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71화>
“시바, 시바! 이렇게 재수가 없다니!”
천문석은 굉천수를 터트려 마수와 몬스터 무리를 끌고 달리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자신이 적립한 업보였다.
뭔 일만 터지면 친우의 이름을 팔아먹은 업보!
그렇기에 누구도 원망할 수 없었다.
단지 전생에서 이어진 약속과도 같은 말을 내뱉을 뿐!
“이세기 이 새끼!”
그러나 연신 분통을 터트리던 천문석의 얼굴은 곧 밝아졌다.
생각해 보니까 이세기라고 말했어도 문제가 없다!
어차피 이 시대에 남을 것도 아니다.
자신의 목표는 2020년으로 돌아가 의인 광장의 땅을 먹는 거다!
2020년 의인 광장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방법은, 사람이 건널 수 있을 정도로 한강을 단단하게 얼리는 것뿐!
그렇게만 하면 의인 광장의 주인이 된다.
그리고 한강을 얼릴 방법은 이미 손에 들어왔다!
천문석은 그 방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멀리 제방 위를 달리는 멋지고, 잘생기고, 훌륭한 친구.
서리 늑대.
그렇다!
그냥 원래 계획대로 하면 된다!
2020년으로 돌아가 ‘서리 늑대’와 함께 한강을 얼려 다리를 놓으면 된다!
뭐든지 처음이 어려운 법!
방금 만든 얼음 다리보다, 더 크고 튼튼한 얼음 다리를 만들 자신이 있었다!
즉, 이세기라고 몇 번이나 외쳤다 해도 괜찮다.
서리 늑대만 있으면 의인 광장을 날름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카캬카카카카카-
깨달음과 동시에 터져 나오는 웃음!
긍정적 마인드 전환에 성공한 천문석은 하늘을 향해 외쳤다.
“하늘님! 보이십니까!?”
“이번 업보 공격은 실패했습니다!”
“저에겐 아무런 타격이 없습니다! 전 곧 땅 주인이 됩니다!”
카캬카카카카카-
천문석이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릴 때.
기척을 죽이고 제방 위를 달리는 서리 늑대는 머리를 갸웃하고 있었다.
몸 안에 담긴 서리혼이 요동친다!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 서리 늑대 일족과 함께한 서리혼이 경고하고 있었다.
커다란 고난이 올 거라고!
그러나 서리 늑대는 서리혼이 경고하기 전에도 이상함을 느꼈다.
얼마 전부터 안 좋은 일이 계속 생기고 있었다!
얼음 벌판에서 불타는 잿가루 숲으로 강제로 이동 당하고, 잿가루 숲에서 싸우다가 밤하늘 높은 곳에서 산맥으로 뚝 떨어졌다!
떨어진 산맥에선 어디서도 찾을 수 없던 숙적 천공의 제왕을 만났고, 천공의 제왕과 아슬아슬한 격전을 펼치다가 동료 모두가 사라졌다!
게다가 오늘은 커다란 강에서 엄청 빡세게 얼음 다리까지 만들었다.
뭔가 굉장히 이상했다!
서리혼!
선조들의 힘을 되찾고 잘나가고 있었는데…….
요 며칠은 어떻게 된 게 힘을 되찾기 전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다!
-……
서리 늑대는 중랑천 제방을 달리며 골똘히 생각했다.
뭔가,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신과 동료들이 이렇게 빡세게 구르게 된 이유가!
서리 늑대의 머릿속에서 며칠 동안 겪은 일들과 만났던 인물들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콰아앙-
이때 멀리서 익숙한 굉음과 섬광이 터졌다!
선조들의 힘을 찾게 도와주고, 엄청 맛있는 음식을 주는 친구가 멀어지고 있다!
떠오르던 의문이 씻은 듯 사라지고, 친구의 약속이 의문이 사라진 자리를 채웠다.
‘광화문 빌딩 도착하면 최고급 쇠고기 육포 줄게!’
최고급 쇠고기 육포!
생각만으로도 침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서리 늑대는 섬광을 터트리며 달리는 친구를 쫓아 기척을 죽이고 그림자처럼 달렸다!
* * *
바위 트롤 셋과 자잘한 마수와 몬스터를 끌고 달리는 천문석.
천문석은 바위 트롤 셋을 중랑천으로 굴려 버리고 바로 광화문으로 달려가려 했다.
그러나 바위 트롤을 중랑천으로 굴리기 직전 갑자기 건물 사이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로 계획이 변경됐다.
