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470화 (471/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70화>

카캬카카카컄카캬-

천문석이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다리를 건너던 꼬맹이가 흠칫 놀라 엄마에게 외쳤다.

“엄마! 저기 모자 쓴 아저씨 이상해!”

깜짝 놀란 아이 엄마가 천문석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아냐. 저 아저씨 이상하신 분 아냐! 이 다리 만들어 우리 구해 주신 훌륭한 분이야!”

아차! 의인답게 웃어야 하는데 평소처럼 웃었다!

“허허허- 아저씨는 의인 이세기…….”

천문석이 재빨리 웃음을 바꾸며 말할 때.

크르르르르르륵-

거대한 바위가 맞물려 돌아가는 듯한 포효가 울려 퍼졌다!

바위 트롤!?

분명 처리했는데!?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포효가 터져 나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둑을 쌓고 있는 시가지 방향!

아직 둑이 쌓이지 않은 도로에 10미터가 훌쩍 넘는 거대한 바위 트롤이 나타났다!

천문석은 바로 감을 잡았다.

큰 홍수가 나면 큰 바위가 밀려 오는 법!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자 바위 트롤이 웨이브에 밀려 왔다!

이때 전차 포성이 울려 퍼졌다.

쿵, 쿵, 쿠으응-

전차에서 날아간 철갑탄이 바위 트롤에 직격했다!

몬스터 반발장이 일어나 충격량을 줄였지만, 충격량을 완전히 상쇄하지는 못했다!

콰아앙-

바위 트롤의 단단한 암석질 육체에 철갑탄이 박히자 돌가루가 와르르 쏟아졌다.

휘청휘청 밀려나기 시작하는 바위 트롤!

하지만 치명상을 주기에는 부족했다!

게다가 이 녀석이 끝이 아니었다.

크르르르르륵-

다시 한 번 소름 돋는 포효가 울려 퍼지고 철갑탄에 밀려 나는 바위 트롤 뒤에 다른 바위 트롤 두 마리가 나타났다!

바위 트롤 셋!

저런 놈들이 둑 앞에서 얼쩡거리면 작업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한 놈이라도 저지선을 뚫으면 둑을 쌓는 것뿐만 아니라 얼음 다리를 건너는 시민들도 위험했다!

바로 둑에서 빼내야 한다!

휘이이익-

천문석은 휘파람을 불어 서리 늑대에게 신호하고 바위 트롤에게 달려갔다.

컹-

순간 서리 늑대가 짧게 울더니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더는 못 움직이겠다는 것처럼!

천문석은 달려가던 몸을 멈추고 다급히 외쳤다.

“야, 너 왜 그래!? 최고급 쇠고기 육포 줬잖아!”

-……

말없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서리 늑대!

“지금 급해! 업어 줄까!?”

그러나 업으려는 순간 다시 한 번 데굴데굴 굴러 피한다!

이때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최고급 쇠고기 육포!

이 녀석 육포 더 달라고 땡깡 부리는구나!

천문석은 바로 확인했다.

“최고급 쇠…….”

컹-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당장이라도 달려갈 듯 자세를 잡는다!

“와, 이런 철저한 녀석!”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탄식!

그러나 최고급 쇠고기 육포는 더는 없었다!

‘시바, 어떻게 하지!?’

고민하는 순간 멀리서 다가오는 바위 트롤 무리와 의아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서리 늑대가 동시에 보였다.

바위 트롤이 한강 변으로 들어오면 시민들에게 대참사가 일어나고.

서리 늑대를 광화문 빌딩으로 데려가지 못하면 2020년 파티원 모두에게 대참사가 일어난다!

즉, 지금은 수단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천문석은 서리 늑대의 푸른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광화문! 광화문 빌딩 도착하면 최고급 쇠고기 육포 줄게! 원래 이런 건 다 후불인 거야!”

컹, 컹-

서리 늑대가 알겠다는 듯 짖고 달리는 순간.

천문석은 바위 트롤을 향해 달려가며 내력을 실어 다시 한 번 외쳤다.

“의인 이세기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의인 이세기!”

“의인 이세기! 절대 잊지 말아 주십시오!”

……

한강 변에 가득한 인파를 뚫고 달리며 외치는 목소리가 하늘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얼음 다리를 건너는 가족.

다급히 얼음 다리를 향해 달리는 시민.

시민들을 유도하는 군인과 경찰.

건물을 부수고 도로와 건물 사이를 막는 사람들.

아파트 고층에 진지를 만들고 사격 중인 예비군.

전장을 달리며 다급한 명령을 쏟아 내는 장교들까지.

한강에 모인 모든 사람의 귓가에 ‘의인 이세기’란 외침이 울려 퍼졌다.

