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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453화 (454/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53화>

천 마리가 훌쩍 넘는 마수와 몬스터가 깔린 아파트 단지가 내려다보이는 상가 옥상.

단지 안에 가득한 몬스터를 본 장철은 얼굴이 하얗게 변해 주저앉았다.

“세경아…….”

천문석은 재빨리 아파트 단지를 살폈다.

완전히 불이 꺼진 계단식 아파트 7동!

지상은 빈 공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마수와 몬스터가 가득했다!

그러나 아파트로 들어가는 1층 현관은 가구와 의자로 막혀 있고, 불이 꺼져 어두운 베란다는 부서진 곳 없이 깨끗하다!

감이 왔다.

아직 몬스터가 아파트 세대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설령 1층 현관이 뚫린다고 해도 아파트는 철근과 콘크리트로 지어진 벙커나 마찬가지.

지상에 있는 마수와 몬스터는 대부분 하급이라 쉽게 집 안으로 뚫고 들어갈 수 없다!

아직 늦지 않았다.

바로 들어가서 빼내면 된다.

천문석은 바로 장철에게 확인했다.

“집이 몇 동 몇 호읩니까?”

“102동 1301호.”

장철이 반사적으로 대답한 순간.

천문석은 마수와 몬스터의 밀도를 확인하며 머릿속으로 동선을 짰다.

15층 아파트 옥상에서 2층 아래.

‘지상을 가로질러 외벽의 가스관을 잡고 옥상까지 올라가 로프를 타고 베란다로 들어간다.’

혼자라면 들어가고 나오는 것 모두 문제가 없다.

하지만 장철과 함께 들어가 장철의 가족을 데리고 나와야 했다.

지상에 있는 마수와 몬스터의 밀도를 낮춰야 한다!

천문석은 옆에 엎드린 서리 늑대를 봤다.

재앙급 마수 서리 늑대는 피곤한지 쩍 입을 크게 한번 벌리고 졸고 있었다.

서리 늑대의 엄청난 냉기, 서리혼을 이용하면 순식간에 저 마수들을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남은 서리 늑대는 한 마리뿐이고 서리혼은 2020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

게다가 서리 늑대 이 녀석은 물몸 중의 물몸!

전투 중에 상처라도 입으면 끝장이다!

‘어떻게 할까?’

생각과 동시에 떠오르는 기술.

굉천수!

굉천수의 섬광과 굉음이면 순식간에 몰려든 마수와 몬스터를 무력화할 수 있다.

그러나 굉천수는 처음 사용할 때가 가장 위력적이고 그 섬광과 소리는 멀리 있는 다른 마수와 몬스터의 주의를 끈다.

보호해야 할 사람이 있는데 거대 괴수의 주의를 끌면 끝장이다.

사방에 마수와 몬스터, 거대 괴수까지 깔린 지금 굉천수는 가능한 사용하지 않는 게 좋았다.

이때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신설동에서 얻은 화염병!

화염병으로 시선을 끌고 들어가면!?

천문석은 빠르게 머리를 굴려 계획을 짜고 장철에게 설명했다.

“이 화염병으로 시선을 끌고 외벽 가스관 잡고 옥상까지 올라가겠습니다.”

“네!? 가스관을 잡고 15층을 올라간다고요!?”

당황한 얼굴로 반문한 장철은 곧 말뜻을 알아차렸다.

자신이 엄두도 내지 못한 일, 저 엄청난 마수와 몬스터를 뚫고 같이 들어가자는 이야기!

장철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할 수 있습니다. 저를 미끼로 사용하셔도 괜찮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천문석은 바로 배낭에서 로프를 꺼내 장철의 허리와 허벅지를 묶여 하네스를 만들었다.

“상가 건물 끝까지 달려서 빗물관 잡고 내려갈 겁니다. 지상을 뚫을 때 제 뒤에 바짝 붙으셔야 합니다. 절대 낙오하시면 안 됩니다.”

장철에게 다시 한 번 주의를 시키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서리 늑대에게 말했다.

“여기서 쉬고 있다가 신호하면 바로 달려와라.”

눈을 감은 채 휘적휘적 꼬리만 흔드는 서리 늑대.

