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79화>
“난 반드시 건물주가 된다! 으아아악-.”
천문석이 힘을 끌어내기 위한 단어를 외치며 오리배 페달을 돌릴 때,
아리엘과 에코는 마침내 북한산 댐 보강을 끝냈다!
“아리엘님! 수위 안정됐습니다! 호수로 물 더 안 들어와요! 이제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에코의 외침을 들은 아리엘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걸로 천공탑의 미션은 해결이다!
이제 바로 광화문으로 가면 된다!
아리엘은 에코를 향해 외쳤다!
“잠시만 기다려! 골렘 핵 회수할 게!”
아리엘은 마법봉을 움직여 댐을 다지는 바위 골렘을 불렀다.
쿵, 쿵, 쿵-
육중한 바위 골렘이 능선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제 떠나야 할 순간.
아리엘은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새끼 고양이에게 칼로리 바를 무더기로 주며 말했다.
“조심해라. 칼로리 바도 아껴 먹고 아마 한동안은 살기 힘들 거야.”
무더기로 쌓인 칼로리 바 위를 폴짝, 폴짝 뛰며 좋아하는 새끼 고양이.
문득 이 고양이를 데리고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김철수 발명가가 몇 번이나 강조한 게 떠올랐다.
나비 효과.
아리엘 무겐다흐는 시공 계열 학파가 아니기에 세계의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시간 오류 수정자 에코의 말에 따르면. 이 세계는 분기점에서 갈라져 나와 수없이 원을 그리며 뒤엉킨 나뭇가지다.
지금 2000년에 일어난 사건이 미래 2020년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예측이 불가능했다.
미래가 변할 수도,
새로운 분기점이 나타날 수도 있었다.
아니면 시간의 복원력이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만들어 낸 변화를 지워 버리거나.
분기점이 사라지면서 뒤엉킨 나뭇가지가 하나로 합쳐져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영향이 극대화될 수도 있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이 닫힌 세계를 탈출해 2020년으로 돌아가야 알 수 있었다.
“하아- 뭐가 이렇게 꼬여 있냐.”
아리엘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 쉬었다.
케페니안 황금 다람쥐 일족과 엮여 파산하고 천공탑에 들어간 이후로 되는 일이 없었다.
냉기 지대를 나와 이 세계에 도착한 이후로는 특히 더!
이때 손에서 느껴지는 축축한 느낌.
문득 고개를 내리자,
새끼 고양이가 분홍색 혀로 손을 할짝이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마음이 움직였다.
‘이 작은 새끼 고양이가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러나 더 이상 동료들에게 부담을 줄 수는 없었다.
“같이 갈 수는 없겠네. 항상 조심해야 한다…….”
아리엘은 새끼 고양이의 목과 등, 배를 쓱쓱 문지르며 몇 가지 보호 마법을 걸어 줬다.
쿵, 쿵, 쿵-
이때 땅이 울리고 바위 골렘이 멈춰 섰다.
아리엘은 마법봉을 휙 그어 골렘을 해체했다.
쿠르르릉-
마력이 닿는 순간 바위 골렘을 이룬 커다란 바윗덩어리들이 결속력을 잃고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온 검은 구슬, 골렘 핵!
아리엘은 골렘 핵을 회수하고 하늘을 향해 외쳤다.
“에코 준비 끝났어!”
“바로 갈게요!”
호수 위에서 빙글빙글 원을 그리던 초대형 뱁새가 아리엘을 향해서 활강했다.
휘이이이잉-
거센 바람이 빠르게 가까워지더니.
탓-
능숙하게 아리엘을 낚아채는 초대형 뱁새!
훙훙, 훙훙훙-
초대형 뱁새는 짧은 날개를 열심히 휘저어, 빙글빙글 호수 위에 나선을 그리며 날아올랐다.
히리히리히리-
그리고 피리 소리를 닮은 울음소리와 함께 광화문을 향해 날아갔다.
호수가 멀어지는 순간 아리엘과 에코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 어떻게 안 걸리고 잘 끝났네…….”
“하아- 그러게요. 혹시 차원 용병 나타날까 봐 조마조마했어요.”
아리엘은 피식 웃으며 혀를 찼다.
“쯧쯧쯧- 야, 그러니까 케페니안 놈들 상대로 먹튀는 왜 한 거야! 계획적인 소비 몰라?”
“…….”
에코는 대답 없이 아리엘을 봤다.
그러나 이 침묵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러는 아리엘님도 빚쟁이잖아요?’