“바위 트롤은 저 ‘의인 이세기’가 유인해 가겠습니다!”

천문석이 바위 트롤을 향해 달리며 외치자.

사방에서 대답하는 듯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의인 이세기님 감사합니다!”

“이세기 준장님이 한강에 얼음다리를 놓으셨다!”

“서울 헌터 부대. 이세기 준장님! 감사합니다!”

“이세기 준장님!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이세기 의인님이 만든 신 얼음 다리 덕분에 살았습니다!”

‘됐다! 완전히 이름이 사람들 머리에 새겨졌다!’

둑 건설 라인을 넘어간 천문석은 리볼버를 꺼내 바위 트롤을 향해 당기며 마지막으로 외쳤다.

타아앙-

“감사합니다! 모두! 절대 잊지 말고! 의인 이세기! 제 이름 ‘이세기’를 널리 알려…… 어!”

순간 천문석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굳어 버렸다.

천둥 치듯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자신의 목소리!

‘……제 이름 이세기!’

뒤이어 사방에서 들려오는 외침이 귀에 박혀 든다!

“감사합니다. ‘이세기’ 님.”

“‘이세기’ 준장님…….”

“의인 ‘이세기’…….”

사방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하나같이 담겨 있는 이름.

이세기!

이세기!

이세기!

천문석은 마침내 깨달았다.

그동안 하도 ‘이세기’ 이름을 팔다 보니!

의인 광장을 먹는 이 중요한 순간에 반사적으로 ‘이세기’ 이름을 팔았다!

‘천문석’이란 진짜 이름을 놔두고!

“이런 미친! 끄아아악-!”

엄청난 심적 고통에 자신도 모르게 괴성이 터져 나온 순간.

천문석은 혼미해진 정신으로 쉴 새 없이 말을 쏟아 냈다.

“제 이름은 ‘천문석’입니다!”

“의인 ‘천문석’! 광화문 안정화 권역의 땅을……!”

“그 땅을 꼭 천문석! 명의로 해 주세요!”

“절대 절대로! 잊으시면 안 됩니다! 모두 꼭 기억해 주세요! 천문석 광장!”

……

천문석은 절박하게 외쳤다.

고블린 평야에서 몬스터 웨이브에 휩쓸렸을 때.

신동대문 광장에서 염동력자 마혁진과 깃발을 꽂았을 때.

지하 터널에서 초거대 사슴벌레를 타고 달리다가 사막에 떨어졌을 때.

그동안 있는 수많은 사건·사고를 통틀어 이렇게 절박하고 다급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천문석은 전생을 각성한 이후로 가장 절박하고 처절하게 내력을 실어 외쳤다!

[경복궁 앞에 땅! 거기 땅 부탁드립니다! 광장, 의인 광장! 땅!]

거대한 천둥 같은 외침이 하늘을 뒤흔드는 순간.

파스슥-

리볼버에서 쏘아진 마탄이 바위 트롤이 얼굴에 맞았다.

발당 100만원.

천문석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산 재금 중공 정품 마탄.

정품 마탄이 단숨에 상급 몬스터의 강력한 반발장을 꿰뚫고.

마탄에 새겨진 마력이 바위 트롤의 육체로 스며들었다!

거대한 바위가 맞물려 돌아가는 소름 돋는 포효가 터져 나왔다.

크르르르르르르륵-

바위 트롤의 엄청난 포효가 한강 변에 울려 퍼지는 모든 소리를 집어삼켰다.

총성, 포성, 사방에서 다급히 외치는 고함.

그리고 바위 트롤을 유인해 달리며 처절하게 외치는 천문석의 외침까지.

“의인 천문석!”

모든 소리를 바위 트롤의 거대한 포효가 집어삼켰다.

크르르르르르륵-

* * *

하늘의 인과는 사람의 인지로는 헤아릴 수 없는 법!

그 말대로 그동안 셀 수 없이 이세기의 이름을 팔았던 인과가 마침내 천문석에게 돌아왔다.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 상상도 하지 못한 방법으로!

인과의 기습을 받은 천문석은 둑이 만들어지는 시가지 앞을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바위 트롤 세 마리를 꼬리로 붙이고!

“시바, 시바! 야, 타임! 타임이라니까! 잠시만 멈춰봐!”

몇 번이나 바위 트롤에게 외쳤으나.

과연 발당 100만원의 재금 중공 정품 마탄!

직접 맞은 놈뿐만 아니라 같이 달리는 놈들도 어그로가 풀릴 생각을 안 한다!

천문석은 가슴이 검게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재빨리 어그로를 풀고 돌아가.

‘이세기라고 말한 건 사실 농담이고, 제 진짜 이름은 천문석입니다! 하하하-.’

