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467화 (468/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67화>

천문석은 오리배 위에 앉은 서리 늑대에게 외쳤다.

“한강 무사히 건널 때까지 지켜 줘! 부탁한다!”

컹-

서리 늑대가 알겠다는 듯이 울자.

천문석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주위를 돌아봤다.

오리배를 보고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누군가 외친 유람선이란 말에 하류로 달려가고 있었다.

잠실 대교 방향에서 사람들이 계속 달려왔지만, 이들도 유람선이 있다는 말에 하류로 이동하고 있었다.

아작낸 조폭 놈들은 어느새 종적을 감췄고, 멀리 도로 방향에 저지선을 만들었던 군인들도 시가지에 남은 마수와 몬스터를 정리하고 뒤로 빠지고 있었다.

바위 트롤을 끌고 달리며 시가지를 정리한 보람이 있었다.

하하하-

천문석은 웃음을 터트리며 하늘을 봤다.

시간은 1월 1일 아침.

EMP 마력 폭풍은 내일모레 1월 3일에나 터지니 시간은 널널했다.

이제 서리 늑대와 광화문으로 돌아가면 이번 일도 끝난다!

예상외의 사건·사고가 많았지만,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은 법!

부산 던전 배송에서 시작된 이 장대하고 어이없는 이야기도 끝나가고 있었다.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돌려 오리배를 바라봤다.

거센 물살에 아직 1/5도 한강을 넘지 못한 오리배.

오리배 안 눈을 꼭 감고 열심히 숫자를 거꾸로 세는 세린이 얼굴을 보였다.

순간 아이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서른셋, 서른하나, 서른둘, 서른다섯…….’

‘이상해! 왜 숫자가 끝나질 않지!?’

문득 미소가 지어지고 얼마후면 보게 될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언제나 활기찼으나 혼자였던 특급 헌터에게 장세린이라는 누나가 생긴다.

많은 것이 바뀔 거다.

특급 헌터는 누나와 함께 고등어를 먹을 테고, 혼자 달리던 쌩쌩이 옆에선 다른 쌩쌩이가 같이 달릴 거다.

장철과 장민 가족은 더 북적이고 더 많이 웃게 될 거다.

어쩌면 어디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하늘의 인과로 인해서 장철, 장민, 특급 헌터와 자신과 이어진 인연이 끊어질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쓸쓸한 일이다.

그러나 머릿속 기억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마음속에 새겨진 웃음소리는 끝없이 울려 퍼진다.

그렇기에 이번 일은 어떤 나비효과가 일어난다고 해도 감수할 만한 일이었다.

철수형의 말버릇대로 말이다.

“할 만했다.”

문득 말한 순간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이세기 준장님!?”

‘준장!?’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등 뒤에 장교와 병사들, 경찰과 총기를 든 일반인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이 중 한 경찰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여기 계셨군요! 한참 찾았습니다!”

중랑천에서 만났던 경찰이 앞으로 나서서 천문석을 가리켰다.

“이분이 이세기 준장님입니다!”

“충성! 이세기 준장님! 상부에서 명령이 내려 와서 찾아뵙습니다!”

전신에 피를 뒤집어쓴 장교가 앞으로 나서서 경례했다.

순간 천문석의 머릿속에서 폭풍이 몰아쳤다.

준장, 상부, 명령!?

소령에서 시작한 계급이 어느새 대령을 거쳐 준장이 됐다!

아니, 척 봐도 20대인데 준장이 말이 되는 거야!?

게다가 상부에서 명령이 내려왔다고!?

‘그런데 왜 나한테 왔어!?’

상황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난장판에서의 임기응변은 천문석의 특기!

천문석이 태연하게 경례를 받았다.

“충성.”

장교가 바로 외쳤다.

“대 몬스터 전 전문가신 이세기 준장님의 의견이 필요합니다.”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치는 기억.

중랑천에서부터 수도 없이 서울 헌터 부대, 대 몬스터 전 전문가라고 약을 팔았다!

팔았던 약이 데굴데굴 굴러 자신에게 돌아오고 있었다!

천문석은 모여든 사람들을 살피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알겠다. 우선 상황부터 보고해라.”

“네! 지도로 설명하겠습니다!”

간이 테이블이 놓이고 지도가 펼쳐지자 주위를 둘러싼 장교, 사병, 경찰관, 예비군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장교는 도봉산을 짚었다.

“북한산 국립공원 도봉산 방면에서 쏟아진 외계생명체. 말씀하신 마수와 몬스터 대집단이 한강 방향으로 몰려 오고 있습니다!”

장교의 손가락이 도봉산에서 남쪽으로 쭉 그어져 한강에서 멈췄다.

뚝섬!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다!

천문석은 상황을 바로 파악했다.

