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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423화 (424/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23화>

출근 시간이 다가와 광화문 거리에 인파가 빠르게 늘어 갈 때 자원 배분이 끝났다.

“이 정도면 될 것 같다. 모자란 생필품 식량은 여기서 조달하자.”

김철수 발명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천문석.

“네. 그게 좋을 것 같네요.”

천문석은 강화 전투복과 헌터용 장비를 벗고 배낭에 있던 일상복 청바지, 가죽 재킷을 걸치고 모자를 눌러 썼다.

그리고 정리가 끝난 헌터용 배낭을 멘 순간 북한산으로 출발할 준비가 끝났다.

문제는 레이 실트의 강철봉.

1미터 50cm가 넘는 강철봉을 들고 다니는 건 무리였다.

“잘 썼습니다. 레이님.”

레이 실트는 강철봉을 받지 않고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가져가. 혹시라도 돌아오는 게 늦어져서 몬스터 쏟아지면 필요할 거야.”

“길이가 너무 길어서 사람들 이목을 모을 거 같아서요.”

천문석이 고개를 젓자, 김철수가 끼어들었다.

“그냥 들고 다녀도 사람들 아무도 신경 안 쓸 거다. 아니면 천 같은 거 씌워서 들고 가던지.”

“……신경을 안 쓴다고요?”

1.5m 길이의 강철봉을 들고 다니는데 신경을 안 쓴다고?

천문석이 의아해 하자, 김철수가 어쩐지 난감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도 곧 알게 되겠지만, 이곳은 1999년 세기말 대한민국이거든…….”

“잠깐만 기다려. 내가 천으로 씌워 줄게. 어깨에 멜 수 있게 끈도 달아주고.”

레이 실트는 천을 꺼내 강철봉 위에 씌우고 어깨끈을 달며 다시 한번 당부했다.

“야, 이번에는 진짜 좀 살살 다뤄! 지열봉 뚫을 때처럼 드릴로 쓰지 말고! 이거 롱소드야!”

“제 몸처럼 아끼겠습니다!”

“그래! 그 자세 좋다! 그렇게 아끼란 말야!”

레이 실트가 흐뭇하게 웃었다.

하지만 천문석은 지금까지 몸을 도구보다 더 거칠게 사용했다.

그러나 계획대로 된다면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 돌아올 테고 강철봉을 사용할 일은 없었다.

“그럼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이곳 지리는 내가 좀 안다.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도 사고 할 일도 있으니까. 나랑 같이 내려가자.”

출발 전 김철수는 추이린과 레이 실트에게 다시 한번 강조했다.

“마법이 이 시대에 알려지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조심해야 한다. 12시 전까지는 돌아오겠다.”

그리고 동료 모두에게 검은 천과 인이어 이어폰을 건넸다.

“이 천 머플러처럼 목에 둘러라. 가벼운 인식 장애 마법 회로가 새겨져 있다. 얼굴을 보고 대화해도 돌아서면 금세 잊어버릴 거다. 그리고 이 인이어는 통신기다.”

“여기 기지국이 없는데. 이 인이어 이어폰으로 통신이 될까요?”

“이 인이어 이어폰, 일종의 마력장 통신기다. 지금은 사용이 안 되는데 게이트 열리고 이 빌딩 옥상, 마법 회로 조정 끝나면 사용 가능할 거다. 모두 지금 착용해라.”

일행 모두는 인식 장애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인이어 이어폰을 귀에 착용했다.

그리고 천문석과 김철수는 바로 빌딩에서 내려와 1999년 12월 광화문 거리로 들어갔다.

* * *

출근 시간의 광화문 거리를 복잡했다.

신문을 파는 매대, 토스트와 김밥을 파는 노점상이 인도에 죽 늘어서 있고.

거리 곳곳에는 담배 피는 사람들과 노점상에서 아침을 먹는 회사원, 등교하는 학생들이 뒤엉켜 있었다.

끼이이익-

이때 버스가 급정거하고 쏟아지듯 사람들이 내렸다.

인파에 밀려 골목으로 밀려난 순간 길거리 토스트 냄새가 확 올라왔다.

“어, 저 토스트 가게!? 잠깐만.”

김철수는 재빨리 노점상으로 다가갔다.

“여기 토스트 2개 주세요.”

곧 돌아온 김철수가 종이컵에 담긴 뜨거운 길거리 토스트를 내밀며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이 길거리 토스트 정말 그리웠거든. 이 골목 가로질러가자. 대로에는 사람이 너무 많네.”

천문석과 김철수는 종이컵에 담긴 토스트를 먹으며 길을 걸었다.

그리고 곧 대형 슈퍼마켓에 도착했다.

“현금만 써야 하는 게 문제네. 너 현금 얼마나 가지고 있냐?”

“30만원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철수는 천문석이 꺼낸 돈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이 지폐는 전부 신권이라 사용할 수 없다. 동전만 쓸 수 있겠는데…….”

그리고 지갑에서 구권을 꺼내보여 주는 김철수.

