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20화>
팟-
섬광과 함께 주위 공간이 변했다.
아찔한 부유감이 느껴지는 순간.
전신을 때리는 엄청난 바람!
파아아아앙-
천문석은 내력으로 몸을 보호하고 재빨리 주위를 확인했다.
차가운 공기.
탁 트인 허공.
별이 가득한 밤하늘.
지상에 펼쳐진 불빛들!
하늘에서 도시로 떨어지고 있다!
자신뿐만이 아니다.
빠르게 멀어지는 서리 늑대 무리.
뭉친 채 아래에서 떨어지고 있는 김철수, 추이린, 레이 실트.
동료 모두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다!
공방 도시 지하 유적, 재의 숲에 있었는데.
갑자기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어이없는 상황.
그러나 천문석은 냉정함을 유지했다.
이미 한번 이런 일을 겪었다.
신동대문 지하 터널.
초거대 사슴벌레가 무한한 공간에 펼쳐진 빚의 길을 지나 작열하는 태양이 뜬 사막으로 달렸었다.
천문석은 직감했다.
신동대문 터널과 같은 일이 방금 재의 숲에서 일어났다.
문제는 그때와 달리 엄청난 속도로 지상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
우선 이것부터 해결한다!
천문석은 한곳에 뭉쳐서 떨어지는 김철수, 추이린, 레이 실트를 향해 외쳤다.
“목소리 들립니까!?”
몇 번이나 외쳤으나 미동도 하지 않는 동료들.
모두 정신을 잃었다!
휘이, 휘이익-
내력이 실린 휘파람을 불어 봤으나 십여 마리의 서리 늑대도 마찬가지로 움직이지 않는다.
우선 뭉쳐 있는 동료부터!
천문석은 몸을 수직으로 세워 공기 저항을 낮췄다.
파아아아아앙-
엄청난 속도로 대기를 갈라, 정신을 잃은 동료들이 있는 곳에 도착한 순간.
내력이 실린 팔다리를 뻗는다!
탁, 탁, 탁-
손과 발에 걸린 동료가 가까워지는 동시에, 재빨리 밧줄을 풀어 동료와 몸을 연결하고 다시 확인했다.
“정신 드세요!?”
셋 모두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
이때 정신을 차린 서리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우오오오오-
순간 서리 늑대의 몸에서 서리혼이 폭발적으로 쏟아지고.
서리혼에 휩싸인 서리 늑대들은 별똥별처럼 긴 꼬리를 만들며 북쪽으로 날아갔다.
서리 늑대는 서리혼이 지켜 줄 거라는 감이 왔다.
우선 이 추락에서 동료들과 살아남는 게 먼저다.
가능하면 강이나 바다, 호수를 찾아야 한다.
내력으로 감속하면서 떨어져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천문석은 내력을 끌어올리고 기감을 지상으로 집중했다.
그리고 곧 알게 됐다.
지상에 펼쳐진 거대한 도시의 불빛이 위, 아래 둘로 나뉘어 있다는 걸.
그리고 둘로 나뉜 도시의 불빛을 잇는 선들이 보인다.
다리!
순간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동서로 흐르는 강이 도시를 남북으로 나눈다.
한강, 강남, 강북.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지금 추락하는 곳은 이세계의 도시가 아닌, 대한민국 서울이었다!
하하하하하-
순간 참을 수 없는 희열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와, 좆됀줄 알았는데! 서울이었어!?”
천문석은 동서로 도시를 가르는 어둠, 한강으로 떨어지는 방향을 잡은 후 재빨리 계획을 세웠다.
내력으로 감속하며 내려가 충격을 줄인 후, 즉시 서리 늑대가 멀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한두 마리도 아닌 십여 마리의 재앙급 마수가 서울 안정화 권역에 떨어졌다.
최대한 빨리 찾지 않으면 서울 헌터 부대와 대형 길드가 모조리 동원된 난장판이 벌어질 거다.
천문석은 서리 늑대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서울 북쪽에 펼쳐진 거대한 산, 북한산.
서리 늑대 무리는 북한산 깊은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아- 그래도 다행이네.”
북한산은 한국 초능력 각성자 부동의 랭킹 1위 국민대 뽀미의 영역이다.
아무리 재앙급 마수 서리 늑대라도 큰 문제를 일으키진 못할 거다.
