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22화>
추이린과 레이 실트가 분통을 터트릴 때.
천문석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하-
“야! 너 할 말 없으면 자꾸 웃는데……!”
추이린이 분노할 때.
천문석은 재빨리 배낭에서 금속 상자를 꺼내 내밀었다.
“배송 상자!!”
“이거 마력 파동 나오던 그거잖아?!”
두 사람이 깜짝 놀라는 순간.
경악한 김철수가 금속 상자를 받아 확인했다.
“마력 파동 발생장치?! 네가 챙겼구나! 아직 차원 좌표 남아 있어. 서리 늑대만 찾으면 된다! 바로 움직이자!”
김철수가 탄성을 지르는 순간.
천문석은 북쪽을 가리켰다.
“서리 늑대. 북한산 방향으로 떨어졌습니다.”
김철수의 얼굴이 환해졌다.
“됐어! 준비가 필요하지만, 서리 늑대만 데려오면 무사히 돌아갈 수 있다!”
김철수의 말을 들은 추이린과 레이 실트의 얼굴이 환해졌다.
“야! 금속 상자 가지고 있었으면 그것부터 꺼내야지! 미친놈아! 20년 버티기 계획. 진짠 줄 알고 시껍했잖아! 하하하-.”
“맞아! 나도 깜짝 놀랐어! 바로 돌아갈 준비 시작하자! 그놈한테 엮이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천문석은 희망에 얼굴이 환해진 동료들에게 다시 한번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20년 버티기 계획’을 먼저 말한 건. ‘최악의 상황’이 닥치더라도 우리한테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려 드리고 싶어섭니다. 모두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최악의 상황, 좌절? 무슨 뜬금없는 소리야? 김철수님 돌아갈 준비하는 데 얼마나 걸리죠?”
김철수 발명가는 반사적으로 회중시계를 꺼내 용두를 눌렀다.
찰칵-
그러나 회중시계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하- 시계가 맛이 갔네. 두 사람이 도와주면 3주 정도?”
“3주? 천문석 너 3주 안에 서리 늑대 충분히 데려올 수 있겠지?”
“좀 불안하긴 한데 3주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3주 동안 정말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한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나비 효과를 일으킬 수 있어.”
“걱정 마세요. 어차피 서리 늑대도 북한산에 있다니 바로 산에 들어가서 은폐 마력장 펼치면 됩니다.”
“재료 충분해! 고정형 은폐 마력장 한 달도 펼칠 수 있어!”
……
세 마력 각성자가 나누는 대화에 천문석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마력 각성자 셋은 어느새 밝게 웃으며 희망찬 ‘3주짜리 귀환 계획’을 짜고 있었다.
하지만 ‘3주짜리 귀환 계획’은 곧 폐기될 운명이다.
3주, 21일의 1/10도 되기 전, 내일모레 광화문에 게이트가 열린다.
“…….”
이때 하늘이 점점 밝아지더니 일행이 있는 빌딩 옥상과 광화문 도로에 여명이 비치기 시작했다.
때가 됐다.
모든 진실을 두 눈으로 볼 때가.
파앙-
천문석은 가볍게 박수를 쳐서 이목을 모으고 말했다.
“잠시만 저를 따라와 주세요. 귀환 계획을 세우기 전에 꼭 보셔야 할 게 있습니다.”
천문석은 셋을 데리고 광화문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난간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손을 들어 점차 밝아 오는 광화문을 가리켰다.
“광화문? 여기 과거인 거 이제 다 아는데?”
“추 수석님 광화문이 아니라 그 앞에 도로를 보세요.”
“도로?”
추이린과 김철수, 레이 실트는 의아한 얼굴로 광화문 앞 도로를 봤다.
환하게 밝혀진 광화문 앞 도로.
바리케이드로 막힌 도로 위에는 조형물과 단단히 포장된 화물이 놓여 있었다.
“무슨 행사 준비하는 거 같은데?”
“저 행사를 꼭 봐야 한다고?”
천문석은 의아해 하는 동료들에게 봐야 할 걸 말해 줬다.
“그 조형물 위에 현수막을 보세요.”
셋은 원경 마법을 펼쳐 현수막을 봤다.
[새천 년맞이 국민 대축제 - 광화문 2000]
“새천 년맞이 국민 대축제?”
추이린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김철수는 얼어붙었다.
‘새천 년, 광화문 2000!’
너무나 눈에 익은 이름!
기억 속에서 수도 없이 되새겼던 광경이 아침 햇살 아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설마 지금 여기!?”
순간 김철수는 천문석이 방금 한 말이 떠올랐다.
‘20년을 버티면 돌아갈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이 닥쳐도 방법이 있으니 절대 좌절하지 말자.’
