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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468화 (469/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68화>

과연 인적 자원의 나라 대한민국!

수많은 특기를 가진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자 몬스터 웨이브 대처는 빠르게 진행됐다.

이제 다른 문제를 해결할 때였다.

한강 변에 모여든 피난민들을 한강 너머로 옮기는 것!

몬스터 웨이브를 막을 둑을 쌓는 동안에 한강에 모여든 시민들을 한강 너머로 이동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간이 테이블 주위에 모인 장교와 경찰, 시민들이 몇 가지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무엇 하나 뚜렷한 해법은 나오지 않는 상황.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돌려 한강을 왕복하는 오리배를 훑었다.

한강을 천천히 가로지르는 이십여 척의 오리배들.

한강에 몰아치던 거친 파도는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물살이 거세 무동력 오리배로 건너가는 데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한점 전에 한강에 띄워진 장철과 장민이 탄 오리배도 이제야 한강을 반쯤 넘어갔을 뿐이다.

유람선은 상황이 낫지만, 강변으로 모여드는 인원이 유람선으로 빠져나가는 인원을 압도한다.

문득 고개를 돌려 잠실 대교 방향을 보니, 수십 명 단위 인파가 끝도 없이 밀려 오고 있다.

아직 다리가 끊겼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오리배, 유람선으로 이 많은 인원을 옮기는 건 며칠이 지나도 불가능하다.

아니, 며칠까지 갈 것도 없었다.

중랑천에서 쏟아진 물로 몬스터 웨이브를 저지할 전선을 만들었다.

하지만 1월 3일 EMP 마력 폭풍이 터지면 전자기기, 총, 전차, 자주포, 비행기 같은 현대 무기는 먹통이 돼버린다.

화약 무기는 EMP 마력 폭풍이 멈추고 이상 마력이 사라지면 사용할 수 있지만, 그 전에 전선이 붕괴할 가능성이 컸다.

불안 요소는 너무나 많았다.

몬스터 웨이브로 몬스터 종족이 한계 이상으로 모여들면 오크 로드 같은 영웅 개체들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이상할 정도로 보이지 않는 거대 괴수라도 나타나면 어설픈 둑은 순식간에 뚫린다.

지금이 1월 1일 한겨울이라는 것도 문제다.

게이트가 열린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았고, 맑고 바람이 거의 불지 않은 화창한 낮이라 피난민들이 잘 버티는 거로 보인다.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피난민 모두 체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다.

이대로 한강 변에서 밤을 보내면 대량으로 사망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가능한 해가 지기 전에 한강 변에 모여든 사람들을 한강 이남으로 옮겨야 한다!

결심을 굳히는 순간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질문.

‘그러니까 어떻게?’

질문이 들려오자 뇌리가 간질거리며 무언가 생각이 날락말락 했다.

수많은 사건·사고에 구르며 달인의 경지에 달한 육감이 말한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넌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날락말락 한 생각이 튀어나오지 않는다!

‘하, 시바- 뭐지!?’

‘뭔데, 생각이 날락말락 하는 거야!’

천문석은 격렬히 머리를 굴렸다.

이때 테이블에 모여 있는 장교 한 명이 조심스레 말했다.

“……시민들을 강변북로를 통해서 옥수 방향으로 이동시키는 건 어떨까요?”

“동호대교는 끊긴 것 같던데. 혹시 한남대교는 무사합니까?”

한 시민이 반색해서 물었다.

그러나 장교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한남대교는 이미 끊겼습니다…… 하지만 여의도 마포대교는 아직 괜찮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시민들을 마포대교로 인도하면.”

경찰 간부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 한강에 도착하는 분들 밤새 추위 속에서 걸으신 분들입니다. 노약자 비중도 크고요. 마포대교까지 걸어가는 중에 문제가 생길 겁니다.”

“그리고 마포대교에 도착해도 건널 수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한숨 소리가 사방에서 새어 나올 때 예비군 한 명이 물었다.

“바지선을 이곳으로 올려 보내서 배다리를 만들거나. 저기 끊어진 다리 위에 장간조립교를 놓으면 안 될까요?”

“바지선은 갑자기 범람한 물로 한강 하류까지 밀려 가서 내일이나 도착할 것 같습니다. 장간조립교는…….”

장교들은 말을 끌며 잠시 눈치를 살폈다.

곧 한 장교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상판이 끊긴 다리를 가리켰다.

