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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435화 (436/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35화>

김철수, 마법사, 추이린, 레이 실트.

모두가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정신없이 움직이는 이때.

모두에게서 잊힌 존재가 명동거리를 걷고 있었다.

쿵, 쿵, 쿵-

육중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사방에서 모여드는 시선.

머리에 새마을 모자를 쓰고.

몸에는 담요를 두른 채로 형광 조끼를 입었다.

등에 커다란 배낭을 짊어졌고, 손에는 먹거리가 가득 담긴 비닐 주머니를 들었다.

왕, 왕왕-

어디선가 나타난 개들이 짖으며 쫓아오고.

우와아아아-

꼬맹이들이 졸졸 뒤를 따르며 환호성을 지를 때.

거리 곳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뭐야? 저거 코스프레인가?”

“와, 역시 세기말!”

“별 희한한 사람이 다 나오네!”

“사진 찍어 둬야지!”

수많은 사람의 탄성을 들으며 명동거리를 걷는 존재.

재의 기사였다.

[…… ]

재의 기사는 문득 비닐봉지를 든 손을 뒤로 내밀었다.

우와아아아-

순간 뒤를 졸졸 따라오던 꼬맹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와 비닐봉지에 담긴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꺼내며 외쳤다.

“감사합니다!”

“형! 엄청 멋져요!”

[…… ]

재의 기사는 대답 없이 계속 걸었다.

좀 더 느려진 발걸음으로 광화문으로 이어진 도로 위로.

* * *

23:00.

게이트가 열리기 1시간 전.

천문석과 서리 늑대는 원통사가 있는 봉우리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계획대로라면 이미 도봉산에서 내려 와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산에서 내려가는 등산객이 예상보다 많아 시간이 지체됐다.

다행히 더는 등산로에 남은 등산객이 보이지 않아, 서리 늑대를 업은 천문석은 점점 속도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남은 시간은 1시간뿐.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 광화문에 도착하기는커녕 산에서 내려가 우이동에 도착하는 것도 힘들었다.

천문석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마지노선은 게이트가 열리는 오늘이 아닌, EMP 마력 폭풍이 몰아칠 1월 3일이다.

즉, 차원 좌표가 마력 폭풍에 날아갈 1월 3일 전에만 광화문 빌딩에 도착하면 된다!

최소 48시간 이상 시간이 남은 상황.

시간 여유는 충분했다!

지금은 무리해서 달리기보다 게이트가 열리고 난장판이 된 서울을 돌파하기 위해 체력을 회복하는 게 나았다.

그래서 달빛이 비치는 평평한 바위가 나타났을 때.

천문석은 달리기를 멈추고 그 앞에 서서 숨을 골랐다.

깨앵-

등에 업힌 채로 축 늘어져 자던 서리 늑대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더 자. 아직 도착하려면 멀었어.”

알겠다는 듯 다시 축 늘어져 잠드는 서리 늑대.

천문석은 잠든 서리 늑대를 바위 위에 내려놓고 수통의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스트레칭하며 몸 상태를 확인하다가 깜짝 놀랐다.

“어, 이거 왜 이래!?”

공방 도시 지하 유적, 재의 숲에서 1999년의 북한산까지 3일 동안 한숨도 자지 않고 격전을 치르며 달렸다.

그런데도 컨디션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컨디션이 이상할 정도로 좋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천문석은 일기일원공을 끌어올리며 생사팔문의 보법을 밟아 나갔다.

소리조차 없이 바위 위를 밟아 나가는 매 걸음.

칼날 위를 맨발로 걷듯, 교차하는 생사의 간극에 무인의 감각이 깨어난다.

기경팔맥을 휘몰아친 일기일원공이 실타래가 풀려 나가듯 천지로 풀려 나가고.

천지로 풀려 나가는 일기일원공을 따라 천지, 하늘과 땅의 뜻이 흘러들어온다.

이 순간 천문석은 감을 잡았다.

이미 극(極)에 한 번 올랐고, 그 극을 넘어 진일보했었기에 알 수 있었다.

그릇이 채워지고 있다!

무공은 계단을 오르듯이 꾸준히 발전하지 않는다.

비상은 언제나 순간이다.

천 년 동안 떨어진 물방울이 거대한 바위를 깨뜨리고.

독수리가 수천수만 번 부딪치던 만장단애를 마침내 넘어 훨훨 날아가듯.

모든 것이 변하는 이 찰나의 순간에 무공은 비상한다.

