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75화>
게이트가 열린 광화문으로 향하는 도로.
무너진 건물과 불타 버린 차량이 사방에 널려 있고,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리는 건물이 시가지 곳곳에 보였다.
쾅, 콰아앙-
돌연한 폭음이 불타는 시가지 곳곳에서 터질 때마다.
크아아, 끼이이익-
수많은 마수와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뒤엉켜 울려 퍼진다.
광화문 게이트에서 쏟아진 마수와 몬스터가 휩쓸고 지나간 서울 중심지는 폐허가 되어 있었다!
폐허가 된 시가지를 지나는 도로 위로 상수도관에서 쏟아진 물이 강처럼 흐르고.
쏴아아아아-
이 도로 위를 전차와 장갑차, 완전무장한 군인들을 가득 태운 군용 트럭 수십 대가 달리고 있었다.
이들의 목적지는 경복궁에 생겨난 게이트였다.
그리고 이 행렬 선두, 전차 위에 타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청바지에 가죽 재킷을 입고,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머플러를 둘둘 감은 일반인.
천문석이었다.
“…….”
천문석은 멍하니 자신의 손에 들린 확성기를 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봤다.
전차, 장갑차, 군용 트럭 수십 대!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군인들은 진짜 장성과 눈이 마주친 것처럼 바짝 긴장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섬뜩한 직감이 뇌리를 스친다.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확성기를 들고 외쳤다.
[3시 방향! 2층 건물!]
[11시 방향! 건물 잔해!]
[랩터 무리 매복! 제압 사격!]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사방에서 들려오는 외침!
“사선 확인!”
“사선 확인!”
……
타타타타타-
전차와 장갑차 기관총에서 쏟아진 탄환이 2층 건물과 건물 잔해를 훑었다.
끼에엑, 끼에에엑-
기습할 기회를 노리던 랩터 무리가 기관총에서 쏟아진 대구경 탄환에 돈좌된 순간.
군용 트럭에서 하차한 보병이 우회해 돈좌된 랩터 무리에게 소총탄을 점사로 쏟아부었다.
“사선 확인!”
타타탕-
“사선 확인!”
타타탕-
……
사선 확인의 외침과 함께!
순식간에 매복한 랩터 무리를 정리하고, 확인 사살을 시작하는 보병들.
이때 전차장이 해치 밖으로 몸을 내밀며 천문석을 향해 말했다.
“역시 서울 헌터 부대! 이세기 준장님! 대 몬스터 전 전술의 전문가십니다! 준장님의 지휘로 여기까지 안전하게 올 수 있었습니다!”
하, 하하-
천문석은 어색하게 웃으며 랩터를 확인 사살 중인 군인들을 봤다.
탕, 탕-
능숙하게 몸통에 두 발씩 총알을 박아넣는 군인들.
군인들은 마치 2020년 헌터 부대 병사들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이 가르쳐 준 그대로!
약 30분 전.
천문석이 자전거를 타고 서리 늑대와 함께 도로를 달리던 중에 만난 군부대.
군용 트럭을 탄 군인들은 자신과 서리 늑대를 보는 순간 바로 경례를 했다.
“충성!”
어느새 자신은 대 몬스터 전의 전문가, 서울 헌터 부대 준장으로 알려져 있었다!
한강에서 소령이라고 팔았던 약이 스스로 데굴데굴 굴러 준장이 된 것도 어이없는데.
어느새 한강 변을 넘어 서울 시가지를 달리는 군부대까지 전해졌다!
‘아니, 뭐가 이렇게 허술해!?’
신분증도 없는데 대 몬스터 전 전문가!
서울 헌터 부대 준장이란 걸 믿는다고!?
어이없어하는 순간 들려왔던 탄성.
“저 개가 그 개군요! 한강을 얼려서 수많은 시민을 구한 시고르자브르 종! 군견 소위님!”
군인들은 감탄하는 눈으로 서리 늑대를 바라봤다.
“……!?”
천문석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깨달았다.
아직 각성 동물이 나타나기 전, 서리 늑대가 한강을 얼린 것이 이 시대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줬다.
최초로 나타난 재앙급 마수 서리 늑대와 자신의 구라가 시너지를 일으킨 것이다!