“뭐야?! 지금 무슨 상황인데?”
레이 실트가 의아해 할 때.
천문석은 동료들에게 모든 사실을 밝혔다.
“지금 이곳 1999년 12월의 광화문입니다. 저기 새천 년, 밀레니엄 축제 준비가 끝난 걸 보니. 2000년 1월 1일이 며칠 안 남았을 겁니다.”
순간 김철수와 추이린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레이 실트가 반사적으로 외쳤다.
“광화문 게이트!”
2000년 1월 1일!
한국 사람, 아니 전 세계인 모두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이날은 세계 최초의 게이트 광화문 게이트가 열리고, 인류와 몬스터 간의 게이트 전쟁이 시작된 날이었다!
이때 멀리 빌딩 전광판에 불이 들어오고 아침 뉴스가 시작됐다.
“저기 아침 뉴스가 나오네요.”
모두의 시선이 모이는 순간.
아침 뉴스 화면에 띄워진 자막.
[1999년 12월 30일 아침 뉴스]
* * *
1999년 12월 30일.
2000년 1월 1일 게이트가 열릴 때까지 2일 남았다.
3주짜리 귀환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게이트가 열릴 때까지 이틀 남은 암울한 상황이다.
하지만 일행은 패닉에 빠지지 않았다.
어이없게도 천문석이 말한 20년 버티기 계획, 최후의 방법이 위안을 줬다.
“그러네. 최악의 경우라도 20년만 버티면 돌아갈 수는 있네.”
하, 하, 하-
추이린은 허탈하게 웃었다.
천문석은 어이없어하는 일행을 돌아보며 긍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진인사대천명!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안 되면 부산! 아니, 제주도로 튀면 되는 겁니다! 거기에 처박혀 있으면 나비 효과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제주도는 게이트 전쟁중 그리고 20년 후까지 안전지대다.
지금의 제주도는 게이트 전쟁이 터지고 전 세계 유력자가 모여들어 물가가 폭등하기 전!
지금이라면 네 사람이 제주도에 들어가 생활기반을 마련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최후의 방법이다.
어떻게든 바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일행 모두가 머리를 쥐어짜자 어떻게든 방법이 나왔다.
정체 모를 누군가가 빌딩 옥상에 그려 놓은 마법 회로!
이 시대에 이 마법 회로가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지만, 이걸 이용하면 준비 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김철수 발명가는 옥상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옥상의 마법 회로. 레이님이 말한 대로 이 마법 회로를 이용하면 준비 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대략 3일에서 4일 정도 걸릴 거다.”
2000년 1월 1일이나 1월 2일에 준비가 끝난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렇게 되면 광화문 게이트가 열리고 마수와 몬스터, 거대 괴수가 쏟아진 후에나 준비가 끝난다.
“그때면 광화문 게이트가 열린 후인데 괜찮을까요?”
“게이트가 열린 후라 가능한 거다.”
“네?”
김철수는 의아해 하는 천문석에게 설명했다.
“게이트 마력장이 없으면, 어차피 이 마법 회로 가동이 힘들어. 문제는 몬스터랑 거대 괴수인데…… 레이님? 엄청난 수의 몬스터, 거대 괴수가 바로 앞 저 광화문에서 쏟아질 겁니다. 이 빌딩과 마법 회로 버틸 수 있을까요?”
레이 실트는 옥상 난간을 가리켰다.
“여기에 은폐 마력장 설치한 흔적 있어. 그거 이용하면 오늘 안에 은폐 마력장은 준비할 수 있어. 다른 보호 마법까지 중첩해서 설치하면…… 마수, 몬스터, 거대 괴수, 사람까지 일주일은 버틸 수 있다.”
“부탁드립니다.”
김철수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하늘을 가리켰다.
“진짜 문제는 EMP 마력 폭풍이다.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은데…… 게이트가 열리고 3일 후. 아마도 1월 3일쯤 EMP 마력 폭풍이 서울에 일어날 거다.”
EMP 마력 폭풍.
전자기기를 망가트리고 화약 연소 반응을 변화시켜 국군의 게이트 점거 작전을 실패하게 만든 원인!
“EMP 마력 폭풍이 몰아치면 이 옥상의 ‘마법 회로’ 박살 난다. 그리고 이 위 하늘에 남겨진 우리가 넘어온 ‘차원 좌표’도 사라지고…….”
하아-
김철수는 짧은 한숨을 쉬고 천문석을 봤다.
“그렇게 되면 ‘최후의 계획’ 말고는 방법이 없다.”
이 자리의 모두는 듣지 않아도 ‘최후의 계획’이 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천문석의 ‘20년 버티기 계획’.
