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41화>
광화문에는 새천 년맞이 축제로 10만에 달하는 인파가 모여 있었다.
이 엄청난 인파가 사방으로 달리고 있었다.
북쪽!
광화문 뒤 경복궁에 나타난 게이트에서 나온 거대 괴수를 피해서!
두 발로 일어선 악어 같은 거대 괴수!
거대 괴수는 게이트에 몸을 걸친 채 주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번뜩이는 노란 눈에선 오금 저린 살기가 쏟아지고, 이따금 지르는 엄청난 포효는 유전자에 각인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공황에 빠진 시민들이 뒤엉켜 정신없이 도망치고 있었다.
이때 안전을 위해 대기 중인 전경대, 기동대가 움직였다.
서울청 경비과장은 전경대, 기동대 대장에게 명령했다.
“통로 확보하고 사람들부터 빼낸다!”
“저놈부터 막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놈 움직이기 시작하면…….”
경비과장은 기동대 대장의 말을 잘랐다.
“저놈은 나한테 생각이 있다! 저놈이 멈춘 사이에 통로 확보하고 시민부터 대피시킨다!”
“사람들이 너무 뒤엉켜서 통로 확보가 힘듭니다!”
기동대 대장이 대답하는 순간.
멱살을 낚아채고 버럭 소리 지르는 경비과장.
“야, 이 멍청한 새끼야!”
“애들 방석복 입히고 방패 들려서 강제로 통로 확보해!”
“때려서라도 통로 열어! 지금 통로 확보 못하면 인명 피해 난다!”
“당장 움직여! 진압 버스 운전자들만 남아라!”
진압 버스에서 줄줄이 무장한 전·의경이 쏟아져 나와 강제로 통로를 확보하고 뒤엉킨 사람들을 빼내기 시작했다.
게이트가 열리고 난장판이 된 지 10분 만에, 전·의경이 움직여 광화문 앞 도로를 빠르게 비우고 있다.
“이래서 인명 피해가 적었던 거구나…….”
빌딩 옥상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추이린은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광화문 게이트는 10만에 달하는 밀레니엄 축제 인파가 모인 광화문 도로 바로 앞 경복궁에 생겼다.
그런데도 인명 피해가 적었던 이유가 지금 보였다.
게이트가 열리고 거대 괴수가 나타난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지만, 경찰은 빠른 판단으로 시민 대피에 우선하고 있었다.
헌터 업계에는 광화문 게이트 초기 인명 피해가 적은 이유에 대해 수많은 소문이 있었다.
이날 목격됐다는 존재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불꽃의 기사.
인간형 거대로봇.
신적 존재가 보낸 사자.
황금 갑옷을 입은 외계인.
냉기 폭풍을 휘감은 신화 속 동물.
……
이런 이야기는 진실이 아니었다.
추이린의 시선이 무전기를 들고 다급히 달리는 사람에게 향했다.
빠른 시민 대피로 인명 피해를 줄인 경찰 지휘관.
이 사람이 숨겨진 영웅이었다.
경찰 지휘관은 거대 괴수가 멈춰 선 광화문을 가리키며 무언가 명령하고 있었다.
곧 진압 버스가 하나둘 움직여 광화문 앞에 길게 늘어서 마수와 몬스터, 거대 괴수를 막을 차 벽을 만들었다.
이 차 벽 뒤에서 무전기를 잡은 지휘관이 건물 사이를 가리켰다.
차 벽으로 몬스터와 거대 괴수의 발목을 잡고 건물 사이 도로를 확보해 군병력이 들어올 진입로를 만들고 있다.
2020년 헌터들이 사냥할 때 장갑 버스, 장갑 SUV로 방벽을 만들고 싸우는 것과 비슷한 전술이다.
하지만 저 진압 버스는 장갑 버스가 아니고, 경찰은 마탄으로 무장한 헌터가 아니다.
그리고 적은 일반적인 마수와 몬스터가 아닌 거대 괴수다.
지금 거대 괴수가 멈춘 것은 마력장 적응 때문이다.
이제 곧 거대 괴수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진압 버스 차 벽은 시간 벌이도 안 된다.
빠른 판단으로 시민들을 대피시킨 저 경찰 지휘관과 용감하게 차 벽을 세운 경찰들은 역사에 이름조차 남지 않았다.
“…….”
경찰들의 운명을 깨닫는 순간.
추이린은 더는 보지 못하고 고개 돌리며 외쳤다.
“레이! 보호 마법 상태 어때!? 저 거대 괴수 상대로 버틸 수 있겠어!?”
추이린이 외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레이 실트! 야!? 상태 어떠냐니까?”
레이를 찾아 고개를 돌리자.
