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426화 (427/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26화>

쿵, 쿵, 쿵-

묵직한 헌터용 안전화가 얼어붙은 땅과 바위를 때릴 때마다 쭉쭉 뻗어 나가는 몸!

무성한 나무를 헤치고 가파른 비탈을 지나 올라가자, 곧 탁 트인 등산로가 나오고 한겨울 칼바람이 몸을 스쳐 지나갔다.

휘이이잉-

천문석은 호흡을 고르며 등산로를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한숨도 자지 못하고 한겨울 등산로를 달렸다.

체력을 유지하고 컨디션을 관리 해야 했다.

문득 헛웃음이 났다.

어제는 하늘과 땅, 대기까지 눈에 보이던 모든 게 불타오르던 재의 숲을 달렸는데.

오늘은 얼어붙은 바위와 흙, 앙상한 나무가 가득한 한겨울 북한산을 달리고 있다.

그것도 1999년의 북한산을!

부산 던전행 배송 의뢰를 맡을 때 생각했던 것과 실제 배송 의뢰는 완전히 달랐다.

“뭐가 이렇게 꼬이냐…….”

자신도 모르게 말한 순간 이번 배송 의뢰를 하며 지나온 장소가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부산 던전 1층에서 7층까지.

공방 도시, 지하 유적, 재의 숲.

그리고 지금 1999년의 북한산.

어쩐지 생각만으로도 한숨이 나왔다.

이번 배송 의뢰는 첫 의뢰 이세계 쿠팡맨 이상으로 스펙타클했다.

처음 부산 던전행 배송 의뢰를 받았을 때는 이렇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당연했다.

이세계를 넘어 과거라니 누가 이런 걸 예상하는가!?

천문석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배송 의뢰는 이번이 마지막이다.

내 사전에 더 이상 쿠팡맨은 없다!

이때 가파른 계단이 나타나고 계단을 오르는 등산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 백운대에 떨어졌다고?”

“그렇다니까! 평일에 이 많은 사람이 왜 백운대로 가겠어!?”

“그걸 믿냐? 뭐 이렇게 정신 나간 놈들이 많아?”

한 남자가 어이없어하자 곧 반박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UFO는 몰라도 거기 지금 이상한 동물은 나왔다던데?”

‘UFO + 이상한 동물 = 서리 늑대!?’

천문석은 재빨리 계단을 올라 등산객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생각과는 다른 이야기가 들려왔다.

“엄청나게 커다란 새가 백운대 주위를 날아다닌 데!”

“커다란 새? 뭐 독수리라도 나왔데?”

“독수리가 같이 그냥 커다란 새가 아니라. 뭔가 신비하게 일렁이는 그런 새라던데?”

“뭔 헛소리야? 저번에는 호랑이 나왔다더니. 또 누가 헛소문 퍼트렸나 보네. 쯧쯧-.”

“이번엔 진짜라니까 그러네! 그거 분명…… 그래 봉황이야! 봉황!”

“봉황? 하하하- 여기서 봉황 본 사람 있냐? 봉황은 무슨!”

“그래도 뭔가 나오긴 했어.”

“맞아. 저 앞에 방송국 양반들이 괜히 카메라 들고 산을 타겠어?”

‘방송국!?’

문득 고개를 들자 멀리 위쪽에서 [KBS]라 적힌 카메라를 메고 계단을 오르는 사람이 보였다!

“……!”

방금 천문석에게 제약이 하나 더 생겼다.

서리 늑대가 카메라에 찍히기 전에 찾아서 감쪽같이 빠져나와야 한다!

천문석은 바로 내력을 끌어올렸다.

일기일원공의 내력을 마종권의 형에 담는다!

시위를 당긴 활처럼 전신이 팽팽하게 조여들고.

화살이 걸리는 몸의 중심, 탄탄한 허리와 통나무 같은 허벅지에 힘이 집중되는 순간.

탓-

시위를 놓듯 집중된 힘을 폭발시켰다!

