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48화>
빠르게 멀어지는 초대형 뱁새!
마법사는 재빨리 외쳤다.
“돌아가서 경계석 한 개 줄게!”
-……
“2개! 돌아가서 경계석 2개 줄게!”
-……
그러나 초대형 뱁새는 대꾸도 없이 계속 멀어졌다!
마법사는 뼈를 깎는 심정으로 외쳤다.
“3개! 경계석 3개 줄게! 지금 당장 1개 돌아가서 2개 더! 그리고 앞으로 기수 얘기 안 할게!”
히리히리히리-
피리 소리를 닮은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초대형 뱁새는 커다란 원을 그리며 돌아왔다.
탁-
억센 발에 다시 잡히는 순간 마법사는 작은 돌을 던졌다.
날름 경계석을 먹는 순간, 초대형 뱁새의 검은 눈에서 반짝이는 이성의 불빛!
“스카라베 추심원 같은 놈…… 이러다가 돌아가기 전에 파산하겠네. 하아-.”
깊은 한숨을 내 쉰 마법사는 회중시계를 열고 마력을 조심스럽게 흘려 넣었다.
다행히 완전히 고장 난 게 아니라 일시적인 과부하 상태다.
마법사는 회중시계 뚜껑 안쪽의 홈에 경계석을 끼워 넣었다.
딸깍-
마치 제자리를 찾듯 경계석이 맞물리는 순간.
핑그르르르-
시계바늘이 거꾸로 회전하고 문자판에 드러난 성좌가 빠른 속도로 변해간다.
마법사는 조심스레 마력을 흘러 넣으며 용두를 눌렀다.
찰칵-
세계에 채워진 매질, 마력장을 통해서 정보가 쏟아져 들어온다!
차르르륵-
커다란 책이 저절로 펼쳐져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탓-
문득 페이지가 멈춘 순간 재빨리 펼쳐진 페이지의 내용을 훑는다!
[2000년 1월 1일]
다행히 오차는 거의 없다!
책을 읽어 버렸을 때 세운 계획대로 게이트를 넘어가 차원 용병을 고용하면 된다!
“바로 게이트 넘어가자.”
히리히리히리-
초대형 뱁새가 알겠다는 듯 울고 짧은 날개를 세차게 움직여 한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약간의 막간 마법사는 회중시계를 품 안에 넣고 가죽 수첩을 확인했다.
수백 년은 지난 듯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는 가죽 수첩을 펼친다.
[아내와 아이는 노량진역에 있다.]
한 줄의 문장만 적혀 있는 첫 페이지를 제외하면, 페이지마다 여백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히 내용이 기록돼 있었다.
2000년 1월 1일부터 2020년까지.
몇 번이나 그어진 줄 위에 상반된 내용이 적혀 있고, 여백에는 [불가능]. [변수가 너무 많다] 같은 단어 들이 쓰여 있었다.
보통 사람은 몇 번을 읽어도 이 수첩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거다.
하지만 마법사, 시간 오류 수정자는 이 가죽 수첩의 정체를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 가죽 수첩은 수많은 실패 끝에 찾은 성공의 기록이다.
자신이 ‘시계’를 잃어버리고 갇혀 있을 때 ‘시계’를 주운 사람, 김철수가 어떻게든 오류를 수정하려 노력한 결과물!
하지만 그 결과 세계가 닫혀 버렸다.
자신과 뱁새가 이 세계에 갇힌 것은 시계를 주운 김철수가 세계의 나무를 알지 못하기에 일어난 사고였다.
세계의 나무 위에서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흐르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은 앞으로 항해하는 선박 갑판에서 맞는 바람처럼, 세계의 나무가 자라나기에 느껴지는 반향일 뿐이다.
‘과거, 현재, 미래’ 상대적 시간의 개념은 세계의 나무에서 자라나는 나뭇가지 위에 동시에 존재한다.
그렇기에 과거를 변화시키면 미래가 바뀌는 게 아니라 새로운 나뭇가지가 자라난다.
이것은 세계의 나무 위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지닌 운명이다.
스스로 신을 자처하는 신마(神魔) 또한 벗어날 수 없는 운명.
이 운명에 자유로운 존재는 둘 뿐이다.
영혼육백을 태워 혼돈에 그어진 경계, 세계의 나무를 키워내고 그 위에서 신나게 놀러 다니시는 분.
세계의 본질 그 자체에 금기와 법칙을 새겨 넣어 새로운 규칙, 마법을 창조하신 분.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잠시 이 운명을 넘을 수도 있었다.
운명을 사는 신의 화폐.
세계의 강자가 모여 서로의 업을 걸고 겨루는 승부.
……
마법사의 얼굴에 미소가 생겨났다.
