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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430화 (431/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30화>

“……서리 늑대만 놔주고 가!”

분노 어린 고함이 들려오는 순간 숨어 있던 마법사는 등골이 오싹했다.

천운의 헌터가 빡치고 있다!

이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흘렀다.

다른 이들은 모두 예측이 가능해도 천운의 헌터만은 예측할 수 없다.

이러다가 천운의 헌터가 자신의 이름을 알게 되고, 제대로 엮이게 되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일들이 일어난다!

마법사는 천운의 헌터를 분노하게 한 파트너에게 재빨리 마법 메시지를 보냈다.

[야! 적당히 싸우고 유인하라고 했잖아! 왜 저렇게 빡치게 만들어! 진짜 제대로 분노하면 우리 모두 끝장이라니까!]

히리히리히리-

초대형 뱁새가 귀찮은 듯 우는 순간.

하얀 몸에서 붉은 인장이 튀어 올라 빙글빙글 회전했다.

경지에 이른 제국 기사가 자신의 혼백을 나눠 만들어 내는 전투 인장!

눈에 익은 전투 인장을 보는 순간 한 제국 기사가 떠올랐다.

대륙 전쟁에 발생한 오류를 수정하러 갔을 때 만났던 노기사.

지금 초대형 뱁새의 몸에 떠오른 전투 인장은 그 노기사가 남긴 전투 인장이다.

진혼진군가를 불러 초대형 뱁새를 부른 노기사는 구출을 거부하고 뱁새에게 전투 인장을 남기며 유언을 남겼다.

“싸우면 반드시 이겨라! 더럽게 끈질기고 질척질척하게 싸워서라도! 그리고 반드시 살아남아라. 신병! 하하하- 위대하신 황제 폐하께 영광을!”

노기사는 타이탄을 폭주시켜 허신의 핵과 함께 폭사했다.

그게 초대형 뱁새의 첫 임무였다.

“…….”

마법사는 마법 메시지를 보냈다.

[신병!]

휘리릭, 착착착-

번개같이 날개를 움직여 경례하자 전신에 떠오른 수십 개의 전투 인장!

이 전투 인장들을 보는 순간 초대형 뱁새가 왜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는지 알 수 있었다.

진혼진군가를 부르며 혼백이 담긴 전투 인장을 남기고 죽어 간 수많은 제국 기사들!

내력이 실린 휘파람을 듣고 진혼진군가를 떠올린 지금, 초대형 뱁새는 완전히 제국군 강습 수송병 시절로 돌아갔다!

그리고 제국군 강습 수송병은 싸우면 어떻게든 이기려 최선을 다한다.다.

“…….”

마법사는 강습 수송병 시절로 돌아간 초대형 뱁새와 그 뒤를 따라 달리는 천운의 헌터를 봤다.

혹시 엮일까 봐 이름조차 떠올리지 않는 천운의 헌터가 점점 더 분노하는 게 느껴졌다.

초대형 뱁새.

천운의 헌터.

두 폭탄이 달리고 있다.

그리고 둘로 끝이 아니었다.

마법사는 문득 하늘을 봤다.

해가 지면서 노을 지는 하늘.

오늘 밤이 지나면 내일은 31일이다.

1999년 12월 31일.

이 세계의 마력 준위가 한계 이하로 떨어지고, 강대한 힘을 지닌 존재들의 차원 도약을 막아 내는 차원 방벽이 사라지는 날!

12월 31일 밤에 진정한 난장판이 벌어지게 된다.

마법사는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회중시계를 회수하고 이 세계에서 탈출할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어떻게든 그 날까지만 버티면 된다!

마법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파트너에게 마법 메시지를 보냈다.

[강습 수송병! 이번 임무는 유인이다! 전투는 금지다!]

척-

초대형 뱁새는 짧은 날개로 경례하고 알겠다는 듯 크게 원을 그렸다.

뒤를 쫓는 서리 늑대와 천운의 헌터 위에서!

도발하듯이!

[…… ]

* * *

히리히리히리-

초대형 뱁새가 울음소리를 내며 하늘을 날고.

우오오오오오-

서리 늑대가 냉기 폭풍을 휘감고 지상을 달렸다.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날고, 지상을 달리는 두 재앙급 마수.

이 뒤를 천문석이 쫓았다.

“시바, 시바! 야! 인간적으로 이제 좀 멈춰라!”

몇 시간 동안이나 분통을 터트리면서!

그러나 초대형 뱁새는 멈추지 않았다.

노을이 지고.

해가 떨어져 깜깜해지고.

하늘에 별이 하나둘 떠오르고.

