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82화>
뜨거운 유황 연기가 대지 곳곳에서 치솟고, 불타는 검은 재와 숯이 비 오듯 쏟아지는 전장!
사기(邪氣)가 유황 연기 사이로 불어올 때.
들끓는 투지와 함성이 거대한 파도처럼 일어났다.
이 전장에선 인간, 이종족 연합군과 언데드 군단의 격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격전이 펼쳐지는 전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
이 산 정상에 새끼 다람쥐, 케페니안 차원 용병이 깃발을 세웠다!
파르르르르-
깃발이 거센 바람에 흩날리는 순간, 격전이 펼쳐지던 전장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고지를 점령했다!”
“위대한 열국에 영광을!”
“달려라! 심장이 터질 때까지!”
“죽는다면 깃발 아래에서 죽어라!”
……
연합군에서 쏟아진 함성이 전장을 뒤흔들고, 기사들이 전열에서 튀어나와 깃발이 세워진 산을 향해 돌진했다!
이 순간 깃발 앞에 선 케페니안 차원 용병이 외쳤다.
킥킼! 킼키키키킼키! 킼키-!
‘다했다! 의뢰 다 끝났다! 만세!’
차원 용병은 전신에 검은 재와 검댕을 잔뜩 묻힌 채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했다.
드디어 첫 번째 의뢰의 모든 임무가 끝났다!
이제 의뢰인에게 돌아가 의뢰금을 받으면 된다!
그리고 케페니안으로 돌아가 차원청에서 정산을 받으면!
높은 나무에 있는 바람과 볕이 잘 드는 집을 사러 갈 수 있다!
눈앞에 뽀송뽀송한 새집이 아른 거리는 순간.
타다다다닥-
차원 용병은 달아오른 숯불 위를 달려 펄쩍 뛰어올랐다.
후우우우웅-
강력한 상승기류를 타고 단숨에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동시에 전신에 휘몰아치는 황금빛!
케페니안의 빛!
마음 같아선 단숨에 의뢰를 받은 장소로 도약하고 싶지만, 그곳은 너무 멀었다!
그러나 문제는 없었다.
지름길, 나무를 지나서 건너가면 되니까!
차원 용병은 바로 도약했다.
파스스슥-
케페니안의 빛이 터지는 순간.
차원 용병은 무한한 혼돈에 자라난 빛의 나무 위를 날아가고 있었다.
나무 위를 걷는 다른 존재들과 달리.
차원 용병은 x, y축 평면 2차원의 존재가, z축 높이의 개념으로 공간을 이동하듯 나뭇가지들을 뛰어넘었다.
팟, 팟, 팟-
케페니안의 빛이 터질 때마다.
과거·현재·미래.
삼생을 하나로 이어 자라나는 나뭇가지들이 뒤로 밀려난다.
시공간 학파의 마스터 급 마법사도 불가능한 일을 차원 용병은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해냈다.
당연한 일이었다.
차원 용병이 사용하는 케페니안의 빛은 세계의 나무를 구성하는 빛과 같은 힘이었으니까.
혼돈에 경계를 그으신 분의 영혼육백을 태운 빛으로 혼돈에서 자라난 세계의 나무.
세계의 나무를 키우기 위한 빛이 모여 있는 곳이 케페니안 차원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지금 새끼 다람쥐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새끼 다람쥐에게 중요한 건 얼른 의뢰인을 만나 의뢰금을 받고 새집을 구하러 가는 거였다!
그래서 새끼 다람쥐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파슥, 파스슥-
세계의 나무 위를 가로질러 날아갔다.
이때 신나는 웃음소리가 세계의 나무에 울려 퍼졌다.
우히히히히히히힛-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세계의 나무 전체가 한여름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은 것처럼 흔들렸다.
휘이이, 휘이이이-
가지가 혼돈을 향해 쑥쑥 자라나고, 잎이 생기로 반짝반짝 빛나더니, 꽃 망우리를 터트렸다.
별과 같은 꽃잎이 흩날리고, 나뭇가지가 부드럽게 흔들릴 때.
휘이이, 휘이이이-
세계의 나무가 춤을 췄다.
우히히히히히힛-
동글게 말린 나뭇가지에서 들려오는 신나는 웃음소리를 따라서.
스카라베 왕국의 여왕.
허공도를 찾아 헤매는 샤.
케페니안 차원청의 원로들.
이들이 이 광경을 봤다면 깜짝 놀라서 바로 웃음소리를 쫓아 날아갔을 거다.
그러나 첫 임무를 완수한 새끼 다람쥐의 머릿속에는, 뽀송뽀송하고 볕이 잘 드는 보금자리 생각이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새끼 다람쥐는 흩날리는 꽃잎과 노래하듯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
파스슥-
섬광과 함께 바위산에 도착했다.
새끼 다람쥐는 재빨리 주위를 확인했다.
