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44화>
“드디어 내려왔다!”
마침내 도로가 나타난 순간 천문석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때 느껴지는 빛!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는 순간.
서쪽 하늘에 섬광이 떠올라 밤이 사라지고, 밤하늘에 오로라가 생겨났다가 곧 폭발했다.
파도치듯 밀려 오는 마력장!
뒤이어 까마득히 먼 곳에서 터진 거대 괴수의 포효가 하늘을 뒤흔들었다.
쿠으, 쿠으으, 쿠으으으-
게이트가 열렸구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때 서리 늑대가 하늘을 향해 하울링 했다!
우오오오오오-
이제 곧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쏟아지고 서울이 난장판이 된다.
어지간한 중급 마수나 몬스터도 혼자 상대할 수 있지만, 거대 괴수는 답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옆에서 서리 늑대가 있었다!
수천 도의 지열 봉조차 얼리는 재앙급 마수 서리 늑대가!
서리 늑대와 함께라면 거대 괴수라고 할지라도 쉽게 당하지는 않는다.
적을 농락하듯 싸우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특기!
천문석의 머릿속에서 서리 늑대와 함께 싸울 온갖 전투 꼼수가 떠올랐다!
“자 가자!”
천문석은 자신만만하게 외치고 도로를 달렸다.
때마침 멀리 도로에 멈춰 선 택시가 보인다!
천문석은 바로 외치면서 달렸다.
“저 탑니다! 저 타요! 잠시만요!”
“손님. 어서 타세…… 히이익! 뒤에 늑대! 늑대! 으아악-.”
“늑대 아니에요! 개예요! 대형 개!”
다급히 외쳤지만 이미 택시는 휑하니 도망치듯 출발해 버린 후!
괜찮다!
이미 예상한 상황이다.
도로를 따라 달리며 다른 차를 찾으면 된다.
“우선 달리자!”
천문석은 서리 늑대와 함께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달렸다.
30분가량 달리자 도심지가 나왔고 트럭 한 대가 멈춰 섰다.
운전석 창문이 열리는 순간 감탄 어린 외침이 들려왔다.
“와! 그 개 뭐야!? 무슨 개가 호랑이처럼 생겼어!? 한국 최고의 투견 감이네!? 그거 종이 뭐야!?”
멈춰 선 트럭 화물칸에는 커다란 철창이 처져 있고 그 안에 도사견이 가득 실려 있었다.
투견 트럭!
천문석은 환해진 얼굴로 바로 대답했다.
“시고르자브르 종입니다! 혹시 남쪽으로 가시나요? 신설동까지만 태워 주실 수 있을까요!?”
“구리로 가기는 하는데…… 화물칸에 투견장으로 가는 도사견 잔뜩 있는데? 그 개 화물칸에 태워도 괜찮겠어? 위험할 거 같은데.”
천문석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문제없습니다! 제가 같이 타겠습니다!”
“……뭐? 저 화물칸에 탄다고?”
트럭 운전기사가 미친놈 보듯 볼 때 천문석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제가 개를 엄청 잘 다룹니다! 도사견도 엄청 좋아하고요!”
“…….”
천문석과 서리 늑대는 투견용 도사견이 가득 실린 트럭 화물칸 철창에 들어갔다.
그르르르-
타는 순간 낮게 울부짖는 도사견들!
휘이익-
천문석은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천천히 걸어간 서리 늑대가 장난치듯 툭, 툭- 앞발을 내려쳤다.
깨애앵-
도사견은 단숨에 기가 죽어 철창 구석으로 처박혔고 서리 늑대는 화물칸 중앙에 편하게 앉았다.
탁, 탁-
천문석은 운전석을 두들기며 외쳤다.
“바로 출발하시면 됩니다!”
“와! 도사견 수십 마리를 단숨에 제압해!? 그놈 볼수록 탐나네!”
부으으으응-
운전기사의 탄성과 함께 투견 트럭이 신설동을 향해 출발했다.
* * *
천문석은 도로를 달리는 트럭 화물칸에 앉아 도로 주위를 살폈다.
쌍문동에서 신설동까지 북에서 남으로 강북을 가로지른다.
