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72화>
천문석은 예리하게 깨어난 정신으로 재빨리 오우거의 전신을 살폈다.
곧 그동안 터지지 않던 피어가 어떻게 터졌는지 알 수 있었다.
척추에 끝까지 박아 놓은 강철봉이 툭 튀어나와 있다!
엄청난 신체 회복력!
오우거의 감각을 뒤흔들던 구인창의 경력이 사라지고 있다!
천문석은 재빨리 적들 자신을 견주었다.
적은 바위 트롤 셋.
그리고 육상의 제왕 오우거다!
평소의 자신이라도 이놈들을 한 번에 상대할 수는 없었다.
하물며 지금은 육체와 내력 모두 만전인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천문석은 오우거를 이용해 바위 트롤 셋을 처리하고, 구인창의 경력이 실린 강철봉을 오우거의 척추에 박아넣었다!
투우 소의 힘을 빼듯, 오우거의 힘을 빼고 결정타를 넣을 생각이었다!
모든 건 계획대로.
아니, 계획보다 더 잘 진행됐다.
겁 없는 고블린 무리가 하반신이 마비된 오우거한테 달려들어 마비 독침을 쏟아부은 것이다!
그러나 벌써 1시간이 넘게 고블린 마비 독침을 맞고 있는데도 오우거는 전혀 힘이 빠지지 않았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거대한 팔.
축 늘어진 하반신이 당장이라도 움직일 듯 경련하고, 척추에 박아넣었던 강철봉은 거의 끝까지 튀어나왔다!
그리고 지금 피어가 담긴 포효까지 터트렸다.
이제 곧 강철봉이 뽑히고 오우거는 다시 일어선다!
방금 피어를 상쇄시키며 남은 내력은 3할가량!
오우거의 힘이 빠지기 전에 자신의 내력이 먼저 떨어진다.
지금까진 불시에 굉천수를 눈앞에서 터트리고, 구인창의 경력으로 척수 신경을 짓눌러 유리하게 싸웠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는 순간 교활한 오우거는 굉천수와 구인창을 극도로 경계할 것이다.
어려운 싸움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천문석은 슬쩍 둑을 확인했다.
까마득히 먼 곳,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중장비들이 얼핏 보였다.
둑이 완성되고 중랑천을 흐르는 수만 톤의 물을 쏟아붓는다면 오우거조차 일순간에 쓸려 갈 것이다.
자연의 거대한 힘은 오우거라도 항거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둑이 완성되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오우거가 미완성인 둑으로 달려가 중랑천 제방을 지금 무너트리면, 수만 톤의 물은 미완성인 둑을 무너트리고 한강 변을 휩쓸 거다.
그렇게 되면 얼음 다리를 건너는 수많은 시민이 휩쓸린다.
둑이 완성될 때까지 어떻게든 오우거를 여기서 주저앉혀야 한다.
결국, 오우거와 싸워야 했다.
천문석은 마음의 결심을 하고 강철봉으로 회수하기 위해 움직였다.
“……!”
이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왔다!
북쪽!
번쩍 고개를 돌려보는 순간 느껴진다!
쿵, 쿵, 쿵-
하늘이 북처럼 진동하고 있다!
엄청난 투지와 기세가 거대한 반발장에 실려 하늘 끝까지 뻗어 올라 하늘을 두들기고 있다!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뿔피리 소리!
부우우우우우우-
순간 건물 아래 개판으로 돌아가던 상황이 일시적으로 멈췄다.
랩터, 고블린, 코볼트, 놀, 들개 마수.
오우거와 바위 트롤 주위로 모여든 모든 마수와 몬스터가 일제히 고개를 돌려 뿔피리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다시 난장판을 만드는 마수와 몬스터들.
시가지에서는 장애물에 시야가 가려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천문석이 있는 7층 건물 위에서는 제대로 보였다.
저 멀리 난장판이 된 도로 위에 새롭게 나타난 몬스터들.
오크!
제대로 무장을 갖춘 오크는 아니었다.
갑옷도 없이 천 조각, 가죽 조각을 이어 만든 옷으로 대충 몸을 가렸고.