늪지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숲이 내려다보이는 바위산.
낯익은 동굴이 보였다!
케페니안 새끼 다람쥐는 한눈에 알아봤다.
처음 의뢰를 받은 동굴이다!
이 안에 의뢰인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새끼 다람쥐는 처음 의뢰를 받은 장소, 마법사의 레어에 도착했다.
* * *
타다다다닥-
새끼 다람쥐는 신나게 동굴 안으로 달려가며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려 외쳤다.
킥, 키키키키킼킥-
‘의뢰인님! 의뢰비 받으러 왔습니다!’
키키킥, 키키키킼키킼-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일했습니다!’
새끼 다람쥐의 씩씩한 외침이 동굴에 울려 퍼졌다.
……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킥-?
고개를 갸웃한 새끼 다람쥐는 머리를 들고 외쳤다.
킥, 키키킥-?
‘의뢰인님?’
킥, 키키킥-?
‘의뢰인님?’
……
동굴 안으로 달리며 몇 번이나 불러도 아무 반응이 없다.
아니, 동굴 안에서는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키킥, 키킼키키킼키-?
‘어디 볼일 보러 가셨나? 밖에서 기다릴까?’
새끼 다람쥐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꼬리로 동굴 벽을 툭 건드리는 순간.
핏, 핏, 핏-
마치 촛불을 훅- 불어 끈 것처럼 벽에 새겨진 마법 술식이 사라진다!
킥-!?
새끼 다람쥐의 시선이 사라지는 마법 술식을 따라 움직였다.
핏, 핏, 핏-
마법 술식이 사라지는 순간.
그 주위의 모습도 변해간다.
벽에 걸린 화려한 태피스트리.
장식대에 놓인 마력을 뿜어내는 마도구.
곳곳에 쌓인 반짝이는 보석과 황금 장신구.
핏, 핏, 핏-
이 모든 것들이 꺼지듯 사라지고 있다!
깜짝 놀란 새끼 다람쥐는 재빨리 쓱쓱-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여전히 꺼지듯 사라지는 물건들!
새끼 다람쥐는 몇 번이나 눈을 비비고 주위를 다시 봤다.
그러나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잠시 후 부유한 마법사의 레어는 모든 게 신기루처럼 사라져, 평범한 바위 동굴이 됐다.
보이는 것은 단단한 바위와 바위를 뚫고 나온 나무뿌리, 곳곳에 쌓여 있는 돌무더기와 먼지뿐!
-……!?
경악한 새끼 다람쥐가 돌처럼 굳어 있는 동안.
파스스스슥-
바닥에 새겨진 소환 술식, 고용 계약의 증표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킥, 키키키키킥-
‘고향으로 이어지는 길이 끊긴다!’
새끼 다람쥐는 반사적으로 소환 술식 위를 달려 케페니안 차원으로 도약하려다가 멈칫했다!
‘앗! 의뢰금을 못 받았는데!?’
이 짧은 망설임의 순간 소환 술식은 사라졌다.
바닥에 남겨진 것은 어딘가로 연결된 이동 술식뿐.
이동 술식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마법사의 지하 던전으로 이어지는 통로다!
순간 새끼 다람쥐의 눈에 안도의 빛이 스쳤다.
앗! 지하 던전에 계시는구나!
하긴 소원석을 가진 마법사가 의뢰금을 안줄 리가 없었다.
새끼 다람쥐는 재빨리 이동 술식에 올라서 케페니안의 빛을 터트렸다.
파스스슥-
섬광이 터지는 순간 새끼 다람쥐는 거대한 공동을 날고 있었다.
은은한 빛을 머금은 공동은 중앙의 높은 단을 중심으로 평평한 돌바닥이 펼쳐져 있었다.
공동 곳곳에 온갖 물건이 쌓여 있었다.
흑요석, 쇳덩어리, 말간 돌, 붉은 돌, 물이 가득 찬 항아리…….
반만 남은 방패, 부러진 검, 우그러진 갑옷, 우산, 대나무 피리, 나뭇잎이 가득 담긴 바구니…….
그러나 온갖 잡동사니가 쌓여 있는 거대한 공동에 ‘마법사’는 없었다.
더듬이를 세운 몸이 투명한 유령 개미들만 잔뜩 있었다!
킥, 키키키키킼-!?
‘마법사! 마법사님 어디 있어요?’
킥키킼, 키키키킼킼-!?
‘마법사님 보신 분 없으세요!? 꼭 찾아야 해요!’
새끼 다람쥐가 낮게 날며 애타게 외치는 순간.
유령 개미들이 더듬이를 비비며 고개를 저었다.
-……!?
순간 새끼 다람쥐의 머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보육원 선배들이 해 주던 이야기.
-열심히 일해도 먹튀 한번 당하면 망하는 거야.
-축축한 늪지에서 나뭇가지 줍거나, 어두운 땅굴에서 온종일 굴 파야 해.