처음 범람하는 중랑천에서 경찰관에게 한 구라가 구르고 굴러 거대한 눈사태를 일으켰다!
“…….”
어이없었지만, 천문석은 좋게 생각했다.
어차피 몇 시간 후에는 2020년으로 돌아가고 이 모든 건 해프닝이 될 뿐이다.
그래서 천문석은 게이트로 이동 중이라는 군부대와 동행했다.
처음에는 빨리 이동하게 됐으니 잘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이 생각이 착오였다는 걸 알게 됐다.
2000년 대한민국 군대에는 대 몬스터 전 교리가 없었다.
시가지에 흩어진 마수와 몬스터는 끝없이 기습했고, 부적절한 대응으로 군부대의 전진 속도는 계속 늦어졌다.
이대로라면 해가 지기 전에는 광화문에 도착하지 못할 상황.
천문석이 나섰다.
-처음은 확성기를 잡고 마수와 몬스터의 매복지점을 알렸다.
기관총의 제압 사격으로 기습 전에 마수와 몬스터를 돈좌시키고, 우회한 병사들이 소총탄 점사로 돈좌된 마수와 몬스터를 쓸어버렸다.
-다음은 대 몬스터 전의 시작이자 끝. 사선 관리를 주입했다.
병사들은 사격 전 ‘사선 확인‘이라 외치며 한 번 더 사선을 확인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마지막으로 반드시 확인 사살을 하고, 절대 몬스터를 맨손으로 만지지 못하게 했다.
확인 사살을 위해 쏜 총탄이 꽂히는 순간.
끼이이이익-
죽은 듯 쓰러져 있던 랩터가 발작적으로 갈고리발톱을 휘두르다가 사방에서 날아온 총탄에 죽는다.
뭐든지 할수록 익숙해지는 법!
마수, 몬스터와 전투를 거듭할수록 군부대의 이동 속도는 빨라졌고.
천문석은 확성기를 잡고 신나게 지휘했다.
마수와 몬스터의 기습에 이동이 지지부진하던 부대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그리고 현재가 됐다.
상념에 빠졌던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봤다.
능숙하게 랩터 무리의 확인 사살을 끝내고 군용 트럭에 탑승하는 군인들.
그리고 그 뒤로 길게 이어진 행렬.
장갑차, 군용 트럭, 군용 트럭, 장갑차, 군용 트럭…….
선두 전차에 올라선 자신을 따라 천명에 가까운 군인들이 이동하고 있었다!
이 행렬 곳곳에서 감탄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울 헌터 부대 준장…….”
“초능력자…….”
“대 몬스터 전 전문가…….”
“군의 비밀 부대…….”
“한강…… 얼음 다리…….”
……
“…….”
경의와 찬탄이 담긴 시선과 목소리가 전해지지만.
천문석은 웃을 수가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대 몬스터 전 교리는 치열한 게이트 전쟁에서 서서히 발전한다.
그런 대 몬스터 전 교리가 게이트가 열린 1일 차에 나타났다.
단지 몇 마디 조언을 한 것만으로 군인들은, 순식간에 마수와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었다!
자신이 세기말 대한민국을 얕봤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며 몬스터 대가리를 깨고, 화염병을 던져 오크를 불태우고 박살 냈다.
순식간에 거대한 둑을 만들고, 제방을 무너뜨릴 폭약을 설치했다.
이 사람들이 세기말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6·25 이후 불꽃 같은 근현대사에 단련된 대한민국 국민!
자신은 다시 한 번 나비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이건 장철 가족을 도와준 일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 일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감이 안 왔다.
그러나 어차피 터진 사고였다.
“괜찮겠지?”
“그래. 괜찮을 거야…….”
“맞아. ‘사선 확인‘몇 년 빨리 외친다고 역사가 바뀔 리는 없잖아?”
천문석은 자신을 합리화하며 재빨리 확성기를 들고 외쳤다.
[7시 방향! 갈림길! 랩터 무리 접근!]
[2시 방향! 버려진 버스! 고블린 무리 매복!]
“사선 확인!”
“사선 확인!”
……
복창과 함께 기관총이 쏟아지고, 동시에 군용 트럭에서 하차하는 보병들!
보병들은 빠르게 흩어져 엄폐하고 화망을 구성하고 사격을 시작했다.
“사선 확인!”