이때 거대한 도시가 점차 가까워지고 내력으로 강화된 눈에 익숙한 철교가 보였다.
한강 철교!
천문석은 즉시 전신에서 내력을 쏟아 내 거대한 날개를 만들어 냈다.
파아아아아앙-
순간적으로 강해진 공기 저항에 몸이 붕 뜨는 순간, 엄청난 저항에 내력이 가닥가닥 끊겨 나가며 폭음이 터져 나왔다.
팡, 팡, 파아앙-
천문석은 쉴 새 없이 내력을 끌어올리며 계속 감속했다.
“어, 저거……?”
이때 한강에서 왠지 모를 생경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거기에 신경 쓸 틈은 없었다.
휘잉, 휘이잉-
돌연 불어온 돌풍에 추락할 듯 균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팡, 파앙, 팡-
천문석은 쉴 새 없이 내력을 뻗어 내 균형을 잡고 감속했다.
낙하속도는 천천히 느려졌지만, 몸에 실린 동료 셋의 무게와 사방에서 밀려 오는 돌풍에 균형을 잡기 쉽지 않다!
하아앗-
천문석은 어떻게든 균형을 잡고 활강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때 서리 늑대 무리는 서리혼의 푸른 마력광으로 별똥별 같은 긴 꼬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러나 별똥별이라기에는 이 푸른 선은 너무나 선명하고 느리게 자라났다.
누구나 보는 순간 이상을 느낄수 있는 현상이 서울 밤하늘에서 펼쳐졌다.
깊은 밤이지만 서울은 대도시, 당연히 수많은 서울 시민이 이 모습을 보고 있었다.
“별똥별이다!”
“무슨 별똥별이 저렇게 느리게 떨어져?”
“저거 UFO 아냐!?”
“카메라! 누구 카메라 가진 사람 없어?”
……
이렇게 수많은 서울 시민이 서리혼이 만들어 내는 푸른 선을 보고 있을 때.
한 외국인 남자가 광화문 빌딩 옥상에서 격동으로 전신을 부르르 떨다가 능숙한 한국말로 외쳤다.
“서리혼!”
서리혼이 나타났다면 그들도 왔을 것이다!
남자는 재빨리 짧은 마법봉을 꺼내 하늘을 향해 휘둘렀다.
파스, 파스스-
그러나 불량품 성냥을 그은 것처럼 마력장이 생겨나지 않는다!
“젠장젠장!”
재빨리 품에서 작은 정제 마석을 꺼내 깨트리고 짧은 마법봉을 긋는 순간.
파스슥-
마력광이 터지고 마력장이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훑었다.
느껴진다!
서리혼의 궤적이 시작되는 곳, 한곳에 뭉쳐서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다!
더럽게 운 없는 4인조 파티!
그리고 그중 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너무나 익숙한 느낌!
‘회중시계!’
“드디어 이날이 왔구나!”
보풀이 가득 올라온 후드티와 낡아서 해진 청바지.
제대로 씻지 못해 초췌한 얼굴과 엉겨 붙은 머리, 바짝 마른 몸.
오랜 시간 노숙하며 고생한 듯한 외국인 남자.
그러나 이 순간 남자는 그동안의 고통을 모두 잊고 미친 듯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시계! 내 회중시계! 드디어 잃어버린 시계가 돌아왔다! 하하하-.”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 시계를 회수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어떤 오류가 생길지 모른다.
이번 기회를 놓쳐 시계를 회수하지 못하면 20년이 넘는 시간을 다시 기다려야 한다.
미리 준비한 계획대로 움직인다!
남자는 그동안 수도 없이 시뮬레이션 한 내용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해야 하는 일은?’
남자의 눈이 북쪽으로 향했다.
북한산!
십여 마리의 서리 늑대들이 서리혼에 휩싸여 별똥별처럼 떨어지고 있는 곳!
북한산으로 가야 한다!
최대한 빨리!
남자는 습관적으로 후드티 안에 손을 넣었지만, 당연히 손에 잡히는 시계는 없었다.
“하- 남은 마석도 간당간당한 데…….”
어쩔 수 없었다.
남자는 옥상 구석 냉각탑을 향해 손을 흔들며 외쳤다.
“야! 빨리 나와! 우리 당장 움직여야 해!”