“…….”
“…….”
“가능한 한 빨리 서리 늑대 데려와서. 어떻게든 EMP 마력 폭풍이 몰아치기 전에 준비를 끝내고 돌아가야 한다. 다른 건 대체가 가능해도 서리 늑대의 ‘서리혼’이랑 ‘차원 좌표’는 대체할 수가 없다.”
김철수 발명가가 동료들을 돌아보며 말했고.
천문석이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말을 더했다.
“서리 늑대들 떨어지는 방향, 속도 기억했습니다! 2일 길어도 3일? 서리 늑대를 데리고 서울 도심을 지나는 게 문젠데. 그것도 방법 생각해 뒀습니다.”
이로써 파티원 모두가 할 일이 정해졌다.
천문석 - 서리 늑대 데려오기.
김철수, 추이린 – 마법 회로 조정.
레이 실트 - 은폐 마력장, 보호 마법 설치.
타임 라인은 5일.
-12월 30일 – 오늘.
-12월 31일 – 새천 년맞이 축제.
-01월 01일 - 광화문 게이트 출현.
-01월 02일 - 몬스터, 거대 괴수 등장.
-01월 03일 - EMP 마력 폭풍.
1월 3일 EMP 마력 폭풍이 몰아쳐 모든 게 끝장날 때까지 남은 시간은 4일!
일행이 맞이할 결말은 둘 중 하나였다.
-첫 번째 – EMP 마력 폭풍 전 귀환 계획.
4일 안에 마법 회로 조정을 끝내고 게이트에서 쏟아질 몬스터와 거대 괴수에게서 마법 회로를 지킨다.
그리고 EMP 마력 폭풍이 터지기 전에 서리 늑대의 서리혼, 금속 상자, 차원 좌표를 이용해 2020년으로 돌아간다.
-두 번째 - 20년 버티기 계획
20년 동안 안전지대 제주도에서 버틴 후, ‘+20’살이 되어 2020년으로 돌아간다.
두 번째 결말은 모든 게 실패했을 때 사용할 최후의 계획이다.
가능한 첫 번째 결말로 나아가야 했다.
“우선 가지고 있는 물품부터 체크하죠. 지금 입은 옷도 갈아입고요.”
천문석이 외치는 순간 김철수, 추이린, 레이 실트 셋은 바로 배낭과 주머니를 털어 가지고 있는 자원을 확인했다.
공방 도시를 구하러 모인 네 사람은 이번에는 2020년으로 돌아가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추이린이 문득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뭔 일이 이렇게 잇달아 터지냐.”
“그러게 말야. 처음에 지열탑에 들어갈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 상상도 못했는데…… 하아-.”
뒤이어 레이 실트 마저 한숨을 내쉬자, 천문석은 정곡을 찔린 듯 가슴이 뜨끔 했다.
생경해 하는 두 사람과 달리 천문석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사건·사고가 너무나 익숙했다.
그래서 선수를 쳤다.
“추 수석님. 레이님. 두 분 왜 이렇게 운이 없으세요? 하하하-.”
“그러게 말야…… 이상하게 요즘 운이 없어…….”
“나도 뭔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꾸 틀어지네…….”
하아-
하아아-
추이린과 레이 실트가 깊은 한숨을 내쉴 때.
김철수 발명가는 웃고 있는 천문석을 말없이 바라봤다.
“…….”
감이 왔다.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듯 잇달아 터진 사건들이 누구 때문인지.
[천운의 헌터.]
[솟아날 구멍을 만들기 위해 하늘을 스스로 무너트리는 자.]
……
가죽 수첩에 적힌 내용은 정확했다!
하지만 천문석 덕분에 자신이 1999년으로 올 수 있었다.
계획보다 너무 늦은 시간대라는 건 아쉽지만, 천문석 덕분에 꼭 해야 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천운이 따랐구나!’
가죽 수첩에 적힌 그대로 이 사고가 자신에게는 ‘천운’이었다.
김철수 발명가가 안도할 때 문득 한겨울 칼바람이 불어왔다.
휘이이이잉-
그리고 까마득히 높은 하늘에서 화염을 담은 마력 폭풍이 터져 나왔다.
파아-
그러나 이미 해가 뜬 낮이고, 너무나 높은 하늘에서 짧게 터진 마력 폭풍이었다.
그래서 마력 폭풍에서 잿가루 덩어리가 튀어나온 것을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아무도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잿가루 덩어리는 순식간에 한강을 지나 남쪽 관악산을 방향으로 날아갔다.
휘이이이잉-
이렇게 잿가루 덩어리 속 ‘재의 기사’는 아무도 모르게 서울 남부를 지나 경기도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