게이트가 열린 지 10분!
서울 도심은 서서히 난장판이 되어 가고 있었다.
[쌍문동]
하나둘 주택이 불이 밝혀지고, 거리에 나온 사람들이 걱정스럽게 대화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광화문이면 또 쿠데타 난 거 아니냐!?”
“방금 텔레비전 보니까 외계인이 쳐들어왔다는데?”
“외계인? 북한이 아니라 외계인이라고?”
“그러니까 외계인이랑 전쟁 난 거네!”
“전쟁!?”
“이럴 때가 아니지! 라면! 라면부터 사야지!”
다급하게 외친 사람들이 슈퍼마켓으로 달려가 라면과 생필품을 사재기했다.
[수유동]
문득 서쪽에서 무언가 뇌리를 긁는 듯한 느낌이 왔다!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듯한 감각!
천문석의 예리한 촉이 움직였다.
동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구나!
천문석은 마음으로 대답했다.
‘이 속도라면 해가 뜨기 전에 광화문 빌딩 옥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미아동]
수많은 사람이 무작정 상점으로 달려가 물건을 사고 있었다.
“쌀이랑 라면 달라니까!”
“다 떨어졌어요!”
“창고에 물건 있잖아!”
“맞아 창고 열어라!”
[길음동]
도로 위에 차량이 하나둘 늘어나고 버스 정류장마다 불안한 얼굴의 사람들이 가족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언제 오는 거야!?”
“버스 다니려면 멀었어. 5시는 돼야 첫차 올 거야.”
“이거 무작정 기다리지 말고 걷는 게 나은 거 아냐?”
“뭐 걸어서 이 밤중에 어디를 가자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해 뜰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나아.”
[동성동]
반쯤 찬 도로 위에 빠르게 늘어나는 차들.
다급한 모습의 사람들이 인도에서 외치고 도로에 내려 와 차 앞을 막고 외쳤다.
“자동차! 자동차 자리 삽니다! 당장 현금으로 드려요!”
“3인 가족 자리 구합니다!”
“한강 넘을 때까지만 태워 주세요!”
[보문동]
목적지 신설동을 눈앞에 둔 보문동에 들어오자.
어느새 환하게 밝혀진 거리는 몰려나온 사람들로 가득 했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사방에서 고함이 들려오고, 남쪽으로 내려가는 차를 향해 사람들이 미친 듯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때 텅 빈 남쪽 도로에서 올라오는 경찰차 한 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올라왔다.
위이이이잉-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순간 경찰차 확성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신설동으로 내려가는 차들 멈추세요!]
[광화문에서 나온 외계 생명체가 신설동까지 밀려 왔습니다!]
[신설동은 이미 난장판이 됐습니다! 이곳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겠습니다! 모두 멈추세요!]
경찰차에서 내린 경찰관들이 도로 통제를 시작했다.
도로를 달리던 차량이 세워지고 인도와 도로에 줄줄이 놓여 벽이 만들어졌다.
“이게 무슨 난리야!?”
“진짜 외계인 나온 거야!?”
“전쟁 난 거라던데!? 북한에서 내려온 거면 당장 도망쳐야지!”
사방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경찰을 향해 외칠 때 천문석이 탄 트럭도 멈춰 섰다.
“더는 이동이 안 되겠는데?”
“태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문석은 감사 인사를 하고 바로 투견 트럭에서 내렸다.
쿵-
거대한 서리 늑대가 내려 오자 사방에서 시선이 모여들고 깜짝 놀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히이익- 저 개 뭐야!?”
“저거 늑대 아냐!?”
천문석은 보란 듯이 서리 늑대의 목줄을 잡고 대답했다.
“대형견입니다! 우리 개는 안무니까 걱정 마세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서리 늑대는 물지 않고 꽁꽁 얼렸으니까.
“잠시 지나가겠습니다!”
거대한 늑대를 앞세우자 순식간에 인파가 열렸다.
천문석은 인파를 헤치고 골목길로 들어가자마자 지도책을 꺼내 펼쳤다.
신설동이 막혔으니 우회해서 광화문으로 가야 했다.