순간 거대한 냉각탑 뒤에서 새 한 마리가 나와 총총총 남자에게 다가왔다.
짧고 폭신한 깃털과 날개, 동글동글한 몸.
삼각형의 짧은 부리와 착해 보이는 까만 눈.
뱁새였다.
그냥 뱁새가 아닌 몸길이 5미터가 훌쩍 넘는 초대형 뱁새!
초대형 뱁새가 남자 앞에 멈춰 서서 고개를 갸웃했다.
남자는 북한산을 가리켰다.
“우리 당장! 저 산으로 날아가야 해! 저기 서리 늑대 떨어지고 있다. 너 저 늑대들 기억나지?”
-……
“모습은 좀 변했는데 통, 통- 데굴데굴 굴리고 놀았던 그 재밌는 늑대들 맞아. 기억 안 나?”
-……
“그 늑대들 약간 아주 약간 변해서 서리 늑대 됐는데. 큰 차이는 없어. 자 우리 전처럼 재밌는 놀이 하러 가자! 어서 날개 펼치자!”
-……
“너 자꾸 그러면 여기 버리고 집에 나 혼자 간다! 이 일만 끝나면 우리 집에 돌아갈 수 있어! 자 빨리 날아가자!”
-……
남자는 어르고 달래고 협박까지 했다.
그러나 초대형 뱁새는 착해 보이는 까만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고개만 좌우로 움직일 뿐 꿈적도 하지 않았다.
남자는 초대형 뱁새가 원하는 게 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야, 일 끝나고 줄게! 우리가 같이 구른 게 몇 년인데! 이렇게 믿음이 없어!?”
바로 빙글 몸을 돌려 총총총 냉각탑으로 돌아가는 초대형 뱁새.
“잠깐!”
남자는 다급히 외쳐 초대행 뱁새를 제지하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 깊은 곳에서 ‘작은 돌’을 하나 꺼냈다.
“경계석 몇 개 안 남았는데…… 정말 후불은 안 되냐?”
-……
“…….”
인간과 초대형 뱁새가 잠시 말없이 서로를 봤다.
하지만 언제나 더 아쉽고 급한 사람이 먼저 숙이게 되는 법.
“인정머리 없는 녀석…….”
남자는 결국 경계석을 던져 줬다.
날아온 경계석을 날름 삼키는 순간, 초대형 뱁새의 두 눈에서 이성의 빛이 번뜩였다.
타다다닥-
단숨에 빌딩 옥상을 달려 휙-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초대형 뱁새!
휘이이이잉-
초대형 뱁새가 크게 원을 그리며 가속할 때.
남자는 재빨리 옥상 구석에 남은 노숙 흔적을 지우고 미리 준비한 배낭을 어깨에 멨다.
그동안 숨어 있던 이곳도 이젠 끝이다!
남자는 지난 일 년 동안 빌딩 옥상에 만든 마법 회로를 바로 가동했다.
파직, 파직, 파지직-
정제 마석을 잇달아 깨트리고.
파스스슥-
짧은 마법봉을 휘둘러 마법 회로를 발동시킨다!
마력광이 번뜩이는 순간, 적층식 마법 회로가 곧 하나로 합쳐졌다.
파아아아앙-
순간 거센 바람이 하늘로 올라갔다.
보이진 앉지만 느낄 수 있었다.
거센 바람이 만들어 낸 소용돌이, 이 소용돌이가 거대한 공기 터널을 만들고 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4인조 파티를 이 빌딩 옥상으로 인도할!
“준비 끝났다!”
남자는 재빨리 가면을 꺼내 쓰고 난간에 올라 외쳤다.
휘이이이잉-
원을 그리며 가속하던 초대형 뱁새가 옥상 난간을 스쳐 지나가며, 남자를 낚아채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더! 좀 더 높이 올라가! 인식 장애 마법도 만능은 아냐! 저번에 우리 대공포 맞을 뻔한 거 잊었어? 확확 올라가!”
-……
귀찮은 듯 힐끗 남자를 보는 초대형 뱁새.
이때 초대형 뱁새의 발에 잡힌 남자가 외쳤다.
“앗! 그러고 보니! 너 경계석도 줬는데 등에 태워 줘야지!? 왜 자꾸 발로 잡고 나는 거야!? 내가 사냥감도 아니…….”