무기도 깨진 돌도끼, 부러진 나무 몽둥이, 녹슨 글레이브같이 보잘것없었다.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최하급 오크다.
그러나 이런 최하급 오크의 움직임에 하늘이 북처럼 울리고 있었다.
1만!
몰려 오는 최하급 오크의 수는 1만을 훌쩍 넘겼다!
오크 군단이 마치 한 몸인 것처럼 진군하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거대한 발 구름 소리가 오우거의 존재감마저 내리누르고 있다!
몬스터 웨이브로 모인 1만이 넘는 오크!
오크 무리가 군단을 이뤄 진군하고 있었다!
이 정도 규모의 몬스터 집단 생겨나면 반드시 같이 나타나는 존재가 있었다.
종족 한계 이상의 힘을 끌어내게 만드는 영웅급 존재.
오크 로드!
천문석의 시선이 두 팔로 시가지를 기는 오우거와 1만의 오크 군단을 번갈아 봤다.
육상의 제왕, 오우거!
오크 로드가 이끄는 오크 군단!
하나로도 상대하기 쉽지 않은 적이 둘이 됐다.
암울한 상황이지만, 천문석은 오히려 웃음을 터트리며 외쳤다.
“잘 됐다!”
* * *
천문석은 바로 움직였다.
“오우거!”
천둥 같은 외침이 시가지에 울려 퍼지고, 모든 마수와 몬스터의 시선이 모이는 순간.
콰아아앙-
굉천수가 터졌다!
모여든 랩터, 고블린, 코볼트, 놀 수많은 마수와 몬스터가 하늘에서 터진 굉천수의 섬광과 폭음에 나뒹굴었다.
그러나 그 수는 전체의 30%도 안 됐다!
몇 번이나 굉천수를 사용해서 적들이 이미 적응한 상황!
당연히 오우거도 재빨리 눈을 가려 굉천수를 막고, 인간 놈을 향해 포효를 터트렸다.
크어어어어엉-
이때 허리에서 둔탁한 통증이 느껴지고, 축 늘어진 하반신에서 감각이 살아났다!
오우거가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봤다.
건물 위에 있던 인간이 어느새 자신의 등 위에 올라서 있었다!
후웅, 콰아아앙-
반사적으로 휘두른 주먹에 철근 콘크리트 벽이 뚫리고 흙먼지가 훅 솟구쳤다.
흙먼지 속으로 거대한 오우거 주먹이 연속해서 쏟아졌다.
쾅쾅, 콰아아앙-
튼튼한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 바스러지고, 자동차, 화물차, 마수와 몬스터가 사방으로 날아갔다!
오우거의 주먹은 점점 더 빠르고 강해졌다!
어느 순간 오우거는 두 다리로 일어서 인간이 있던 장소를 짓밟기 시작했다.
쿠웅, 쿠우우웅-
육중한 진동이 터져 나올 때마다 도로, 건물, 가로수 모든 게 지진이라도 난 듯이 요동쳤다.
겁 없이 달려들던 고블린 무리가 달궈진 프라이팬 위의 팝콘처럼 나 뒹구는 순간.
오우거는 반발장이 치솟는 몸을 날려 인간이 있던 장소를 짓뭉개 버렸다.
콰아아아앙-
순식간에 건물이 3채가 무너져 내리고.
크르르르륵-
전신에 균열이 간 채로 쓰러진 바위 트롤 셋이 이 공격에 휩쓸려 바스러졌다.
이때 다시 한 번 섬광과 굉음이 터져 나왔다.
굉천수!
섬광이 터지는 순간 오우거는 재빨리 눈을 감아 굉천수의 섬광을 막아 냈다!
생각지 못한 섬광에 오우거는 비틀, 비틀 몇 걸음 물러났지만, 곧 균형감각을 찾았다.
그 즉시 오우거의 시선이 섬광이 터진 곳으로 향했다.
자신을 비웃은 인간!
그 인간이 섬광을 터트린 후 도망치고 있었다.
북쪽으로!
쿵쿵, 쿵쿵쿵-
번쩍 몸을 일으킨 오우거가 달리기 시작했다.
30미터가 넘는 거대한 육체가 난장판이 된 시가지를 질주했다!