“사선 확인!”
……
너무나 불길하게도 이들은 몇 년은 마수와 몬스터와 싸운 베테랑 헌터처럼 능숙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
* * *
30분 후 광화문 도로로 진입하기 전 천문석은 군인들과 헤어졌다.
“감사합니다! 준장님!”
“충성!”
“충성!”
군인들이 사방에서 경례하며 외치자.
전차 안에서 늘어지게 자다가 나온 서리 늑대가 대답하듯 울었다.
우오오오오오-
하울링에 실린 강대한 마력이 실린 몸을 저릿저릿하게 울렸다.
순간 사방에서 쏟아지는 탄성!
“저 개가 비밀 병기……!”
“……초능력을 가진 개!”
“한강을 얼렸다더니!?”
“……시고르자브르 종!”
……
뜻은 알아듣지 못해도, 어조에 담긴 감탄은 서리 늑대에게 전해졌다.
서리 늑대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탄성에 만족스럽게 울었다.
컹-
순간 사방에서 다시 한 번 쏟아지는 탄성!
“…….”
천문석은 멍하니 이 모습을 바라봤다.
서리 늑대를 정부에서 비밀리에 만들어 낸 초능력 견종, 시고르자브르 종이라고 외치며 감탄하는 군인들!
뭐를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감이 안 올 정도로 상황이 엉망진창 뒤죽박죽이었다.
그래서 천문석은 그냥 마주 경례를 하고 바로 몸을 돌려 달렸다.
“충성! 귀관들의 무운을 빈다!”
타다다닥-
뒤따라 달리는 서리 늑대 뒤로 경례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감사합니다! 준장님!”
“감사합니다! 시고르자브르종 소위님!”
“충성, 충성…….”
길을 몇 번 꺾자 군인들의 외침 소리는 곧 사라졌고, 목표인 광화문 빌딩이 멀리 건물 사이로 보였다.
드디어!
동료들이 있는 목적지가 보인다!
천문석은 동료들이 있는 광화문 빌딩을 향해 직선으로 달렸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지만, 동료들은 자신과 서리 늑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거다!
그러나 광화문 빌딩이 가까워질 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김철수 발명가는 몇 번이나 나비효과를 조심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자신은 서리 늑대를 찾아 광화문으로 돌아오며 수많은 사건을 일으켰다.
“…….”
동료들에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고뇌하는 동안 빌딩이 빠르게 가까워졌고, 천문석은 마음의 결정을 했다.
이미 저지른 일, 나비효과는 나중에 생각한다!
지금은 서리 늑대와 함께 빌딩 옥상에 올라가 집으로 돌아가는 게 우선이다!
“저 빌딩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해! 내 뒤로 바짝 붙어서 따라와라!”
컹-
서리 늑대가 대답하는 순간.
천문석은 박살 난 1층 메인 게이트로 들어가 난장판이 된 로비를 지나 계단으로 달렸다.
콰아앙-
강철봉을 때려 박아 방화문을 열고 바로 계단을 오르는 천문석.
층마다 난 창밖으로 광화문 도로와 그 너머 게이트가 생겨난 경복궁이 한눈에 보였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검게 타들어 간 마수와 몬스터 사체였다!
새천 년 맞이 축제가 진행되던 광화문 앞 도로에,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는 검게 탄 마수와 몬스터 사체가 가득 깔려 있었다.
“소이탄을 쏟아부은 건가? 어, 그랬으면 주위 가로수가 멀쩡할 리 없는데!?”
천문석이 고개를 갸웃할 때.
광화문 도로에 가득한 마수와 몬스터 사체를 중장비를 동원해 밀어낸 길로, 전차와 장갑차, 군용 트럭이 줄줄이 지나가 경복궁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눈에 익은 부대!
자신과 같이 이동한 군부대다.
천문석의 시선이 군부대를 따라 움직였다.
높게 솟은 광화문과 그 옆으로 이어지던 벽은 이미 무너진 상황.
경광봉을 흔드는 군인들의 인도를 받아 전차와 장갑차, 병력을 실은 군용 트럭이 게이트 주위로 흩어지고 있다.
게이트 바로 앞.
3대씩 모인 전차가 반원을 그리고, 그 뒤 장갑차량을 줄줄이 세워 차 벽을 만들었다.