천문석은 바로 화염병에 불을 붙이고 심호흡했다.

그리고 화염병을 아파트 단지 입구로 던지는 동시에 달렸다.

* * *

촤아아악-

화르르륵-

화염병이 깨져 기름이 쏟아지고 화염이 치솟는 순간.

단지 안에 깔린 엄청난 마수와 몬스터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끼이이이익-

서로 뒤엉킨 채로 인간의 기척이 느껴지는 아파트를 향해 잡동사니를 던지고 포효하던 몬스터와 마수가 화염을 향해 달렸다.

워낙에 수가 많았기에 경로상에 남아 있는 마수와 몬스터의 수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뚫을 수 있다!

상가 옥상 끝까지 달린 천문석은 단숨에 빗물관을 타고 내려 와 지상에 섰다.

대부분 하급, 곳곳에 중급 마수와 몬스터들이 섞인 무리가 곳곳에 깔렸다.

죽일 필요는 없다.

단지 뚫기만 하면 된다.

이때 등에 닿는 장철의 손!

“준비됐습니다.”

“바로 뚫겠습니다!”

천문석은 외침과 동시에 움직였다.

하앗-

내력을 끌어올려 진각을 밟으며 강철봉을 찌른다!

콰아앙-

굉음이 터지고 기세가 올라가는 순간 돌진!

천문석은 마수와 몬스터의 무리를 꿰뚫고 달리기 시작했다.

쾅, 콰드득-

내력이 실린 강철봉에 튕겨 나가고 내력이 실린 발걸음에 뼈가 으스러지는 몬스터!

크아아앙-

끼이이익-

마수와 몬스터의 비명이 터지는 순간.

쿵, 쿵, 쿵-

느리고 무거운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고.

앞세운 강철봉에 걸리는 저항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시간!

천문석은 쉴 새 없이 때리고, 찍고, 후려치고, 밀어내 길을 뚫었다!

몬스터의 비명이 점점 커지고 사방에서 밀려 오는 기세가 점점 강해졌다.

그러나 이미 102동 외벽을 타고 오르는 굵은 가스관 앞에 도착했다!

“바로 올라가세요!”

외침과 동시에 몸을 돌려 치고 나간다!

하앗-

기합과 함께 수평으로 휘두른 강철봉에 걸리는 모든 게 박살 났다.

쾅, 쾅, 쾅-

이 살벌한 기세에 밀려들던 랩터와 들개 마수가 움츠러드는 순간.

탓-

천문석은 가볍게 뒤로 뛰어가스관을 잡고 올라갔다.

끼이이이익-

이때 기회를 노리고 움츠렸던 랩터들이 돌진해서 펄쩍 뛰어올랐다!

그러나 기회를 노리던 건 천문석도 마찬가지!

벽을 박차고 뛰어내리며 강철봉을 내려쳤다.

콰아앙-

임팩트 순간 무게가 폭증한 강철봉이 랩터를 산채로 찢어발겼다.

피와 살점이 폭발하듯 뿌려질 때.

천문석은 내력이 실린 손을 뻗었다.

안전 장갑을 낀 손에 잡히는 랩터의 갈고리발톱이 솟은 손!

쿵-

바닥에 떨어지는 동시에 갈고리발톱을 뽑아 던지고 랩터를 집어던졌다.

랩터와 충돌한 마수와 몬스터가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

천문석은 다시 한 번 몰아쳤다!

원을 그리는 강철봉과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손!

강철봉 닿으면 뼈가 으스러지고 살이 터지고!

불쑥 튀어나온 손에 잡히면 공깃돌처럼 사방으로 날아가 뒤엉켜 무너진다!

쿵, 쿵, 쿵-

북처럼 땅을 울리는 발에 찍히는 순간.

보법에 실린 내력이 마수와 몬스터의 내부를 찢어발겼다!

천문석은 마수와 몬스터의 기세를 완전히 꺾어 버리고 가스관을 잡고 천천히 올라갔다.

천천히 움직이는데도 기세가 꺾인 마수와 몬스터는 감히 공격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천문석은 힐끗 주위를 살폈다.

화염병에 낚였던 놈들이 돌아오고 있다.

순간적으로 기세를 꺾었지만, 일시적일 뿐.