탓탓, 탓탓탓-

천문석은 미친 듯이 계단을 오르며 외쳤다.

“먼저 올라갑니다!”

“잠시만 지나갈게요!”

순식간에 등산객과 방송국 기자를 지나치자 어느새 급경사의 바위 코스가 나타났다.

이곳에도 줄을 잡고 산을 오르는 수많은 등산객이 있었다!

이 등산객들에게서 들려오는 단어 들이 하나같이 섬뜩했다.

UFO, 유성, 신기한 동물, 운석, 대박……!

장철의 차를 타고 오면서 라디오에서 들었던 대로 평일인데도 수많은 등산객이 북한산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예상과 달리 북한산에 떨어진 것은 UFO, 운석 같은 게 아니다.

재앙급 마수, 서리 늑대다!

이 많은 사람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서리 늑대를 생포하겠다고 마취총을 쏘거나 그물을 던지면? 아니 단순히 위협이라도 한다면?

생각만으로도 소름 돋는 대참사가 일어난다!

지금은 체력 유지, 컨디션 관리를 할 때가 아니었다.

최대한 빨리 백운대에 도착해 서리 늑대를 찾아야 했다!

천문석은 한달음에 바위 코스를 뛰어올라 북한산 등산로를 질주했다!

* * *

천문석이 북한산 등산로를 질주할 때.

다른 동료들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추이린은 옥상 바닥에 새겨진 적층식 마법 회로 곳곳에 정제 마석을 박아 넣었고.

레이 실트는 옥상으로 나오는 문에 인식 장애 마법을 걸고 빌딩 전체에 보호 마법을 설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적층식 마법 회로!? 이 회로 어떻게 간섭없이 구현한 거지!?”

추이린이 감탄하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물었다.

“그러니까 이 마법 회로가 네가 아까 말한 그 가면 쓴 놈이 만든 거란 거지?”

“맞아! 이런 마법 회로를 뜬금없이 여기다 만들 놈은 걔밖에 없어!”

“그놈 엄청나게 음흉한 놈이야! 걔 때문에 내가 한 개고생을 생각하면! 으드득-.”

……

레이 실트는 분통을 터트리며 이를 갈았다.

하지만 추이린은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옥상에 새겨진 마법 회로의 반도 해석이 안 된다!

오너의 대리인, 김철수 발명가 이상의 대단한 솜씨다!

1999년 게이트가 열리기도 전에 이런 적층식 마법 회로를 구현한 사람이 있었다니!

추이린은 문득 고개를 들어 빌딩 아래 펼쳐진 1999년의 광화문을 내려다봤다.

당연히 게이트, 각성, 헌터, 마력과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게이트가 열리기 전인 1999년 12월 30일, 이때 이미 광화문 빌딩 옥상에 초고도의 마법 회로가 새겨져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을 무너뜨리는 일들이 이미 일어나고 있던 것이다!

추이린은 눈을 반짝였다.

1999년 12월 31일.

2000년 01월 01일.

새천 년이 시작되고, 광화문 게이트가 열리는 순간.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이곳에서 일어날 거라는 감이 왔다!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든 것을 이 두 눈에 담는다!’

추이린이 새삼 다짐할 때, 레이 실트가 이를 갈며 하늘을 향해 외쳤다.

“이번엔 내가 그냥 가지만!”

“그분 만나면 바로 민원 넣는다!”

“내가 돈 벌어서 현상 수배도 반드시 건다!”

“황금 다람쥐 일족의 분노가 너를 찾아갈 것이다!”

“…….”

추이린은 말없이 소리치는 레이 실트를 봤다.

처음 만났을 때 락을 풀겠다고 통제실 컨트롤 패널을 강철봉으로 내려치던 레이 실트.

그때 생각했다.

레이 실트 이 녀석 멀쩡한 겉모습과는 달리 미친놈이라고.

