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39화>
“김밥이 여기 왜 있어!?”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마도 황제의 의지에 주위의 마력장이 저절로 움직여 대지에 남겨진 기억을 재생했다.
자신을 향해 경의를 바치고, 공손히 공물을 내려놓는 남자의 모습!
남자를 주시하는 순간 세계에 새겨진 이름이 불쑥 떠오른다.
천문석.
이름을 알게 되는 순간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껄끄러움.
그러나 마도 황제는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하하하-
타대륙을 넘어 천공탑으로 수천 세계를 잇는 마도 제국의 절대자 마도 황제.
보석과 강철의 황제인 자신에게 바친 공물이.
김밥과 생수라니!
너무나 너무나 맘에 드는 최고의 공물이다!
그래서 마도 황제는 세계에 선언했다.
“천문석. 돌멩이! 너 내가 기억했다! 내 최측근으로 써 주마!”
그리고 힘과 기억을 봉인하는 대마법을 잠시 멈췄다.
배고플 때 먹는 밥이 가장 맛있는 법!
수백 년 만에 김밥을 먹는 이 감동적인 순간을 기억에 새겨넣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마도 황제는 바로 오감을 총동원했다.
냄새 맡고.
고소한 참기름, 담백한 쌀, 짭조름한 소.
시각으로 훑고.
검은 김, 하얀 밥, 붉은 당근, 노란 계란, 갈색의 우엉.
촉각으로 느낀다.
아직 미약한 온기가 남아 말랑말랑한 알루미늄 호일.
그리고 마침내 김밥을 먹었다.
“…….”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단지 기계적으로 김밥을 계속 씹었다.
어느 순간 눈물이 핑 돌더니 주르륵 흘러내렸다.
“…….”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감정이 뒤섞여 해일처럼 밀려 왔다.
이렇게 돌아와 이 김밥 한 줄을 먹기까지 너무나 긴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김밥을 먹는 지금 이 순간.
그 긴 시간 동안 했던 모든 고난이 보상받는 것만 같았다.
김밥!
이 한 줄의 김밥은 마침내 한국으로 돌아온 자신이 원한 최고의 포상이었다!
그렇다!
자신은 김밥 먹으러 마도 황제도 그만두고 돌아온 것이다!
점점 어려져 이제는 소년이 된 마도 황제는 웃고 울면서 김밥을 꼭꼭 씹어 먹었다.
그리고 김밥을 모두 먹는 순간 물병을 열어 단숨에 들이켰다.
콸, 콸, 콸, 콸-
500ml 생수를 모조리 마신 후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하하-
그리고 잠시 중지했던 힘과 기억을 봉인하는 대마법을 다시 시작했다.
파스스스슥-
사방에 깔린 마력장이 저절로 움직여 마력회로를 구성하기 시작한다.
발동을 시작한 대마법을 보며, 마도 황제는 손에 쥔 머릿돌을 봤다.
이제 타이탄처럼 이 머릿돌을 잠시 숨겨 둘 때다.
나무를 숲에 숨기는 것처럼, 머릿돌을 비슷한 돌이 많은 이곳 바위산에 숨긴다.
휙-
머릿돌을 산비탈로 던지는 동시에 마지막 마법을 준비한다.
숨겨 둔 타이탄과 머릿돌을 1년 후 되찾기 위해서 새겨넣을 마커!
마도 황제는 마커 마법을 멀리 유성이 되어 떨어지는 타이탄과 산비탈을 구르는 머릿돌을 향해 날렸다.
그리고 체력이 방전된 꼬맹이처럼 픽- 쓰러졌다.
마커 마법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흩어져 버리고, 쓰러진 마도 황제의 몸으로 힘과 기억을 봉인하는 대마법이 펼쳐졌다.
봉인되기 시작하는 힘과 기억!
마도 황제는 자꾸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부릅뜨고 생수병을 노려봤다.
‘저건 생수가 아니다!?’
깜빡-
‘미친놈아!’
깜빡-
‘생수통에 왜!?’
깜빡-
‘포션을 넣어놔!?’
