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19화>
‘한강도 얼릴 수 있는 거 아냐?’
. ……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움직였다.
데굴데굴 바닥을 구르는 재앙급 마수, 서리 늑대들.
수천 도의 마그마 챔버에 박혀 있는 중앙 지열봉에 생겨난 하얀 서리.
“……!”
천문석은 벌떡 일어났다!
이 순간 맹호 건 스미스에 갔던 기억이 재생된다.
제주도에서 올라와, 광화문 게이트 지역에 들어가, ‘의인 광장’을 지나 맹호 건 스미스를 갔다.
의인 광장.
하루 유동인구가 한국 최고인 광화문 게이트 지역, 그 안에서도 알짜 중의 알짜인 중심 상권에 있는 넓은 광장.
의인 광장!
한강을 얼릴 수 있으면, 이 의인 광장을 먹을 수 있다!
1세대 마법사라도 한강을 사람이 건널 수 있도록 얼리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서리 늑대라면!?
수천 도의 마그마 챔버에 박혀 있는 10미터가 넘는 중앙 지열봉마저 냉각시키는 재앙급 마수!
서리 늑대라면 가능하다!
천문석은 깨달았다.
오랜 꿈 건물주를 넘어서는 대박이 터졌다.
의인 광장은 이제 곧 이름이 바뀐다.
천문석 광장으로!
카캬카카카카-
천문석은 하늘을 바라보며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수많은 사건·사고에 구르며 수없이 의심했다.
하늘이 기울어졌다고!
하늘의 저울이 고장 났다고!
하늘님이 너무 편파적이라고!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마침내 깨달았다.
하늘님의 원대한 계획을!
하늘님은 그동안 적금 붓듯 차곡차곡 자신의 개고생을 적립하고 계셨던 거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한방에 그 적금을 돌려주셨다!
공짜로 받을 무기.
서리혼이 담긴 마법 무기.
광화문 게이트 지역의 의인 광장까지!
건물주를 넘는 초대박이 터졌다.
이제 자신은 하늘이 내린 부자, 땅 부자가 되는 것이다!
천문석은 터질 듯 벅차오르는 가슴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최고의 경의를 바쳤다.
“조금의 치우침도 없이 공평무사하신 하늘님! 충성충성충성!”
“쟤 또 왜 저래?”
이 모습을 본 추이린이 어이없어할 때.
“하하하- 그래, 나도 충성충성이다! 이렇게 깔끔하게 해결되다니!”
김철수 발명가가 웃음을 터트리고, 레이 실트가 중얼거리며 땅바닥에 개념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서리혼을 모으려면 아무래도 경계석이 필요할 것 같은데…….”
천문석은 웃음을 그치고 주위를 돌아봤다.
모든 일이 마무리되자, 동료 모두 긴장이 풀어져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이제 잠시 숨 좀 돌리고 공방 도시로 올라가면 이번 일도 끝난다.
나선 터널에 보안 골렘이 있겠지만, 내려올 때와 달리 아군의 전력은 확 늘어났다.
재앙급 마수 서리 늑대 십여 마리면 보안 골렘 정도는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다!
“와, 이 훌륭한 녀석들!
커다란 짐볼같이 동글동글한 몸으로 뒹굴뒹굴하는 서리 늑대들이 새삼 너무나 멋지고 듬직하고 훌륭하게 보였다!
이때 문득 머리를 스치는 기억!
세연이가 얻어 온 맛이 기가 막힌 최고급 수제 소고기 육포가 있었다!
“야, 너희들 내가 기가 막힌 육포 줄게!”
쫑긋 귀를 세우더니 빠르게 일어나 일제히 다가오는 서리 늑대들!
잡낭에서 육포를 꺼내 흔들자, 서리 늑대의 눈에 호기심이 깃들었다.
“이거 맛 장난 아냐!”
최고급 수제 소고기 육포를 먹는 순간, 화염과 생고기만 먹던 서리 늑대들은 충격을 받았다.
쫄깃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
최소한의 향신료와 환상적인 소금간으로 낸 맛!
파바바밧-
머리가 다급히 밀려 오고, 혀는 강철도 닳아버릴 듯 빠르게 움직였다.
게다가 얼마나 기쁜지 몸에서 풀썩풀썩 흩날리는 서리혼까지!
잡낭에서 꺼낸 육포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서리 늑대들은 서리혼이 흩날릴 정도로 꼬리를 흔들며 계속 머리를 들이밀었다.
생전 처음 간식을 먹은 강아지처럼 광분하는 서리 늑대들.
“잠깐만 기다려 봐! 이거 배낭에 더 있을 텐데.”
천문석은 재빨리 배낭을 열어 육포를 찾았다.
“이거 분명 더 있는데…… 어디 있지!?”
마음이 급해서인지 보이지 않는 육포.
