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65화>
“그놈 죽이진 마라! 쓸 때가 있다!”
얼핏 귓가에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장철은 잠시 잊고 있던 걸 깨달았다.
전투법을 가르치며 수없이 강조하던 이야기.
‘절대 망설이지 마세요.’
장철은 망설이지 말라고 수없이 강조한 이유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적을 봐주며 싸울 수 있는 건 강자의 특권이다.
해머로 몬스터 몇 마리 잡았다고 너무나 오만했다.
동생처럼 주저해서는 안 됐다.
장철은 쏟아지는 발길질보다, 후회에 타들어 가는 가슴이 더 고통스러웠다.
이때 흐릿해지는 눈에 한강으로 밀려 가는 오리배가 보였다.
눈을 꼭 감고 크게 숫자를 세고 있는 세린이.
망설임 없이 오리배를 밀고 있는 장민.
세린이와 같이 있는 게 장민이라 정말 다행이었다.
장민은 어떻게든 세린이를 지켜 줄 거다.
‘부탁한다…….’
마음속으로 말하는 순간 흐릿한 시야가 어두워지고 의식이 끊겼다.
* * *
“밟아!”
“새끼! 아작을 내주마!”
등 뒤에서 들려오는 살벌한 외침.
그러나 장민은 멈추지 않고 전력으로 오리배를 밀어붙였다.
으아악-
촤아아아아-
마침내 오리배가 한강으로 내려진 순간.
장민은 오리배를 같이 밀던 청년에게 재빨리 말했다.
“건너가지 말고 강 위에서 기다려 주세요!”
“…….”
청년은 말없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얻어터지는 장철을 봤다.
장민은 바로 배낭 안에 손을 넣어 지폐 다발을 꺼내 청년의 품에 넣어 주며 말했다.
“기다려 주시면 끝나고 2개 더 드리겠습니다!”
“네? 이게 무슨?”
얼떨떨한 표정으로 품 안을 살피던 청년은 만 원권 지폐 뭉치에 기겁했다.
“이건!?”
“기다려 주시면 2개 더 드릴게요. 약속하는 겁니다!”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청년.
장민은 눈을 꼭 감고 숫자를 세고 있는 세린이를 힐끗 보고 좌석에 앉은 중년 남자에게 작게 말했다.
“아이 좀 부탁드려요.”
중년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 순간.
장민은 바로 몸을 돌려 달리며 주위를 훑었다.
어느새 파도가 거의 가라앉은 한강.
잠실 대교 방향에서 밀려 오는 인파.
오빠를 밟고 있는 10여 명의 조폭!
‘할 수 있다!’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책을 생각할 때.
칼잡이가 앞으로 나섰다.
휙-
장민은 석궁을 들어 칼잡이를 겨누고 외쳤다.
“거기 조폭들! 그 사람 이리로 보내라!”
“우리가 왜 그래야 하지?”
칼잡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묻는 순간.
장민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리고 머리를 겨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네 머리통에 석궁이 박힐 테니까!”
“뭐? 너 영화를…….”
푹-
칼잡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석궁이 날아가 한 조폭의 다리를 꿰뚫었다.
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지고.
“이런 썅!”
분노한 조폭들이 장민에게 달려 오려 할 때.
장민은 이미 재장전을 마치고 석궁을 겨누고 있었다.
“와라! 다음 놈은 눈에다가 박아주마!”
석궁을 든 장민의 얼굴은 마스크와 모자를 써 눈만 보였다.
그러나 형형한 눈빛을 보는 순간 조폭들은 모두 깨달았다.
‘주저하지 않고 쏜다!’
이때 칼잡이가 외쳤다.
“그만! 걔 일으켜라!”
조폭들이 밟던 장철을 일으켜 세우고 앞으로 끌고 나왔다.
축 늘어진 장철에게서 쏟아진 피가 땅에 선을 그려냈다.
작게 움직이는 가슴과 잘게 경련하는 손발만이 장철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걸 보여 줬다.
장민은 시선을 돌리지 않고 외쳤다.
“저 사람 부하 한 명이랑 같이 보내라. 한강 건너가서 저 오리배 넘겨주겠다.”
칼잡이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야, 그걸 어떻게 믿어? 너한테 석궁 맞은 애들이 한두 명이 아닌데? 건너가서 쓱싹 할 수도 있잖아? 그렇지 않냐?”
장난스러운 외침에 조폭들이 일제히 외쳤다.
