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421화 (422/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21화>

후, 하-

후, 하-

천문석은 질끈 눈을 감은 채 한참 동안 깊은 심호흡을 하고 눈을 번쩍 떴다!

“……!”

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광화문] 한글 현판 너머, 경복궁이 그 뒤로 청와대와 북악산이 있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불길한 직감!

“혹시? 지금! 여기!?”

천문석은 이 불길한 직감을 웃음을 터트려 지워 버렸다.

“하- 그럴 리가!? 하하- 영화도 아니고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하하하-.”

웃음을 터트린 천문석은 재빨리 옥상 난간에 올라 내력을 끌어올렸다.

성채 빌딩, 건 스미스, 장갑 버스, 헌터…….

무엇이라도!

그 무엇이라도 익숙한 것을 찾아야 한다!

천문석은 내력이 실린 눈으로 주위를 샅샅이 훑었다.

주위에 높게 솟아 있던 성채 빌딩은 흔적도 없고.

광화문 광장이 있던 곳에는 10차선 도로가 있다!

24시간 밤낮없이 수많은 헌터들이 가득했던 거리는 휑하고, 헌터 상점, 프랜차이즈 커피숍, 도로를 달리는 육중한 장갑 SUV도 보이지 않는다!

건물, 간판, 가로수, 가로등, 도로를 다니는 차와 텅 빈 인도의 보도블록 하나까지도 모조리 낯선 광화문!

어느새 천문석의 전신은 덜덜덜 떨리기 싲가했다!

이때 광화문 광장이 있던 도로 위에 놓인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 조형물 위 현수막에 무언가 적혀 있다!

내력을 끌어올리자 보이는 현수막 글자.

[새천 년맞이 국민 대축제 - 광화문 2000]

“…….”

처음 듣는 축제다.

하지만 축제 이름을 보는 순간 전신에 전율이 흘렀다.

‘새천 년! 2000!’

이 순간 애써 외면했던 진실이 머리를 때렸다.

“……!”

지금 이곳은 대한민국 서울 광화문이 맞았다.

하지만 자신이 아는 광화문과는 시간이 달랐다.

새천 년맞이 국민 대축제!

이곳은 게이트 전쟁이 끝난 2020년 광화문이 아니라, 게이트가 열리기 전 1999년의 광화문이었다!

게다가 새천 년 축제 준비를 해 놓은 걸 보니, 2000년 1월 1일이 멀지 않은 1999년 12월의 광화문이다.

자신은 지금 광화문 게이트가 열리기 직전 12월의 서울 광화문에 떨어진 것이다!

2000년 1월 1일.

광화문 게이트가 열리고 여기서 쏟아진 몬스터로 서울이 난장판이 된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다.

EMP 마력 폭풍이 서울에 몰아치며 게이트를 확보하려던 부대가 아작난다.

그 후 게이트, 균열, 던전이 전국에 나타나고, 이곳에서 마수, 몬스터, 거대 괴수가 쏟아져 국군은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난다.

한국뿐만이 아니다.

일본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비슷한 일이 터지고 인간과 몬스터 간의 전쟁.

게이트 전쟁이 시작된다.

즉, 게이트 전쟁이 터지기 직전의 광화문에 자신과 동료들 모두가 떨어진 것이다.

사람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으면 오히려 웃는다고 한다.

그 말처럼 천문석은 밤하늘에 가득한 별을 바라보며 웃었다.

하, 하, 하-

하늘님. 진짜로 이러시긴가요?

아니, 시련과 고난을 내려도 상식적으로 하셔야죠?

1999년 12월, 게이트 전쟁이 터지기 직전이라고요?

그것도 시간 이동까지 해서요!?

“이게 뭡니까! 이게!”

천문석이 자신도 모르게 분노를 터트리는 순간.

신음이 들려왔다.

으으윽-

허어억-

흐어억-

정신을 잃었던 동료들이 깨어나고 있다!

천문석은 재빨리 동료에게 달려가며 반사적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김철수 발명가!

추이린 수석 연구원!

레이 실트 마법 마도구 제작자!

한 명 한 명이 대단한 실력을 지닌 마력 각성자다.

운은 좀 없지만 믿을 수 있는 동료들과 함께 떨어졌다.

게다가 어지간한 상급 마수도 단숨에 끝장낼 서리 늑대도 왔고.

일행을 이 시대로 날려 보낸 금속 상자도 무사히 회수했다.

마력 각성자가 셋이나 있다.

이들은 분명 집, 원래 시대로 돌아갈 방법을 찾을 것이다!

천문석은 서서히 정신을 차리는 동료들에게 수통부터 내밀었다.

“천천히 이 물부터 마시세요.”

물을 마시고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오는 동료들.

“쿨럭- 여긴…….”

“별, 바람? 공방 도시……?”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야?”

곧 깨어난 장소가 재의 숲이 아니란 걸 깨닫고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천문석은 꿀꺽 침을 삼키고 말했다.