“……장간조립교는 한강 다리 폭파 책임 문제 때문에…….”

한강 다리 폭파 이야기가 나오자 모두가 분통을 터트렸다.

“도대체 누가 다리 폭파 명령 내린 겁니까?”

“뚝섬에 시민에 군인, 경찰까지!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데!”

“어떤 미친 새끼가 다리를 폭파해요!?”

……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상부에서도 확인하고 있습니다.”

장교들이 연신 고개 숙이자, 분통을 터트리던 시민들은 곧 고개를 저었다.

“하. 그만해! 이분들은 잘못 없다!”

“맞아. 끝까지 저지선을 지키신 분들인데…….”

“이분들이 목숨 걸고 저지선 지키지 않았으면 벌써 끝장났어…….”

“죄송합니다.”

장교들이 다시 한 번 깊게 고개 숙이고 말을 이었다.

“장간조립교를 요청하기는 했는데…….”

“한강 다리 폭파의 책임 문제로 장간조립교 이동이 멈춘 상황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책임 문제?”

“어, 저 끊긴 다리를 이을 수 있다고!?”

“장간조립교!? 그걸로 다리를 이을 수 있으면 당장이어야지!”

“책임 추궁이야 나중 일이고! 얼른 다리부터 연결해야지! 지금 여기에 몇 명이 갇혔는데!”

다시 한 번 분노한 목소리가 터져 나올 때.

몇몇 사람이 돌아가는 상황을 깨닫고 탄식했다.

“하아- 이 또라이 새끼들. 그래서구나!”

“시바. 어떻게 된 게 윗대가리들은 쌍팔 년도부터 바뀐 게 없어…… 하아-.”

“지금 무슨 말이야? 누가 알아듣게 설명 좀 해 봐.”

예비군 모자를 쓴 남자가 상판이 떨어진 다리를 가리켰다.

“저렇게 다리를 끊어 놨는데. 바로 장간조립교를 보내서 다시 다리를 연결하면. 다리를 끊었던 게 실수였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되잖아요.”

“어……?”

“……뭐라고!?”

순간적으로 머리가 멍해졌던 시민들은 곧 상황을 깨달았다.

-섣불리 한강 다리를 끊어 시민들이 고립된 상황.

-한강 다리를 바로 다시 이으며 다리를 폭파한 게 오판이 된다.

-하지만 한강 다리를 잇지 않으면 전략적 판단이라고 말할 여지가 있다.

순간 모든 사람이 분통을 터트렸다.

“와! 진짜 미친 또라이 새끼!”

“이 새끼 도대체 누구야!? 잡으면 몬스터한테 던져 준다!”

“아니, 그러니까 잘못을 인정할 수 없어서 다리를 연결하지 못한다는 거야!?”

“이거 분명 정치인이지!?”

“당연히 정치인이겠지! 선조 같은 새끼들!”

“시발! 정치인 놈들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 아예 도망치지 못하게 법으로 만들어야 한다니까!”

분노한 시민 앞에서 장교들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정부, 국방부, 합참, 일선 부대.

누가 한강 다리 폭파를 지시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누가 지시했건 한강 다리를 폭파해 끊어 버린 건 국군이었다.

국민을 지켜야 하는 국군이, 국민이 대피 중인 다리를 끊어 버린 건 뭐라 변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때 둑을 쌓는 방향에서 병사 한 명이 달려 오며 외쳤다.

“마수, 몬스터 집단이 나타났습니다!”

예상보다 너무 이른 시간!

깜짝 놀란 장교가 바로 확인했다.

“웨이브 시작됐나!?”

“아닙니다! 열 마리 내외의 마수와 몬스터 소집단이 밀려 오고 있습니다! 곧 교전 시작될…….”

탕, 타타타탕-

보고가 끝나기도 전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공사 속도 지연되면 끝장이다!”

“예비대. 소대 단위로 밀어붙인다!”

“중랑천! 폭약 매설 현장에 저지선 만들어야 한다!”

“모두 바로 움직여라! 어떻게든 둑이 건설될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끈다!”

무전기를 잡은 장교와 경찰관들이 몸을 돌려 시가지로 달려가려다가 멈칫했다.

멈칫한 이들은 하나같이 천문석을 바라보더니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경례하며 외쳤다.

“작전 계획 감사합니다!”

“마수와 몬스터, 웨이브…… 전해 주신 정보 감사합니다!”

“바위 트롤 끌고 시가지를 청소해 주셔서 제 부하들이 살았습니다!”