“…….”
그렇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자신과 에코 둘 다 케페니안 놈들이 쫓는 수배자…….
“……!”
순간 아리엘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케페니안 차원 용병을 피해 도망치느라 깜박하고 있었다!
“왜요?! 뭐 또 깜빡한 거 있으세요?!”
당황한 에코가 묻는 순간.
아리엘은 분통을 터트렸다!
“야! 에코 이 새끼! 너 내 이름으로 차원 용병 고용했잖아! 나만 빚쟁이잖아!”
“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문한 에코는 곧 깨달았다.
마도왕 무겐다흐의 이름으로 차원 용병을 고용했다!
즉, 자신의 이름은 케페니안 차원 용병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앗! 그러고 보니!”
“뭐?! 그러고 보니!! 하, 너 탈출하고 보자! 이 대가 내가 반드시! 모두 받아 낸다! 너 딱 구를 준비하고 기다려라!”
아리엘이 분통을 터트리고,
에코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하는 순간.
초대형 뱁새는 힐끗 두 사람을 보더니 짧은 날개를 열심히 휘저었다.
훙훙, 훙훙훙-
하늘에서 거센 바람 소리가 울려 퍼질 때.
냐아, 냐아아-
능선에선 새끼 고양이의 신난 울음소리가 울렸다.
새끼 고양이는 선물 받은 칼로리 바를 바위틈에 숨겨 두고 신나게 집으로 달렸다.
한참 동안 지름길을 달려 집이 있는 곳에 도착하자, 새끼 고양이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뽀미! 너 어디 갔던 거야!? 지금 괴물 나오고 난리 났어! 위험해!”
새끼 고양이, 뽀미는 언제나처럼 사뿐사뿐 걸어가, 다급히 외치는 사람 발 앞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울었다.
냐아아아-
곧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뽀미를 안아 드는 학생.
이때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선배! 여기서 뭐 해요! 빨리 와요! 지금 도서관에 학생들이랑 주민들 모두 모인데요!”
“어, 왜?! 도로 막고 여기서 버티는 거로 낮에 결정했잖아?!”
“ROTC 애들이 군부대랑 연락했는데. 중랑천 쪽 상황이 심상치 않나 봐요! 몬스터 무리가 이쪽으로 밀려올 수 있데요!”
뽀미를 안아 든 학생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학생은 뽀미를 내려놓고 쓱쓱 등을 몇 번 문지르고 도서관으로 달려가며 말했다.
“뽀미. 요기 집에 꼭 숨어 있어야 해! 혹시 무서운 괴물 나오면 재빨리 도망쳐야 한다!”
냐아, 냐아아-
알겠다는 듯이 대답한 뽀미.
그러나 학생들이 건물 너머로 사라진 순간.
뽀미는 가벼운 걸음으로 산책을 시작했다.
아직 어린 뽀미에게는 이 커다란 학교가 집이고, 이 학교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친구였다.
등과 배를 쓱쓱 문질러 주고,
맛있는 음식을 아낌없이 주는 친구들!
새끼 고양이 뽀미는 친구들을 만나러 소리 없이 학교를 향해 걸어갔다.
* * *
쿵, 쿵, 쿵-
육중한 걸음으로 북한산의 암반을 울리며 걷던 재의 기사가 멈췄다.
재의 기사가 멈춘 곳은 북한산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백운대 정상이었다.
[…… ]
재의 기사는 산 너머에 펼쳐진 도시를 바라봤다.
제국 수도 못지않은 화려한 문명의 빛을 피워 올린 거대한 도시.
언어도, 인종도, 문명의 방향도 다른 이세계의 도시다.
하지만 직접 이 거대한 도시를 걸어온 재의 기사는 알고 있었다.
이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도 제국의 시민들과 같은 인류였다.
그리고 불의 서약의 힘으로 느꼈다.
이 거대한 도시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는 것을.
이 모습을 보는 순간 오랜 기억이 되살아났다.
전능 옥좌가 떨어지고, 대협약의 약속이 깨어졌을 때.
모든 마탑이 빛을 잃고, 타이탄의 심장은 맥동을 멈췄다.
마도 황제 폐하의 상징, 돌과 철.
돌(石). 마력장 지대와 이어져 무한한 마력을 주던 마탑,
철(鐵). 강철의 폭풍으로 대륙을 휩쓸던 강철의 기사 타이탄.
