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434화 (435/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34화>

‘케페니안 차원 용병과 계약 후 배 째고 도망치기!’

자신이 썼음에도 읽는 순간 전율이 몸을 흘렀다.

이건 원대륙의 대요마, 타대륙의 마도왕, 마계의 마왕이라도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배 째고 도망치다가 잡히면 끝장이니까!

케페니안 황금 일족의 고유 능력, 아프게 물기!

차원 용병의 이빨에 물린다는 개념이 발생하는 순간, 육체가 아닌 존재의 본질을 뒤흔드는 극통이 몰려 온다.

케페니안 황금 일족의 고유 능력은 영혼육백을 태워 세계의 나무를 키운 분께 받은 힘이기에 세계의 나무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면 막을 수 없다.

물리적 육체가 없는 영체, 통각이 없는 마법 생명체 골렘이라도 물린다는 개념이 발생하는 순간 당한다!

자신도 마찬가지.

도망치다가 잡히는 순간 끝장이다!

엄청난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가진 걸 모조리 털리고, 케페니안 차원에 끌려가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강제 노역을 해야 한다.

배를 쨌던 수많은 마법사, 소환사, 주술사, 마왕들이 그러했듯이!

하지만 방법은 있다!

마법사는 배낭에서 가면을 꺼냈다.

보석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가면.

보석 가면을 보는 순간 마법사의 눈에 아련함이 감돌았다.

오래전 강철 도시의 공방에서 만났던 그녀.

오류 수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은근슬쩍 케페니안 차원 좌표를 넘겼던 마도구 공방 주인.

이 보석 가면은 그녀의 가면이다.

마도 제국을 뒤흔든 무게가 변하는 롱소드의 제작자.

수십 개의 마탑을 먹고 마도 전쟁에서 승리하기 일보 직전.

케페니안 차원 용병을 무더기로 고용했다가 파산한 마도왕!

무기제작자, 마도왕 무겐다흐!

이 보석 가면은 화려하게 비상했다가 비참하게 추락한 마도왕 무겐다흐의 보석 가면이다!

마법사의 계획은 간단했다.

이 보석 가면을 쓰고 ‘무겐다흐의 이름‘으로 케페니안 차원 용병을 고용하고 배를 짼다!

그리고 재빨리 가면을 벗고 시공간 도약을 하는 거다.

다른 마도왕이라면 오류가 생기기에 도용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어차피 무겐다흐는 파산하고 수배된 상태.

달란트 금화 100만장 빚쟁이나, 101만장 빚쟁이나 어차피 빚쟁이인 건 마찬가지다.

오류가 생기지 않기에 이름을 도용할 수 있다.

문제는 무겐다흐가 이미 한번 배를째서 케페니안 관리청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갔다는 것!

하지만 이번에는 이 방법이 통한다.

지금 케페니안 관리청은 모든 업무 처리가 수기(手記)로 이뤄지고 있으니까!

더럽게 느린 케페니안 관리청 공무원들의 업무 처리 속도를 생각하면, 차원 용병과 계약을 하고 배를 째고 도망칠 때까지 절대 걸리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무시무시한 케페니안 차원 용병의 추적을 어떻게 따돌리냐다!

하지만 그것도 이미 준비가 끝났다.

마법사는 문득 고개를 돌려 옥상에 비스듬히 옆으로 누워 있는 파트너를 봤다.

마도 제국의 강습 수송병, 초대형 뱁새!

가장 위험한 전장을 뚫고 제국 기사들을 구한 강습 수송병이 자신의 파트너다.

평소 자신의 지시를 당연한 듯 무시하는 파트너지만. 이번만은 강습 수송병 시절로 돌아가 미친 듯이 하늘을 질주할 거다.

당연했다.

케페니안 차원 용병에게 용서란 없다.

배를째는 순간 자신과 뱁새는 공동 운명체가 된다.

도망치다가 잡히는 순간 자신과 뱁새 모두 무자비한 응징을 당한다!

