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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424화 (425/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24화>

휙-

천문석은 잽싸게 몸을 돌려 어깨로 돌진하는 사람을 피하고 인도 가장자리로 걸었다.

이 순간 버스에서 우르르 쏟아지는 인파에 밀려 한 사람과 부딪혔다.

“가방이!”

깜짝 놀란 외침이 들려오는 순간 가방에서 쏟아지는 서류 무더기!

“죄송합니다!”

천문석은 재빨리 사과하고 쏟아진 서류를 모아 내밀었다.

이때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닙니다. 제가 서류를 보다가 앞을 못 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정장에 코트를 입은 회사원,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고개 숙이며 서류를 받았다.

“서류 주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자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서류를 받아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 순간 마치 무슨 인력이라도 작용하는 것처럼 걸어가는 남자를 향해 사방에서 시선이 모여들었다.

전생의 이세기가 거리를 걸을 때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와! 여기도 이세기 같은 사람이 있었네.”

천문석은 감탄하며 떠나려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남자를 다시 봤다.

바쁘게 걸어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남자.

배우 같은 얼굴에 훤칠한 키와 넓은 어깨, 짧게 잘라 뒤로 넘긴 머리카락과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까지.

남성미와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조각 같은 외모의 남자였다.

남자는 로맨틱 코미디 속 재벌 2세를 하면 딱 어울릴 것 같은 외모였다.

“…….”

그런데 처음 본 사람 같은데 이상하게 느낌이 익숙했다.

“……아는 사람인가? 왜 이렇게 느낌이 낯익지?”

천문석은 버스 정류장으로 걸으며 기억 속 사람들을 떠올렸다.

초중고, 대학교, 알바, 헌터일을 하며 만난 수많은 사람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방금 본 남자와 비슷한 얼굴의 남자는 없었다.

“뭐지? 내가 잘못 느낄 리가 없는데?”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버스 정류장이 보이고 버스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천문석은 한달음에 달려가 정류장으로 달려가 노선도를 찾았다.

그러나 오래된 노선도는 도저히 알아볼 수가 없었다!

“저기 이 버스 국민대학교 가는 버스인가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묻는 순간 툭 돌아오는 대답.

“국민대? 국민대면 반대쪽에서 타야 할걸? 어, 저기 반대쪽 버스 오네! 학생 빨리 달려가!”

“감사합니다!”

천문석은 재빨리 육교를 뛰어올라가 반대쪽 정류장으로 넘어갔다.

다행히 아직 버스는 사람을 태우는 중.

천문석은 재빨리 줄 끝으로 달려가 앞에 선 군인에게 물었다.

“이 버스 국민대학교 가는 버스 맞나요?”

“국민대요? 국민대면 여기가 아니라. 저기 저 골목 지나 정류장에서 타셔야 합니다. 이 버스는 서울역 방향으로 가는 버스입니다.”

병장 계급장의 군인이 골목길을 가리켰다.

“감사합니다!”

천문석은 바로 골목길을 지나 큰길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수십 명의 사람이 모여 있는 정류장이 보였다.

이 사람 중 반 이상이 등산 배낭을 메고 있었다!

감이 왔다.

북한산 등산객!

이 정류장이 맞구나!

천문석은 정류장으로 달려가 다시 확인했다.

“저, 여기가 국민대학교 가는 버스 타는 정류장인가요?”

등산 배낭을 앞으로 멘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맞아. 학생도 북한산 가나 보네? 저기 버스 오네! 어!? 두 대가 같이 오잖아! 학생 저 버스 꼭 타야 해! 얼른 줄 서!”

“감사합니다!”

재빨리 감사 인사를 하고 길게 늘어선 줄 끝에 서는 동시에.

부으으으응-

속도를 줄이며 정류장으로 가까워지는 버스 두 대.

‘이제 저 버스를 타고 국민대로 간 후에 북한산에 올라, 서리 늑대를 찾으면…….’

머릿속으로 계획을 점검할 때 갑자기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버스 두 대가 같이 온다!”

“아, 또 저러네!”

그리고 버스가 오기도 전에 줄을 선 사람들이 우르르 달리기 시작했다.

달려간 사람들은 마치 피난길 트럭 멈춰 세우듯 버스를 따라 달리며 문을 미친 듯이 두들겼다.

탕탕탕-

“문 열어!”

“기사 양반! 빨리 문 열어!”

끼이이익-

같은 버스 두 대가 나란히 멈추고 문이 열리자, 어이없어하는 버스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정류장이 바로 앞인데 왜 달려와요!?”

“야! 두 대가 같이 왔잖아!”

“너희 배차 간격 이따위로 할래!”