마수와 몬스터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 그 움직임은 물을 닮게 된다.

도봉산에서 한강까지 이어지는 서울 북동부 지역.

도봉, 노원, 강북, 성북, 중랑, 동대문, 성진, 광진구!

서쪽은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막히고, 동쪽은 수락산, 불암산, 망우산, 용마산으로 막혔다.

규모가 커진 마수와 몬스터 집단은 물처럼 한강으로 움직였다.

북한산에서 쏟아진 물이 중랑천을 흘러 한강으로 온 것처럼!

천문석은 규모부터 확인했다.

“몬스터 집단의 규모는?”

장교는 지도를 짚으며 빠르게 설명을 이었다.

“선두 집단 1만 단위 셋!”

“후속 집단의 규모는 최소 5백에서 최대 5천까지. 37개 집단이 관측됐습니다!”

“선두의 1만 단위 몬스터 집단은 저녁쯤 이곳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장교의 보고를 듣는 순간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몬스터 웨이브!”

선두 집단만 3만!

게다가 뒤를 따르는 몬스터 집단이 계속 이어진다.

이 정도면 몬스터 웨이브다!

웨이브가 일어나면 마수와 몬스터의 집단 무의식이 연결된다.

체력과 전투력이 대폭 증가하고, 반발장이 마치 하나인 것 합쳐져 강화된다.

이렇게 하나로 합쳐진 몬스터 무리는 웨이브, 엄청난 파도가 되어 그 앞의 모든 것을 박살 낸다!

여기까지 듣자 상부에서 온 명령이 무언인지 짐작이 갔다.

천문석은 번쩍 고개를 들어 주위를 봤다.

잠실 대교 방향에서 달려온 인파가 영동대교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렇게 달려가는 인파가 외치는 단어.

유람선!

한강에 놓인 다리가 끊기자, 한강 변에 모인 수많은 사람이 유람선을 타기 위해 달리고 있었다!

“시민들을 한강 이남으로 소개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나?”

천문석의 물음에, 장교의 눈가에 분노가 스쳤다.

“……한강 다리를 폭파해놓고 시민 소개 명령을 내렸습니다! 저 유람선 한 대만 보내 주고!”

순간 지도를 보고 있던 군인들과 경찰관의 눈에도 분노가 어렸다.

군경이 쏟아지는 마수와 몬스터와 싸워 한강 저지선을 지키고 시민들을 대피시킬 때.

한강 이남의 부대는 다리 위에 나타난 몬스터 몇 마리에 놀라 다리를 끊어 버렸다!

유람선을 한 척 보내왔지만, 유람선만으로 이 많은 시민을 저녁때까지 대피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어떻게든 몬스터 웨이브를 지연시켜야 한다!

천문석은 지도를 짚으며 확인했다.

“혹시 항공 폭격. 자주포 포격. 가능한가!?”

“몇 번이나 요청했지만, 서울 시가지에 대한 포격은 여전히 불가입니다.”

장교가 대답하는 순간 무전병이 외쳤다.

“전차 부대 강변북로를 통과했습니다! 곧 도착할 거라는 연락 왔습니다!”

확 얼굴이 밝아진 장교가 지도를 짚으면 계획을 설명했다.

“전차 부대와 함께 한강 저지선을 강화하면…….”

웨이브가 아닌 소집단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그러나 웨이브가 일어난 이상 전차 화력으로는 돌진을 막을 수 없다.

엄청난 반발장과 광기!

집단을 이룬 마수와 몬스터들은 순식간에 화망을 돌파해 전차와 저지선을 휩쓸어버릴 거다.

지금 저지선을 그대로 유지하는 건 쏟아지는 물을 손으로 막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 필요한 건 현대전의 참호가 아닌 중세시대의 높고 튼튼한 성벽이다.

성벽!?

문득 든 생각에 고개를 돌리자 한강 저지선 너머 아파트와 건물들이 보였다.

순간 머릿속에서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우선은 확인부터

“폭약은 충분한가?”

“네! C4는 잔량이 넉넉합니다.”

“경찰분들 중장비 준비 가능하십니까?”

“네. 차고지가 근처에 있어서 바로 준비 가능합니다.”

“예비군분들 중에 중장비 운전 가능하신 분 계십니까?”

“사우디 5년 다녀왔습니다!”

“전 도로 건설 20년 경력입니다!”

곳곳에서 손을 들고 외치는 예비군들.

“혹시 폭파 작업……?”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을 들고 대답하는 사람들.

“구조 기술사입니다!”

“폭파 작업 경력 8년…….”

무엇을 묻던 경력자가 예비군 안에서 튀어나왔다.

과연 2000년 대한민국 예비군!

2020년 들어가기 더럽게 힘든 군대와 달리 온갖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군대에 모여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천문석은 모여든 사람들을 쓱 훑어보며 말했다.