“중랑천 범람을 경고해 주셔서! 피난 중인 시민들을 재 때에 대피시킬 수 있었습니다!”

모든 장교와 경찰이 부동자세로 경례했다.

머리를 쥐어짜던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들어 장교와 경찰들을 봤다.

흔들림 없는 눈과 표정!

듣지 않아도 이들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더는 뭐라 말할 게 없었다.

최선을 다하면 될 뿐!

천문석은 이들을 향해 마주 경례했다.

그리고 군인과 경찰, 예비군 모두가 총성이 울리는 전선으로 달려갔다.

쿵, 쿵, 쿠우웅-

곧 전차 주포의 육중한 굉음과 총성이 전선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전투가 시작되자 도로 넘어 시가지 하늘이 몬스터와 인간이 뿜어내는 살기와 투지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일렁이는 하늘을 보자 바로 알 수 있었다.

전황은 미리 진지를 만들고 대기 중인 아군의 압도적 우위!

이대로면 몬스터 웨이브의 첫 파도, 1만 규모의 몬스터 웨이브 셋이 밀려 오기 전에 둑과 물길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둑과 중랑천의 물로 몬스터 웨이브를 쓸어버려도 EMP 마력 폭풍이 몰아치면 끝장이다!

어떻게든 오늘 안에 한강 변에 모여든 시민들을 빼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때 한 시민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요! 여기 사람 기다려요! 이쪽으로 몰고 와주세요!”

문득 고개를 돌리자 한강 너머 잠실에 닿는 오리배가 보였다.

서리 늑대가 천장에 앉아 있는 오리배.

장민과 장철 가족이 탄 오리배가 마침내 한강을 건너갔다!

밧줄을 던지자 강변에 자리한 사람들이 일제히 밧줄을 잡아당겨 오리배를 끌어올렸다.

장민이 세린이를 안고 뛰어내리고 어느새 정신을 차린 장철이 비틀거리며 내려선다.

잠시 실랑이를 하다가 청년과 중년 남자를 태운 오리배가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때 장철, 장민, 세린이와 천문석의 눈이 마주쳤다.

바로 손을 들어 크게 흔드는 세 사람.

천문석은 마주 손을 흔들며 외쳤다.

“조심히 가세요!”

순간 세 사람은 두 손을 입가에 모으고 외쳤다.

“……!”

“……!”

“……!”

한강 건너편에서 외치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지만, 크게 손을 흔들며 외치는 모습만 봐도 이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다시 보자는 이야기를 했을 거다.

그러나 2000년에 자신과 장철, 장민, 세린이가 다시 만날 일은 없었다.

이들에게는 20년 후.

하지만 자신에게는 며칠 후가 될 2020년에 다시 만나게 된다.

천문석은 크게 소리치며 손을 흔들었다.

“며칠 후 다시 볼 때까지 조심하세요!”

이때 세린이가 인형을 들고 한강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장민이 세린이를 잡는 순간.

“ㅁㅁ ㅁㅁㅁㅁ! ㅁㅁㅁ!”

들려오지 않는 외침과 함께 인형이 한강으로 날아왔다.

세린이의 곰 인형 곰곰이는 아이가 던졌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멀리 날아왔다.

그래 봐야 몇 미터.

곰곰이는 곧 한강에 떨어…….

“……!”

세린이 인형 곰곰이는 한강에 떨어지지 않았다!

서리 늑대의 입에 물렸다!

세린이가 곰곰이를 한강으로 던진 순간.

오리배 천장에 앉아 있던 서리 늑대가 본능적으로 뛰어 한강으로 떨어지는 인형을 물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서 달려 오고 있었다.

물 위를 달려서!

보다 정확히는 서리 늑대 발아래, 한강 물이 순간적으로 얼어붙고 있다!

서리 늑대는 얼어붙은 한강 물을 밟고 달렸다!

이 모습을 본 순간 천문석의 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떨렸다!

“어엇! 저게 뭐야!?”

“한강! 저기 한강 좀 봐!”

“개가 한강 위를 달려 오고 있어!”

“어, 어! 저기 한강에 얼음 아냐!?”

……

경악한 사람들의 외침이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순간.

나올락 말락 간질거리던 생각이 마침내 뇌리를 뚫고 튀어나왔다!

한강을 얼린다!

천문석은 과거·현재·미래 삼생을 관통하는 깨달음에 외쳤다!

“의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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