문득 한 가지 방법이 더 떠올랐다.
누구도 그 시작을 알지 못하는 문파가 있었다.
일기문과 일원문.
대지의 일기공과 하늘의 일원공.
그리고 두 합친 무공, 일기일원공!
일기일원공의 극에 달하면 이 제약을 벗어난다.
천원(天元)에 도달해 삼천 세계의 경계를 걷는 자, 천원검(天元劍).
그러나 이건 누구도 보지 못한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마법사는 이게 전설이 아닌 사실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시간 오류 수정자가 되기 전 첫 모험의 기억이 떠올랐다.
스승님의 뜬금없는 명령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계단으로 이뤄진 봉우리를 오를 때였다.
모든 것이 시작된 그 순간의 기억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안개가 깔린 계단 산.
계단 너머 펼쳐진 안개의 바다.
안개의 바다 위에 솟은 섬 같은 봉우리들.
이 봉우리 위를 부드럽게 유영하는 하늘 고래.
부으으으으으으-
하늘 고래의 뿔피리 소리 같은 울음소리가 울려 퍼질 때.
일행을 돌아본다.
산처럼 짐이 쌓인 지게를 짊어진 고산족.
여섯 발 야크 등 위에서 데굴데굴 신나게 구르는 아이.
제왕처럼 고귀한 기품을 흘리며 앉아 물끄러미 아이를 보는 여자.
그리고 모든 일의 시작이 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때 상념을 깨는 다급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히릭히릭히릭!
“야! 왜 또…… 어!?”
말을 끝맺기도 전에 엄청난 마력장이 느껴졌다.
“어? 마력장이 왜 이렇게 강해!?”
마법사가 자신도 모르게 말하는 순간.
새하얀 섬광이 시야를 하얗게 물들였다.
찰칵-
본능적으로 시계를 눌러 전위차 마력 필드를 만드는 순간.
파지지지직-
마력 필드 위를 타고 흐르는 엄청난 번개!
“…….”
번개가 사라지고 시야가 돌아오자 마법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목적지인 광화문 게이트에 보였다.
하지만 광화문 게이트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게이트 주위로 마수와 몬스터, 거대 괴수로 이뤄진 거대한 소용돌이가 회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 게이트에서 쏟아지는 마수와 몬스터들이 실시간으로 죽어 나갔다.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번개 폭풍에 맞아서!
“아니, 씨발! 이게 뭐야!?”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이름!
천운의 헌터!
마법사는 직감했다.
‘천운의 헌터가 하늘을 무너뜨렸구나!’
* * *
은신 마법을 펼친 초대형 뱁새가 번개 폭풍 주위를 빙글빙글 회전할 때.
찰칵, 찰칵, 찰칵-
쉴 새 없이 회중시계 용두를 누르며 주위를 훑는 마법사.
곧 특이 사항을 찾을 수 있었다.
지상에서 몬스터를 끌고 달리는 불의 서약을 한 ‘옛 제국의 기사’.
그리고 어딘가에 숨어 쉴 새 없이 벼락을 뿌리는 ‘마법사’.
예상대로 옛 제국의 기사는 천운의 헌터와 인과가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위치가 특정되지 않는 마법사도 천운의 헌터와 인과가 연결됐을 거다!
“아니, 뭘 어떻게 하면 이런 난장판이 되는 거야!?”
자신도 모르게 외친 순간 마법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콰아아앙-
번개 폭풍이 쉴 새 없이 마수와 몬스터를 박살 내고 있다!
하지만 거대 괴수와 상급 마수, 몬스터는 끄떡없다.
게다가 마력장이 점점 흡수하면서 이 세계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즉, 이 세계 그 자체, 세계의 나뭇가지에 걸리는 부하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사실 마수와 몬스터, 거대 괴수가 이 세계로 넘어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마수와 몬스터, 거대 괴수 또한 세계의 나무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이놈들이 너무 빠르게 게이트 마력장을 흡수해서, 세계의 나뭇가지가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는 부하가 걸리고 있다는 거다.
댐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 연 수문에서 너무 많은 물이 쏟아져 땅이 꺼질 상황이다!
마법사는 마치 비명을 지르듯이 요동치는 세계 그 자체가 느껴졌다.
이러다가 나뭇가지가 부러지면 끝장이다!
그전에 상급 마수와 몬스터, 거대 괴수의 힘을 깎아 세계에 걸리는 부하를 줄여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자신도 모르게 묻는 순간.
전율이 전신을 스쳐 지나갔다.
“설마, 이것 때문에!?”
마법사의 눈이 번개 폭풍 한가운데 자리한 게이트로 향했다.
인과의 톱니바퀴를 끼우기 위해서 ‘이유’도 모르고 게이트를 넘어가 차원 용병과 계약하려 했다!