그러나 이 비상의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그릇을 채우고 정상까지 높게 쌓아야 한다.

우도의 큰길.

좌도의 지름길.

어느 길을 선택하든지 발걸음을 떼어 나아가지 않으면 정상에 닿지 못하고, 정상에 닿지 못하면 비상의 순간 또한 찾아오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릇이 채워지고, 비상의 순간이 다가온 게 느껴졌다!

분명 며칠 전 보안 골렘과 싸울 때만 해도 비상의 순간은 멀었다!

그런데 재의 숲에서부터 3일 연속 구르고 있는 지금 갑자기 비상의 순간이 가까워졌다고!?

‘이거 뭔가 이상한데?’

촉이 꿈틀거리는 순간!

천문석은 달빛이 내리쬐는 암반 위를 걸으며 영육과 혼백의 사이 심상 공간에 자리한 기경팔맥을 관조했다.

처음 시작은 굉천수로 게이트 안정화 장치에서 끌어낸 단 한 방울의 마중물이었다.

한 방울의 마중물로 시작한 기해혈은 어느새 기의 바다라는 말 그대로 내력이 가득 차 있었다.

물이 가득 찬 댐을 보는 듯한 거대한 힘이 기해혈에서 느껴졌다.

한번 날아올라 구만리를 날아간다는 대붕처럼.

한번 몰아치는 순간 단숨에 벽을 부술 힘을 품고 있는 거대한 내력이!

천문석은 직감했다.

앞으로 한걸음이다.

앞을 가로막은 ‘벽‘을 부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초절정의 ‘벽‘을 깨뜨리고, 초인 경으로 나아갈 순간이!

그러나 기쁨보다 어이없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벌써 이렇게 내력이 불었을 리가 없는데!?

뭐가 이렇게 뜬금없어!?

순간 부산 던전 7층 공방 도시에서 시작된 지난 3일간이 떠오른다.

보안 골렘, 고스트, 재의 거인, 재의 기사, 초대형 뱁새, 북한산 추격전!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쉴 새 없이 굴렀다!

게다가 서리 늑대를 업고 빌딩으로 달려가고 있고.

곧 게이트가 열리면 난장판이 될 서울까지 뚫어야 한다.

마치 액션 영화처럼 쉴 새 없이 사건이 터지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뜬금없이 초절정의 벽을 넘을 때가 다가온다고?

이런 상황에 부닥치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할 거다.

천문석은 고개를 들어 1999년의 하늘을 향해 물었다.

“하늘님. 지금 앞으로도 열심히 구르라고 미리 보상 주는 겁니까?”

오직 무심한 하늘은 당연히 대답을…….

“어!?”

하늘을 올려다보던 천문석은 깜짝 놀라 눈을 비볐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다!

천정에 걸친 거대한 달.

북극성을 중심으로 펼쳐진 북두칠성.

그리고 그 주위에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이 그리는 성좌!

하늘의 성좌가 빛을 잃고, 그 위에 한 번도 보지 못한 성좌가 떠오르고 있다!

순간 짚이는 게 있었다.

광화문 게이트!

지금 게이트가 열리는 건가!?

천문석은 재빨리 시계를 확인했고 굳어 버렸다.

[11:20]

게이트가 열리기 한참 전이다!

* * *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파바밧-

잠들어 있던 서리 늑대가 번개같이 일어났다.

깨앵, 깨애앵-

겁먹은 목소리를 내며 안절부절못하던 서리 늑대는 다급히 바위틈으로 달려가 몸을 숨겼다.

그러나 천문석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다.

세계가 변하고 있다!

산, 바위, 나무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게 예전과 같은데.

마치 허깨비를 바라보듯 세상이 텅텅 비어가고 있었다.

깊은 물에서 나오고, 높은 산에 올라간 것처럼 몸을 짓누르던 압력이 갑자기 사라지고 있다.

수압과 기압이 아닌 보다 본질적인 압력이 사라지고 있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영맥(靈脈)!

전생을 자각한 순간 가졌던 가장 큰 의문.

이 세계에는 천지에 엄청난 기가 있는데도 영맥이 없기에 기가 조금도 흐르지 않아 심법에 입문할 수 없었다.

이 순간 천문석의 전신이 덜덜덜 떨렸다.

‘어떻게 이걸 잊고 있었을까?’

천문석은 다시 한 번 일기일원공의 기감을 뻗었다.

일기일원공의 기감이 산을 넘어 멀리 뻗어 나갔다.

