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456화 (457/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56화>

끝없이 반복되는 시공의 감옥에 갇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

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마침내 만났다!

에코는 아리엘을 향해 대답했다.

“ㅁㅁㅁ.”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으나 그 의미가 이해되지 않는다.

“너, 지금!?”

깜짝 놀란 아리엘이 외치는 순간.

에코는 더 깜짝 놀랐다.

“으엇! 이게 왜 금기야!?”

외침과 동시에 눈이 돌아가고, 발작이 일어난 것처럼 전신을 떠는 에코!

“에코!?”

깜짝 놀란 아리엘이 부축하는 순간.

에코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꽉 쥔 회중시계 뚜껑을 열었다.

딸깍-

그리고 재빨리 회중시계 뚜껑에 박아넣은 경계석에 손을 올렸다.

파스스슥-

순간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경계석!

에코는 곧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분통을 터트렸다.

“와! 진짜 별게 다 금기네! 이게 왜 금기야!”

“…….”

아리엘은 이 모습을 보는 순간 문득 에코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자신이 파산한 게 인류를 위해서 좋은 일이란 이야기.’

완전히 이해한 건 아니지만, 시간 오류 수정자가 어떤 존재인지 어렴풋이 감이 왔다.

“……야! 처음부터 제대로 말했어야지!”

아리엘이 외치는 순간.

에코는 겸연쩍게 머리를 긁으며 대답했다.

“제가 말하면 그것 자체가 변수가 돼버리거든요.”

“…….”

아리엘은 더는 에코를 추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 그럼 우리가 돌아가면 이 모든 게 해결되는 거야? 이 뒤엉킨 시간도 원래대로 돌아가고?”

“네 이론적으로는 그렇게 될 겁니다.”

“이론적?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에코는 찰칵- 회중시계 용두를 누르며 대답했다.

“시계를 찾기 전에는 확신하지 못했는데…… 이 세계는 뭔가 이상해요. 분기점도 그렇고 끝없는 반복도 처음 겪는 일인데…….”

순간 아리엘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혹시 나랑 같이 온 사람들이 이 시대에 이미 살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도플갱어 역설요?”

“맞아. 하나의 시공간에 본질이 같은 존재가 동시에 존재하면 역설이 생기잖아?”

에코는 고개를 저었다.

“세계의 나무의 복원력을 생각하면 설사 ‘허신‘이 겹친다고 해도 이런 일이 생길 리가 없어요.”

“…….”

맞는 말이다.

원대륙 신화에 나오는 세계의 나무는 창세(創世) 그 자체다.

빛과 어둠.

물질과 비물질.

요마괴이와 사람.

혼돈에 그어진 경계이자 모든 존재를 구별하는 힘!

허신 같은 신적 존재라도 해도 세계의 나무를 키워 낸 존재에 비하면 티끌이나 마찬가지다. 문제가 생길 리 없었다.

하지만 아리엘은 자신이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를 잊고 있는 것 같은데?’

뇌리를 간질간질 자극하는 무언가!?

무언가 아주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때 에코가 확신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지금 저희에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김철수 발명가님이 ‘문‘을 여는 순간 그곳으로 튀어야 합니다.”

“알았어…… 어?”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이던 아리엘은 질문했다.

“……마법 회로 조율 오늘 저녁이나 내일 오전에나 끝나는데?”

“네. 저도 그 정도 걸릴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아리엘의 시선이 동굴 밖으로 움직였다.

쿠르르르릉-

산이 요동치고 사방에서 솟구친 물이 강이 되어 흐르는 북한산.

북한산에는 엄청난 수의 마수와 몬스터, 거대 괴수가 깔려 있다.

제국군 강습 수송병, 초대형 뱁새가 있으니 이 난장판을 지나가는 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며, 상급 마수와 몬스터, 거대 괴수조차 순식간에 무력화시키는 존재.

케페니안 황금 다람쥐도 밖에 있다!