“사귀냐!? 왜 같이 다녀 미친놈들아!”

분통을 터트린 사람들이 버스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순간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고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정류장이 여긴데 왜 거기서 문을 열어!”

“그냥 밀고 와야지! 하, 저 버스 기사 답답하네!”

“줄은 도대체 왜 선거야!?”

천문석도 재빨리 이들에게 섞여서 달렸다.

앞쪽 버스가 가까워지자 운전기사의 고함이 들렸다.

“내리면 타요!”

“내리면 타세요!”

“내리면 타라니까!”

앞쪽 버스는 이미 혼돈의 도가니!

천문석은 바로 뒤쪽 버스로 달려갔다.

그러나 뒤쪽 버스도 마찬가지였다.

“아 쫌! 뒷문으로 밀고 들어오면 못 내리잖아요!”

“밀고 들어가! 안에 공간 있어!”

버스에 탈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난장판이었다.

이야얍-!

이때 기합을 지르며 입구로 파고드는 등산 배낭을 앞으로 멘 아저씨.

이 버스가 국민대행 버스라고 알려 준 그 아저씨다!

분명 천문석보다 늦게 달려왔는데, 이 아저씨는 치열하게 사람들 사이를 뚫고 버스에 올라가고 있었다!

“……!”

번쩍 정신을 차린 천문석은 뒤따라 밀고 들어가며 외쳤다.

“저도 탑니다! 저도 이 버스 타요!”

그러나 헌터용 배낭과 강철봉이 걸린 사람들이 외쳤다.

“어허! 어디서 밀고 그래!”

“학생! 막지 말고 옆으로 비켜봐!”

“배낭이랑 그 봉 거치적거리잖아! 좀 치워!”

앞에서 막고, 뒤에서 밀고, 옆에서 밀쳐 낸다.

“어, 어어!”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철벽 같은 스크럼에 자신도 모르게 한걸음 밀려난 순간.

파바밧-

번개같이 그 틈으로 파고드는 사람들!

어느새 버스 입구까지 승객이 가득 찼고, 버스 기사가 소리쳤다.

“더 못 타요! 다음 차 타세요! 물러서세요!”

“문 안 닫혀요! 안으로 한 걸음씩 들어가세요!”

푸스, 푸스, 푸스슥-

유압 소리와 함께 닫힐락 말락 움직이는 버스 문.

“안 닫힌다니까! 좀 안으로 들어가요! 출발 못 합니다!”

“밀어! 밀어붙여!”

으싸, 으싸아-

기합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밀려들어가는 순간.

푸스슥, 쿵-

버스 문이 닫히고 문이 닫힐 공간을 주기 위해 계단에 올라 버티던 사람이 밀려 와 버스 문 유리에 달라붙었다.

“학생 나 먼저 갈게! 북한산에서 보자고! 그리고 배낭은 앞으로 메는 게 뚫는 데 좋아!”

등산 배낭 아저씨의 외침을 끝으로.

부아아아앙-

버스는 검은 매연을 내뿜으며 출발했다.

“아, 거참. 더 태울 수 있겠는데. 버스 기사 양반이 깐깐하네.”

“그러게 말야. 뭐 저렇게 깐깐해?”

“젠장. 저 버스 탔어야 했는데!”

버스 정류장에는 버스에 타지 못한 몇 명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 몇 명에 천문석이 끼어 있었다.

“…….”

천문석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정류장에 있던 사람 대부분이 버스를 타고 떠났다.

이제 정류장에 남은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즉, 다음 버스가 오면 편하게 타고 갈 수 있다!

천문석은 희망 회로를 돌렸다.

그러나 이곳은 1999년 대한민국이다.

인터넷과 GPS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버스 위치를 확인하고.

배차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2020년 대한민국이 아니었다.

수많은 이유로 배차 간격이 밀렸고 한번 배차 간격이 밀리면, 한 시간이 넘게 버스를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같은 버스 두 대가 같이 왔다는 건, 이미 배차 간격이 밀렸다는 이야기였다.

버스 두 대가 같이 오는 순간.

줄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미친 듯이 달려가 버스를 멈춘 건 이유가 있었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저, 왜 이렇게 버스가 안 오죠? 벌써 30분이나 지났는데……?”

천문석이 묻는 순간.

바닥에 등산 배낭을 내려놓고 그 위에 앉아 신문을 보던 아저씨가 힐끗 시계를 보더니 대답했다.

“방금 두 대 같이 왔잖아? 이렇게 배차 간격 꼬이면, 30분은 더 기다려야 할 거야.”

“…….”

순간 광화문 빌딩 옥상에서의 기억이 다시 한 번 재생됐다.