“……놀라지 마세요. 지금 여기 광화문입니다.”

* * *

“……?”

“뭐?”

“어!?”

짧은 침묵 후 경악한 김철수 발명가가 벌떡 일어났다.

“어!? 그게 무슨…… 설마!”

김철수가 난간으로 달려가는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이던 추이린이 외쳤다!

“여기가 광화문!? 우리 재의 숲에 있었잖아!? 지금 여기가 공방 도시가 아니라 광화문이라고!? 어떻게 된 거야!? 네가 우리 데리고 올라온 거야!? 아니 그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어!?”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천문석이 말하려는 순간.

레이 실트가 전신을 덜덜덜 떨며 외쳤다.

“이곳 마력장! 마력장이 느껴지지 않아! 마력장이 사라졌어!?”

“뭐? 광화문이면 게이트가 바로 앞인데 무슨 헛소리를……!”

어이없어하며 손을 휘젓던 추이린은 깜짝 놀랐다.

아무 저항 없이 움직이는 손!

레이의 말대로 마력장이 느껴지지 않는다!

“광화문 게이트 마력장이 사라졌어!?”

“아니, 잠깐 공기도 이상하잖아! 야, 어떻게 된 거야?”

“여기 진짜 광화문이 맞는 거야!?”

깜짝 놀란 추이린과 레이 실트의 시선이 모이는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여기 광화문 맞습니다. 정확히는 ‘과거’의 광화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과거!?”

“과거!?”

하얗게 질린 추이린이 옥상 난간으로 뛰어갈 때.

레이 실트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사방을 훑으며 말을 쏟아 냈다.

“그럴 리가…… 천공탑도 나타나지 않고 인과도 이어지지 않았는데!? 같은 차원의 과거로 왔다고? 시간 이동은 인과역전 항상성 때문에 좌표 고정이 안 되는데!? 시공간 좌표를 어떻게 딴 거야!? 무작위 이동? 말도 안 돼! 무작위 이동이라기엔 반동이 터무니없이 작아! 서리혼? 마력 준위 역전? 마력 파동? 아무리 마력 준위 차를 이용한 이동이라도…… 우연으로 이게 가능할 리가 없는데…… 분명 누군가의 개입이 있어야 말이 되는……!”

말을 쏟아 내던 레이 실트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설마, 설마! 그 녀석!”

경악한 레이 실트는 짧은 마법봉을 꺼내 미친 듯이 사방으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파스 파스스-

그러나 불꽃만 흩날릴 뿐, 마력광은 터지지 않았다.

레이 실트는 재빨리 정제 마석을 꺼내 쥐고 마법봉을 휘둘렀다.

팟-

마력광이 터지는 순간 옥상에 펼쳐진 거대한 마법 회로가 순간적으로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다차원 적층 마법 회로!”

경악한 레이 실트는 마법 회로가 나타났던 장소로 달려가 바짝 몸을 숙이고 옥상 바닥을 훑기 시작했다.

천문석은 동료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마력 각성자들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바로 움직이고 있었다.

김철수는 마석을 들고 옥상 가장자리를 달리며 주위를 확인하고, 레이 실트는 옥상 바닥을 훑으며 무언가를 찾고, 추이린은 난간 위에서 선 채로 굳어 있었다.

역시 마력 각성자!

동료 셋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주위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때 난간 위에 선 추이린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광화문 게이트가…… 광화문 게이트가 없잖아! 진짜 과거잖아! 으악-.”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 비틀거리는 추이린!

“위험해요!”

천문석은 한달음에 달려가 난간 위에 선 추이린을 잡아 옥상으로 내렸다.

“으으윽, 으으윽-.”

한참 동안 비틀거리던 추이린이 천문석의 강화 전투복을 움켜잡고 외쳤다.

“과거라고 과거!”

“광화문 게이트가 없어!?”

“저기에 경복궁이 있다고!”

“20년 전에 박살 난 경복궁이!”

“이게 말이 되는 거야!? 뭐가 이따위야!”

핏기가 사라진 얼굴로 미친 듯이 외치는 추이린.

“…….”

천문석은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추이린은 이곳이 과거 광화문이라는 사실로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더 안 좋은 소식이 있었다.

이곳은 그냥 ‘과거’의 광화문이 아닌 ‘1999년 12월’의 광화문이다.

곧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쏟아져 개판이 된 후 게이트 전쟁의 시작점이 될 광화문인 것이다.

“혹시 꿈 아냐!? 야, 따귀 좀 때려 봐! 어서!”

추이린이 정신 나간 요구를 할 때.

옥상 바닥을 기어 냉각탑 뒤로 들어갔던 레이 실트가 외쳤다.

“그놈이다! 그놈이 여기 있었어! 이걸 봐!”

레이 실트는 옷에 잿가루를 가득 묻힌 채로 달려와 반쯤 탄 나무 가면을 내밀었다.

“이 가면 봐! 우리 큰일 났어!”