천문석은 배낭을 뒤집어 깠다.
후드드득-
포장된 상자, 옷, 취사도구가 와르르- 쏟아져 나오고 마지막으로 툭 떨어지는 진공 포장된 육포!
“바닥에 깔렸었구나! 육포 더 먹자!”
짐을 정리한 천문석이 진공 포장된 육포를 뜯어내밀었다.
우오오오-
짧은 하울링을 한 서리 늑대들은 서리혼을 흩날리며 미친 듯이 육포를 씹고 핥았다.
이때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추이린이 어이없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 그 배송 상자 여기까지 가져왔었냐?”
추이린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천문석은 잊고 있던 걸 기억했다.
배낭을 뒤집었을 때 떨어진 상자, 배송 의뢰!
부산 던전 7층 공방 도시까지 온 이유는 추이린 수석 연구원의 배송 의뢰 때문이었다!
“앗! 배송 의뢰!”
파바바밧-
배송 상자를 든 천문석은 졸졸 따라오는 서리 늑대를 함께 추이린에게 걸어갔다.
추이린은 허탈한 웃음이 났다.
몇 달 동안 저 상자, 미끼를 만들기 위해 들어간 엄청난 노력과 자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모든 게 난장판이 되면서 미끼를 사용할 틈도 없었다.
지열탑이 터지고, 증기가 가득한 도시 지하를 달려, 보안 골렘이 쏟아진 강철 터널을 미끄러졌다.
그리고 투영 공간 재의 숲에서 미친 듯이 굴렀지…….
하루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
게다가 어이없게도 이 난장판에서, 재금 그룹의 숨겨진 실세, 오너의 대리인을 만났다.
이때 자신 앞으로 쓱 다가오는 배송 상자.
“고객님. 행복을 전하는 김철수 사무실입니다. 고객님의 배송 상자 안전하게 도착했습니다.”
천문석이 상자를 내밀며 웃었다.
추이린은 어이없어하는 얼굴로 상자를 받았다.
“확실히 받았어. 고생했다.”
추이린은 바로 종이 상자를 열고 금속 상자를 꺼냈다.
‘이게 모든 일의 시작이구나.’
에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오자, 문득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김철수.’
그러고 보니 오너의 대리인 ‘김철수 발명가’와 배송 의뢰를 맡긴 헌터업 사무실의 ‘김철수 사장’은 이름이 같았다!
추이린은 이 우연에 김철수 발명가를 보며 말했다.
“이 상자 배송한 사무실 사장이랑 이름이 같으…….”
추이린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경악한 김철수가 다급히 팔을 뻗으며 외치고 있었다.
“……던져! 그 상자! 당장 멀리 던져!”
“네?”
추이린이 반문하는 순간.
서리 늑대의 몸에서 풀썩, 풀썩- 흩날리던 서리혼이 추이린의 손에 들린 금속 상자에 닿았다.
파스스스슥-
순간 마력광이 터져 나왔다!
찰칵찰칵찰칵-
김철수가 회중시계 용두를 미친 듯이 눌렀으나, 회중시계는 멈춘 상태!
“당장 그거…….”
김철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문석이 금속 상자를 집어던졌다.
파아아앙-
금속 상자는 공기를 가르고 엄청난 속도로 멀어졌다.
“저게 뭔가요!?”
그러나 천문석이 묻는 순간 멀어지던 금속 상자가 탄력 있는 줄에 걸린 듯 다시 돌아와 중앙 지열봉 앞 하늘에 멈춰 섰다.
그리고 모든 일이 순식간에 진행됐다.
철컥, 철컥, 철컥-
금속 상자 6면이 동시에 열리고.
쿵, 쿵, 쿵, 쿵-
마력 파동이 사방으로 쏟아졌다.
“파동 범위 밖으로 도망쳐!”
김철수 발명가가 외쳤을 때.
천문석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휘이익-
휘파람을 불어 서리 늑대를 도망치게 하고.
추이린, 레이 실트를 낚아채 김철수 발명가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김철수 발명가의 옷자락을 잡고 단숨에 뛰어오른 순간.
팟-
섬광이 번뜩이고 마력 파동이 닿는 범위 안 모든 게 멈춰 버렸다.
일제히 달리는 서리 늑대 무리.
추이린, 레이 실트를 어깨에 걸치고 김철수를 잡고 뛰어오른 천문석.
마치 시간이 정지된듯한 공간에 갇힌 것만 같았다.
하지만 천문석은 여전히 정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시간이 정지된 게 아니다.
절정의 벽을 넘는 그 찰나의 순간처럼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너무나 느려서 정지된 것으로 보여도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천문석은 내력을 끌어올리며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갔다.
이때 갑자기 마력광이 느껴졌다!
머리 위!
스스로 돌아온 금속 상자가 있는 위치에서 마력광이 비추는 순간.