“저한테 계획이 있습니다.”

펜을 들어 지도 위 시가지에 가로로 죽 선을 그었다.

“여기에 둑을 만들어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네, 둑이요?”

“갑자기 둑이라니 그게 무슨…….”

당황한 외침이 들려올 때.

천문석은 저지선 너머 아파트와 건물을 가리켰다.

“폭약과 전차로 건물을 무너트리고 그 잔해로 아파트와 건물 사이, 도로를 막습니다.”

“이렇게 만든 둑으로 쏘아지는 몬스터 웨이브를 가두고.”

“군과 예비군분들은 아파트를 성채 삼아, 고층에서 화력을 쏟아부어 저지합니다.”

“저…….”

장교가 머뭇거리다가 주위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탄약 재고가 많지 않습니다. 전차 부대에서 보급받아도 1, 2시간 전투하면 끝입니다.”

장교, 사병, 예비군, 경찰 모두가 한숨짓는 순간.

쾅-

천문석은 간이 테이블을 두들겨 시선을 모으고 말했다.

“탄약은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아니, 한두 발 쏘기도 전에 대부분의 마수와 몬스터 정리될 겁니다!”

“네?”

“그게 무슨……?”

자신만만한 대답에 의아한 시선이 모여들 때.

천문석은 손을 들어 범람한 한강을 가리켰다.

손이 하류로 움직이다가 멈추는 순간 툭 튀어나오는 단어.

“중랑천!”

순간 몇몇 사람이 탄성을 터트렸다.

“중랑천!”

“그렇지 중랑천이 있었어!”

“하! 이런 방법이!”

“무슨 말이야!?”

“중랑천이 뭐 어떻다고!?”

“누가 설명 좀 해 줘!?”

다급한 외침이 곳곳에서 쏟아질 때.

천문석은 가볍게 손을 들었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사람들.

천문석은 주위에 가득 모여든 군인, 경찰, 예비군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며 말했다.

“탄약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무기는 중랑천입니다.”

탁-

지도 위 가로로 그어진 선을 짚는 손!

“우리가 만든 둑으로 몬스터 웨이브가 모이는 순간.”

쾅-

중랑천을 내려친 주먹이 가로로 그어진 선 위를 거칠게 움직였다!

“중랑천에서 쏟아진 수만 톤의 격류가! 몬스터 웨이브를 깨끗하게 쓸어버릴 겁니다!”

* * *

성수대교에서 잠실 대교까지 뚝섬 곳곳에서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몬스터 웨이브가 오기 전에 둑을 만들어야 합니다!”

“중장비 운전 가능하신 분 없으십니까!? 둑을 만들어 대피할 시간 벌어야 합니다!”

“폭약 더 가져와! 이 정도로 모자라!”

“폭파 전문가! 공학 계통 교수님 없으세요!?”

“건물 안 확인 끝났습니다!”

“전차 부대! 표시한 해당 건물에 일제 포격한다!”

콰아아앙-

건물이 와르르 무너지고 먼지가 훅 올라올 때.

쿠르르릉-

중장비가 무너진 잔해를 밀고 도로를 달렸다.

무장한 병사들이 중장비를 호위하고, 예비군은 아파트와 건물 저층에 바리케이드를 쌓고 고층에 진지를 만들었다.

경찰들은 무전기를 잡고 강북에서 대피하는 시민들을 서울 동부 고지대 망우산, 아차산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었다.

‘중랑천의 물로 몬스터 웨이브를 쓸어버린다.’

계획을 세운 즉시 모두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역시, 빨리빨리의 민족!’

천문석은 이 모든 것을 보며 몇 번이나 감탄했다.

자신이 배운 2000년 1월 1일 광화문 게이트 사태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군 수뇌부와 정부의 삽질.

몬스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국군.

시민을 지킨다는 임무를 다하지 않은 경찰.

그러나 직접 와서 본 2000년 광화문 게이트 사태에는 교과서에 짧게 적힌 역사 이상의 사실이 담겨 있었다.

민폐를 끼치는 VIP.

다리를 끊어 버린 지휘부.

삽질한 군 수뇌부와 정부.

임무를 내팽개치고 도망친 공무원.

이런 사람들은 일부일 뿐이었다.

붉게 충혈된 눈, 흙과 피로 뒤덮인 몸으로 쉴 새 없이 달리는 장교와 사병, 경찰.

다시 무기를 잡은 예비군과 중장비를 몰고 폭약을 설치하는 일반인들.

눈앞에 보이는 모두가 한강으로 밀려 오는 몬스터 웨이브를 막기 위해 시가지에 둑을 만들고, 중랑천 제방에 물길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들이야말로 역사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게이트 전쟁을 승리로 이끈 원동력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