“……차원 용병도 밖에 있는데?”

“네! 알고 있습니다!”

에코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순간.

아리엘의 얼굴이 풀렸다.

“아, 방법이 있었구나. 난 또 그냥 몸으로 뚫어야 하는 줄 알았잖니! 흐흐흐-.”

아리엘이 안도감이 섞인 웃음을 흘리는 순간.

에코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아리엘님! 저 에코입니다! 마법사 에코! 마탑을 27개나 먹은 무겐다흐님도 잡지 못한 도주의 달인 에코! 당연히 비장의 방법이 있죠!”

“흐흐흐- 그렇긴 해! 와! 내가 너 찾으려고 온갖 방법을 다 썼는데! 진짜 흔적도 없더라! 이번에도 기발한 방법이겠지?”

아리엘이 기대 어린 얼굴로 묻는 순간.

에코는 초대형 뱁새를 힐끗 보더니 얼굴을 가까이하고 비밀을 말해 주듯 속삭였다.

“초대형 뱁새. 저 녀석 제국군 강습 수송병입니다!”

“그렇지!”

“저 녀석 차원 용병이 자신을 노리면 미친 듯이 도망칠 겁니다! 같이 있다가 잡히면 끝장이니까요!”

“맞아! 맞아!”

아리엘은 웃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우리는 곧 이곳을 탈출할 수 있습니다! 하하하-.”

“……?”

“제가 이곳 탈출하면 사죄의 의미로 크게 쏘겠습니다! 하하하-.”

“…….”

“자, 그럼. 이제 안심하고 문이 열리길 기다리면 됩니다! 하하-.”

“…….”

어느새 창백한 얼굴로 에코를 노려보는 아리엘.

“하하…… 아리엘님? 제가 뭔가 실수라도……?”

“혹시 너 계획 그게 끝이니?”

“네?”

아리엘은 동굴 안쪽 데굴데굴 구르며 씨앗을 쪼아먹는 뱁새를 가리켰다.

“그러니까. ‘문‘이 열리면 저 뱁새, 제국군 강습 수송병 타고 그 ‘문‘으로 들어간다는 거지?”

“넵! 맞습니다!”

아리엘은 굉음과 울부짖음이 끊임없이 들려오는 동굴 밖을 가리켰다.

“밖에 저 차원 깡패를 뚫고 말이지?”

“그렇죠! 역시 마도 명문 무겐다흐 가문의 후계자 다운 통찰력이십니다! 한 번에 알아들으시네요!”

하하하하하-

아리엘은 웃음을 터트리며 에코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에코. 에코! 와, 에코! 하하하-.”

“네. 넷! 넵! 제가 에코입니다! 하하하하-.”

에코가 같이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아리엘은 번개같이 에코의 목을 조이며 외쳤다.

“야, 이 미친 새끼야! 그게 무슨 계획이야! 와, 이 또라이 새끼! 널 믿은 내가 미친년이지!”

딱딱, 딱딱딱-

악악, 으악, 악악-

아리엘이 에코의 계획을 듣고 무자비한 딱밤을 갈기기 시작했다.

이대 난장판이 된 북한산 국립공원 동쪽에는 아리엘이 완전히 잊은 존재가 있었다.

겨울답지 않은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암반 위, 꼬맹이가 커다란 로브를 담요처럼 덮고 잠들어 있었다.

북한산 국립공원 전체가 난장판이 됐지만, 꼬맹이가 잠든 암반 위는 마치 다른 세상인 것처럼 평온했다.

이 평온한 공간에 꼬맹이의 잠꼬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밥 먹고 싶다.”

* * *

아침 8시 20분.

완전히 해가 떴을 때 천문석과 장철 가족은 한양대를 지나 서울숲에 다가가고 있었다.

서울숲이 나오면 곧 성수 대교가 나오고 성수 대교만 건너면 강남 최북단 압구정동이다.