한밤을 지나 어느새 새벽이 다가올 때까지도.

초대형 뱁새는 별이 가득한 한겨울 하늘을 날았고.

그 뒤를 쫓는 서리 늑대와 천문석은 한겨울 북한산을 달렸다.

하늘을 날아 직선으로 이동하는 초대형 뱁새, 땅 위 굴곡진 산과 계곡을 달리는 천문석과 서리 늑대들.

천문석이 절정의 무인이고, 서리 늑대가 재앙급 마수라도 너무나 불리한 추적이었다.

초대형 뱁새가 직선으로 쉬지 않고 날아가기만 했어도 곧 시야에서 놓치고 추적은 실패했을 거다.

그러나 초대형 뱁새는 마치 따라오라는 듯 빙글빙글 원을 그리고, 중간중간 절벽, 능선에 한참 동안 멈춰 서 숨돌리고 휴식할 시간을 줬다.

천문석은 곧 깨달았다.

저 뱁새는 뭔가 의도를 가지고 유인하고 있다!

아니, 유인하는 건 뱁새여도 의도를 가진 건 저 뱁새 뒤에 있을 마법사일 거다.

마법사가 무언가 목적을 가지고 자신과 서리 늑대를 유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새벽이 됐을 때 목적지가 보였다.

초대형 뱁새가 원을 그리는 하늘 아래, 평평한 암반에서 마력광이 치솟고 있었다!

이 마력광은 암반 위에 뜬 적층식 마법 회로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때 하늘에서 원을 그리던 초대형 뱁새가 착륙할 듯 암반을 향해 활강하고, 초대형 뱁새 뒤를 바짝 쫓던 서리 늑대들은 다급히 암반 위로 뛰어올라 하울링 했다.

우오오오오오-

순간 서리 늑대의 전신에서 쏟아진 서리혼이 적층식 마법 회로와 만났다.

시계 속 수천 개의 부품이 맞물리듯, 적층식 마법 회로가 천천히 회전해 맞물리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철컥-

마치 귓가에 소리가 들려오듯 맞물려 하나가 되는 마법 회로!

층층이 쌓인 적층식 마법 회로가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

휘이잉, 훙, 훙, 훙-

착륙할 듯 활강하던 초대형 뱁새는 잽싸게 날갯짓해서 휙 하늘로 날아가고.

하나로 합쳐진 마법 회로에서 마력 파동이 쏟아졌다.

쿵, 쿵, 쿵-

너무나 익숙한 파동!

“야! 당장 거기서 내려 와! 그거 재의 숲이랑 같은 파동이야!”

천문석이 다급히 외치며 달렸으나 이미 늦었다!

마력 파동이 쏟아진 순간, 재의 숲에서 일어났던 일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몸을 날리던 서리 늑대들이 급격히 느려지더니 곧 정지했다.

그리고 허공의 한점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이 순간 암반 앞에 도착한 천문석은 강철봉을 찔러 넣었다!

내력이 실린 강철봉과 마력 파동이 충돌하는 순간.

구으으으응-

거대한 종이 울린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마력 파동이 일그러지고, 공간이 물결치듯 흔들렸다.

한 점으로 끌려가던 서리 늑대들이 멈추고 정지됐던 몸이 움직여 허공에서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으아악-

천문석은 내력을 끌어올려 강철봉에 쏟아부었다.

공간의 흔들림이 점점 강해지고, 파동이 뒤엉켜 상쇄되기 시작한.

재의 숲에선 파동에 잡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력 파동 밖에서 때려 부수는 상황!

된다!

할 수 있다!

으아아아악-

천문석이 모든 내력을 끌어올려 괴성과 함께 단숨에 쏟아부으려는 순간!

[으앗! 그러시면 안 돼요!]

다급한 마법 메시지와 함께.

휙, 휙, 휙-

작은 돌들이 암반 위로 떨어졌다.

아무 영향도 줄 수 없을 것 같은 작은 돌이 마법 회로에 닿은 순간.

깨질 듯 흔들리던 공간은 원래대로 돌아가고 마력광이 터져 나왔다.

팟-

마력광이 터지는 순간 사라지는 서리 늑대!

그리고 마력광이 터지는 간격이 점점 빨라졌다.

팟팟팟팟팟-

쉴 새 없이 터지는 마력광이 멈춘 순간.

파스스슥-

암반 위에서 빛을 발하던 마법 회로가 빛을 잃고 모래가 되어 쏟아졌다.

그리고 공중에 멈춰있던 강철봉이 모래가 수북이 쌓인 암반 위로 떨어졌다.

깡-

천문석은 허탈한 눈으로 암반 위를 봤다.