곳곳에 모래포대로 만든 기관총 진지가 깔렸고, 후방에는 대형 헤드라이트와 통신, 발전설비가 설치되고 있었다.
그리고 게이트 주위에 있는 건 대한민국 국군만이 아니었다.
주한 미군 전차와 장갑차, 병력이 주위에 쫙 깔렸다!
광화문 게이트 주위, 경복궁 지역 전체를 한국군과 주한 미군이 총동원되어 완전히 봉쇄하고 있었다!
이것만이 아니다.
방호복을 입고 산소 호흡기를 착용한 사람들이 게이트에 달라붙어 장비를 설치하고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다.
지구에 첫 게이트가 나타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국군과 주한 미군, 연구원들까지 모조리 달라붙어 게이트를 봉쇄하고 조사하고 있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기록대로라면 지금 게이트 주위에선 거대 괴수, 마수, 몬스터와 국군의 전투가 벌어져야 했다!
그러다가 EMP 마력 폭풍이 터지고 모든 게 난장판이 되는 게 기록된 역사다!
광화문 도로에 죽은 마수와 몬스터가 있지만, 수가 너무 적다!
그 주위에 있어야 할 마수와 몬스터 특히 거대 괴수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게이트는 잔잔한 수면을 드러낸 채 빛을 잃고 침묵 중인 상황!
보는 순간 감이 왔다.
1차 웨이브가 끝났다!
어떻게 했는지 국군이 1차 웨이브를 큰 피해 없이 막아 냈다!
“거대 괴수를 어떻게 잡은 거야!? 항공 폭탄이라도 쏟아부었나!? 아니, 잡긴 한 거야? 거대 괴수 사체가 안 보이는데?”
창문에 붙어 주위를 샅샅이 살폈지만, 거대 괴수를 잡은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풀리지 않은 의문이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여기서 고심해 봐야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옥상에서 모든 것을 봤을 동료들에게 묻는 게 빨랐다!
이야야얍-
내력을 끌어올린 천문석은 전력을 다해 계단을 올랐다.
순식간에 도착한 최상층!
그러나 옥상으로 나가는 문이 없었다!
“어? 뭐야 잘못 온 건가!?”
재빨리 복도를 달려 반대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반대쪽에도 옥상으로 나가는 문은 없었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
인식 장애 마법 회로를 깔았구나!
돌아온 천문석은 바로 기감을 끌어올린 손으로 벽을 훑었다.
쓰으으으으윽-
벽을 스치는 손으로 전해지는 감각!
곧 평범한 벽에서 철문의 촉각을 찾아냈다.
쿵, 쿵, 쿵-
천문석은 철문 위치를 두들기며 외쳤다.
“저 왔습니다! 이거 문고리가 분명 여기 있었는데!?”
몇 번이나 두들기며 문고리 위치를 확인했지만, 대답도 없고 문고리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뚫을까?
그러나 옥상 전체에 마법 회로가 깔린 상황이다.
벽을 뚫었다가 마법 회로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천문석은 옆에 앉은 서리 늑대에게 말했다.
“야, 업혀라.”
서리 늑대를 업은 천문석은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가 내력으로 창문을 잘라 냈다.
휘이이이잉-
거센 바람이 불어올 때, 천문석은 밧줄에 흑요석 헤드를 묶었다.
그리고 빙글빙글 돌리다가 휙 옥상으로 던졌다.
탁, 타탁-
한 번에 구조물에 흑요석 헤드가 걸려 밧줄이 단단히 고정됐다.
천문석은 창밖으로 나와 밧줄을 잡고 벽을 타고 올라갔다.
옥상 난간이 앞에 보이는 순간.
천문석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자신은 과거를 바꾸는 대형 사고를 몇 번이나 쳤다.
동료들을 볼 낯이 없었다.
“…….”
그래서 천문석은 몇 번이나 심호흡한 후 난간을 잡고 옥상으로 올라 가며 외쳤다.
“저 왔습니다! 서리 늑대 왔어요! 이제 우리 돌아가면 됩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법 회로가 새겨진 광화문 빌딩 옥상.
동료들이 모두 있어야 할 이곳에 있는 사람은 저 멀리 쓰러져 있는 한 사람뿐이었다.
“추이린 수석 연구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