광화문 방향 난간 위에 올라선 레이 실트의 모습이 보였다.
레이 실트는 홀린 듯한 얼굴로 경복궁에 나타난 게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레이 실트는 게이트가 열리고 엄청난 게이트 마력장이 쏟아지는 순간 느꼈다.
물속으로 뛰어든 것 같은 이 감각!
텅 빈 세계에 게이트에서 쏟아진 마력장이 채워지는 순간!
진공에 공기가 채워지고 소리가 전해지듯이 매질이 된 마력장을 통해 게이트의 본질이 느껴졌다!
광화문 게이트.
최초의 게이트가 이 세계에 탄생하는 걸 두 눈으로 직접 보는 순간.
레이 실트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게이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 세계의 게이트는 마법이나 신적 존재의 이적으로 열린 게 아니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빛의 씨앗’이 발아해 만들어 냈다!
빛의 씨앗!
이 빛의 씨앗에서 너무나 익숙한 느낌이 전해진다.
마도 제국의 상징과도 같은 두 힘!
‘보석’으로 상징되는 마탑의 ‘마법’.
‘강철’로 상징되는 제국 군단의 ‘타이탄’.
마도 제국 그 자체인.
마도 황제 폐하의 상징!
보석과 강철!
마법과 타이탄!
보석과 강철의 황제 폐하의 힘이 게이트에서 느껴진다!
저 게이트는 마도 황제 폐하께서 만들었다!
게이트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 레이 실트는 운명을 느꼈다.
-‘전능 옥좌’가 추락한 후 시작된 마도 전쟁에 휩쓸렸다.
-차원 용병 고용으로 파산한 후 마도 황제의 유적 ‘천공탑’으로 도망쳤다.
-극한의 냉기 지대를 수십 년 동안 헤매다가 열린 천공탑의 문에서 나와 이 세계에 도착했다.
그리고 마침내 시간까지 거슬러 올라와 ‘게이트’가 탄생하는 걸 봤다.
레이 실트는 문득 입을 열어 말했다.
“전능 옥좌. 천공탑. 게이트.”
자신을 이곳으로 인도한 모든 것에 마도 황제 폐하의 손길이 닿아 있다.
이것은 운명이었다!
순간 난간 위에선 레이 실트는 마도 황제가 세계에 새겨넣은 대륙어로 외쳤다.
“드디어! 드디어 찾았다! 경배하고 경배하라! 위대하신 보석과 강철의 황제 폐하! 대륙에 가득한 악신과 고대신을 짓밟고! 암흑시대에 문명의 빛을 가져오신 위대하신 황제 폐하를!”
으하하하하하-
레이 실트는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리다 빙글 몸을 돌려 한국어로 외쳤다.
“추이린! 고마웠다! 난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간다! 이 빌딩에 걸어 둔 마법은 이걸로 통제할 수 있다! 앗! 잊지 마라! 짜장면이 짬뽕보다 맛있고! 탕수육은 당연히 찍먹이다! 안녕이다! 받아라!”
“야, 그게 무슨 말…….”
미쳐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휙- 공중을 지나 날아오는 수정 기둥!
추이린이 수정 기둥을 잡는 순간.
레이 실트는 가볍게 손을 마주쳤다.
짝-
섬광과 함께 전신에 생겨나는 마법 무구!
짤랑-
양손이 수인을 짚는 동시에 팔에 끼워진 7개의 팔찌가 맞부딪혀 맑은소리를 낸다.
탁, 탁, 탁-
레이 실트가 가볍게 난간을 달려 몸을 날리는 순간.
파아아아앙-
폭음이 터지고 레이 실트는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연속된 폭음과 함께 가속해 단숨에 광화문 게이트로 날아갔다.
“야! 어디 가는 거야!?”
“나비효과 일어난다고!?”
“지금 뭐 하는 거야!? 멈춰!”
추이린이 다급히 외쳤지만, 레이 실트는 돌아보지 않았다.
추이린은 손에 쥔 수정 기둥을 보며 분통을 터트렸다.
“시바! 나는 나비효과 때문에 참고 있는데!”
휘이이잉-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순간.
분통을 터트리던 추이린은 문득 깨달았다.
텅 빈 옥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천문석, 서리 늑대.
김철수 발명가.
레이 실트.
동료 중 누구도 없었다.
자신만 있었다.
“…….”
추이린은 바보가 아니었다.
동료들이 다른 생각을 하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김철수 발명가’, 오너의 대리인은 나비효과를 몇 번이나 강조한 게 무색하게 기다렸다는 듯 많은 일을 하고 다녔다.
‘레이 실트’는 이 빌딩에 떨어진 그 순간부터 게이트가 생겨날 곳 경복궁을 주시하더니, 자신을 중국집에 보낸 사이 무언가를 했다.