깜빡-
‘그것도 최하급 포션을!’
깜빡-
마침내 김밥을 먹어 격동한 상태, 게다가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 눈치채지 못했다.
빌어먹을 포션 쇼크가 오고 있다!
그것도 최하급 포션의 질척질척 더럽게 길게 가는 포션 쇼크가!
지금 감으로는 최소 2일에서 길게는 일주일 동안 정신을 잃게 생겼다.
순간 마도 황제는 깨달았다.
지금 정신을 잃으면 끝장이다!
머릿돌과 타이탄에 마커를 박지 못했는데, 봉인 마법에 포션 쇼크까지 오고 있다!
이대로면 기억 손실이 예상보다 크다.
‘만약 머릿돌과 타이탄을 완전히 잃어버리면!?’
깜빡-
순간 눈이 감겨 세상이 암전되고 사고가 잠시 끊겼다.
으아악-
반사적으로 괴성을 지르며 몸을 데굴데굴 굴리자 전신을 찌르는 뾰족한 돌들!
커억-
번쩍 정신이 드는 순간.
재빨리 포션 쇼크를 누르고 고개를 들자 보였다.
-비탈을 굴러내러 가다가 암반 위에서 멈추는 ‘머릿돌‘.
-유성이 되어 떨어진 후 아공간으로 들어가는 ‘타이탄‘.
우선 멀리 있는 타이탄부터!
남은 힘을 끌어내 타이탄을 향해 마커 마법을 날리려는 순간.
거대한 외침이 하늘에 울려 퍼졌다.
[감사합니다!]
[카캬카카카-]
악당 같은 비열한 웃음이 산에 메아리친다.
아공간으로 들어간 타이탄이 엄청난 속도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순간 감이 왔다!
이 주위에 자신을 제외하고는 한 명만 있었다.
김밥과 최하급 포션을 넣은 생수병을 공물로 바친 놈.
천문석!
돌멩이 그놈이다!
그놈이 자신의 타이탄, 마도 제국 0번기, 황제 전용기 ‘강철‘을 날름해서 도망치고 있다!
커억-!
생각지도 못한 일에 심적 충격을 받아 외마디 비명을 터트리는 순간.
마커 마법이 흩어지고 대마법이 힘과 기억을 봉인하기 시작했다!
‘머릿돌이라도!’
다급히 머릿돌을 향해서 마커 마법을 펼치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파스스스-
먼지가 흩날리듯 마력이 흩어지고 눌러둔 포션 쇼크가 한방에 밀려 오고 있다!
‘이대로면 기억 손상이 온다!’
순간 마도 황제는 모든 힘을 끌어내 스스로에게 외쳤다.
“절대 잊지 말고 기억해라!”
“천문석이 타이탄 강철을 가지고 튀었다!”
“문석을 찾아서 타이탄 강철을 회수해라!”
“석이 가지고 튄 강철을 찾아라!”
“석을 찾아 강철을 회수…….”
“돌을…… 철을 찾아…….”
……
반복하는 목소리가 급격히 작아졌고, 힘겹게 세웠던 고개는 어느새 툭 떨어졌다.
파스스스스-
대마법 봉인이 서서히 몸으로 스며들어, 마도 황제의 힘과 기억을 빠르게 봉인했다.
거대한 마력이 빠르게 흩어져 대기를 따뜻하게 데우고, 세계의 비의를 담은 기억은 누구도 엿볼 수 없도록 봉인된다.
검은 로브를 걸친 마도 황제는 힘과 기억이 봉인되자 더 빠르게 어려졌다.
어려지자 명운이 흩어지는 속도가 느려졌다.
마침내 명운이 흩어지는 게 완전히 멈추는 순간.
햇살이 따듯한 봄날처럼 포근해진 바위 위에는, 어린 꼬맹이가 검은 로브를 담요처럼 두르고 잠들어 있었다.
피곤했는지 새큰새큰 잠든 꼬맹이는 잠꼬대하듯 말했다.
“돌과 철을 찾아.”