초대형 뱁새는 무조건 죽을힘을 다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흐흐흐흐흨-

악명 높은 케페니안 차원 용병을 낚는 너무나 위험한 임무를 해야 하는데 웃음이 터지다니!

흨크흐흐흡-

마법사는 간신히 웃음을 삼키며 옆으로 누워 있는 파트너를 봤다.

날개 밑에서 무언가를 꺼내 혼자 먹고 있던 파트너.

-……!

눈이 마주치자 안주겠다는 듯 휙 몸을 돌렸다!

“안 뺏어 먹어!”

자신도 모르게 외친 순간 마법사는 생각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이 미친 짓을 혼자 하는 게 아니라서!

혹시나 도망치다가 잡혀 악명 높은 케페니안 강제 노역장에 끌려 갈 때. 자신 옆에는 파트너, 초대형 뱁새가 같이 할 거라서!

‘크흐흐흐흨-’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삼킬 때.

옥상 문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고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탁-

‘왔구나!’

마법사는 재빨리 초대형 뱁새와 함께 공간의 틈으로 숨어 들었다.

* * *

뛰다시피 걸어 도착한 여의도 아파트.

김철수 발명가는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에 내려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한 현관문 앞에 멈춰 선 김철수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낯익은 문을 바라봤다.

[1201]

1999년 자신의 집.

이 뒤에 젊은 아내와 아이가 있을 거다.

지금이라도 벨을 누르고 문을 열면 젊은 아내와 아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절대 자신을 찾으러 가지 말라고 설득하면 1999년의 자신과 엇갈릴 리도 없었다.

“…….”

하지만 그렇게 하면 모든 게 어그러진다.

한번 나비 효과가 일어나면 그 파급력이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 없었다.

단기적으로는 좋은 결과를 얻는 행동이, 장기적으로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 수도 있었다.

김철수는 잠시 1201호 문을 보다가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탁, 탁, 탁-

그리고 계단을 올라 아파트 옥상 문 앞 계단에 앉았다.

시간은 오후 8시 30분.

김철수는 머릿속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자정에 광화문 게이트가 열리고.

아내가 아이와 자신을 찾아 떠나고.

한발 늦게 과거의 자신이 집으로 돌아온다.

그때 이 가죽 수첩과 회중시계가 담긴 상자를 집 앞에 놓고 현관 벨을 누르면 된다.

그 순간 오랜 의무가 끝나고 새로운 임무가 시작된다.

오너의 ‘돌과 철’을 찾는 20년에 걸친 임무.

김철수 발명가는 피식 웃으며 중간에 산 종이상자를 접어 발 앞에 놓았다.

이제 상자에 가죽 수첩과 회중시계를 넣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과거의 자신이 1201호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그 후 이 상자를 문 앞에 놓고 벨을 누르면 1999년에 오너의 대리인으로 할 일은 끝난다.

그리고 1월 3일 EMP 마력 폭풍이 몰아치기 전에 동료들을 2020년으로 보내면 된다.

김철수는 회중시계를 상자에 넣고 가죽 수첩을 넘겼다.

차르르륵-

페이지가 넘어가며 20년 동안의 기억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지난 20년 동안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수첩을 모두 넘기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탓-

마지막 장이 넘어가는 순간.

김철수는 미련 없이 가죽 수첩을 상자에 넣고 테이프로 상자를 포장했다.

그리고 종이에 짧은 문장을 적어서 상자에 붙였다.

[이 상자 안에 아내와 아이를 만날 방법이 들어 있다. 하지만 한번 상자를 열면 끝까지 가야 한다.]

‘이제 진짜 끝이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처음 오너를 봤을 때가 떠오른다.

광화문 게이트가 열리고, EMP 마력 폭풍이 몰아치고 며칠 후.

서 병장은 폐허가 된 서울을 헤매고 다니는 기억을 잃은 어린아이를 발견한다.