물이 가득 찬 욕조에서 마개를 뽑은 듯 인력이 느껴졌다!
정지된 몸이 UFO에 납치되는 것처럼 하늘로 끌려 올라간다!
으아아악-
마음속으로 악을 쓰며 전신을 뒤틀었지만, 점점 빠르게 끌려 올라가는 몸!
팟, 팟, 팟-
곧 서리 늑대가 하나둘 사라지고.
팟, 팟-
어깨에 걸친 레이 실트와 추이린.
팟-
손으로 잡은 김철수가 사라졌다.
홀로 남는 순간 천문석은 심상에 뜻을 담아 하늘에 항의했다.
[하늘님 이건 좀 아니죠!]
팟-
천문석도 사라졌다.
이 순간 6면이 열린 채 마력 파동을 품어 내던 금속 상자를 중심으로 마치 펼쳐 놓은 보자기를 한곳으로 뭉치듯 공간이 빨려 들어갔다.
팟-
섬광과 함께 금속 상자도 사라졌다.
냉각된 중앙 지열봉 앞에는 이제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한참 후 이곳에 육중한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쿵, 쿵, 쿵-
넓은 재의 숲을 한참 동안 걸어 마침내 중앙 지열봉에 도착한 재의 기사.
재의 기사는 아무도 없는 지열봉 앞을 보고 우뚝 멈춰 섰다.
“…….”
재의 기사는 한참 동안 미동도 없이 금속 상자가 떠 있던 허공을 바라봤다.
“…….”
도망치고, 도망치고, 도망치더니.
이제는 차원을 넘어 도망쳤다.
재의 기사는 아주 오랜 시간 우두커니 서 있다가 마침내 롱소드를 들어 검붉은 하늘을 가리켰다.
콰아아아아아-
곧 마력 폭풍이 쏟아져 내려 재의 기사를 삼켜 버렸다.
마력 폭풍이 사라졌을 때 재의 기사도 재의 숲에서 사라졌다.
* * *
팟, 팟, 팟-
섬광이 번뜩이는 매 순간 빠르게 교차하는 수많은 장면.
미처 제대로 인식하기도 전에 수많은 차원이 스쳐 지나가고 있다!
처음 겪는 일이지만, 이미 예상했던 일.
김철수 발명가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이해했다.
무한한 가능성 세계의 나무를 넘어 이동하고 있다!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증기탑이 폭발했을 때, 포기한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의문을 품는 순간 머리를 스치는 장면들.
-육포를 먹는 서리 늑대의 몸에서 흩날리는 ‘서리혼’.
-천운의 헌터 천문석이 손에 들린 ‘배송 상자’.
-배송 상자에서 나온 추이린의 ‘마력 파동 발생장치’.
서리 늑대의 서리혼이 추이린 연구원이 만든 마력 파동 발생장치에 닿는 순간 작동했다!
그러나 이것만이었다면 모든 게 해프닝으로 끝났을 거다.
추이린 연구원이 만든 마력 파동 발생장치는 미완성이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이 한 일이 화룡점정을 찍었다.
부족한 힘으로 서리 늑대를 데려오기 위해, 중앙 지열봉 주위의 차원 준위를 한껏 낮춘 것!
마력은 물과 같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날 곳으로 흐르듯이.
마력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한껏 마력 준위를 낮춘 공간에, 추이린의 마력 파동 발생장치가 구멍을 뚫었다.
이 순간 마력이 흘러갈 곳은 한곳밖에 없었다.
마력 준위가 더 낮은 세계!
이상할 정도로 마력 준위가 낮아, 차원의 벽을 넘어 허신들이 도망쳐오고, 게이트, 균열이 열리고 던전이 생겨날 세계.
그곳은…….
팟-
이때 섬광이 터지고 눈앞을 스쳐 지나가던 장면이 멈췄다.
어느새 김철수 발명가는 그 장면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 순간 하늘과 땅이 역전되고 모든 감각이 사라졌다가 생겨나기를 반복했다.
끔찍한 현기증과 전신이 갈가리 찢겨 나가는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미쳐 제대로 준비하기도 전에 이뤄진 차원 도약의 반동이 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자신뿐 아니라 같이 휘말린 다른 이들까지 끝장이다!
김철수 발명가는 미리 몸에 새겨 둔 시동어를 발동했다.
[눌러라!]
순간 손이 저절로 움직여 회중시계를 꺼내 뚜껑을 열고 용두를 눌렀다.
찰칵-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차!
회중시계는 무리해서 서리 늑대를 소환했을 때 이미 멈췄다.
김철수 발명가는 촛불이 꺼지듯 픽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거센 바람이 김철수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파아아앙-
정신을 잃은 김철수가 까마득히 높은 하늘에서 야경이 펼쳐진 거대한 도시로 떨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