그러나 느껴져야 할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고여 있어야 할 엄청난 기!’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 이상하게 생각지 못했던 것을 이 순간 깨달았다!

2020년의 세상에는 질식할 듯 엄청난 기가 있었다.

그러나 1999년 지금 이 세상에는 기가 거의 없었다.

마치 완전히 다른 세계인 것처럼!

2020년과 1999년의 서울은 기의 농도가 완전히 달랐다!

게다가 1999년의 이 희박한 기마저 지금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문득 손을 들어 올렸다.

영안을 뜨지 못했는데도 손으로 머리로 전신으로 빨려 들어오는 기가 느껴진다!

영맥이 없기에 흐를 리 없는 기(氣).

1999년의 희박한 기가 엄청난 속도로 몸 안으로 빨려 들어와 기해혈을 채우고 있다!

천문석은 직감했다.

이것이 좋은 컨디션과 기해혈에 가득한 내력의 비밀이다.

그리고 기를 빨아들이는 것은 자신만이 아니었다.

하늘!

희박한 기가 공간을 넘어 하늘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성좌가 떠오른 하늘로!

문득 고개를 들어 성좌를 관(觀)하는 순간.

[ㅁㅁㅁㅁㅁㅁㅁㅁㅁ]

천지를 떨어 울리는 진동이 터졌다!

너무나 거대하여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진동.

영혼육백 존재의 본질을 뒤흔드는 진동이 천지를 훑었다!

하늘의 별들이 빛을 잃고, 산천초목조차 숨을 죽이는 순간.

천지 만물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새로운 성좌가 떠오르는 하늘로!

바위틈에 숨어 있던 서리 늑대가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픽- 쓰러지고.

심상에서 들려오는 심마의 속삭임에 칠정이 뒤섞여 끓어올랐다.

붉게 변하는 시야와 끓어오르는 칠정!

순간 선연한 기운이 전신을 휘감아 끓어오르는 칠정을 바스러트렸다.

천강흔!

그러나 천문석은 천강흔이 나타났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다.

천문석의 눈은 새로운 성좌가 떠오른 하늘에 고정돼 있었다.

천기가 뒤엉키고 있다!

그리고 뒤엉킨 천기에서 무언가 나타나고 있다!

무저갱의 마신을 아득히 초월하는 존재감!

너무나 거대하여 경지에 달하지 못한 이는, 그 존재 느낄 수조차 없는 무언가가 나타나고 있다!

하늘에 펼쳐진 본 적 없는 성좌를 뚫고!

“……!”

문득 거리에서 듣고 본 기억이 떠오른다.

노스트라다무스 예언, 공포의 대왕!

순간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실소했다.

“하- 꼬맹이도 아니고 공포의 대왕은! 빚쟁이 되는 게 더 무섭겠다.”

실소하는 순간 팽팽하게 긴장된 몸이 스르르 풀리고 마음에 여유가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보는 순간.

성좌를 뚫고 튀어나오는 존재의 정체가 보였다.

하나가 아니다!

하나하나가 무저갱의 마신 이상의 힘을 지닌 존재들!

그런 존재 수백 수천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뒤엉켜 있다!

이 뒤엉킨 존재들이 성좌를 뚫고 나와 마치 물감이 투명한 물에 퍼져 나가는 것처럼 세계에 스며들고 있다!

이렇게 스며든 장소에서 너무나 익숙한 감각이 느껴졌다.

마경!

문득 기감을 뻗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기가 사라지고 쏟아지는 엄청난 마력으로 세계가 변화하고 있다.

마경으로!

지금 시간은 11:22!

광화문 게이트가 열리기도 전에 서울에 마경이 생겨나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역사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문득 감이 왔다.

천지 간의 기가 몸 안으로 빨려 들어와 뜬금없이 비상의 순간을 맞이했다.

이때 처음 보는 성좌가 하늘에 뜨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강대한 존재들이 그 성좌를 뚫고 나와 세계를 마경으로 만들고 있다.

우연히 일어났다기에는 너무나 공교로웠다.

이 순간 하늘님이 자신에게 하는 말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네가 저것 좀 막아야겠다.’

역시 기울어진 하늘, 공평무사라고는 1도 모르는 하늘님다웠다!

뜬금없이 기 좀 모아주고, 무저갱의 마신 수백 수천이 뒤엉킨 것 같은 존재를 막으라니!

여기에 할 대답은 한 가지였다.

천문석은 생경한 성좌에 가려진 하늘을 향해 대답했다.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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