마수와 몬스터들은 무리 지을수록 숫자 이상으로 빠르게 강해지고 기세가 강해진다!

가능한 한 빨리 장철의 가족과 함께 빠져나가야 했다!

천문석은 강철봉을 어깨에 걸고 빠르게 가스관을 잡고 위로 올라갔다.

장철을 따라잡은 천문석은 카라비너가 달린 로프를 건넸다.

“하네스에 채우세요! 빠르게 올라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장철이 카라비너를 하네스에 채우는 순간.

천문석은 바로 장철을 지나쳐 가스관을 잡고 위로 올라갔다.

로프에 장철의 체중이 실리고, 천문석은 순식간에 아파트 옥상에 도착했다.

헉, 허억-

장철이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천문석은 옥상 문부터 확인했다.

문은 잠겨 있었다.

혹시 다른 마수와 몬스터가 새어 들어올 수 있어서 문을 강제로 열 수는 없었다.

괜찮다.

원래 계획대로 로프를 타고 베란다로 들어가면 된다.

천문석은 옥상 난간 아래로 1301호를 확인했다.

옥상 바로 아래 탑 층이 15층.

1301호는 옥상에서 2층 아래다.

로프를 걸고 들어가면 순식간이다.

바로 옥상 구조물에 로프를 단단히 묶고 장철에게 확인했다.

“로프 타본 적 있으신가요?”

“처음이지만 할 수 있습니다!”

천문석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완강기를 장철의 하네스와 연결하고 로프에 걸었다.

“제가 우선 내려가겠습니다. 혹시 베란다를 부수고 들어가야 할 수도 있으니까. 5분 후에 내려 오세요.”

천문석은 바로 하강 고리를 로프에 걸고 미끄러져 내려갔다.

위이이잉-

로프가 하강 고리를 타고 미끄러지고 천문석은 순식간에 1301호에 도착했다.

불이 꺼지고 커튼까지 쳐진 베란다 창문.

창을 밀어 보지만 잠겨 있고,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설마 여기도 없는 거 아냐?’

이때 갑자기 아래층 어딘가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에! 위에 누구 있나요!?”

시선을 끌어 좋을 건 없었다.

내력을 끌어올린 손을 베란다 창에 붙이고 검기가 솟은 단검으로 유리창을 소리 없이 잘라 냈다.

쩍-

손바닥에 달라붙은 베란다 유리창!

천문석은 구멍 뚫린 베란다 창 안으로 손을 넣어 잠금장치를 풀고 베란다 창을 열었다.

드르륵-

그리고 베란다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핑-

다리를 향해 날아오는 섬뜩한 느낌!

깜짝 놀라 앞으로 구르자.

콰드드득-

유리 조각이 가죽 재킷에 박혔다.

베란다 앞은 깨진 유리 조각이 깔렸고, 거실 방향은 가구와 소파로 막혀 있다!

폭-

순간 석궁 볼트가 날아와 마루에 박히고 살기 어린 외침이 터져 나왔다.

“여기 우리가 찜했다! 꺼져 새끼야!”

순간 천문석은 바닥을 미끄러져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소파를 집어던졌다.

휘이잉-

거대한 가죽 소파가 날아가는 순간.

납작 엎드려 소파를 피한 형체가 보였다.

두꺼운 후드티에 마스크까지 쓴 사람이 석궁을 들고 있다!

천문석은 바닥을 박차 미끄러지듯 돌진했다.

순간 데굴데굴 옆으로 구르며 들고 있던 석궁을 집어던진다!

탓-

석궁을 쳐 내는 순간 기합과 함께 단단한 원목 의자가 날아왔다.

천문석은 가볍게 옆으로 굴러 원목 의자를 피하고 단숨에 일어나 돌진해 들어갔다.

훙-

순간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찔러 오는 부엌칼 창!

천문석은 안전 장갑으로 부엌칼 창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찔러 오던 부엌칼 창이 돌연 멈추고 공을 차올리듯 발을 차올린다.

파아앙-

새하얀 밀가루가 터져 나와 시야를 가리는 순간 번개같이 찔러 들어오는 창!

깡, 깡, 깡-

천문석은 내력이 실린 손을 휘저어 창을 튕겨 내고 뿌려진 밀가루를 흩어 버렸다.