직선으로 뻗은 주요 도로 주위로 복잡한 골목길이 얽혀 있다.
도로를 따라 달리지 않으면 이 복잡한 골목길을 지나야 광화문으로 갈 수 있었다.
구시가지 특유의 개미굴처럼 얽힌 골목길이다. 잘못 들어가면 중간에 길을 잃을 것 같았다.
지금 자신에게는 마수와 몬스터와 싸우는 것보다 길을 잃고 시간을 낭비하는 게 더 안 좋다.
천문석은 바로 결정했다.
그냥 신설동으로 넘어가 1호선 라인을 타고 광화문까지 길을 뚫는다!
탁-
지도책을 덮은 천문석은 바로 천으로 얼굴을 가렸다.
인식 장애 마법 회로가 새겨진 머플러를 둘렀지만, 혹시 모른다!
나비 효과를 막기 위해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천문석은 서리 늑대와 함께 아직 열린 골목길을 넘어 지하철 1호선 신설동역을 향해 달렸다.
경찰관의 말이 맞았다.
신설동은 외계 생명체, 몬스터가 나타나 난장판이 된 상태였다.
그러나 천문석이 생각한 난장판과는 조금 달랐다.
* * *
탓, 탓, 탓-
쿵, 쿵, 쿵-
천문석과 서리 늑대는 건물 옥상에서 옥상으로 뛰어넘어 순식간에 주택가를 돌파하고 있었다.
크아아아-
사방에서 몬스터 괴성과 전투 소음이 들려오고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라도 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곧 천문석은 자신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던져! 멈추지 말고 던져!”
벽돌, 보도블록, 짱돌, 아령!
던질 수 있는 모든 게 날아다니고.
쇠파이프, 알루미늄 배트, 장도리, 삽!
온갖 무기를 든 사람이 몬스터를 때려잡는다.
대부분이 코볼트나 들개 같은 최하급 몬스터고 오크와 놀 같은 하급 몬스터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런 몇 안 되는 하급 몬스터는 수십 명이 몰려들어 다굴을 때려서 잡았다!
으아아악-
몇몇 사람이 악을 쓰며 오크 팔다리를 붙잡고 외치는 게 보였다.
“대갈통! 대갈통 때려!”
“야, 이 미친 새끼야! 칼로 뼈 때리면 칼날 부러져서 위험해!”
“망치! 망치나 삽으로 두들겨 패!”
쾅쾅쾅-
쩍쩍쩍-
비 오듯 쏟아지는 삽과 망치에 순식간에 아작나는 오크!
어느새 천문석은 빌딩 옥상에 멈춰 선 채로 사람들이 몬스터와 싸우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압도적인 폭력성!
1999년 한국 사람들은 지구에 처음 나타난 몬스터들을 순식간에 박살 내고 있었다!
이 순간 어이없게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몬스터가 나타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삽, 곡괭이, 망치를 들고나와 다굴을 때려 몬스터들을 아작내는 사람들!
이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이다!
2020년 대한민국이 헌터업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건 이유가 있었다.
1999년 세기말!
이 미친 시대에서 살아남은 대한민국 국민의 후손이라서다!
대한민국 국민은 기대 이상으로 몬스터와 잘 싸우고 있었다!
순식간에 골목 곳곳을 막아 안전지대를 만들고 부엌칼과 마대 자루를 연결한 창, 쇠파이프와 삽, 곡괭이를 들고나와 살벌하게 싸운다!
게다가 이미 피난 준비를 끝낸 사람들이 옥상 곳곳에 보였다.
문득 커다란 짐을 챙겨 옹기종기 옥상에 숨어 있는 일가족이 보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에 아이들과 삼촌, 고모까지.
10명이 넘는 대가족!
머리가 새하얀 노인이 형형한 눈빛으로 난간 너머 난장판이 된 거리를 몰래 살피며 가족들에게 말했다.
“둘째가 버스 몰고 오면 그거 타고 바로 부산까지 내려가자! 내가 부산에 집이랑 다 마련해 뒀다.”
“네? 우리가 부산에 집이 있다고요?”
막내딸이 어이없어하는 순간 큰아들이 끼어들었다.