그런데 지금 그 ‘이유’가 나타났다!
세계의 나무에 엄청난 부하를 가하는 마수와 몬스터 거대 괴수라는 문제가!
자신에겐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이미 있었다.
상급 마수와 몬스터, 거대 괴수의 힘을 단숨에 깎아 내고.
마력장이 아닌 다른 힘으로 움직여 세계에 부하도 주지 않는 존재.
케페니안 황금 일족, 차원 용병!
차원 용병과 계약하고 의뢰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
고민한 게 어이없게도 이미 자신은 해결책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법사는 전위차 마력 필드를 펼치며 초대형 뱁새에게 외쳤다.
“바로 게이트 넘어가자! 전위차 마력 필드는 게이트 넘을 때 해제해야 한다. 가능한 번개 모두 피해야 해! 조심해라!”
히리히리히리-
너나 잘하라는 듯한 울음소리와 함께 수직을 뚝 떨어져 내리는 초대형 뱁새!
뚝, 뚝, 뚝-
초대형 뱁새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번개를 잽싸게 꺾어 피해 내며 지상을 향해 떨어졌다.
휘이이이잉-
거센 바람 소리와 함께 지상이 가까워지자.
파지지직-
미처 피하지 못한 뇌전이 전위차 마력 필드 위로 흐르기 시작했다!
“괜찮아! 이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어!”
마법사는 회중시계를 잡고 게이트를 넘는 순간 마력 필드를 해제할 준비를 했다.
파아아앙-
게이트가 정면으로 보이는 순간 직각으로 꺾어 수평으로 쏘아지는 초대형 뱁새!
초대형 뱁새는 수많은 마수와 몬스터 머리 위, 흩날리는 불꽃 속을 날기 시작했다.
목표는 저 멀리 보이는 광화문 게이트!
‘이제 곧이다!’
시계 용두에 손가락을 올리고 게이트를 넘을 준비를 할 때 상상도 못한 광경이 보였다.
저 멀리 게이트 아래 떠오른 대륙어 문장.
[마. 도. 황. 제. 개…….]
“마도 황제 개…… 뭐!? 어떤 미친 새끼가!?”
자신도 모르게 따라 읽다가 기겁해 외치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외침이 들려왔다.
“에코! 야! 강습병 발에 잡힌 놈! 너 에코 맞지!?”
“……!?”
마법사 에코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천운의 헌터가 알게 되어 엮일까 봐. 생각조차 하지 않은 이름이 불렸다!
자신의 진짜 이름이!
자신도 모르게 스캔 마법을 뿌리자, 반쯤 부서진 전각 지붕에서 너무나 익숙한 마력 패턴이 드러났다.
“이 마력 패턴은!”
순간 마법사 에코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 엄청난 번개 폭풍!
이걸 이 사람이 만들었구나!
직속 상관의 친동생이자 부하 1호!
상관이 대형 사고를 터트릴 때마다 달려와 수습하던 그분이다!
우레 폭풍의 마도왕, 레이 실트!
에코는 희열에 찬 얼굴로 외쳤다.
“레이 실트님! 구하러 와주셨군요! 저 여기 있습니다!”
순간 은폐 마력장이 사라지고 한 사람이 전각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틀어 올린 머리에 꽂은 비녀.
섬뜩한 마력광을 흘리는 두 눈.
손목에 걸린 7개의 팔찌와 전신에 수많은 장신구를 걸친 인간.
“여자!?”
분명 마력 패턴은 레이 실트인데.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인간 여자였다.
그것도 어쩐지 눈에 익은 여자!
“레이 실트님?”
마법사 에코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하자, 살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내 얼굴 잊어버렸구나?”
“네가 준 차원 좌표 때문에 그 개고생을 했는데…….”
“얼음 태양 아래서 얼어붙은 곰고기를 먹으면서 버텼는데…….”
“그런데 넌 내가 누군지도 까먹었다고……?”
하하하하하하-
여자가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벼락같이 마법사 에코의 머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그녀다!’
마도 전쟁에서 승리하기 직전, 케페니안 차원 용병과 계약했다가 파산한 마법사!
마도 제국의 무기제작자.
자신이 은근슬쩍 케페니안 차원 좌표를 건넨 그녀!
마도왕 무겐다흐 아리엘!
무겐다흐 아리엘, 그녀가 레이 실트의 마력 패턴을 뒤집어쓰고 나타났다!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경악한 에코는 반사적으로 외치며 손을 움직였다.
찰칵-
전위차 마력 필드를 해제하는 동시에, 초거대 뱁새와 마법사 에코는 게이트를 넘어갔다.
순간 무겐다흐 아리엘의 처절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에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