“맞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지는 거지?”
장민의 물음에 웃으며 대답하는 칼잡이.
“우리가 모두 건너가고 오리배 넘겨줄게. 그때 가져가.”
“하!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당연히 말이 안 되지!”
“뭐……?”
장민이 당황하는 순간 칼잡이가 외쳤다.
“지금까지 시간 끈 거다! 지금이다!”
순간 다급한 외침이 한강에서 들려왔다.
“어, 어엇!”
오리배를 밀고 한강으로 나아갔던 청년의 외침.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생경한 목소리.
“형님! 오리배 잡았습니다!”
쓰으윽, 쓰으으윽-
오리배가 땅 위로 끌려 오는 소리가 나고 너무나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물둘, 서른셋, 서른다섯…….”
조카 세린이의 목소리!
장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석궁을 겨눈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외쳤다.
“좋다 그 조건대로 하지. 그 남자 넘겨라!”
이 모습을 본 칼잡이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와. 이 새끼 침착한 거 봐? 어지간한 중간보스보다 나은데!?”
“…….”
“이제 석궁 내리고 이야기하자. 우리 그렇게 나쁜 사람들 아냐.”
칼잡이가 한 발 앞으로 다가오는 순간.
장민이 기다리던 외침이 들려왔다.
“허억- 오리배!”
“잠시만! 헉- 저희 좀 태워 주세요!”
……
힐끗 곁눈질하자 보였다.
잠실 대교에서 달려오는 수백 명의 사람!
그중 앞서 달리는 사람 이십여 명이 도착했다!
조폭이라고 해야 10명 남짓!
잠실 대교에서 몰려 오는 수백 명의 사람이 도와주면 지금 상황을 순식간에 해결할 수 있다!
장민은 바로 외쳤다.
“도와주세요! 이놈들 조폭들이에요!”
그러나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진행됐다.
“어? 조폭!?”
“아니, 갑자기 무슨 조폭이…….”
……
당장이라도 오리배를 차지하려 달려들 것 같던 사람들이 움찔했다.
이때 칼잡이가 오히려 크게 외쳤다.
“맞다! 우리 조폭이다! 야! 모두 외쳐!”
“우리 조폭이다!”
“우리 조폭이다!”
……
조폭들이 크게 외치며 각목과 쇠파이프를 위협적으로 휘두르는 순간 움찔했던 사람들이 기겁해서 물러섰다.
칼잡이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물러선 사람들과 뒤이어 밀려 오는 사람들을 돌아봤다.
순식간에 수십 명의 사람이 조폭 무리와 장민을 둘러쌌다.
휘이익-
장난스럽게 휘파람을 부는 칼잡이.
“뭐야? 너 이 사람들 기다린 거야? 와, 많이도 모였다! 이 정도 머릿수면 우리 순식간에 아작나겠어. 그렇지?”
칼잡이는 씨익 웃으며 주위를 돌아보다가.
싸아악-
손에 든 사시미 칼로 자신의 팔을 그었다!
흐어엇-
꺄아아-
다급한 비명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칼날에서 피가 뚝뚝 떨어질 때.
칼잡이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며 외쳤다.
“여기! 얘 도와줄 사람 있으면 당장 나와라!”
광기 어린 눈빛.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사시미 칼.
칼잡이의 살기에 모여든 사람들 모두 고개를 돌렸다.
장민의 얼굴이 하얗게 질릴 때.
칼잡이가 피식 웃으며 외쳤다.
“뭐야? 애새끼 도와줄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외침과 동시에 다시 한 번 팔뚝을 긋는 사시미 칼!
싸아악-
날카로운 칼날에 피가 쏟아지고, 다시 한 번 사람들의 비명이 곳곳에서 터져 나올 때.
칼잡이는 장민을 향해 걸으며 외쳤다!
“도와줄 사람 없냐!?”
“진짜로!?”
“정말로!?”
외칠 때마다 자신의 팔뚝을 긋는 칼잡이!
완전히 위축된 사람들이 물러날 때.
장민은 이를 악물고 석궁을 당기려 했다.
이 순간 칼잡이는 외쳤다!
“야! 이 꼬맹이가 석궁 쏘면 그놈 머리 내려쳐라!”
“네 형님!”
조폭들이 피투성이가 된 장철을 끌어올리더니 쇠파이프를 머리에 겨눴다.