넓은 암반 위에는 빛을 발하는 모래만 쌓여 있었다.

암반 위에 있던 십여 마리의 서리 늑대 모두가 사라졌다.

* * *

“…….”

천문석은 말없이 텅 빈 암반을 봤다.

산길을 질주하고, 초대형 뱁새와 싸우고, 다시 그 뒤를 쫓아 달렸다.

어제 오후부터, 오늘 새벽이 될 때까지 밤새워!

그러나 서리 늑대는 재의 숲에서처럼 모두 사라져 버렸다.

“…….”

뭐라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어이없는 상황.

천문석은 자신을 기다릴 동료들을 생각하자 눈앞이 깜깜해졌다.

서리 늑대를 데려올 자신을 기다리며 마법 회로를 조정하고 보호 마법을 걸고 있을 동료들.

김철수 발명가.

추이린 수석연구원.

레이 실트 마도구 제작자.

이제 빈손으로 돌아가 동료들에게 최후의 방법, 20년 버티기를 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하, 하하하-

생각지도 못한 결말에 허탈하게 웃을 때.

어제와 오늘 너무나 여러 번 들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히리히리히리-

초대형 뱁새!

순간 분노가 치솟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속삭임이 들려온다.

‘할 수 있잖아? 박살 내 버려!’

심마의 목소리에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 이런 잡스런 심마까지! 튀어나와!”

천문석은 심상 공간에 칠정을 태우는 화로를 만들어 냈다.

화르르륵-

혼백을 태우는 화로의 열기에 심마가 타들어 가고 고통이 치솟는 순간.

천문석은 순수한 자신의 의지로 분노했다.

“야, 이 새끼! 잘 왔다! 작살을 내주마!”

가볍게 회전시킨 강철봉을 내려치는 순간.

콰아아아앙-

암반이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치고 저릿저릿한 기파가 하늘로 솟구쳤다.

적당히 봐주는 건 끝이다!

사생 결단을 낸다!

“와라!”

내력을 실은 외침을 터트리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게 보였다.

초대형 뱁새의 발에 잡힌 동글동글한 털 뭉치!

“……!”

이때 초대형 뱁새의 움켜쥔 발이 펼쳐지고.

휘이이잉-

동글동글한 털 뭉치가 바람을 가르고 암반 위로 떨어졌다!

탱, 탱, 탱-

동글동글한 털 뭉치는 탄력 있는 고무공처럼 암반 위에서 튕기며 울었다.

깨앵, 깽, 깽-

서리 늑대!

초대형 뱁새가 납치한 놈을 깜빡했다!

천문석은 단숨에 달려가 연신 튕기는 서리 늑대를 받았다.

순간 서리 늑대의 전신에서 풀썩 치솟는 서리혼!

감이 왔다!

마법 회로를 가동할 수 있다!

20년 존버하지 않고 집에 갈 수 있는 거다!

끓어오르던 분노.

타들어 가던 가슴.

복잡하게 뒤엉킨 머리.

모든 게 스르륵 풀리고.

자신도 모르게 통쾌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카캬카카카카카-

천문석이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휘이이잉-

빙글빙글 머리 위에서 원을 그리던 초대형 뱁새에게서 무언가가 떨어뜨렸다.

탁-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잡자 유리병에 밀봉된 점성 있는 액체가 보였다.

“포션?”

이때 마법 메시지가 쏟아져 들어왔다.

[상급 포션입니다. 필요하실 겁니다.]

[서리 늑대는 있어야 할 장소로 갔습니다.]

[세계는 나무이고 이 나뭇가지에서 시공은 연속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서 나비 효과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시려는 일은 그 서리 늑대 한 마리로도 충분합니다.]

[서리 늑대가 한 마리만 남아서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데리고 서울 시내를 지나가기가 더 쉬워졌잖아요!? 하하하-]

[혹시 화나셨다면 죄송합니다. 뱁새 이 녀석 참전군인이라 PTSD가…….]

……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마법 메시지가 쏟아질 때.

초대형 뱁새가 허공을 스치며 발을 긋는 게 보였다.

스으윽-

마치 커터칼로 종이를 베어 내듯, 허공이 잘려 나가고 툭 튀어나오는 한 남자!

남자를 낚아챈 초대형 뱁새가 재빨리 날갯짓해 하늘 높이 도망쳤다.

천문석은 깨달았다.

마법사!

자신을 이곳으로 유인한 마법사다!

공기 터널 마법.

광화문 옥상의 마법 회로.

북한산에 나타난 초대형 뱁새.

서리 늑대를 집어삼킨 마력 파동.

이 모든 일의 배후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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