“차이가 크지? 나도 가지고 있는 구권은 몇 장 안 된다. 우선 저 슈퍼부터 들리자.”

슈퍼마켓과 철물점을 들린 후 헤어질 때, 김철수 발명가는 몇 장의 구권 지폐를 건네며 다시 한번 당부했다.

“혹시 정말 급해서 신권 써야 할 것 같으면 밤에 써라. 그리고 항상 조심해라. 잊으면 안 된다. 여기서 한 행동이 나비 효과를 일으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

과거에 한 작은 행동이 연쇄 반응을 일으켜 미래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것.

영화, 소설, 만화 수많은 매체에서 다뤘던 이야기고.

천문석도 전생과 현생에서 몇 번이나 실제로 겪었던 이야기다.

처음에는 싸웠던 탱탱볼 늑대와 친구가 되고, 재앙급 마수가 된 서리 늑대와 다시 만난 것처럼.

하늘의 인과는 사람의 인지로는 헤아릴 수 없는 법이다.

이곳에서 무심코 한 행동이 최악의 결과를 만들 수도 있었다.

특히 게이트가 열리기 직전인 지금 시대라면, 작은 행동에 게이트 전쟁의 향방까지 바뀔 수 있었다.

천문석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조용하고. 은밀하고. 잽싸게. 서리 늑대만 데려오겠습니다!”

* * *

김철수는 멀어지는 천문석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거리를 가로지른 천문석은 배낭과 천에 싸인 강철봉을 맨 채로 교보 문고로 들어가고 있었다.

천문석은 서점에서 지도를 확인한 후 바로 서리 늑대를 찾아 움직일 예정이다.

문득 불안감이 들었다.

같은 한국이고 모습도 이질적이지 않지만, 2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왔다.

1999년과 2020년의 대한민국은 20년의 세월 이상의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1999년 세기말 대한민국은 이전과 이후 단 한 번도 없었던 세기말의 혼란스러운 시대다.

게다가 며칠 후 2000년 1월 1일에는 게이트까지 열린다.

혹시라도 무심코 한 행동이 나비 효과를 일으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랐다.

“괜찮을까?”

자신도 모르게 말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천문석이 아니면 서리 늑대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이건 추이린과 레이 실트도 마찬가지였다.

동료들과 힘을 합치지 못하면 갑자기 발생한 이 사고에서 무사히 귀환할 수 없었다.

혼자서는 안 된다.

동료를 믿고 맡겨야 했다.

그리고 사실 동료들보다 자신이 더 문제다.

김철수 발명가는 천천히 걸으며 품 안에서 가죽 수첩을 꺼냈다.

공방 도시를 구하기 위해서 포기했던 일, 1999년으로 돌아오는 일이 여러 우연이 겹쳐져 이뤄졌다.

이제 원래 계획대로 가죽 수첩 마지막 장의 일을 할 때렸다.

동료들에게는 나비 효과를 일으킬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그런데 정작 그 말을 한 자신은 의도적으로 나비 효과를 일으킬 일을 해야 했다.

문제는 오늘이 12월 30일이라는 것!

원래 계획보다 너무 늦은 시간대에 떨어졌다.

게이트가 열릴 때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해야 할 일 상당수를 포기해야 했다.

김철수는 가죽 수첩 마지막 장을 펼치고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을 골랐다.

-서울역 TMO.

-청계천 재금 공업사.

-휘경동 고등학교.

-대학로 Y2K 피시방.

……

그리고 머릿속에서 12시 전까지 움직일 동선을 짰다.

청계천에 있는 재금 공업사를 인수하고, 대학로 Y2K 피시방에서 혈맹 온라인 게임의 군주를 만난다.

바로 휘경동 고등학교로 이동해서 역사 선생님을 만나고, 서울역 TMO에서 제대를 기다릴 말년 병장과 점심을 먹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것 아닌 일들이다.

하지만 이 일이 일으킬 파급효과는 엄청났다.

-초거대기업 재금 그룹의 시작이 될 ‘공업사’.

-수십 년 동안 한국 최고의 길드가 될 태성 길드를 만든 ‘취준생’.

-낙동강 전선을 끝까지 지켜 내고 마침내 서울 수복 작전을 성공시킬 ‘역사 선생님’.

-마수와 몬스터, 거대 괴수가 들끓는 서울에서 수많은 사람과 아이들. 그리고 그 사람을 구해 낼 ‘말년 병장’.

게이트가 열리고 20년, 대한민국과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회사와 사람들과 관련된 일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이 모이는 순간.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기적이 일어난다.

게이트 전쟁 승리!

그동안 자신이 오너의 대리인으로 수많은 차악을 선택한 것은 이것을 위해서였다.

인류의 게이트 전쟁 승리!

그리고 2000년 1월 1일 게이트가 열린 후 과거의 자신에게 이 가죽 수첩을 넘기면 모든 게 끝난다.

곧 오랜 의무가 끝나고 모든게 새롭게 시작된다.