장민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누구라도 도와주면 100만원 준다! 한 명 한 명 모두!”
이 순간 칼잡이는 주위를 향해 외쳤다.
“나와 봐라! 그 100만원 바로 뺐고! 칼빵 놔준다!”
그리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칼잡이!
“…….”
석궁을 든 장민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물러나는 장민을 따라 주위의 사람들도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계속 밀려 오는 인파로 어느새 움직일 공간이 사라졌다.
장민은 누군가와 등이 맞닿아 멈췄다.
“…….”
장민이 멈추는 순간.
칼잡이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사시미 칼을 흔들며 소리쳤다.
“뭐야? 왜 이렇게 세상이 각박해!? 어린애 도와주고 칼빵 좀 맞아줄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거야?”
“…….”
수백 명의 사람이 모였다고는 생각지도 못할 만큼 조용한 가운데 조폭들의 웃음소리만 울려 퍼졌다.
흐흐흐흐-
하하하하-
크흐흐흐-
장민이 주위를 돌아봤지만, 시선이 닿는 사람 모두 고개를 돌렸다.
“이제 버릇없이 군 대가를 치러야지? 그렇지 않냐? 애들아?”
“맞습니다! 형님!”
“석궁 쏴봐라! 새끼야!”
“이 자식 머리통을 박살 내줄 테니까!”
칼잡이가 웃으며 사시미 칼을 흔들고 조폭들이 크게 외칠 때.
긴박한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이의 신나는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팔십 구, 구십 오, 구십 칠, 백! 나 백까지 다섯 번 다 셌어! 아빠! 엄마! 고모!”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움직일 때.
뒤이어 들려오는 어이없어하는 목소리.
“와! 이 사기꾼 녀석! 너 중간에 몇 개를 빼먹은 거야? 특급 헌터보다 더 엉터리잖아!”
“원래 아이들은 이렇게 하는 거란 말야! 백은 너무 많잖아! 하나도 안 엉터리야!”
“야! 그럼 백에서 일까지 거꾸로 세봐. 그러면…….”
“어떤 새끼야!?”
칼잡이가 무심결에 외치며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불쑥 튀어나온 손.
“……어?”
뭘 어떻게 할 틈도 없이 튕긴 손가락이 이마에 떨어졌다.
따악-
끄아아아악-
순간적으로 이마를 부여잡고 쓰러져 비명을 지르는 칼잡이!
손가락이 날아오는 걸 보지 못했다면, 빠루에 맞았다고 생각했을 거다!
엄청난 고통!
칼잡이는 머리가 빠개질 듯한 고통에 사시미 칼마저 떨어뜨리고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악-
이때 들려오는 목소리.
“꼬맹이냐? 딱밤 맞고 울게? 새끼가 엄살은.”
모자를 눌러쓰고 머플러를 칭칭 휘감은 남자가 딱밤을 날린 손가락을 훅- 불며 말했다.
이때 사방에서 들려오는 피식거리는 웃음소리.
“……!”
칼잡이는 흠칫 놀랐다!
딱밤을 맞고 자신도 모르게 칼을 놓치고 비명을 질렀다!
사시미 칼로 스스로 팔을 그어 만든 분위기가 단숨에 깨져 버렸다!
“이 미친 새끼가!”
칼잡이가 사시미 칼을 들고 벌떡 일어나 상대의 얼굴을 긋는 순간.
팟-
세상이 암전됐다가 밝아지고 세상이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콰아앙-
충격에 숨이 컥 막혀 오는 순간 칼잡이는 반사적으로 외쳤다.
“……새끼! 담가…… 버려!”
쇠파이프, 각목, 체인.
무기를 든 조폭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이때 칼잡이의 머리카락을 잡아 오는 왼손!
인간 같지 않은 엄청난 악력에 머리 가죽이 통째로 뜯겨 나가는 극통이 쏟아졌다.
끄어, 끄어억-
칼잡이가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는 순간.
천문석은 피식 웃었다.
“새끼가 엄살은.”
천문석은 오른손을 등 뒤로 움직여 가볍게 휘저었다.
장민은 이 손짓의 의미를 바로 알아챘다.
‘세린이와 오빠를 구해라.’
쿵, 쿵-
장민이 대답하듯 창으로 바닥을 두 번 두들기는 순간.
천문석은 움직였다.
쇠파이프, 각목, 체인, 못이 박힌 배트.
살벌한 무기를 들고 달려오는 조폭들에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