질주하는 오우거의 무릎 아래, 길게 늘어진 손에 잡히는 모든 게 탄환이 되어 날아갔다!
후우우웅-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
쾅, 콰아앙-
주위의 모든 것을 박살 내며 구르는 탄환!
버려진 자동차, 화물차, 가로수, 변압기, 전봇대, 가로등!
도로가 뒤집히고 건물이 무너질 때 터져 나간 소화전과 상수도관에서 물이 솟구쳤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터져 나오는 피어가 담긴 포효!
크어어어어엉-
겁먹은 양 떼처럼 도망치던 마수와 몬스터 무리가 비틀거리다 피를 토하고 무더기로 죽어 나갔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위용!
천문석은 내력을 끌어올렸는데도 가슴을 진탕 시키는 피어를 느끼고 감탄했다!
“와, 오우거 진짜 대단하네!”
과연 육상의 제왕!
강한 오우거는 거대 괴수도 잡는다는 게 사실이었다!
상급 몬스터 바위 트롤 셋을 순식간에 끝장내더니, 사방에서 밀려들던 마수와 몬스터들을 양 떼처럼 쫓아 버렸다.
2시간 동안 오우거를 농락하며 싸울 수 있었던 것은, 불시에 터트린 굉천수와 척추에 박아넣은 구인창 덕분이었다!
정면으로 싸웠으면, 오우거의 피지컬에 벌써 압도당했을 거다!
“이대로 싸우면 내가 지겠는데?”
천문석이 패배를 직감한 순간.
오우거가 피어가 실린 포효를 연신 터트렸다!
크어, 크어어, 크어어어엉-
포효에 담겨 있는 광기와 희열이 따끔따끔하게 피부를 자극하고, 피어에 담긴 기파가 육신을 옥죄어 온다!
천문석은 재빨리 기파를 일으켜 피어를 상쇄시켰다.
이 사이 엄청난 속도로 돌진하는 오우거!
오우거의 달리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져 거리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이제 곧 격전이 시작된다!
이때 거대한 북소리가 들려왔다.
쿵쿵, 쿵쿵쿵-
이 북소리는 귀로 들리는 소리가 아닌, 가슴속 심장을 뛰게 만드는 피 끓는 진동이었다.
가슴속 투지와 전의가 끓어오르고, 스스로의 심장 소리가 귓가에 생생히 들려왔다!
쿵, 쿵, 쿵-
그리고 보였다!
오크 군단!
한 마리 한 마리는 보잘것없는 하급 오크들이다.
그러나 하급 오크 1만이 모이는 순간, 거대한 기세가 생겨났다.
이 기세에 하늘이 북처럼 울리고, 대지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진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슴을 끓어오르게 만드는 투지가 솟아났다!
문득 투지가 전해지는 곳을 살피자 다시 한 번 피가 끓어올랐다!
보이진 않지만, 이 감각만으로도 짐작이 갔다.
오크 로드!
눈앞의 오크 군단을 이끄는 건 오크의 종족 한계를 뛰어넘은 영웅급 몬스터, 오크 로드다!
앞에는 오크 로드가 이끄는 오크 군단!
뒤에는 분노한 육상의 제왕, 오우거!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천문석은 멈추지 않고 오크 군단을 향해 달렸고.
오우거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천문석을 향해 달렸다.
쿵쿵, 쿵쿵쿵-
앞에선 엄청난 기세를 쏟아 내는 오크 군단이 가까워지고.
훙, 후웅, 훙-
뒤에선 파괴적인 힘이 담긴 팔을 휘젓는 오우거가 쫓아 왔다!
50m, 40m, 30m……!
천문석과 오우거 사이의 거리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10미터가 되는 타이밍.
천문석은 번쩍 손을 들어 박수를 쳤다.
이 순간 오우거와 오크 군단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굉천수에 몇 번이나 당했던 오우거가 반사적으로 눈을 감고 가릴 때.
굉천수를 한 번도 겪지 못한 오크 군단은 기세를 폭발시키며 무기를 뻗었다.