곧 안전한 한강 이남 지역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천문석은 주위를 돌아봤다.

해가 뜨자 중랑천 주위를 이동하는 사람들의 수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버려진 차량으로 완전히 막힌 간선 도로에 무장한 경찰이 드문드문 서서 사람들을 중랑천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타아앙, 탕-

간선 도로 너머에선 전투 중인지 총성과 몬스터의 괴성이 들려왔다.

군경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좌우가 간선 도로로 막힌 중랑천을 시민들의 대피로로 사용하고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군경의 대응이 빠르고 정확했다.

경찰의 인도로 중랑천으로 넘어온 사람들은 짐을 실은 손수레를 끌고,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타거나 두 발로 걸어 모두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남쪽, 서울숲 방향으로!

역시 사람들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천문석 일행처럼 성수 대교를 건너 압구정으로 넘어갈 생각이다.

인파가 점점 늘어나 어느새 천문석 일행은 자전거에서 내러 자전거를 밀면서 걷고 있었다.

서리 늑대는 숨어서 따라오도록 지시한 상황.

장철은 주위에 가득한 사람들을 보고 안도했고.

아이는 포대기에 안겨 아빠 품에서 잠들어 있다.

장민은 게이트 전쟁에 대해 들은 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천문석은 머릿속으로 계획을 다시 점검했다.

이대로라면 길어도 1시간이면 성수 대교를 넘어 압구정에 도착할 것 같았다.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문득 소리가 들렸다.

콰르르르르-

거칠게 흐르는 물소리!

무심코 본 중랑천의 수위는 어느새 확 올라온 상태였다.

‘뭔가 좀 이상한데?’

2020년과는 완전히 다른 중랑천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주위에서 걷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마철도 아닌데 중랑천 수위가 왜 저렇게 올랐어?”

“그러게 말이야. 어제 비도 안 왔는데 뭔 수위가 저렇게 높아.”

“겨울에 저렇게 수위가 높을 리가 없는데?”

아차!

이 순간 머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류세연, 특급 헌터, 한경석과 놀러 간 북한산 워터 파크!

북한산 워터 파크는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거대한 강물을 끌어들여 만들어졌다!

그러나 북한산을 헤집고 다닐 동안 강을 본 기억은 없다!

천문석은 재빨리 지도책을 꺼내 펼쳤다.

서울 서쪽 끝 고양시와의 경계, 창릉천에서 지금 있는 곳 중랑천 서울숲까지 강북에 있는 하천을 따라 손가락이 움직였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강북을 가로지르는 하천.

창릉천, 북한천, 우이천, 중랑천!

게다가 이 하천들과 연결된 청계천, 정릉천, 홍제천까지!

게이트가 열린 후 북한산에서 쏟아진 엄청난 물이 강북의 하천들을 하나로 연결했다!

지금 중랑천의 수위가 불어나는 것은 그 일의 전조 현상이었다.

이걸 잊고 있었다!

중랑천 주위는 머지않아 물에 잠기고, 배가 다닐 정도로 깊고 큰 강이 된다.

천문석은 재빨리 머리를 굴리며 주위를 돌아봤다.

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심상치 않다.

얼마후면 지금 피난민들이 걷고 있는 강변이 물에 잠기고 이후 주변 간선 도로까지 물이 차오를 거다.

그렇다고 자신 혼자 이 많은 사람들을 대피시킬 방법도 없다.

‘어떡해야 할까?’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주변 상황이 사진으로 찍는 것처럼 머리에 박혀 들었다.

-빠르게 불어나는 중랑천.

-그 주변에 가득한 피난민.

-간선 도로와 그 너머 높은 둑.

-곳곳에 서서 사람들을 인도하는 경찰.

-그 너머에서 들려오는 총성과 마수, 몬스터의 울음소리.

해야 할 일이 머릿속에서 순서를 갖춘다.

천문석은 순식간에 계획을 세우고 외쳤다.

“잠시만요!”

