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25화>
“반갑습니다. 장철 님이시군요. 전…….”
무심결에 악수하고 이름을 말하려는 순간 전율이 머리를 스쳤다.
장철.
장철?
장철!
특급 헌터 삼촌!
장민 대표 오빠!
서울 사태 때 랩터와 싸워 구해 준 그 장철!?
‘장철 헌터가 왜 여기서 나와!?’
순간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장철이라고요!?”
“네. 장철 맞습니다. 혹시 절 아시나요?”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돌아온 순간.
천문석은 웃음부터 터트렸다.
하하하하하-
“아뇨, 이름이 굉장히 멋지셔서 놀랐습니다!”
그리고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아니, 이게 뭐야!?
장철이라고!? 장철 헌터!? 특급 헌터 삼촌 그 장철!
천문석이 뚫어지게 장철의 얼굴을 살피자 피식 웃는 남자.
“이름이……?”
‘나비 효과!’
천문석은 재빨리 가장 먼저 생각나는 가명을 댔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세기라고 합니다!”
“이세기? 이름이 참 세련되고 멋지시네요! 하하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하하-.”
천문석은 웃음을 터트리다가 다시 머리를 굴렸다.
운전대를 잡은 영화배우 같은 외모의 회사원 장철!
오함마를 들고 파리 잡듯 랩터를 때려잡던 헌터 장철!
아무리 봐도 다른 사람이다!
그러나 장철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얼굴은 전혀 다른데,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비슷하다!
로코 속 재벌 2세 같은 1999년의 장철.
느와르 영화 속 악당 보스 같은 2000년의 장철.
주인공과 악당 보스로 얼굴과 체형 모두 다르고, 사교적인 성격과 까칠한 성격으로 성격까지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왜 비슷하게 느낀거지!?’
천문석은 재빨리 기감을 뻗으며 은밀히 장철을 살폈다.
20년의 세월을 생각하면 나이는 얼추 맞다!
하지만 각성을 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신체가 재구성되며 전성기 이상의 모습을 되찾는다!
1999년 영화 주인공 장철 -> 2000년 악당 보스 장철.
사람이 이렇게까지 역변할 수 있나?
그냥 이름만 같은 완전히 다른 사람인가?
그렇다면 느낌이 이렇게 비슷할 리 없는데?
……
순식간에 쏟아진 수많은 의문으로 머리가 복잡할 때 백미러에 걸린 작은 사진이 보였다.
가족사진!
운전대를 잡은 장철.
부인으로 보이는 여자와 어린아이.
교복을 입은 채 환하게 웃고 있는 여학생.
교복 입은 여학생!
20년의 시차가 있는데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얼굴!
장민 대표!
천문석은 사진 속 여학생을 보는 순간 바로 알아봤다.
장민 대표와 똑같은 얼굴의 어린 장민이 교복을 입고 사진 속에 있었다!
사진 속 어린 장민 대표를 보는 순간.
천문석은 운전대를 잡은 장철에게서 느껴지던 낯익은 느낌의 이유를 깨달았다!
1999년 장철과 2020년 장철은 비슷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1999년의 장철과 2020년의 장민 대표는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누가 봐도 남매란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이 순간 천문석은 확신했다.
지금 운전석에 앉은 영화배우 같은 장철은, 자신이 아는 그 장철 헌터가 맞았다!
“……!?”
순간 머릿속에서 폭풍이 몰아쳤다!
‘아니, 이 얼굴이 어떻게 그렇게 변해!?’
1999년 엘리트 회사원, 영화배우 같은 외모의 장철은.
2020년 오함마로 랩터 무리를 박살 내는 일당백의 장비 같은 외모가 된다!
‘……도대체 2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천문석이 마음속으로 비명을 지르는 순간.
장철이 중저음의 근사한 목소리로 말했다.
“라디오 좀 켜겠습니다.”
[…… 미확인 비행물체 UFO를 추락을 목격했다는 증언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세기말의 혼란스러운 분위기에 추락한 UFO 찾겠다는 사람들이 북한산으로 몰려들면서 평일인데도 북한산은…….]
라디오에선 생각지도 못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추락한 UFO는 당연히 서리혼에 휩싸여 추락한 서리 늑대들이다.
북한산에 추락한 서리 늑대, 재앙급 마수를 찾아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천문석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순간.
장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것 때문에 우리 회사도 난리가 났어요. 사장님이 UFO 찾겠다고 사원들 전부 끌고 북한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저도 협력업체 들렸다가 올라가야 합니다.”