그리고 팔을 뻗어 잡으려는 순간.

후드티는 재빨리 뒤로 물러서 피하고 발로 식탁을 넘어트린다!

쾅, 쿠르르르-

넘어뜨린 식탁을 방패 삼아 밀고 들어오며 얕고 빠른 찌르기를 쉴 새 없이 넣는다.

‘미친!? 뭐 이렇게 잘 싸워!?’

전투 본능이 완전히 미친 수준이다!

그러나 거리를 스스로 줄인 순간 이미 승패는 갈렸다!

쾅-

천문석은 밀고 들어오는 식탁을 내력이 실린 발로 마주 걷어찼다.

콰르르르릉-

묵직한 식탁이 단숨에 밀려나는 순간.

재빨리 옆으로 빠지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커억-

밀려나는 식탁에 얻어맞고 몸을 숙인다!

천문석은 바로 식탁을 뛰어넘어 부엌칼 창을 낚아챘다.

순간 힘없이 딸려 오는 부엌칼 창!

스스로 창을 놓고 몸을 잡고 늘어진다.

‘체격 차가 이렇게 나는데 체술을 건다고!?’

단숨에 팔을 잡고 뒤집어던지려는 순간 어깨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감각!

물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외침과 함께 관절기를 걸려는데 악을 쓰며 오히려 팔을 밀어붙인다.

으아아아악-

우드드득-

스스로 팔을 비틀어 관절기를 풀고 박치기를 날리는 후드티!

탁-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박치기를 막는 순간.

사타구니를 노리는 무릎치기가 날아왔다!

천문석은 이마를 막은 손으로 머리 위에 씌워진 후드를 잡고 거세게 흔들었다.

머리가 흔들려 공격이 무력화되는 순간.

천문석은 바로 후드티를 입은 적의 등에 달라붙어 목에 팔을 걸어 조르기를 넣었다.

콰드드드득-

목이 졸리는 짧은 타이밍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후드티!

흐어, 흐어억-

숨 빠진 괴성을 지르며 팔을 풀려 하지만, 내력과 힘의 차이는 압도적이다.

팔에 실린 힘이 점점 풀리고, 발버둥이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때 갑자기 방문이 열리고 튀어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 고모 괴롭히지 마! 으아앙-.”

유치원에 다닐법한 아이가 엉망이 된 얼굴로 달려와 천문석의 다리를 물었다.

“…….”

조르기를 넣던 손에 힘이 풀리는 순간.

두꺼운 후드티 후드가 벗겨지고 마스크가 떨어져 얼굴이 드러났다.

악을 쓰며 살벌하게 싸우던 사람은 고등학생이나 되었을 앳된 소녀였다.

낯익은 얼굴의 소녀는 눈물 콧물이 줄줄 흐르는 얼굴로 아이를 끌어당겨 뒤로 숨겼다.

“고모! 괜찮아!?”

아이가 걱정스럽게 외치는 순간.

소녀는 몸을 일으켜 아이를 가리며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나오지 말랬잖아! 고모 화낸다! 너 어서 방에 들어가!”

“왜 자꾸 들어가래! 혼자서 무섭단 말야! 으아앙-.”

갑자기 주저앉아 서럽게 울기 시작하는 아이.

천문석이 돌처럼 굳어 있을 때.

소녀는 어느새 떨어진 부엌칼 창을 잡으며 냉정한 어조로 말했다.

“당장 방에 들어가서 100까지 세고 나와. 100까지 세면 아빠 올 거야.”

“정말로!?”

“약속할게. 얼른 들어가!”

눈 하나 까닥하지 않고 냉정하게 구라를 치는 이 모습을 보는 순간.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장민?”

순간 어이없어하는 눈으로 천문석을 노려보는 소녀.

“장민? 집 잘못 찾아왔어. 멍청한 녀석. 장민은 102동이 아닌 108동에 살아! 당장 꺼져!”

“…….”

천문석은 이 순간 눈앞의 소녀가 진짜 장민이란 걸 확신했다.

108동?

이 아파트 단지는 107동까지만 있었다!

이때 옥상에서 완강기를 타고 내려온 장철이 베란다로 들어왔다.