이렇게 외쳐서 상황을 바로잡을 생각이었는데!

바위 트롤 놈들의 어그로가 풀릴 생각을 안 한다!

그렇다고 바위 트롤을 꼬리에 달고 둑으로, 한강으로 달릴 수는 없었다!

대참사가 일어날 테니까!

“시바, 시바! 개시바!”

천문석은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마탄을 쏘기 전에 눈치챘다면, 상황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다!

아니, 마탄이 재금 중공 정품 마탄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그로가 끌리진 않았을 것이고 상황을 수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탄을 쏘기 전에 ‘이세기’라고 수도 없이 외쳤고, 쏜 마탄은 재금 중공 정품 마탄이었다.

결국,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했다!

그렇다고 지금 상태에서 상황을 바로잡을 수도 없었다.

천문석은 내력을 실어 다시 한 번 외쳤다!

“의인 천문석!”

크르르르르르륵-

바로 터져 나온 바위 트롤의 포효가 천문석의 외침을 집어삼킨다!

그리고 이 포효 사이로 외침이 들려온다!

“이세기…… 조심…….”

“이세기님 지원을…….”

“의인 이세기…….”

……

끝없이 울려 퍼지는 이름.

이세기!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 가다 못해 하얗게 재가 되어 갈 때.

바위 트롤뿐만 아니라 만만찮은 마수와 몬스터들이 하나둘 밀려 오는 게 보였다!

더는 여기서 지체할 수 없다.

바위 트롤과 저놈들을 끌고 빠져야 한다!

군인과 경찰, 중장비를 모는 시민들이 둑을 쌓을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서!

한강 변에 가득한 시민들이 얼음 다리를 넘어 대피할 수 있도록!

“…….”

천문석은 바위 트롤을 끌고 마수와 몬스터가 나타나는 북쪽으로 달리며 하늘을 향해 절규하듯 외쳤다.

“하늘님! 진짜로! 정말로! 이러시긴가요!? 이건 좀! 아니, 아주 많이 아니죠!”

* * *

의인이 바위 트롤을 끌고 몰려 오는 마수와 몬스터를 향해 달려간다!

아파트 고층에 진지를 만든 예비군.

중장비로 둑을 쌓고 있던 일반인.

마수와 몬스터와 전투 중인 군인.

얼음 다리를 건너는 시민.

시민들을 인도하는 경찰.

한강 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달려가는 의인을 봤다.

삼각파도를 향해 돌진하는 일엽편주처럼 바위 트롤 셋을 끌고 몰려 오는 마수와 몬스터 무리에 주저 없이 돌진한다!

이 장엄한 모습이 모두의 마음에 새겨질 때.

누군가 경례하며 크게 외쳤다.

“의인님 감사합니다!”

이게 시작이었다.

사방에서 외침이 울려 퍼졌다.

“반드시 기억하겠습니다!”

“의인님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마지막 말씀대로 꼭! 의인 광장을 만들겠습니다.”

둑에서 시작된 외침은 아파트 진지를 거쳐 한강 변, 얼음 다리로 파도치듯 퍼져 나갔다.

이때 둑을 쌓고 있는 곳 북쪽 시가지에서 섬광이 터졌다.

쾅, 쾅, 콰아앙-

초대형 섬광탄을 터트린 것처럼 엄청난 빛과 굉음이 하늘을 울렸다!

섬광이 사라졌을 때.

하나둘 나타나던 마수와 몬스터 집단은 남쪽 둑이 아닌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모두는 짐작했다.

한강에 얼음 다리를 만든 의인이 무언가를 했다!

이 사이 둑을 만들면 된다!

우와아아아아아-

거대한 환호성이 한강 변에 울려 퍼지고 군경과 시민들이 다급히 둑을 만들 때.

첫 번째로 얼음 다리로 올랐던 가족이 한강을 건너 잠실에 도착했다.

마침내 한강을 건넜다!

긴장이 풀려 주저앉을 뻔한 부부의 눈에 도로에 줄줄이 서 있는 택시가 보였다.

부부는 아이를 번쩍 안고 택시로 달리며 다급히 외쳤다.

“택시!”

엄마·아빠에게 번쩍 들려 택시로 이동하는 꼬맹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아까 잘 부탁한다고 했던 의인 형. 이름이 왜 생각이 안 나지?”

꼬마뿐만이 아니었다.

천문석이 외친 이름을 듣고 행동을 본 모든 사람.

그들의 의식에 새겨진 이름과 기억은 의식 깊은 곳, 무의식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모든 기억은 꿈속에서 겪은 일처럼 흐릿하게 변해 갔다.

당연한 일이었다.

천문석은 김철수 발명가가 건네준 인식 장애 마법 회로가 새겨진 머플러를 하고 있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