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73화>
격전을 벌이는 1만의 오크 군단 다리 아래!
기척을 죽인 천문석이 이동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바로 걸렸을 상황!
그러나 지금 오크 군단이 싸우는 상대는 강적 오우거였다!
상급 몬스터 중에서도 강력한 오우거는 다른 곳에 신경을 분산한 채로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오크들의 모든 신경이 오우거에게 집중됐다!
당연히 자신들의 다리 아래로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평범하게 바닥을 기어 갔다면 순식간에 걸렸을 거다.
천문석은 바닥을 기어가지 않았다.
기척을 죽이고 전신에 내력을 일으켜 손과 발로 바닥을 밀었다!
구르르르르르-
순간 바퀴 달린 롱보드를 타는 것처럼 오크 군단 아래로 빠르게 미끄러졌다!
툭, 툭-
어쩔 수 없이 몇몇 오크와 접촉했지만.
크아-?
흠칫 놀란 오크가 땅을 봤을 때, 천문석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카캬카-.’
천문석은 내심 웃음을 삼키며 기감을 사방으로 뻗었다.
‘모든 계획이 완벽하게 맞아 들었다!’
오크 군단과 오우거의 기세와 투지가 충돌해 거대한 태풍처럼 뒤엉킨다!
천문석은 뒤엉키는 기세와 투지를 통해 오크 군단과 오우거를 견주었다.
활화산처럼 폭발하는 살기와 투지!
분노한 오우거가 1만의 오크 군단을 압도했다!
군단의 오크들은 주저 없이 돌진하고, 창을 던지고, 함성을 지르고, 피를 토할 때까지 마력을 뽑아내 북을 두들겼다.
그러나 오우거는 강대한 피지컬로 달려드는 모든 오크를 죽이고 피어를 터트려 주술력을 끊어 버렸다!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오크 군단!
파리 때려잡듯 오크를 때려잡는 오우거!
오우거의 완전한 승리로 전투가 끝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전사들이 수없이 죽어 나가는데도 오크 군단의 기세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크 로드!
오크 군단을 지휘하는 건 오크의 종족 한계를 넘어선 오크 로드였다!
하급 몬스터, 오크는 초짜 헌터도 마탄만 사용하면 어렵지 않게 사냥할 수 있는 몬스터였다.
그러나 오크는 모이면 모일수록 강해지는 특성을 지녔다.
100이 모이면 헌터 팀이.
1000이 모이면 레이드 팀이.
1만이 넘어가고 오크 로드가 탄생하면 헌터 부대가 움직여야 한다.
베테랑 헌터들만 모인다는 고산 마을 북쪽, 겹겹이 펼쳐진 마경.
베히모스, 강철 와이번, 구름 거인, 산성 슬라임…….
수많은 상급 마수와 몬스터를 압도하고, 마경의 중심을 영역으로 가진 것도 오크 군단들이다.
천문석은 직감했다.
오크 로드가 움직이면 전황은 변한다!
폭발하는 활화산처럼 몰아치던 오우거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오크의 해일에 삼켜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승패가 어떻게 갈릴지는 그 누구도 몰랐다.
계획대로!
그렇다. 사실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우거와 오크 군단 누가 이기건 진정한 승자는 따로 있었다.
시간을 끄는 데 성공한 자신과 둑 건설을 끝낸 2000년의 대한민국 시민들이 진정한 승리자들이다!
오우거와 오크 군단.
둘 중 누가 이긴다 해도 중랑천에서 쏟아질 수십만 톤의 격류, 자연의 힘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니까!
‘카캬카-.’
천문석은 다시 한 번 웃음을 삼키며 힘차게 바닥을 밀었다.
구르르르르르-
오크의 다리 사이로 쭉- 뻗어 나갈 때 갑자기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재빨리 고개를 들어 앞을 보자 폐허가 된 시가지가 나타났다.
오크 군단에서 빠져나왔다!
몸을 일으켜 도망치려 할 때.
섬뜩한 살기가 뒤에서 쏟아졌다!
“……!”
깜짝 놀란 천문석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눈이 마주쳤다.
오크!
갈기처럼 치솟은 붉은 털.
전신에 새겨진 빛나는 문신.
숨 쉬듯 불티를 흩날리는 털가죽 외투를 입고, 별처럼 빛나는 점이 박힌 흑요석 도끼를 들었다.
겉으로 새어 나오는 위압감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 안에 거대한 힘을 갈무리하고 있는 오크.
오크 로드!
“오크 로드가 왜 여기서 나와!”
경악한 천문석이 외치는 동시에, 오크 로드의 흑요석 도끼가 떨어져 내렸다.
탓-
천문석이 몸을 비틀며 손으로 바닥을 때려 몸을 공중으로 날리는 순간.
퍽-
오크 로드의 흑요석 도끼가 천문석이 누워 있던 도로를 때렸다.
흑요석 도끼는 두부를 때린 것처럼 아스팔트 속으로 파고들더니.
콰드드드득-
엄청난 와류를 만들어 냈다!