김철수 발명가가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했던 말.

‘너도 곧 알게 되겠지만, 이곳은 1999년 세기말 대한민국이거든…….’

“…….”

갑자기 자신감이 뚝뚝 떨어졌다.

서리 늑대를 찾으러 북한산에 가는 길.

그 첫 단계인 버스를 타는 것도 너무나 힘들었다!

‘이 세기말 대한민국에서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자신도 모르게 묻는 순간.

빠아-

짧은 경적이 울렸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 앞에 멈춰 선 자동차.

스으으윽-

조수석 창문이 내려 오고 운전석에 앉은 등산복 차림의 남자가 외쳤다.

“저 기억나시죠? 아까 인도에서 부딪혔던 사람입니다.”

정류장에 오기 전 인도에서 부딪혔던 남자.

어쩐지 느낌이 낯익어 의아했던 그 남자가 등산복을 입고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아까 그 서류 가방 드신 분!?”

“네. 맞습니다. 하하- 어디 가세요? 방향 같으면 태워드리겠습니다!”

천문석은 벌떡 일어나 외쳤다.

“국민대학교…… 아니 북쪽이면 어디든 괜찮습니다!”

“마침 저도 국민대로 가던 길인데 잘됐네요. 타세요. 정류장이라 얼른 출발해야겠네요.”

천문석은 바로 차에 탔고 자동차는 바로 출발했다.

“감사합니다. 버스 놓치고 30분이 넘게 기다렸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천문석이 감사 인사를 하자, 운전대를 잡은 남자는 정면을 주시 한 채로 대답했다.

“뭘요. 어차피 회사일 때문에 가는 길인데요. 그런데 신기하네요?”

“네?”

“오늘의 운세에서 제가 동북쪽으로 가는 귀인을 만날 운세라고 했거든요.”

“오늘의 운세요?”

천문석이 반문하는 순간 대시 보드 위 신문을 가리키는 남자.

“네. 저기 오늘 자 신문에 실린 오늘의 운세요. 거기에 아침에 동북쪽으로 가는 귀인, ‘천운’을 가져다줄 귀인과 만나게 될 거라고 적혀 있었거든요?”

‘뭐지 이 사람?’

어이없음에 말문이 턱 막히는 순간 이어지는 이야기.

“그래서 회사에서 신문을 보자마자, 겸사겸사 바로 차를 끌고 협력업체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진짜로 귀인을 만났네요.”

하하하-

남자가 시원한 웃음을 터트릴 때 마침 신호에 걸려 차가 멈춰 섰다.

“잠시 이것 좀 봐주세요.”

남자는 지갑에서 종이 두 장을 꺼내 내밀었다.

“……주택 복권이요? 이건 갑자기 왜 제게……?”

“오늘의 운세 보고 오는 길에 산 이번 주 주택 복권입니다. 귀인님께서 한 장 가져가시고 다른 한 장에 좋은 기운, ‘천운’ 좀 넣어 주세요. 아, 전 2등이면 됩니다. 동생이 펜싱 학원에 다니고 싶어 해서. 하하하-.”

남자는 장난스러운 얼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주택 복권을 쓱 내밀었다.

“…….”

갑자기 귀인이라 불리고 주택 복권에 천운을 담아달라는 어이없는 상황.

그러나 호의에는 호의로 답해야 하는 법!

받아 든 주택 복권을 양손 사이에 넣고 일기일원공을 끌어올렸다.

파르르르-

손안에 잡힌 주택 복권이 떨리는 순간 하늘을 향해 마음에서 마음으로 기원했다.

‘하늘님. 이 주택 복권에 천운 좀 넣어 주세요!’

무심한 하늘은 당연히 아무 대답도 없었다.

그러나 이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

천문석은 주택 복권을 내밀며 말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남자는 씨익 웃으며 주택 복권을 한 장, 쏙 뽑더니 남은 주택 복권을 가리켰다.

“감사합니다. 전 2등이면 되니 꼭 1등 되세요.”

“아, 예 감사합니다…….”

천문석은 어쩐지 복잡한 기분으로 주택 복권을 봤다.

동생을 펜싱 학원에 보내고 싶다는 평범한 20대 가장의 바람이 담긴 주택 복권.

그러나 2일 후 2000년 1월 1일 광화문 게이트가 열리면 모든 게 끝장이다.

“…….”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수많은 감정이 뒤섞여 떠올를 때 신호가 바뀌고 차가 다시 출발했다.

부으으응-

이때 남자는 깜빡했다는 듯 탄성을 내고.

“아, 그러고 보니 통성명도 안 했네요? 반갑습니다.”

불쑥 손을 내밀며 이름을 말했다.

“장철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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