몸에는 성좌가 새겨진 검은 로브를 걸치고 두 손에는 어디선가 주운 작은 돌멩이와 쇳조각을 움켜쥔 어린아이.

기억을 잃은 오너.

그 어린아이가 게이트 전쟁 보육원에 들어가게 주선한 게 과거의 자신이었다.

그리고 많은 일이 있었다.

마탄, 정부의 압력, 라이선스 도용, 게이트 안정화 장치, 게이트 브레이크, 하늘에 뜬 섬…….

전능 옥좌를 띄웠는데도 ‘돌과 철’을 찾는 데 실패했다.

20년 동안 기억 속 오너의 어린 얼굴이 빠르게 변해 어느새 20대 청년으로 변했다.

2020년의 오너.

과거에서 20년을 버텨 2020년으로 돌아가고 겨울쯤, 잠시 기억이 돌아온 오너와 만나게 될 거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때 오너가 잃어버린 ‘돌과 철’을 건넬 수 있을까?

과연 자신이 오너가 잃어버린 ‘돌과 철’을 찾을 수 있을까?

가능성은 크다.

게이트 전쟁으로 서울이 폐허가 되면서 위치를 특정하지 못했던 미래와 달리 ‘돌과 철’이 있을 위치가 한정적이다.

김철수 발명가의 머릿속에서 계획이 세워졌다.

EMP 마력 폭풍이 터진 후, 생존자 수색 그룹을 이끄는 서 병장 팀에 신분을 감추고 합류한다.

목적은 오너를 발견하는 장소와 이동 동선을 확인하는 것.

그 이동 동선을 훑어 오너가 잃어버린 ‘돌과 철’을 찾는다!

그 후 사회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장소, 안전지대 제주도에서 20년간 신분을 감추고 기다린다.

가죽 수첩과 시계를 회수한 자신이 오너의 대리인으로 활동하다가 공방 도시에서 사고에 휘말려 과거로 날아가는걸.

그리고 천문석, 추이린, 레이 실트 동료들이 2020년으로 돌아오는 순간 그 앞에 나타나면, 김철수 발명가의 과거·현재·미래가 맞물려 돌아가게 된다.

그다음에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추이린과 함께 잠시 기억이 돌아올 오너를 만나러 가야 한다.

초거대기업, 재금 그룹의 오너.

재력과 권력, 영향력과 실질적인 힘!

모든 것에서 세계 정점에 있으나, 그 모든 것에 관심 없는 오너를 마지막으로 만난다.

그때 자신의 손에 오너가 잃어버린 ‘돌과 철’이 있을지 없을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이 보고가 오너의 대리인으로 하는 자신의 마지막 일이다.

그 날부터 오너의 대리인은 자신이 아닌 같이 간 추이린이 될 테니까.

순간 미래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오너의 정체를 안 후 경악할 추이린.

20년을 버텼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이없어할 오너.

어이없어하는 오너를 보며 오너의 말버릇대로 대답할 자신.

김철수 발명가는 웃으며 미래의 자신이 할 말을 했다.

“할 만했습니다.”

* * *

1999년 12월 31일 늦은 저녁.

사고로 이 시대에 떨어진 모두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김철수 발명가는 아파트 옥상 계단에 앉아 과거의 자신이 돌아왔을 때 ‘가죽 수첩’과 ‘회중시계’가 들어 있는 상자를 전하기 위해 기다렸고.

마법사는 김철수 발명가가 앉은 계단 뒤 옥상에 숨어 상자를 놓는 순간 ‘가죽 수첩’과 ‘회중시계’를 회수하러 대기 중이었다.

이때 추이린과 레이 실트는 광화문 빌딩 옥상에 앉아 짜장면을 먹고 있었다.

짜장면을 먹던 레이 실트는 문득 고개를 들더니 중국집 전단지를 흔들었다.

“옛날 짜장면! 이거 정말 괜찮은데? 우리 이거 한 개씩 더 시켜 먹자! 앗, 여기 탕수육이랑 군만두도 먹고 싶은데?”