짓뭉개진 아스팔트가 나선을 그리며 뒤틀리고!
소용돌이친 공기가 초대형 진공청소기처럼 몸을 끌어당긴다!
공중에 뜬 몸이 와류의 중심.
흑요석 도끼를 향해 끌려 간다!
순간 천문석과 오크 로드와 눈이 마주쳤다.
광포한 푸른 기운이 담긴 눈에서 섬뜩한 살기가 폭발하고 전투 함성이 터지려는 순간.
콰아아앙-
천문석은 번개같이 굉천수를 터트렸다.
바로 앞에서 쏟아진 엄청난 섬광과 굉음에 군단 후위에 자리한 오크 수십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오크 로드는 오크 로드!
오크 로드는 굉천수의 눈뽕을 처음 맞았는데도 순간적으로 마력을 움직여 눈을 보호했다!
새어 들어온 빛에 주춤주춤 물러서지만, 투지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대단하다!”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리며 레이 실트의 강철봉을 찔렀다.
크아아아아-
오크 로드가 전투 함성을 터트리며 흑요석 도끼를 내려쳤다!
후우우웅-
허공을 수직으로 자르는 순간 다시 한 번 생겨나는 와류!
부우우웅-
찔러 가던 강철봉이 태풍에 휩쓸린 갈대처럼 요동쳤다.
타점이 흔들리고 강철봉에 실린 힘이 산산이 흩어진다!
천문석의 강철봉은 아무 위력 없는 강아지풀처럼 오크 로드의 털가죽 외투에 닿으려 했다.
그러나 오크 로드는 방심하지 않았다.
크아아아-
오크 로드는 반발장을 모두 모아 전투 함성에 담아 터트렸다!
까아앙-
집중된 반발장에 강철봉이 튕겨 나가는 순간.
오크 로드는 대지를 부숴 버릴 듯 짓밟고 돌진했다!
쿵-
그러나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 쏟아지는 엄청난 현기증!
하늘과 땅이 뒤집히고, 눈의 초점이 잡히지 않는다.
쉴 새 없이 세상이 흔들려 서 있는지, 쓰러졌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오크 로드는 엄청난 현기증에 꺼지듯 땅으로 넘어져 데굴데굴 굴렀다.
천문석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처음 찔러 간 강철봉은 낚시였다.
강철봉으로 오크 로드가 반발장을 터트리게 낚고, 반발장이 흩어진 순간 번개같이 구인창의 암경(暗勁)을 흘려 넣었다.
오우거를 굉천수로 낚고 구인창이 실린 강철봉을 때려 박은 것과 같은 방법이다.
오크 로드는 완전히 무력화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길어야 몇 초의 시간을 번 것뿐이다!
그리고 지금 오크 로드와 싸우는 것은 오우거에게 어부지리를 주는 행위!
오크 로드를 굴린 천문석은 바로 도망치려 했다.
이때 눈에 밟히는 게 있었다.
숨 쉬듯 불티를 흩날리는 털가죽 외투!
별처럼 빛나는 점이 가득한 흑요석 도끼!
쾅-
도망치던 천문석은 땅을 밟고 뛰어 몸을 돌렸다.
벌써 회복해 몸을 일으킨 오크 로드가 빠르게 가까워진다!
천문석은 바로 강철봉을 내려치고 구인창의 암경이 실린 손을 뻗었다!
오크 로드는 같은 수법에 두 번 당하지는 않았다.
번개같이 뒤로 뛰는 동시에 흑요석 도끼로 강철봉을 막아 낸다!
그러나 흑요석 도끼는 강철봉과 충돌하지 않았다.
강철봉은 어느새 땅에 박혀 있었고, 천문석의 두 손이 오크 로드의 눈앞에서 부딪혔다.
콰아아앙-
다시 한 번 굉천수가 터지고.
완전히 의표를 찔린 오크 로드가 주춤주춤 물러설 때.
천문석은 번개같이 움직였다.
오크 로드의 왼팔을 때려 반발장이 모이게 하고!
반발장이 흐려진 오른손에 구인창의 암경 흘려 넣어 손을 펼치게 한다!
툭-
떨어지는 흑요석 도끼를 잽싸게 챙기고, 불티를 흩날리는 털가죽 외투를 벗긴다!
그러나 털가죽 외투 위에 가죽끈과 사슬이 칭칭 감겨 제대로 벗겨지지 않았다!
“하, 시바 급한데! 야! 옷 좀 제대로 입어!”
버럭 외친 천문석이 헌터용 단검을 꺼내 가죽끈과 사슬을 끊으려는 순간 들려오는 포효!
크어어어어엉-
오크 로드가 천문석과 싸우며 지휘가 끊기자, 오크 군단의 압력이 약해졌다!
오우거가 엄청난 속도로 군단을 꿰뚫고 있었다!
이대로면 잡힌다!
천문석은 바로 포기하고 몸을 돌리려다가 멈칫했다.
이대로 오크 로드가 무기 없이 오우거와 싸우면 양패구상 계획이 위험하다!
천문석은 갈등 어린 눈으로 손을 봤다.