오우거는 굉천수에 제대로 대응했고, 오크 군단은 굉천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집단으로 움직이는 군세는 단순히 넘어져 뒤엉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
당연히 굉천수를 정면에서 맞고 시야와 청각, 균형감각이 무너진 오크 군단이 엄청난 피해를 입는 게 정상이었다.
그러나 천문석의 두 손이 공중에서 맞닿는 순간 섬광도 굉음도 생겨나지 않았다.
짜아악-
가벼운 박수 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리고 모든 상황이 반전됐다.
-스스로 눈을 감고 기세를 죽인 오우거.
-기세를 폭발시키며 무기를 뻗은 오크 군단.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오우거가 번쩍 눈을 뜨는 순간 보였다.
거센 해일처럼 밀려 오는 오크 군단!
오크 군단 아래로 미끄러지는 인간 놈!
크어어엉-
오우거가 다급히 팔을 뻗어 인간 놈을 낚아채려는 순간.
1만이 훌쩍 넘는 오크 군단의 하나로 합쳐진 기세와 투지가 오우거에게 쏟아졌다.
와우우우우우-
오우거는 상급 몬스터 바위 트롤 셋을 단숨에 박살 냈다.
그러나 하나로 합쳐진 오크 군단의 기세는 그런 오우거조차 멈춰 세웠다!
쿠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뻗어 나가던 팔이 멈추고.
오우거와 오크 군단 간의 격전이 벌어졌다!
크어어어엉-
오우거의 포효가 터지고 거대한 팔과 다리고 단숨에 오크 군단을 짓뭉개 버릴 때.
크아아아아-
무기를 뽑아 든 오크들이 사방에서 오우거에게 달려들었다!
평소라면 오우거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했을 오크들!
그러나 1만이 넘는 오크를 하나로 연결한 집단 무의식과 오크 로드의 존재가 오우거와 싸울 힘을 줬다!
붉게 타오르는 광기 어린 눈과 하나로 합쳐져 일렁이는 거대한 반발장!
크아아아-
오크 전사가 전투 함성을 터트리며 뼈 도끼, 녹슨 칼, 나무 창 같은 조잡한 무기를 들고 오우거의 전신을 기어 오르고!
둥둥, 둥둥둥-
오크 주술사들이 가죽 북을 치고 뼈 지팡이를 흔들며 광역 주술을 뿌렸다!
쒜에에에엑-
이때 사방에서 날아오는 돌과 나무창 같은 투석 무기들!
격분한 오우거가 엄청난 무게가 실린 발로 짓밟고, 거대한 손으로 오크 전사를 낚아채 으스러트려 사방으로 던졌다!
쾅, 쾅, 콰아앙-
절명한 오크 전사가 떨어져 구를 때마다 수십의 오크들이 뒤엉켜 쓰러졌다!
그러나 오크 군단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거대한 산불처럼 거세게 불타올랐다!
하나로 이어진 반발장이 거대한 산불처럼 이글이글 타오르고, 광기와 투지로 붉게 물든 눈에선 숫제 피가 흐르는 것만 같았다.
하나가 죽는 순간 셋이!
셋이 죽는 순간 열이 달려들었다!
둥둥, 둥둥둥-
광기 어린 가죽 북소리가 공기를 울리고, 강대한 주술력이 오크의 두려움을 지워 버리고 오우거의 전신을 옥죄었다.
그러나 오우거는 오우거!
크어어어엉-
피어가 실린 포효로 주술력을 끊어 버리고, 오크 전사 열 이 달려들면 열둘을 죽여 버렸다!
오크 군단과 오우거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격전을 펼쳤다.
살기와 살기가 부딪치고, 투지와 투지가 뒤엉킨다.
격돌하는 살기에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고, 뒤엉킨 투지에 당장이라도 터질 듯 가슴이 울렸다!
하나로 뭉친 오크 군단의 기세와 분노한 오우거의 기세가 뒤엉켜 거대한 태풍처럼 전장에 몰아쳤다!
천문석은 이 모든 것을 손바닥을 들여다보듯이 느낄 수 있었다!
‘와! 얘들 진짜 잘 싸우네!’
연신 감탄하는 천문석은 전장 가장 가까운 곳.
1만이 훌쩍 넘는 오크 군단 다리 사이를 기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