력이 푸른 안개처럼 추이린의 몸을 타고 돌았다.
그리고 난간에 올라선 추이린의 마법봉에서 새하얀 번개가 쏘아졌다!
순간 천문석은 마치 느려진 듯한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을 봤다.
아차 하는 얼굴의 추이린.
깨진 정제 마석을 향해 손을 뻗는 김철수 발명가.
꼬맹이가 아무렇게나 그은 선처럼 날아가는 하얀 번개.
추이린의 하얀 번개가 뻗어 나갔다!
도로, 진지, 장갑차, 공격 헬기, 1차 저지선을 지나.
게이트에서 뒤엉켜 기어 나오는 도마뱀 거대 괴수 두 마리를 향해서!
하얀 번개가 도마뱀 거대 괴수를 때리려는 순간.
공중에서 황금빛이 터져 나왔다!
파스스슥-
하얀 번개가 황금빛으로 빨려 들어가는 동시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괴성이 울려 퍼졌다.
킥, 키키키킼키키키킼키킼-
천문석은 봤다.
황금빛에서 튀어나온 존재가 하얀 번개를 흡수하더니.
팟, 팟, 팟-
마치 점멸 이동하듯 공간을 뛰어넘어 이동했다!
팟, 팟-
게이트에서 뒤엉켜 나오던 도마뱀 거대 괴수 두 마리의 얼굴, 등 위에서 잇달아 나타났다.
팟-
1차 저지선에서 화망에 두들겨 맞던 도마뱀 거대 괴수 꼬리 위에서 나타났다.
황금빛이 몸 위에 머무른 건 1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거대 괴수 세 마리는 건전지가 빠진 장난감처럼 픽픽- 쓰러져, 파르르 경련하며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끼이이이이이이-
단숨에 거대 괴수를 무력화시킨 황금빛 존재는 울부짖는 거대 괴수는 보지도 않았다.
휘이이잉-
단숨에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파아아아앙-
엄청난 속도로 북한산을 향해 날아갔다.
이 순간 느리게 흘러가던 시간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끼이이이이이이익-
거대 괴수의 고통스러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 번개 한방에 거대 괴수 셋이 주저앉았다고!?”
“마법 회로 손상될 뻔했잖아!”
추이린이 얼빠진 목소리를 내고, 김철수 발명가가 화를 낼 때.
천문석은 멍하니 북한산을 봤다.
폭발하는 황금빛과 함께 나타나 하얀 번개를 흡수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거대 괴수 셋을 아작내고 북한산으로 날아간 존재.
눈부신 황금빛을 두르고, 마지막에 봤을 때보다 몸이 작아졌다.
하지만 그 울음소리!
거대 괴수조차 고통에 울부짖게 하는 물기 공격!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나타나 상황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모습까지!
참으로 어이없게도 이 황금빛 존재의 모든 게 눈에 익었다.
천문석은 북한산으로 날아가는 황금빛 존재, 아니 새끼 다람쥐를 향해 말했다.
“……니케? 너 여기서 뭐 하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