아깝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위기 순간에서는 빠른 선택이 최우선!
천문석은 오크 로드의 손에 다시 무기를 쥐여 주고 몸을 돌려 도망쳤다.
폐허가 된 시가지로!
이때 오우거가 도망치는 천문석을 봤다.
크어어어어엉-
오우거는 포효를 터트리며 달렸으나, 천문석과 오우거 사이에는 오크 군단과 오크 로드가 있었다.
오크 로드가 정신을 차리는 순간.
오우거의 돌진은 멈췄다.
천문석은 어느새 폐허가 된 시가지로 스며들고 있었다.
* * *
천문석은 폐허가 된 시가지를 달렸다.
사방에 불타 버린 차량이 널려 있고,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가 곳곳에 쌓여 있다.
도로 위로 상수도에서 솟구친 물이 강처럼 흐르고, 곳곳에 마수와 몬스터의 사체가 널려 있었다.
마수와 몬스터가 휩쓸고 지나간 시가지는 전쟁터의 폐허처럼 변해 있었다.
이때 높게 솟은 멀쩡한 상가 건물이 보였다.
외벽에 간판이 수없이 달린 10층 높이의 상가 건물!
건물 입구에 버려진 차량과 쏟아진 콘크리트 잔해가 높게 쌓여 있다.
보는 순간 머릿속에 동선이 그려졌다.
천문석은 상가를 향해 직선으로 달려 버려진 자동차, 높게 쌓인 잔해를 밟고 뛰었다.
탁-
외벽에 달린 간판에 손이 걸린 순간. 단숨에 몸을 끌어올려 벽에 빼곡히 달린 간판을 잡고 기어 올랐다.
천문석은 순식간에 10층 건물 옥상에 올라섰다.
옥상에 오르는 즉시 오우거와 오크 군단이 싸우는 전장부터 확인했다.
광분하여 날뛰는 오우거.
주저 없이 돌진하는 오크 군단.
그리고 오크 로드가 보였다.
자신이 쥐여 준 자루만 남은 흑요석 도끼와 헌터용 단검을 허망하게 바라보는 오크 로드가!
카캬카-
시원한 웃음을 터트린 천문석은 잡낭을 열고 천에 싸인 묵직한 물체를 꺼냈다.
천을 벗기자 검은 돌이 모습을 드러냈다.
별처럼 빛나는 점이 가득한 흑요석 도끼 헤드!
흑요석 도끼 헤드를 손으로 잡는 순간 느껴지는 1년 차 헌터의 직감!
‘이건 비싸게 팔린다!’
카캬카카-
다시 한 번 웃음을 터트린 천문석은 남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폐허가 된 시가지 너머 멀리, 높게 솟아 끊이지 않고 이어진 둑이 보였다!
이 둑 위에 군인과 경찰, 예비군들이 간이 진지를 만들고 있었다.
문득 고개를 돌려 중랑천 방향을 보니, 작업 중이던 사람들이 철수하고 있었다!
마침내 둑이 완성됐고, 중랑천 제방 폭파 준비도 끝났다.
한강에서 자신이 할 일은 끝났다.
이제 광화문 빌딩에서 기다릴 동료들에게 돌아갈 때였다.
2000년에 남아 있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천문석은 멀리 둑 위에 진지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크게 손을 흔들며 외쳤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단숨에 옥상을 달려 오우거와 오크 군단이 싸우는 반대 방향으로 내려갔다.
휘이이익-
천문석은 휘파람을 불어 서리 늑대에게 신호하고 다리를 달려 중랑천을 건넜다.
범람한 중랑천은 더욱 물이 불어나 이제는 제방이 무너질 지경이었다!
이 정도면 오우거와 오크 군단이 동시에 밀려 와도 단숨에 쓸어버릴 수 있었다!
“와 타이밍 기가 막히네!”
천문석은 내심 감탄하며 휘파람을 불며 도로를 달렸다.
휘이이, 휘이이익-
“야, 너 어디 있어!?”
타다다다닥-
이때 다급한 발소리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컹, 컹-
곧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서리 늑대가 튀어나와 천문석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도로는 중, 대형 몬스터들이 한번 휩쓸고 지나갔는지 탁 트인 상황!
천문석은 그동안 아껴뒀던 내력을 끌어올려 광화문으로 달렸다.
벌써 오후 3시가 넘어가고 있다.
지금쯤이면 마력 각성자 셋은 마법 회로 조정 작업 거의 끝냈을 거다.
자신이 서리 늑대와 함께 광화문 빌딩에 도착하면 곧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흑요석 도끼라는 전리품까지 가지고!
카캬카카-
통쾌한 웃음을 터트릴 때 자전거가 보였다!
가로수 높이 걸려 있는 자전거들!
왜 저기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몇 시간 후면 집으로 돌아갈 거니까!
천문석은 단숨에 가로수로 뛰어올라 나뭇가지에 걸린 자전거를 번쩍 뽑아 뛰어내렸다.
그리고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돌려 도로를 이동했다!
추이린, 김철수 발명가, 레이 실트.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을 광화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