‘천문석!’ 서리 늑대를 찾으러 간 천문석은 다른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 녀석은 숨만 쉬어도 사건·사고가 터진다!
천문석이라면 지금쯤 뭔가 상상을 초월하는 대형사고를 터트리고도 자신이 사고를 친지도 모르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하하하-
추이린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나비효과를 일으키면 안 된다고 수없이 갈등한 게 우습게도 혼자 남았다.
그리고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 동료들은 모두 각자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추이린은 빙글 몸을 돌려 광화문을 내려다봤다.
빠르게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도로.
다급히 움직여 통로를 확보한 경찰.
광화문 앞을 막은 진압 버스 차 벽.
광화문 뒤 경복궁에 나타난 거대한 게이트.
광화문 게이트!
거대 괴수가 게이트에 몸을 걸친 채로 멈춘 사이.
랩터, 들개, 고블린, 코볼트 같은 자잘한 놈들이 눈치를 살피며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놈들이 서울로 풀려나는 것만으로도 인명 피해가 클 거다.
그러나 거대 괴수가 움직이면 대참사가 시작된다.
자신이 고3 수능을 치고 논술 학원에 다닐 때 게이트가 열렸다.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마수와 몬스터, 거대 괴수로 난장판이 된 서울.
-서울을 탈출하던 중에 헤어진 가족.
-홀로 걷다가 돌연 하게 된 각성.
-부산에서 다시 만난 가족.
-게이트 전쟁 참전.
-서울 수복 작전.
수많은 기억이 떠오를 때.
추이린은 어느새 웃고 있었다.
레이 실트가 게이트로 날아간 순간 자신을 제약하던 족쇄가 풀렸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이렇게 정해졌는지도 모른다.
자신은 1세대 헌터 추이린이다.
게이트 전쟁에서 10만이 넘는 마수와 몬스터를 박살 낸 하얀 번개 추이린!
나비효과?
눈앞에서 마수와 몬스터가 사람을 박살 내는데, 미래에 미칠 파급력을 생각해서 가만히 있으라고?
하-
그런 각성자는 1세대 헌터 중에 없었다.
승산과 확률을 생각했다면, 성공확률이 10%도 안 되는 서울 수복 작전에 참전하지도 않았다!
나비효과 따위, 처음부터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하하하하하-
추이린은 통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레이 실트의 제어 수정을 봤다.
이 제어 수정은 이 빌딩에 걸린 은폐 마력장과 보호 마법을 제어한다.
레이 실트는 완전히 미친놈이지만, 그 실력만큼은 최고였다.
추이린은 이미 확인했다.
이곳에서 마법을 사용하면 마력 반향이 1%도 새어 나가지 않는다!
즉, 마수와 몬스터 거대 괴수에게 걸리지 않고 일방적인 마법 공격을 할 수 있다!
자신이 있는 이곳 빌딩 옥상은 마법사의 성채나 마찬가지다!
추이린은 정제 마석을 하나하나 난간 위에 늘어놓으며 빙그레 웃었다.
각성자간에는 상성이 있다.
원거리에서 강한 마탄 각성자.
중거리에서 강한 초능력 각성자.
근거리에서 강한 오러, 육체, 무공 각성자.
이 상성은 수준이 비슷할 때 서로 물고 물린다.
[오러 > 무공 > 육체 > 오러]
그러나 이 물고 물리는 상성을 무시하고 상대를 압도하는 경우가 하나 있었다.
준비가 끝난 마력 각성자!
그리고 지금 자신은 준비를 시작했다.
추이린은 천천히 수인을 짚으며 포효를 지르는 거대 괴수와 광화문 광장에 쏟아져 나오는 마수와 몬스터를 바라봤다.
“나비효과?”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대답한다.
“그게 뭔데? 나 그런 거 모른다.”
추이린은 씨익 웃으며 정제 마석을 손에 쥐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대기에 가득한 마력장이 느껴진다!
안정화 장치가 설치되지 않은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날것 그대로인 강대한 마력장이!
곧 몰려드는 먹구름에 별빛이 하나둘 사라지고, 작은 우렛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쿠르, 쿠르르-
너무나 작은 소리고 은밀히 일어나는 현상이라 난장판이 된 광화문의 누구도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
사람뿐만 아니라.
마수와 몬스터, 거대 괴수까지!
추이린은 정제 마석과 마력장의 마력을 움직여, 은밀히 먹구름과 벼락의 씨앗을 모아들이며 웃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는 순간.
이곳 광화문에 나타난 몬스터들은 단 한 가지 빛만 보게 되리라.
망막을 불태우는 작열하는 하얀 번개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