“돌과 철을 찾아라.”
“돌과 철을 찾아라…….”
……
* * *
마도 황제가 김밥을 발견했을 때.
타다다다다-
천문석과 서리 늑대는 능선을 타고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컹, 컹컹-
이때 갑자기 멈춰 서 하늘을 향해 짖는 서리 늑대!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천문석이 반사적으로 하늘에 기감을 뻗는 순간 들려왔다.
쐐애애애액-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무언가!
깜짝 놀라 내력을 끌어올려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보는 순간.
마치 위장 천이 떨어져 나가듯 공기가 잘려 나가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게 보였다.
나이트 아머!
빛의 씨앗을 사방으로 뿌려 대던 나이트 아머가 추락하고 있다.
“터질 것 같더니! 결국, 터졌구나!”
순간 서리 늑대가 추락하는 나이트 아머를 향해 달렸다.
“야, 너 어디가!?”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혹시 저 안에 탄 조종사가 살아 있으면!?’
천문석은 바로 서리 늑대를 따라 나이트 아머를 향해 달렸다.
급경사의 비탈로 미끄러지고, 얼어붙은 바위와 나무를 헤치고 메마른 계곡을 지날 때 충돌음이 들려왔다.
콰아아앙, 쾅, 쾅-
불꽃이 치솟고 바위가 깨져나가는 폭음이 들려왔다.
천문석은 한달음에 계곡을 넘어 불꽃이 치솟는 능선을 올랐다.
그리고 봤다.
나무와 바위를 박살 내고 처박힌 나이트 아머!
엄청난 속도로 추락했는데도 나이트 아머는 멀쩡했다!
컹, 컹-
그리고 먼저 도착한 서리 늑대가 나이트 아머를 향해 짖고 있었다.
“…….”
겁먹어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던 서리 늑대가 똑바로 나이트 아머를 향해 짖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나이트 아머 안에 있을 사람이 어떻게 됐을지는 짐작이 갔다.
명운, 영혼육백 존재의 본질을 잇는 힘이 사라지면 마신, 대요마라도 죽는다.
아무리 초월적인 힘을 발휘했어도 나이트 아머 조종사가 살아 있을 가능성은 작았다.
그러나 이 존재는 중합체조차 일격에 불태우던 존재!
혹시 모르니 반드시 확인해 봐야 했다!
천문석은 강철봉을 앞세워 달려갔다.
툭, 툭, 툭-
강철봉 끝에 붙은 사령 화로로 화염과 열기를 꺼뜨리고 도착한 나이트 아머 앞.
천문석은 나이트 아머를 향해 외쳤다.
“안에 괜찮으세요? 살아 계세요?”
아무 대답이 없다.
천문석은 바로 나이트 아머 위로 뛰어올랐다.
거대한 건물 같은 몸을 타고 올라가 나이트 아머의 가슴, 조종석 부위를 두들겼다.
쿵, 쿵, 쿵-
강철봉으로 몇 번이나 두들겼으나 반응이 없다!
“조종석을 강제로 열어 봐야 하나?”
그러나 강철봉으로 두들기는 순간 감이 왔다.
은은히 전해지는 반발력과 순식간에 흩어지는 내력!
충격 흡수 마력회로가 깔린 보안 등급 강화 철판이 우스울 정도의 강도다.
그냥 부숴서 열려고 하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천문석은 서리 늑대를 봤다.
수천 도의 지열봉조차 단숨에 얼리는 서리혼!
서리혼으로 얼려서 강도를 낮추고 충격을 줘서 바스러트린다.
“야, 이거 좀 얼려 줘!”
휘이익-
휘파람을 불어 서리 늑대에게 신호하는 순간.
쿵-
나이트 아머에서 진동이 왔다.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뛰어내렸다.
나이트 아머의 두 눈에서 섬광이 번뜩이고, 전신에 문신처럼 새겨진 일곱 색의 핏자국이 빛을 발한다.
그리고 외장갑을 따라 생겨나는 복잡한 마력 회로!
나이트 아머가 기동하고 있다!