-그러니까 꼭 계약서랑 의뢰인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꼭! 보험도 들어야 한다.
설마!
새끼 다람쥐는 소스라치게 놀라 잡동사니가 쌓여 있는 공동을 날며 외쳤다!
킥, 키키키키킥-!
‘마법사님! 장난치지 마세요!’
킥기기기키킼-!
‘하나도 재미없어요! 제발 제발 나오세요!’
키기기기키킼-!
‘소원석 안 주셔도 돼요! 차비만 주세요! 집에 갈 길만 열어 주세요!’
새끼 다람쥐는 다급히 외치며 거대한 공동을 날았지만, 공동 안에는 유령 개미뿐 마법사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마법사가 돌아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처음 계약했던 바위 동굴로 도약해 동굴 안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바위 동굴에도 마법사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고.
돌아온 집주인, 분노한 오소리에게 강한 항의를 받고 쫓겨났다.
케게게게케게게겍케켁-
새끼 다람쥐는 높은 바위 위에 앉아 멍하니 주위를 돌아봤다.
낯선 숲.
낯선 늪지.
낯선 바위산.
낯선 유령 개미.
낯선 분노한 오소리.
……
보육원을 나오고 첫 번째 의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아주 열심히 했는데!
먹튀 사기를 당했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너무 분하고, 억울하고, 황당해서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킥, 키킥, 키키킥-!
‘제발! 제발! 꿈에서 깨게 해 주세요!’
크게 외친 새끼 다람쥐는 머리로 단단한 바위를 들이박았다.
콩콩, 콩콩콩-
그러나 아무리 아프게 머리를 박아도 꿈에서 깨지 않는다!
현실이구나…….
꿈이 아니었구나…….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 시야가 흐릿해지고.
뚝, 뚝-
굵은 물방울이 단단한 바위에 떨어졌다.
새끼 다람쥐는 멍하니 생각했다.
소환 술식이 사라져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아니, 지금 돌아가면 끌어쓴 케페니안의 힘, ‘빛’을 자신이 다 갚아야 한다.
차원 용병은 한 명 한 명이 개인 사업자니까.
나무뿌리 아래 월셋집 보증금을 빼서 줘도 다 못 갚는다.
선배들 말대로 축축한 늪지, 어두운 땅굴로 쫓겨나 평생 빚을 갚아야 한다.
보육원 선배들 말대로 보험을 들어 두는 건데…….
문득 후회했지만, 월세가 반짝이는 나무 열매 10개인데 보험료가 7개나 됐다!
알바를 10개나 했지만, 월세를 내고 보험까지 드는 건 무리였다.
-……
새끼 다람쥐는 한참이나 낯선 풍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망했다는 것을.
그것도 완전히.
이때 차가운 칼바람이 불어왔다.
휘이이이이-
한겨울 칼바람에 축축한 얼굴과 먹먹해진 가슴이 말라갔다.
그러나 먹먹해진 가슴이 마른다고, 그 안에 가득 담겼던 분함, 억울함, 황당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바닷물이 마르면 하얀 소금 결정이 남겨지는 것처럼.
먹먹한 가슴이 마르자 그 속에 가득 찼던 감정들이 결정을 남겼다.
분노, 후회, 고통…….
온갖 감정이 뒤엉킨 결정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보육원을 나와 두근두근 기대와 희망을 품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던 케페니안 새끼 다람쥐는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았다.
곱씹은 분노는 불씨와도 같아, 마음속 모든 것을 태워 버리는 법.
성실하고 착실히 일해서 차근차근 부자가 되겠다던 착한 새끼 다람쥐는 이제 없었다.
새끼 다람쥐는 천천히 일어나 하늘을 향해 외쳤다.
킥, 키키키키키킼킥-
‘이제 착한 다람쥐는 없다!’
킥키, 키키킼킼키킼-
‘나는 복수의 화신이 될 것이다!”
순간 머릿속에서 명단이 만들어졌다.
복수 명단
1순위. 소환한 다음 도망친 마법사!
이 순간 복수의 화신이 된 새끼 다람쥐가 바위 위를 달렸다.
타다다닥-
빠르게 달려 펄쩍 뛰어오르자.
휘이이잉-
거센 한겨울 칼바람이 불어왔다.
거센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솟구친 순간.
파스스슥-
분노한 차원 용병은 섬광과 함께 도약했다.
절대 빚쟁이로는 케페니안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범죄자는 흔적을 남기는 법!
먹튀한 마법사가 의뢰한 장소부터 훑는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건 먹튀한 마법사를 찾아 의뢰비를 모조리 토해 내게 만든다!
키킼, 키키키킼킼킼-!
잡는다!
반드시 잡아! 의뢰비를 받아 낸다!
분노한 케페니안 새끼 다람쥐, 차원 용병이 먹튀한 마법사 에코를 찾아 도약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