“가면!? 야, 지금 타다만 가면이 중요한 게 아냐! 우리 과거로 떨어졌다니까! 과거라고 과거! 시간 이동을 했어! 시바!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야!?”

추이린이 분통을 터트리자, 레이 실트가 마주 고함을 질렀다.

“뭘 모르는 건 너야! 지금 우리 ‘설계’에 당했다고! 아니 당하는 중이야! 앞으로 무슨 일이 더 일어날지 몰라!”

“설계? 야, 좀 알아들을 수 있게 말을 해! 그리고 설계든 뭐든 우리 ‘과거’에 떨어졌다니까! 과거, 현재, 미래 할 때 그 과거 말야!”

“와, 너 왜 이리 답답하네! 설계라니까! 지금 상황을 제대로 모르는 건 너야!”

어느새 추이린과 레이 실트는 천문석을 가운데 두고 서로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

재금 연구소 수석 연구원, 마법 마도구 제작자가 아닌 말싸움 하는 꼬맹이 같은 모습에 말문이 턱 막혔다.

하지만 천문석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좌절해서 주저앉는 것보다는 낫다.

오기, 열 받음 또한 삶의 원동력이 되니까!

그러나 이제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해야 할 때다.

“저 잠깐만 제 말 좀…….”

이때 폭풍처럼 말을 쏟아 내는 추이린과 레이 실트 너머, 김철수 발명가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달려 오며 소리쳤다.

“모두 멈춰! 이럴 때가 아냐! 우리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해! 아직 저 하늘에 차원 좌표가 남아 있다. 금속 상자! 금속 상자 못 봤어!? 서리 늑대는 또 어디로 간 거야!? 지금 당장 찾으러 움직여야 한다!”

어느새 김철수 발명가까지 가세 해, 마력 각성자 셋은 자기 할 말만 외치기 시작했다.

“과거라니!? 이렇게 재수가 없다니! 으아악-.”

“설계에 또 당했다고!? 뭐가 이따위야!? 으드득-.”

“바로 찾으러 움직여야 한다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찾기 힘들어!”

……

가만히 두면 날이 샐 때까지 자기 할 말만 외칠 것 같은 모습을 보니, 왜 파티에 마력 각성자를 많이 넣지 않는지 알 수 있었다.

천문석은 슬쩍 하늘을 돌아봤다.

어슴푸레 하늘이 밝아오고 있다.

이제는 계획을 세우고 움직여야 할 때다!

천문석은 두 손에 내력을 담아 굉천수를 터트렸다.

콰아앙-

굉천수의 날벼락이 옆에서 터지자.

깜짝 놀라, 말을 멈추는 마력 각성자들!

김철수, 추이린, 레이 실트의 시선이 쏟아지는 순간.

천문석은 이들의 주의를 단숨에 사로잡을 말을 던졌다.

“제게 2020년으로 돌아갈 계획이 있습니다!”

* * *

“뭐……?”

“어……!”

추이린과 레이 실트가 순간적으로 얼어붙자, 김철수 발명가가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뭐!? 돌아갈 방법이 있다고? 아니, 어떡해?”

천문석은 가볍게 손을 들었다.

세 사람 모두 말을 멈추고 바짝 긴장해서 천문석을 봤다.

어느새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된 동료들.

천문석은 진지한 얼굴로 차분하게 말했다.

“지금은 1999년 광화문입니다.”

“……하필이면!”

추이린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잇는 천문석.

“우리가 출발한 시간은 2020년. 지금 이곳 1999년과는 20년의 시차가 있습니다.”

천문석은 잠시 말을 끊고 김철수, 추이린, 레이 실트 동료들을 한 명씩 봤다.

완전히 집중해 자신을 주시하는 동료들!

천문석은 완전히 집중한 동료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20년! 20년만 버티면 2020년이 됩니다! 즉, 2020년 됐을 때 그냥 집으로 걸어가면 됩니다!”

“…….”

“…….”

“…….”

세 사람은 처음엔 들은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곧 머릿속에서 문장이 조합됐다.

-지금은 1999년이다.

-20년이 지나면 2020년이 된다.

-2020년에 그냥 집으로 걸어가면 된다.

1999년 지금부터.

20년 동안 기다린 후.

2020년 재의 숲에서 미래의 자신들이 사라졌을 때 집으로 돌아간다.

깊은 침묵이 흐르고.

김철수, 레이 실트, 추이린 세 사람의 얼굴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이 떠오를 때.

천문석은 외쳤다.

“이 계획의 이름은 ‘20년 버티기 계획’입니다!”

“하아-.”

김철수가 이마를 짚고 깊은 한숨을 내쉬는 순간.

복잡한 표정이 교차하던 추이린과 레이 실트가 폭발했다.

“야, 이 미친놈아! 그게 뭔 헛소리야!? 20년 버티기!? 20년을 기다리는 게 계획이라고!?”

“20년 버티기!? 그건 그냥 가만히 있자는 소리잖아! 그게 무슨 계획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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