김철수 발명가는 가죽 수첩을 닫고 첫 번째 목적지 청계고가도로 인근에 있는 재금 공업사를 향해 걸었다.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빌딩 옥상으로 돌아간 후, 저녁에 다시 한번 움직여야 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나비의 날갯짓으로 거대한 태풍을 만들어 내고, 4일 안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시간을 아껴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 * *

교보 문고에서 나온 천문석은 거리를 걸으며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렸다.

지금 있는 장소는 종로 광화문.

서리 늑대가 떨어진 장소는 북한산.

서점에서 확인한 지도와 하늘에서 떨어지던 서리혼의 궤적을 종합하면, 서리 늑대는 북한산 백운대 북쪽으로 떨어졌다.

‘그렇다면?’

서리 늑대를 찾기 위해 움직일 동선을 머릿속으로 그려낸다.

우선 버스를 타고 국민대학교로 간다.

국민대학교에서 형제봉, 시단봉, 백운대 방향으로 북한산을 훑고 올라가며 혹시 낙오했을 서리 늑대를 찾고, 백운대 북쪽을 집중적으로 확인한다.

재앙급 마수, 서리 늑대의 존재감이라면 넓은 북한산에서도 찾는 게 어렵지는 않을 거다.

문제는 십여 마리의 재앙급 마수를 데리고, 인구 천만의 대도시 서울 시내를 가로지르는 것!

그러나 이건 벌써 해결책을 준비했다.

이제 큰길로 나가 버스를 타고 국민대학교로 출발하기만 하면 된다.

이때 큰길로 이어지는 골목길이 보였다.

천문석은 바로 큰길로 나와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출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거리에는 사람이 가득했고. 사방에 깔린 스피커에서 음악과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귀가 터질 듯 소리를 키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홍보 전단지를 돌리는 도우미들.

[저희 스타 노래방이 신장개업 이벤트로 고객님들을 위해 풍성한 1+2 이벤트를 마련했습니다! 1시간 가격에! 2시간 추가! 그냥 가지 마시고…….]

드르르르륵-

2미터가 넘는 바퀴달린 십자가를 끌고 거리를 가로지르며 확성기로 외치는 아저씨.

[회개하라! 종말의 날이 다가올 것이다! 회개하라! 불지옥에 떨어지리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이 뒤를 졸졸 따라가며 소리치는 초등학생 아이들.

“Y2K가 온다!”

[회개하라!]

“공포의 대왕이 온다!

[회개하라!]

“우유 먹고!”

[회개하라!]

“흙 먹고!”

[회개하라! ]

“고추 먹고!”

[…… ]

[…… 이런 사탄의 종자들!]

확성기 아저씨가 버럭 소리를 지르는 순간.

초등학생들이 우르르 도망치며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공포의 대왕이 나타났다!”

이때 도로에서 들려오는 경적!

빠아앙, 빠라바라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는 순간.

쿠아아아아아앙-

터질 듯 굉음을 울리는 오토바이가 나타났다.

메뚜기 꽁무니처럼 쇼바를 한껏 올린 오토바이 십여 대가 곡예 하듯 차량 사이를 질주했다.

끼이이익, 끼이이익-

도로 위 수십 대의 차량이 급정거하고.

“야, 이 미친 새끼들아! 차 긁혔잖아!”

분노한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서 던진 재떨이가 오토바이 쇼바를 맞추고 도로 위를 구를 때.

깡, 데구루루르-

6차선 도로 위에 멈춰 선 차량 사이로 무단횡단하는 사람들.

이때 무단 횡단하는 사람들에게 막혀 멈춘 버스의 문이 열렸다.

푸스스슥-

중앙 차선에 멈춘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차량 사이 도로를 걸어 태연히 인도로 올라오고 있었다.

“…….”

천문석은 어느새 홀린 듯 멈춰 서서 이 모든 것들을 보고 있었다.

‘……뭐지? 주위가 난장판인데 사람들이 왜 이리 태연한 거지?!’

거리의 누구도 이 모든 광경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순간 김철수 발명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너도 곧 알게 되겠지만, 이곳은 1999년 세기말 대한민국이거든…….’

뒤에 생략된 이야기가 무엇인지.

인도 한가운데 잠시 멈춘 천문석은 알 것만 같았다.

툭, 툭, 투툭, 툭-

천문석이 잠시 멈춘 순간 쉴 새 없이 어깨빵을 치고 지나가는 남녀노소.

“앞에 좀 보고 다녀요!”

“앗! 뭐야?! 재수가 없으려니까?!”

“야! 젊은 놈이 길 한가운데 왜 가만히 서 있어! 다리가 부러졌어?! 걸어! 당장 걸으라고!”

폭풍같이 쏟아지는 고함과 노리듯이 어깨로 밀고 들어왔다가.

“으악! 이 새끼 몸이 왜 이리 단단해!”

튕겨 나가 비명을 지르는 사람까지.

“…….”

김철수 발명가의 말이 맞았다.

강철봉을 그냥 매고 다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이곳은 1999년 12월 30일의 대한민국.

바퀴 달린 십자가가 거리를 가로지르고, 초등학생들이 Y2K, 공포의 대왕을 노래하는 곳.

세기말 대한민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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