그러나 지금 하늘을 향해 분통을 터트리는 레이 실트를 보자 자신이 오판했다는 걸 깨달았다.

레이 실트 이 녀석은 그냥 미친놈이 아니라 ‘완전히’ 미친놈이었다!

‘여기서 떠나면 절대 엮이지 말아야지!’

추이린은 재빨리 시선을 돌려 마법 회로에 정제 마석을 박아넣었다.

김철수 발명가가 돌아올 때까지 준비 작업을 끝내야 했다!

* * *

김철수 발명가는 천문석과 헤어진 후 바쁘게 움직였다.

을지로에서 폐업 직전이던 재금 공업을 인수하고.

피시방에서 취준생을 휘경동 고등학교에서 역사 선생님을 만나 미래에 대해 안배를 했다.

그리고 지금 김철수는 서울역 인근 카페에 앉아 TMO에서 근무하는 곧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과 만나고 있었다.

“오늘 말년 휴가 복귀했으면…… 그럼 서 병장 제대일이……?”

“내일모레. 1월 1일에 제대입니다. 오늘 내일은 연휴로 TMO가 바빠서 며칠 일찍 복귀했습니다. 어차피 갈 사람이니 일 좀 하다 가려고요.”

겸연쩍게 웃는 서 병장.

김철수는 이 웃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려 왔다.

하필 1월 1일 게이트가 열리는 날이 제대일이라니!

게이트가 열리고 난장판이 되면 제대는 당연히 연기된다.

EMP 마력 폭풍이 터져 수도 서울을 잃게 되고, 경기도 방어선이 무너지면 동원 예비군마저 징집된다!

당연히 현역병의 제대일은 뒤로 쭉쭉 밀려난다!

결국, 눈앞의 서 병장은 하루 단 하루 차이로 제대하지 못하고, 대략 5년 후 서울 수복 작전이 성공한 후에야 제대할 수 있었다.

+5년의 군 생활.

그러나 이 5년 동안 서 병장은 수많은 일을 해낸다.

낙오한 군인과 민간인을 규합해 서울에 거점을 만들고, 서울에 고립된 수많은 사람을 구해 내 서해를 통해 낙동강 전선 뒤 후방으로 탈출시켰다.

그러나 서 병장이 받을 보상은.

병장 월급 - 13,300원.

위험수당 100% - 13,300원.

1년 연봉 - 319,200원.

5년간 연봉 총액 - 1,596,000원.

5년간의 연봉 1,596,000원이 전부였다.

“…….”

김철수는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수많은 사람을 구하고, 서울 수복 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엄청난 전공을 세웠는데 보상은 200만 원도 안 되는 돈이 전부다.

서 병장 같은 이들의 공로는 해외로 도주한 유력자들과 초반에 상황을 오판한 군 장성들의 정치적 합의로 오랜 시간 가려진다.

이것이 원래 일어났을 일이고, 지금 자신이 변화시켜야 하는 과거였다.

이때 서 병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런데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아신다고요?”

상념에 빠졌던 김철수는 정신을 차리고 바로 대답했다.

“네. 제가 전에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도움을 좀 드리고 싶은데…… 혹시 제대하고 계획이 있으신가요?”

“복학할 때까지 알바로 등록금을 벌 생각이긴 한데…….”

“잘됐네요. 정식으로 스카우트하겠습니다.”

김철수는 웃으며 서류와 명함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채용 계약서입니다. 이건 제 명함이고요. 근무 시작은 제대 후부터지만, 사인 하시는 순간부터 우리 회사 직원입니다. 잘 읽어 보세요.”

서 병장은 명함을 확인하고 빠르게 서류를 훑었다.

[재금 공업 : 김철수 영업부장]

“재금 공업. 월급이 200이요!? 어, 주식도 100주나 지급해 주신다고요? 저 아직 대학도 졸업 안 했는데…… 게다가 기술을 전혀 모르는데요?”

서 병장이 깜짝 놀라 반문하자, 김철수는 웃으며 대답했다.