마탑과 타이탄이 힘을 잃는 순간 죽은 듯 숨죽이던 대륙의 모든 악이 마도 제국으로 밀려왔다.
고대신, 악신, 허신과 그들의 추종자들.
차원을 넘어 도망쳤던 강대한 종족들.
신위에 달한 강자들!
마탑과 타이탄의 힘을 잃은 마도 제국의 마법사와 기사들에겐 이들을 막을 힘이 없었다.
요새 도시, 무역 도시, 강철의 도시 수많은 도시가 불타고.
제국 박물관이 가라앉고, 천공탑의 입구가 무너지고, 중앙 도서관의 모든 기록이 사라졌다.
그리고 수많은 기사가 죽고 죽었다.
그 기사들과 불렀던 노랫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선명하다.
[우리는 진군한다. 죽어 버린 전우여-]
헤아릴 수 없이 긴 세월이 지나 감정과 기억 재가 됐음에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노랫소리.
진혼진군가(鎭魂進軍歌).
재의 기사는 이 세계의 도시에서 싸우는 사람들에게서 전우의 모습을 봤다.
저마다 불꽃을 품고 마수와 몬스터와 싸우는 사람들.
이들의 가슴에서 타오르는 불꽃이야말로 기사의 맹세 그 자체였다.
‘인류를 지킨다!’
그렇다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이들의 가슴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하늘을 태울 정도로 크게 타오르게 하는 것!
그러나 일개 기사인 자신에겐 그런 힘이 없었고, 불의 서약을 하고 재의 기사가 됐어도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일이 가능하신 분은 오직 한 분.
타대륙에 문명의 빛을 밝히고, 대협약으로 모든 지성체의 제국을 세운 마도 황제 폐하뿐이다.
재의 기사는 문득 고개를 들어 천공을 올려다봤다.
불의 씨앗!
이 세계에 그분의 힘이 내려오고 있고,
그 아래에 자신이 있었다.
더는 망설일 게 없었다.
재의 기사는 롱소드를 뽑아 강철 건틀릿으로 훑었다.
스르렁-
검신이 오러의 빛으로 별처럼 빛나고.
화르르-
전신 갑옷이 발갛게 달아올라 불티를 흩날렸다.
날개처럼 흩날리는 불티를 두르고,
별처럼 빛나는 오러가 담긴 롱소드를 든 순간.
재의 기사는 웃었다.
불의 서약으로 기억과 감정, 존재의 본질 모든 것이 하얗게 타 버렸다고 생각했었다.
아니었다.
재의 숲, 무기의 벌판에 홀로 찾아와 고색창연한 원대륙 검으로 일곱 개의 별을 그려냈던 남자.
기억 속 그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온다.
‘기억해라. 타대륙의 기사여.’
‘삶은 유한하나, 본질은 영원히 이어지는 법!’
그 말 그대로였다.
긴 세월 모든 것이 불타 재만 남겨졌지만,
진정 중요한 것들은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돌과 철의 맹세.
하이브리온의 이름.
그리고 전우들과 목이 터져라 부르던 노랫소리!
우리는 진군한다-
죽어 버린 전우여-
다시 한번 진혼진군가의 노랫소리가 가슴속에서 울려 퍼지는 순간.
육중한 갑옷 속 하얗게 타 버린 재 속에서 불씨가 발갛게 타올랐다.
불씨가 되살아난 순간 두 번 검이 그어졌다.
왼쪽에서 오른쪽, 가로로 갑옷을 찢고.
머리에서 배까지, 수직으로 투구, 갑옷, 요갑을 쪼개버린다.
빛나는 오러가 실린 롱소드가 소리도 없이 전신 갑옷을 십자로 찢는 순간.
콰아아아아-
폭발하듯 터져 나온 하얀 재가 까마득한 천공으로 솟구쳤다!
불의 서약에 묶여 있던 영과 혼이 날아가고, 육과 백이 스러지는 순간.
옛 제국의 기사는 천공을 향해 오래전 그 날처럼 노래했다.
[우리는 진군한다-]
[죽어 버린 전우여-]
……
재의 기사의 본질을 태운 하얀 재는 진혼진군가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불꽃이 됐다.
불의 서약의 힘을 품은 마력 불꽃의 격류가,
마도 황제의 힘이 담긴 ‘불의 씨앗‘을 향해 솟아 올랐다.
불의 씨앗을 개화시키기 위해.
이 세계의 모든 생명체에게,
불의 씨앗에 담긴 힘을 전해 주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