크어어어엉-
포효를 지르며 튀어나와 바위 트롤의 단단한 암석질 신체에 화물차를 내리찍는 몬스터.
오우거!
30미터가 넘는 오우거의 일격이 바위 트롤의 암석질 신체를 깨뜨렸다.
오우거와 바위 트롤은 같은 상급 몬스터지만, 어른과 아이 만큼이나 그 힘과 위험도가 차이 났다!
천문석을 따라 달리던 바위 트롤 셋은 순식간에 오우거의 습격을 받아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중랑천으로 굴리기도 전에 바위 트롤이 오우거에게 작살나게 생겼다.
오우거는 천문석에게는 관심이 없는 상황이라 바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오우거를 놔두면 건설 중인 둑이 위험했다!
“하, 시바. 왜 광화문으로 가려고 할 때마다 뭐가 튀어나와!”
결국, 천문석은 바위 트롤을 공격하려는 오우거를 기습 공격했다.
처음 맞으면 99.99% 당하는 굉천수로!
크어어어엉-
오우거는 굉천수의 눈뽕을 정면으로 맞고 시가지를 굴렀다.
천문석의 뒤를 쫓는 몬스터에 오우거가 추가됐다.
오우거, 바위 트롤 셋, 수십에서 수백 단위의 마수와 몬스터 집단들.
천문석은 이 모든 집단을 끌고 둑이 건설될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 2시간 동안 달렸다.
서쪽 중랑천과 동쪽 용마산 사이를!
몬스터 웨이브의 흐름 자체가 변하면, 지금 쌓고 있는 둑과 중랑천에 설치하는 폭약 모두 쓸모가 없어진다!
그래서 천문석은 중랑천과 용마산 사이 시가지에 크게 원을 그려 마수와 몬스터를 뺑뺑이 돌렸다.
쉽지는 않았다.
자잘한 몬스터가 발목을 잡는 사이.
상급 몬스터 중에서도 최상위 오우거가 저돌적으로 돌진하고, 바위 트롤이 주위에 보이는 모든 것을 집어던졌다.
건물, 도로 할 것 없이 천문석이 지나가는 경로의 모든 게 박살 났다.
그러나 천문석에게 누군가를 빡치게하고 도망치는 것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웠다.
굉천수의 섬광과 굉음.
구인창의 감각 교란.
극음도의 냉기.
그리고 레이 실트의 무게가 변하는 강철봉!
천문석은 모든 것을 사용해서 뒤를 쫓는 마수와 몬스터를 단단히 붙들어 놨다!
그리고 2시간이 지난 지금.
천문석은 7층 건물 옥상 난간에 서서 자신이 만든 난장판을 흐뭇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크르르르륵-
바위 트롤 셋은 암석질 육체 곳곳에 균열이 간 채로 쓰러져 버둥거리고!
쿠르르르릉-
오우거는 척추에 강철봉이 박힌 채 두 팔로 도로 위를 기어 오고 있다!
둘 다 천문석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다!
바위 트롤과 오우거 주위로 중, 하급 마수와 몬스터들이 바글거렸다.
깡깡, 깡깡깡-
쓰러진 바위 트롤을 뒤덮은 랩터 무리가 정으로 바위를 깨듯 갈고리발톱을 내려찍고!
후드드드득-
두 팔로 땅을 기는 오우거 주위에 몰려든 고블린 무리가 비 오듯 마비 독침을 쏟아붓는다!
이 주위에는 수가 딸려 끼어들지 못한 곡괭이를 든 코볼트, 발톱을 세운 놀, 들개 마수와 검치호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하급, 중급 마수와 몬스터가 상급 몬스터인 바위 트롤과 오우거를 사냥하고 있었다!
상급, 중급, 하급.
먹이 사슬의 구분을 무시하는 난장판!
이것이 바로 천문석이 2시간 동안 만든 난장판이었다!
카캬카카캌-
천문석은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어느새 바위 트롤은 단단한 암석질 육체가 곳곳이 깨져 녹색 체액이 치솟고!
오우거는 얼마나 마비 독침을 맞았는지 전신에 번들거리는 고블린 독액이 흐르고 있었다!
고블린 마비 독은 내성이 생기지 않는 독이다.
충분히 많은 양을 퍼부으면 상급 몬스터라고 할지라도 마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육상의 제왕, 오우거는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피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블린 독침이 꽂히고, 척추에 구인창의 경력이 담긴 강철봉이 박혀 하반신이 움직이지 않는데도!