“야, 돈 없어! 그리고 저기 모여든 인파 봐봐. 지금 주문해도 저 인파 뚫고 오지도 못해. 와도 12시 지나서야 올걸.”

추이린이 고개를 젓자, 잠시 주저하던 레이 실트는 몸을 돌려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이거 좀 잘라 주면 빨리 오지 안 될까?”

“…….”

추이린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레이 실트가 꺼낸 건 손바닥 크기의 금속 덩어리였다.

노란색의 묵직한 금속괴, 금괴!

“야! 이런 게 있으면 진작 꺼냈어야지! 어제오늘 우리 돈 없어서 개고생한 거 기억 안 나!? 와, 이 어이없는 녀석!”

레이 실트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이거 진짜 진짜 내 마지막 비상금이란 말야…….”

하아-

깊은 한숨과 함께 넋두리하듯 말을 잇는 레이 실트.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나 원래 엄청 부자였는데…… 엄청 비싼 보석 가면도 맞추고, 격도 끝없이 높아져 승리가 눈앞에 있었는데…… 계약 한번 잘못해서 나락에 떨어지다니…… 엄마 말대로 아무데나 도장 찍으면 안 되는 건데…….”

하아-

깊은 한숨을 쉰 레이 실트는 돌연 머리를 번쩍 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게 전부 다 그놈 때문이야! 그 빌어먹을 설계자 놈! 내가 그놈 설계에만 당하지 않았으면!”

으아악-

추이린은 고통 어린 고함을 지르는 레이 실트의 손에서 쏙 금괴를 뽑아냈다.

“야, 됐고! 이거 내가 금은방에서 돈으로 바꿔서 중국집 갔다 올게. 배달은 안 돼도 가서 사 올 수는 있을 거야. 옛날 짜장면 한 그릇 추가?”

“군만두랑 빼갈도 추가! 탕수육이랑 팔보채, 깐풍기도 먹어 보고 싶어!”

레이 실트는 중국집 전단지를 짚으며 대답했다.

“……알았어. 한 30분에서 1시간쯤 걸릴 거다. 사고 치지 말고 여기 가만히 있어.”

추이린은 몇 번이나 당부하고 옥상 구석 마법 도르래를 잡았다.

그리고 내려가기 전에 한 번 더 강조했다.

“특히 아무것도 부수면 안 된다!”

기이이이잉-

추이린이 마법 도르래를 타고 내려가는 순간.

레이 실트는 눈을 반짝였다.

‘드디어 혼자 남았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난간으로 달려가 광화문 게이트가 생겨날 장소를 바라보는 레이 실트!

천공탑을 타고 이 세계에 도착했을 때 가장 어이없던 것은, 마탑이 존재하지 않는 이 세계에 고정 게이트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고정 게이트’는 여는 것과 유지 모두 엄청난 마력이 필요하다.

마력장 지대의 힘을 끌어내는 마탑 없이는 고정 게이트를 유지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게이트가 하나둘도 아닌 수천 개가 전 세계에 깔려 있었다.

이런 게 가능할 사람은 한 명뿐이다.

위대한 마도의 신, 마도 황제 폐하!

우연에 우연이 겹쳐 최초의 게이트가 열리는 장소에 떨어졌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준비다!

최초의 게이트가 열리는 순간 흔적을 드러낼 마도 황제 폐하를 찾을 준비!

레이 실트의 눈이 광화문 뒤 경복궁에 꽂혔다.

최초의 게이트가 생겨나는 장소!

저곳에 마도 황제 폐하 추적법을 사용한다!

북경반점에 간 추이린이 돌아오기 전에 모든 걸 끝내야 한다!

레이 실트는 재빨리 마법 도르래로 달려가 몸을 실었다.

기이이이잉-

단숨에 골목으로 내려온 레이 실트는 게이트가 열릴 경복궁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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