“작은 공업사라 주식 100주라고 해 봐야 액면가로 50만원 정도고. 상장 전에는 매각도 안 됩니다. 부담 가지실 필요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하실 일도 간단한 서류 작업입니다. TMO보다 오히려 쉬울 겁니다.”

“아, 그런가요?”

서 병장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월 200만 원이면 아주 좋은 일자리다.

게다가 시기가 좋았다.

제대와 복학 사이 2달의 시간이 빈다.

이 2달간 일하고 받을 400만원이면, 1년간 등록금을 내고도 돈이 남는다!

서 병장은 바로 채용 계약서에 사인하고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한 후에 TMO로 돌아갔다.

김철수 발명가는 멀어지는 서 병장을 보며 웃었다.

서 병장은 운 좋게 작은 공업사에 취직해서 2달간 등록금을 벌게 됐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당연히 팔 수도 없는 100주의 주식보다, 200만 원의 월급에 혹해 있을 거다.

월급 200만원과 재금 공업 주식 100주.

이건 미래의 영웅에게 미리 준 보상이다.

어째선지 김철수는 웃음이 났다.

지금 재금 공업은 을지로에 흔한 수많은 공업사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몇 년 후 재금 공업은 게이트 전쟁의 판도를 바꿀 발명을 한다.

마탄.

게이트 안정화 장치.

그리고 20년 후.

재금 공업은 전 세계인 누구나 아는 초거대기업 재금 그룹의 지주회사가 된다.

지금 재금 공업 주식 100주는 액면가 5,000원 총액 50만원의 가치다.

하지만 이 100주의 주식이 초거대기업 재금 그룹 지주회사의 주식이 되는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 된다.

그러나 이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조차 이 지분으로 가지게 될 ‘영향력’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초거대기업 재금 그룹의 본사 이사.’

서 병장은 어지간한 기업 총수조차 상대가 안 될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김철수 발명가는 서 병장에게 주는 이 주식이 전혀 아쉽지 않았다.

어차피 재금 공업의 모든 건 자신의 것이 아닌 ‘오너’의 것이다.

그리고 서 병장은 서울에 거점을 만들고 고립된 수많은 사람을 구할 사람이다.

어른, 아이, 노인, 가족…….

그리고 기억을 잃은 채 폐허가 된 서울을 오랜 시간 달릴 ‘꼬마 아이‘.

서 병장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한 행동이 세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하하하-

김철수는 유쾌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이제 빌딩 옥상으로 돌아갈 때였다.

동료들에게 생필품과 식료품을 전하고, 마법 회로의 조정 방향을 지시한 후 다시 한 번 움직여야 했다.

저녁과 밤.

그리고 새벽까지.

나비 효과를 만들기 위해서!

가죽 수첩을 펼치자 보이는 수많은 이름.

문득 한 이름이 눈에 밟혔다.

[강철 해머, 장철]

몬스터가 서울을 점령한 후에도 끝까지 서울을 떠나지 않았고, 서울 수복 작전 당시 오함마로 마수와 몬스터를 뚫고 피의 길을 열었던 1세대 헌터.

그러나 장철과 친분 있는 사람은 몇몇 1세대 헌터뿐. 장철의 과거에 대한 기록은 극히 적었다.

김철수 발명가는 장철을 만나러 두 번이나 움직였다.

하지만 지나간다는 거리, 버스를 탄다는 정류장 모두 장철은 없었다.

“혹시 내가 놓쳤나?”

김철수 발명가는 장철의 사진을 꺼내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거친 수염과 형형한 눈빛.

당장이라도 오함마로 몬스터 뚝배기를 깨버릴 것 같은 살기 어린 모습!

100미터 앞에서 스치듯이 본다 해도 이런 강렬한 인상을 지닌 장철을 놓칠 리가 없었다.

“오늘 저녁에 한 번 더 찾아보자.”

탁-

김철수 발명가는 가죽 수첩을 접고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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