“네?”

“……?”

장철과 장민의 시선이 모이는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말했다.

“자전거 버리고. 지금부터 달려야 합니다.”

“네. 그게 무슨……? 곧 한강인데요?”

장철이 반문할 때.

장민은 장철의 자전거까지 낚아채 도로 옆으로 쓰러뜨리고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하죠?”

문제가 생겼다는 걸 직감한 장민은 바로 반응했다.

“저 간선 도로를 넘어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성수 대교를 건널 때까지 도로로 달려야 합니다.”

“네!? 도로로 올라가면 몬스터들이 나올 텐데요? 지금 총성이 계속 들려오는데…….”

“지금은 몬스터가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뒤에 붙으세요!”

천문석이 버려진 차로 꽉 막힌 간선 도로로 달려가며 외쳤다.

“오빠! 우선 움직이자!”

장민이 장철의 손을 잡아당겨 그 뒤를 따라 뛰었다.

천문석은 바로 난간을 넘어간선 도로를 가로질러 달렸다.

간선 도로는 버려진 차량으로 막혀 있었지만, 사람이 달릴 틈은 충분했다.

“거기! 이 위로 올라오시면 위험합니다! 자동차 사이에 괴물들 숨어 있어요!”

경찰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오는 것과 동시에 마수의 으르렁거림이 들려온다!

크르르릉-

대형견 크기의 들개 마수 이십여 마리가 곳곳에서 튀어나와 달려온다!

기다리던 놈들이다!

“처리하고 가겠습니다. 거리를 유지하세요!”

천문석은 바로 자동차를 밟고 뛰어오르며 외쳤다.

쿵, 쿵, 쿵-

자동차 지붕, 보닛, 화물칸을 밟고 단숨에 돌진.

천문석은 일부러 기세를 끌어올리지 않고 두 팔을 축 늘어트려 허점을 보이고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들개 마수의 공격 범위에 닿기 직전!

쿵-

천문석은 자동차 지붕을 밟고 옆으로 뛰었다.

무방비하게 공중으로 뜬 순간.

타다다다닥-

들개 마수들이 펄쩍 뛰어올라 드러난 팔, 목, 다리를 노렸다!

“석궁 쏩니다!”

이때 장민의 외침과 함께 석궁 볼트가 날아왔다.

깨애애앵-

선두에서 돌진하던 들개 마수가 석궁 볼트에 막고 나뒹구는 순간.

천문석은 화물차를 박차고 앞으로 나아가며 손을 그었다.

지금은 내력도 무공도 필요 없다!

단지 타이밍!

휙-

안전 장갑을 낀 왼손을 수평으로 그어 시선을 끌고.

푹-

단검을 든 오른손으로 시야의 사각에서 어퍼컷을 때리듯 찌른다!

푹, 푹, 푹-

일격에 목을 꿰뚫고, 갈비뼈 사이 심장을 헤집는 단검!

천문석이 달리는 경로를 따라 제대로 된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사방으로 나뒹구는 들개 마수들!

장민이 도망치는 놈에게 볼트를 날리고, 어느새 전장에 도착한 장철이 해머를 내리쳐 버둥거리는 놈을 끝장내며 외쳤다.

“눈 꼭 감고. 귀 꼭 가려야 해!”

포대기 속 아이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천문석과 장철, 장민은 순식간에 들개 마수 이십여 마리를 처리했다.

경찰관이 전력 질주해서 달려왔을 때는 이미 모든 들개 마수의 처리가 끝난 상황.

경찰관은 사방에 나뒹구는 들개 마수를 보며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혹시 군인이신가요!?”

계획대로 경찰관의 시선을 끌었다.

이제 경찰의 수와 권위로 중랑천을 따라 걷는 사람들을 대피시킬 때였다.

천문석은 잡낭에서 헌터용 신분증을 꺼내 스치듯 보여 주며 외쳤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서울 헌터 부대 이세기 소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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