하, 하하-
허탈하게 웃으며 입고 있는 옷을 가리키는 장철.
“이 등산복 보이시죠? 사장님 정말 훌륭하신 분인데. 저런 걸 너무 좋아하세요. 지난 7월에도 공포의 대왕이 내려온다고 휴무일을 지정하셨다니까요? 그때 아무 일 없이 지나가니까. 이번에는 12월 31일에 공포의 대왕이 내려온다고 다시 휴무일을 지정한다고 하시네요.”
하아-
장철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요새는 사방이 난리예요. Y2K, 노스트라다무스, 휴거, 사이비 종교, 폭주족…… 빨리 2000년이 와야. 이 난리 가라앉을 텐데. 그렇죠?”
“네. 그러네요…….”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대답하는 순간 깨달았다.
2일 후 2000년 1월 1일 광화문 게이트가 열리면 몬스터가 쏟아진다.
당연히 지금 옆에 앉은 장철도 거기에 휩쓸릴 거다.
파리 때려잡듯 랩터를 때려잡던 1세대 헌터 장철이라면 그 어떤 난장판이라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옆에 앉은 장철은 1세대 헌터가 아닌 평범한 회사원이다.
‘이거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
자신도 모르게 생각한 순간.
김철수 발명가의 얼굴이 떠오르고 어째서 몇 번이나 개입하지 말라고 당부했는지 알 수 있었다.
작은 행동으로도 미래가 크게 뒤틀릴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시대에 영향을 끼칠 행동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
머리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장철과 장민, 무력한 두 사람이 아무것도 모른 채 1차 게이트 사태를 맞이할 거란 걸 알게 된 순간.
가슴속에 커다란 바위가 들어선 듯 갑갑해지고, 머릿속에서는 폭풍이 몰아쳤다.
“…….”
모든걸 말해 주면 마음은 편해질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이 나비 효과를 일으켜 더 안 좋은 결말을 불러온다면?
“…….”
천문석은 차가 달리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느새 창밖으로 보이는 북한산이 가까워지고 장철이 입을 열었다.
“곧 도착하겠네요. 국민대 어디서 내려 드리면 될까요? 도서관이 협력업체랑 가까워서 전 도서관 앞에 차를 댈까 하는데……?”
“네 저도 도서관에서 내려 주시면 됩니다.”
자동차는 곧 국민대 도서관에 도착했고, 천문석과 장철은 차에서 내렸다.
“이 복권 감사합니다. 전 그럼 협력업체 들렸다가, 바로 산에 올라가 봐야겠네요. 귀인님.”
“……아닙니다. 덕분에 편하게 와서 제가 더 감사하죠.”
등산 배낭을 멘 장철은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들고 바로 몸을 돌렸다.
천문석은 성큼성큼 빠르게 멀어지는 장철을바라봤다.
그리고 한 건물로 들어가려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장철님!”
“네?”
장철이 의아한 얼굴로 몸을 돌릴 때, 천문석은 한달음에 달려가며 배낭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서늘한 예기를 뿜는 헌터용 단검이 느껴졌다.
천문석은 헌터용 단검과 안전 장갑을 꺼내 장철에게 내밀었다.
“이거 받으세요.”
장철은 불쑥 다가오는 커다란 단검에 깜짝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네? 갑자기 이 대검은 왜?”
천문석은 어리둥절한 장철의 손에 단검과 안전 장갑을 쥐여 줬다.
“이 단검하고 안전 장갑 정말 쓸모가 많을 겁니다. 꼭 가지고 다니세요.”
“네? 뜬금없이 무슨……!?”
“오늘의 운세에 귀인을 만난다고 했다면서요? 그 귀인이 드리는 선물입니다! 그럼 전 이만! 여러 가지로. 정말 여러 가지로 감사했습니다!”
천문석은 재빨리 말을 쏟아 내고 몸을 돌려 달렸다.
“잠시만요! 저기요!”
장철이 몇 번이나 불렀으나 천문석은 돌아보지 않았다.
모든 것을 말해 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갈 수도 없었다.
곧 난장판에 휩쓸릴 장철과 장민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사람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아직 각성하기 전이어도 장철은 장철이다.
아무 도움 없이도 1차 게이트 사태를 무사히 벗어났던 장철이다.
장철이라면 헌터용 단검과 안전 장갑이 있다면 더 쉽게 난장판을 헤쳐 나올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거리가 건물 뒤로 들어가기 전 슬쩍 뒤를 돌아봤다.