쿠르르, 쿠르르릉-
두 팔로 난장판이 된 시가지를 기어 전봇대를 던졌다!
높게 솟은 7층 건물!
자신을 반신불수로 만든 인간이 서 있는 건물을 향해서!
후우우웅-
미사일처럼 날아온 전봇대가 건물 옥상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콰르르르-
무너진 건물 잔해가 랩터와 고블린, 놀과 바닥을 기는 오우거 위로 쏟아졌다!
콰아아앙, 쾅쾅-
쏟아지는 건물 잔해에 자잘한 몬스터들이 파묻히고 흙먼지가 확 솟구칠 때.
크어어어엉-
오우거가 잔해 속에서 상체를 일으키며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그 순간 지난 2시간 동안 몇 번이나 들었던 도발하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캬카캌카카카-
오우거는 승리의 함성을 멈추고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주시했다.
곧 한 인간이 나타났다.
오우거의 척추에 구인창의 경력이 실린 강철봉을 박아넣어 하반신을 마비시킨 인간!
천문석.
“야, 나 안 맞았어!”
천문석은 함성을 지르는 오우거에게 손을 흔들며 내력을 실어 외쳤다.
순간 오우거의 거대한 팔이 전봇대를 찾아 좌우로 움직였다.
쿠르르르르릉-
도로 위에 쏟아진 잔해가 밀려나고, 독침을 쏟아붓던 고블린 무리와 기회를 노리던 몬스터들이 팔에 맞고 터져 나갔다.
그러나 오우거는 1시간이 넘게 주위에 있는 전봇대를 모조리 뽑아 던졌다!
오우거 주위에는 더는 남아 있는 전봇대가 없었다!
쾅쾅, 쾅쾅쾅-
오우거가 주먹을 도로에 내려치며 분통을 터트릴 때.
천문석은 오우거를 향해 느긋한 목소리로 외쳤다.
“야, 넌 지금 내가 아니라 고블린을 잡아야 해! 너 역사상 최초로 고블린한테 사냥당한 오우거 된다! 오우거의 수치로 영원히 역사에 기록되는 거야!”
카캬카카캌캌-
천문석의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말과 웃음에 담긴 뉘앙스를 오우거는 바로 알아챘다.
비웃음!
1시간이 넘게 미꾸라지처럼 도망만 치던 놈!
갑자기 눈앞에 엄청난 빛을 터트리고 하반신 감각을 사라지게 만든 인간이!
자신을 내려다보며 비웃고 있다!
오우거는 끓어오르는 분노와 광기를 담아 터트렸다.
크어어어어어엉-
순간 피어가 담긴 포효가 터져 나왔다.
바위 트롤의 금 간 암석 육체가 쩍쩍 갈라지고, 갈고리발톱을 내려찍던 랩터가 살충제 맞은 모기처럼 와르르 쓰러졌다!
사방에서 마비 독침을 쏘던 고블린 무리, 코볼트, 놀들은 감전이라도 된 듯 파르르- 경련하다가 피를 토하고 즉사했다!
지금껏 터지지 않던 피어가 돌연 터져 나왔다!
이대로 놔두면 적의 적, 하급 마수와 몬스터가 전멸한다!
천문석은 재빨리 내력이 실린 손으로 원을 그려냈다!
내력이 실린 손에 저릿저릿한 기파(氣波)가 느껴진다!
이 기파가 포효에 담긴 마력, 피어였다!
피어가 느껴지는 순간.
천문석은 일기일원공의 내력으로 피어의 파동과 반대되는 기파를 일으켜 사방으로 쏘아 보냈다!
천문석이 만들어 낸 기파가 우레가 하늘을 긁는 것처럼 대기를 뒤흔들었다!
우르르르르르릉-
오우거의 피어는 소리가 노이즈 캔슬링 되듯 소멸 간섭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두 음파가 상쇄되어 사라진 시가지에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휘이이이잉-
오우거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끔뻑이고, 쓰러졌던 마수와 몬스터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일어날 때.
천문석은 재빨리 몸 상태를 확인했다.
벌써 며칠째 한숨도 자지 못하고 강행군을 펼쳤다.
육체에는 한계까지 피로가 쌓였고, 방금 오우거 피어를 소멸시키며 내력도 3할가량 남았을 뿐이다.
그러나 육체가 힘들수록 정신은 예리하게 깨어나고 있었다.
마치 생사 대적과 칼날 위에서 생사결을 펼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