“아버지. 해 뜨고 내려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지금은 밤이라 위험할 것 같습니다. 해 뜨는 대로 출발하시죠?”
큰아들의 말에 노인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남쪽을 가리켰다.
“높은 놈들이 언제 한강 다리 끊고 도망칠지 모른다! 6·25 때! 너희 큰 할아버지가 그렇게 인민군한테 끌려 갔어! 당장 우리 가족 모두 한강 넘어서 부산까지 가야 한다!”
“아버지 옛날이랑은 시대가 달라졌어요! 뉴스 보세요. 국군이 출동해서 잘 막고 있다잖아요! 그냥 기다리면 끝날 걸 무슨 피난입니까?”
작은아들이 어이없다는 투로 말하는 순간.
노인이 버럭 소리쳤다.
“다르긴 뭐가 달라! 위에 놈들은 다 똑같은 놈들이라니까! 난리 나면 내 가족부터 챙기는 거야! 잔말 말고 둘째가 버스 몰고 오면 우리 가족 모두 부산까지 내려간다!”
“아유! 진짜! 그럼 먼저 내려가세요! 전 서울 집 지키고 있을게요!”
작은아들이 말하는 순간 번개같이 얼굴을 때리는 손바닥!
짜악-
“이놈의 새끼가!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짝, 짜악, 짜아악-
말없이 앉아 있던 할머니가 작은아들의 멱살을 잡고 연신 따귀를 갈기며 살벌하게 외쳤다.
“그러다가 생이별하는 거 몰라! 우리 가족은 무조건 같이 움직이는 거야! 아무도 못 남아!”
평생 목소리 크게 한번 내지 않던 어머니의 분노한 모습에 작은아들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놀라서 굳었다.
이때 불도 켜지 않은 버스가 조용히 이면 도로로 다가와 멈췄다.
깜빡, 깜빡-
두 번 헤드라이트를 깜빡이는 순간.
난간 너머를 주시하던 노인이 재빨리 부인을 말렸다.
“임자. 둘째 왔어! 바로 움직여야 해!”
무섭게 몰아치던 할머니는 바로 짐을 머리에 이고 손자손녀의 손을 잡았다.
“절대! 절대 할머니한테서 떨어지면 안 돼!”
일가족은 순식간에 건물에서 내려 와 버스에 타고 출발했다.
불도 켜지 않은 버스는 순식간에 이면 도로를 달려 사라졌다.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엄지를 척 들어 경의를 표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상황 판단능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게이트가 열리고 불과 1시간이 지났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일가족을 데리고 부산으로 출발하고 있다!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들어 난장판이 된 신설동을 돌아봤다.
몬스터와 격렬히 싸워 가족을 지키고.
가족을 데리고 번개같이 도망치는 사람들!
광화문에 게이트가 열리고 EMP 마력 폭풍으로 국군이 밀렸는데도 인명 피해가 크지 않은 이유가 눈앞에 있었다.
1999년 세기말 대한민국 국민!
한국 사람들은 한 명 한 명이 베테랑이었다.
6.25부터 이어지는 한국 근 현대사의 격랑을 헤쳐나온 삶의 베테랑들!
이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자신의 행동이 나비 효과를 일으킬 거라는 건 너무나 오만한 생각이다.
자신이 무엇을 하든지 대한민국 국민은 게이트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다!
이 순간 피가 끓어오른 천문석은 서리 늑대에게 외쳤다.
“우리도 저놈들 박살 내며 길을 열자!”
컹-
서리 늑대가 대답하듯 우는 순간.
천문석은 건물 옥상에서 내려 와 마수와 몬스터를 박살 내며 골목길을 달렸다!
레이 실트의 강철봉이 떨어지는 순간.
방어도 회피도 할 수 없다!
몽둥이, 가죽 방패, 투구, 검!
단단한 송곳니, 두꺼운 털과 근육!
강철봉의 궤적에 걸리는 모든 것이 박살 났다!
쾅, 쾅, 쾅-
천문석은 무인지경으로 오크, 놀, 코볼트를 박살 내며 구시가지의 골목길을 달렸다!
그리고 길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