장철이 단검을 배낭에 넣고 안전 장갑을 등산복 주머니에 넣고는 한 건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하아- 잘한 것인지 모르겠네.”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쉴 때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 *
냐아, 냐아아-
아직 어린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
“……!”
천문석은 홀린 듯 울음소리를 따라 움직였다.
도서관 뒤쪽 앙상한 나무 아래 고양이 집이 있었다.
고양이 집 옆, 나뭇잎이 수북이 쌓인 곳에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햇빛이 비치는 낙엽 위에 발랑 드러누워 데굴데굴 구르는 새끼 고양이.
낙엽이 붙은 새하얀 털 위로 노랗고 검은 털이 멋진 무늬를 그려내고 있었다.
“…….”
너무나 눈에 익은 무늬를 보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국민대학교에서 만난 삼색 새끼 고양이.
아직 어렸지만 세 가지 털빛이 그려내는 무늬가 너무나 눈에 익었다.
보는 순간 눈앞의 새끼 고양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초능력 계통 각성자 랭킹 1위.
움직이는 안정화 권역.
국민대의 수호신.
“뽀미.”
천문석은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는 12월의 하늘에선 봄날같이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다.
무심한 하늘은 결코 천의(天意)를 드러내지 않는다.
“…….”
하지만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장철 헌터’와 ‘국민대의 뽀미’를 잇달아 만나는 게 과연 우연인 걸까?
문득 이곳까지 오며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이 떠오르며 의심이 들었다.
자신이 이미 이 시대 1999년을 바꾸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건 하늘의 인과가 이미 예정한 운명이 아닐까?
‘하늘님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하늘을 향해 마음에서 마음으로 물음을 던졌으나, 무심한 하늘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바지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냐아, 냐아앙-
발톱을 세운 작은 발로 바지를 타고 오르는 새끼 고양이, 뽀미.
눈이 마주치는 순간 뽀미가 뭘 원하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순간 김철수 발명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나비 효과를 조심해!’
그러나 언제나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쉬운 법이다.
천문석은 배낭에서 꺼낸 담요를 고양이 집 안에 넣어 주고, 물통과 칼로리 바를 꺼내 고양이 집 앞 비어 있는 그릇에 담았다.
할짝할짝-
목이 말랐는지 빠르게 물을 핥는 새끼 고양이.
“잘 먹고 무럭무럭 커라. 그리고 20년 후에 보자. 뽀미야.”
냐아앙-
대답하듯 우는 새끼 고양이.
피식 웃으며 떠나려 할 때, 문득 고양이 집에 걸려 있는 명패가 보였다.
[감귤]
“……뽀미야?”
냐아아-
“감귤아?”
-……
첫 번 째보다는 두 번째가 쉽고, 두 번 째보다는 세 번째가 쉬운 법이다.
천문석은 손을 뻗어 고양이 집에 걸린 명패를 떼어 냈다.
그리고 절정의 일기일원공으로 앞으로 20년, 수많은 사람의 찬탄과 감사, 사랑을 받을 이름을 명패에 새겨 넣었다.
[뽀미]
“그럼 진짜 안녕이다.”
천문석은 명패를 고양이 집에 걸고 바로 북한산을 올랐다.
이제 시작이었다.
형제봉을 거쳐 백운대 방향으로 훑고 올라가며, 혹시 낙오했을지 모를 서리 늑대를 찾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서리 늑대는 백운대 위쪽 북한산 깊은 곳에 떨어졌을 거다.
다행히 북한산은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다.
내력을 끌어올려 등산로를 달리면 서리 늑대가 떨어진 위치에 도착해 찾을 때까지 하루면 될 거다.
문제는 피로도.
처음 공방 도시 지열탑이 폭발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쉴 새 없이 싸우고 달렸다.
고스트, 재의 거인, 재의 기사.
서서히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쉴 시간은 없었다.
광화문 게이트가 열려 서울이 난장판이 될 1월 1일까지, 2일.
EMP 마력 폭풍이 몰아쳐 차원 좌표가 날아갈 1월 3일까지, 4일 남았다.
쉬는 건 모든 일을 끝내고 나서라도 늦지 않았다.
지금은 어떻게든 빨리 서리 늑대를 찾아서 동료들이 기다리는 광화문 빌딩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때 나무 사이로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보였다.
첫 번째 목적지 형제봉!
천문석은 내력을 끌어올려 날 듯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