“세린아! 세경아!”

순간 부엌칼 창을 든 장민과 장철의 시선이 마주쳤다.

“장민! 너 괜찮아!? 그 창은 뭐야!?”

깜짝 놀란 장철이 한달음에 달려오는 순간.

방문이 살짝 열리고 꼬마 아이가 문틈으로 밖을 내다봤다.

장철을 본 순간 아이는 문을 활짝 열고 뛰어나와 달렸다.

“아빠! 아빠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나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미안해! 아빠가 정말 미안해!”

장철은 아이를 꼭 끼어 앉고 몇 번이나 사과했다.

이때 여전히 부엌칼 창을 들고 경계 중이던 장민이 장철에게 물었다.

“이 사람. 오빠가 아는 사람이야?”

장철은 바로 대답했다.

“이 분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도와주신 분이야. 이분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어.”

장민은 그제야 창을 내리고 깊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혹시 몰라서…….”

그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을 듯 무너졌다.

천문석은 재빨리 장민의 팔을 잡았다.

두꺼운 후드티 너머로 덜덜 떨리는 몸이 느껴지고, 살기등등했던 두 눈에선 더는 숨기지 못한 공포가 드러났다.

“…….”

이때 장철이 다급히 물었다.

“세경이는 어떻게 된 거야!? 민방위 대피소로 같이 가다가 돌아갔다며!?”

장민은 애써 몸을 일으키며 아이를 향해 말했다.

“고모가 유치원 가방에 짐 싸두라고 했지? 들어가서 배낭 메고 나와.”

“알았어!”

아이가 씩씩하게 외치고 방으로 들어가자 장민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민방위 대피소 가다가 사고가 있었어…… 새언니는 서울중앙병원으로 옮겨졌어.”

장철은 어떻게 된 건지 바로 알아챘다.

서울중앙병원은 장인어른이 일하는 병원이다.

“상태는? 심각한 상황이야!?”

장철의 물음에 바로 고개를 젓는 장민.

“가벼운 뇌진탕으로 의식을 잃었는데…… 구급대원분 말로는 심각한 건 아니래.”

“너희는 왜 여기 남은 거야? 같이 갔어야지?”

“……환자가 너무 많아서 구급차에 같이 탈 수가 없었어…….”

장민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고.

장철은 어떻게 된 상황인지 바로 짐작했다.

처가는 자신과 동생, 손녀까지 모두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

장철이 뭐라 말을 하지 못할 때.

장민이 애써 밝은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가족 모두 모여서 다행이야.”

장민은 몸을 돌려 천문석에게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방금은 죄송했어요. 오빠랑 같이 온 사람인 줄도 모르고…….”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같이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제가 더 죄송했습니다…….”

이때 유치원 가방을 메고 인형을 든 아이가 방에서 나오며 씩씩하게 외쳤다.

“나 준비 끝났어!”

이 순간 천문석의 시선이 장민에게서 아이에게로 움직였다.

유치원에 다닐 것 같은 5살 정도 되는 여자아이.

이 여자아이는 장민과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자매처럼 닮았다.

장철의 딸이다.

이 순간 천문석의 머릿속에서 그동안 알게 된 수많은 이야기가 짜 맞춰졌다.

장철 헌터.

장민 대표.

특급 헌터.

장민 대표, 특급 헌터 모자와 같이 살고 부인과 딸에 관한 이야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장철 헌터.

장철 헌터는 최초의 게이트, 광화문 게이트가 열린 2000년 1월 1일을 재현하는 던전을 찾아 헤맸다.

장민 대표는 그런 장철 헌터를 이야기하며 쓸쓸한 표정을 지었었다.

던전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 일종의 허상일 뿐이다.

2000년 1월 1일 광화문 게이트가 열리는 상황을 재현하는 던전을 찾아 무언가 한다 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도 장철 헌터는 그 던전을 찾아 끝없이 헤매고 있었다.

장철 헌터의 그렇게 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유치원 가방을 메고 인형을 손에 든 채, 장철의 다리에 매달려 묻는 아이.

“아빠! 치킨 어디 있어?”

장철의 딸.

이 아이가 장철 헌터의 이유였다.

천문석은 이 아이의 운명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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