“정신 드세요!?”
반색한 천문석이 외치는 순간.
핑-
강철 줄이 끊어지는 듯한 굉음이 터지고 공간이 잘려 나갔다.
나이트 아머 머리 위에서 푸른빛의 균열이 생겨나는 순간.
뭘 어떻게 할 사이도 없이 나이트 아머는 푸른 균열에 삼켜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쇳소리.
깡-
수십 미터 크기의 나이트 아머가 사라지고 무언가 떨어졌다.
가까이 다가가자 보였다.
바스러진 돌과 나무 사이에 떨어진 동그란 금속.
강철봉을 툭 건드리자 묵직한 쇳소리가 돌아왔다.
깡-
헌터업 안전 교육에서 몇 번이나 들었던 게 아이템 잘못 만졌다가 손 날아간 이야기다.
천문석은 수통의 물을 부어 식히고 나뭇가지를 젓가락처럼 사용해 조심스레 동그란 금속을 들어 올렸다.
금속 펜던트였다.
500원 동전 1.5배 크기.
피자처럼 8개의 부채꼴이 합쳐져 만들어진 원형 펜던트.
펜던트 중앙에는 마력광으로 물든 작은 돌이 박혀 있었다.
감이 왔다!
이 펜던트 나이트 아머와 관련됐다!
어쩌면 소설이나 만화처럼 이 펜던트에 나이트 아머가 봉인돼 있을지도 모른다!
“……!”
순간 전율이 전신을 흐르고, 머릿속에서 수많은 사실이 하나로 맞물렸다.
-명운을 깎아내 세계를 구한 초월적 존재!
-초월적 존재가 사용한 나이트 아머가 하필 자신이 달리는 방향으로 떨어졌다.
-게다가 갑자기 나타난 균열에 나이트 아머가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이 펜던트가 자신 앞에 떨어졌다!
탁-
단단한 펜던트를 손으로 잡는 순간 천문석은 느낄 수 있었다.
이 펜던트에 담긴 초월적 존재의 의지를!
초월적 존재는 최후의 순간에 이 펜던트!
나이트 아머가 담긴 펜던트를 자신에게 넘긴 거다!
기울어진 하늘과는 다른 이 대인대덕한 마음!
역시 게이트를 만들어 이 세계를 지킨 존재다웠다!
순간 천문석은 번쩍 고개를 들어 초월적 존재가 떠 있던 하늘을 향해 내력을 실어 외쳤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달렸다.
거친 산길을 달리는데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졌다.
카캬카카카-
웃음을 터트린 천문석은 펜던트를 다시 봤다.
평범한 펜던트로 보이지만, 이 안에 나이트 아머가 있다!
그냥 나이트 아머도 아닌 초월적 존재가 타던 나이트 아머가!
어떻게 꺼내는지 알 수 없지만,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다.
이렇게 재수가 좋다니!
이제 2020년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대박이 터지는 거다.
그동안 얻은 보상을 모두 합친 것 이상의 대박, 나이트 아머라는 초대박이!
일개인이 나이트 아머를 가지면 뒷감당이 안 된다.
하지만 자신은 이걸 처리해 줄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이미 알고 있었다.
장민 대표!
팔아도 되고 연구목적으로 넘겨도 된다.
뭘 어떻게 하던 자신 이 건물주가 되는 건 이제 확정된 미래다!
천문석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해 다시 한 번 외쳤다.
“감사합니다!”
천문석은 펜던트를 재빨리 붕대로 휘감아, 잡낭 깊은 곳에 단단히 고정해 넣었다.
카캬카카카카-
그리고 다시 한 번 통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산에서 내려갔다.
이렇게 마도 제국 타이탄 0번기, 황제 전용기 ‘강철‘을 봉인한 펜던트는 천문석의 잡낭에 들어갔다.
그리고 예전부터 잡낭에 들어 있던 검은 동전과 부딪치기 시작했다.
툭, 툭-
작은 소리가 울릴 때마다 펜던트에 담긴 마력은 세면대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물처럼 검은 동전에 삼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