순간 초대형 뱁새는 날갯짓을 빨리했다.
히리히리히리-
피리 소리 같은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훙, 훙, 훙, 훙, 훙-
거센 바람이 일어나 남자의 외침을 지워 버렸다.
순식간에 하늘 높게 날아오른 초대형 뱁새는 하늘에 그어지는 서리혼의 푸른 마력광을 쫓아 날아갔다.
이때 뱁새의 발에 잡힌 남자는 탄식했다.
“……경계석을 먹고도 등에도 안 태워 주는 거냐? 하늘의 제왕? 하늘의 좀생이 녀석! 진짜 이번에 시계 찾고 돌아가면 내가 바로 계약 해지한다!”
히리히리히리히리-
초대형 뱁새는 마치 대답하듯이 울었다.
이렇게 초대형 뱁새와 남자가 북한산으로 날아가는 순간.
내력을 뿜어내 떨어지는 속도를 줄이던 천문석은 이상을 깨달았다.
마치 누군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몸이 강북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갑자기 왜 이래?”
재빨리 방향을 조정하려 할 때.
휘이이이잉-
마치 미끄러지듯이 강북 방향으로 날아가는 물체가 보였다.
정육면체 형태의 금속 상자!
자신과 일행을 서울 하늘로 날려 보낸 그 금속 상자다!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 금속 상자를 잡아야 한다!
천문석은 바로 금속 상자를 잡기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마치 놀이동산에서 워터 슬라이드를 타는 것처럼 몸을 타고 흐르는 공기 터널!
금속 상자와 천문석, 정신을 잃은 동료까지 모두는 어느새 보이지 않는 공기 터널 속을 부드럽게 미끄러지고 있었다.
파아아아아앙-
한참 동안 회전하는 공기 터널을 미끄러진 천문석과 동료들은 한 빌딩 옥상으로 튀어나왔다.
깡, 깡깡-
금속 상자가 옥상 바닥을 구를 때.
탁, 타다다닥-
천문석은 가볍게 걸으며 착지해 동료들부터 확인했다.
김철수, 추이린, 레이 실트 셋 모두 아직 정신을 차리지는 못했지만, 호흡과 맥박 모두 일정했다.
천문석은 세 사람을 나란히 눕히고 금속 상자를 회수해서 배낭에 넣었다.
이때 빌딩 옥상에서 점차 빛을 잃어가는 마력광이 보였다.
“마법 회로!? 저기요!? 혹시 누구 있으십니까!?”
기감을 뻗으며 몇 번이나 외쳤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 준비해 둔 공기 터널 마법을 타고 안전하게 빌딩 옥상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 공기 터널 마법을 준비했을 사람은 옥상에 없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의문이 많았지만, 지금 우선 할 일은 동료들을 병원에 보내는 일이다.
천문석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스마트폰은 통화권 이탈 상태.
“뭐야? 서울에서 무슨 통화권 이탈이야?”
톡이라도 보내려 와이파이를 켰지만, 잡히는 와이파이가 하나도 없다!
“사설 와이파이도 안 잡힌다고?”
천문석은 통화권 이탈이 뜬 스마트폰 화면을 보면서 옥상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잡혀라. 잡혀라. 잡혀라…….”
하지만 옥상 가장자리 난간에 도착할 때까지 기지국은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옥상 난간 너머로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광화문]
“뭐야, 불이라도 난 거야? 광화문에서 핸드폰이 안 되는 게 말이…….”
자신도 모르게 말이 멈춘 순간 천문석은 봤다.
[광화문]이란 ‘한글 현판’이 걸린 문, 광화문.
이 광화문 너머로 광화문 게이트 지역이 보였다.
“…….”
광화문 게이트 지역은 높게 솟은 방어용 성벽과 분리 필드로 완전히 봉쇄돼 있다.
당연히 그 안의 광화문 게이트 지역은 밖에서 보이지 않아야 했다.
보이지 않아야 할 광화문 게이트 지역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그러나 이곳에 게이트는 없었다.
경복궁이 있었다.
2000년 1월 1일.
광화문 게이트가 열렸을 때 거대 괴수에게 박살 난 경복궁.
그 경복궁이 온전한 모습 그대로 광화문 게이트 지역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