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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417화 (418/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17화>

"계획대로 될까요?"

추이린의 불안한 목소리에, 김철수가 바로 대답했다.

"믿어보자. 저 녀석 아니었으면, 어차피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야."

김철수의 대답 뒤로 레이 실트의 고통스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내 강철봉, 아니 롱소드, 아니 메이스! 젠장젠장젠장! 으으윽-"

레이 실트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괴로워하고 있었다.

추이린은 괴로워하는 레이 실트에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방금 전.

천문석은 작은 화로를 내밀며 레이 실트에게 전적으로 자신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레이 실트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순간 천문석은 말했었다.

"레이님. 이 화로, 강철봉에 붙여주십시오!"

"뭐?! 뭘 붙인다고?! 화로를 왜 붙여!! 이 강철봉! 아니, 롱소드 초고도의 마도구야! 안 돼! 절대 안 돼!"

레이 실트는 격렬히 거부했다.

그러자 천문석은 하늘을 가리키며 짧게 말했다.

‘공방 도시, 대참사’

레이 실트는 강철봉에 화로를 붙여줬다.

추이린은 여전히 괴로워하는 레이 실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힘내라."

레이 실트는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으로 추이린을 봤다.

"...이게 마지막이겠지? 이거만 끝나면 내 롱소드 돌아오겠지?"

“....”

지금 난장판이 진행되는 추세를 보면, 레이 실트의 롱소드, 강철봉이 박살 나는 것도 멀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때론 고통스러운 진실보다, 달콤한 거짓말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추이린은 확신을 담아 단호히 말했다.

"당연하지. 곧 멀쩡하게 네 손에 돌아올 거다!"

"다행이다. 풀꽃 반지도 사용해서 한동안 숨어다녀야 하거든…. 마력패턴은 언제 다시 짜지…. 에휴-"

레이 실트는 확 펴진 얼굴로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추이린은 레이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 주위를 살폈다.

흙 속에 튀어나온 나무뿌리들.

지금 자신과 김철수, 레이 실트 셋은 나무뿌리 아래 공간에 은폐 마력장을 펼치고 숨어있었다.

뿌리 사이로 멀리 화로가 붙은 강철봉을 들고 서 있는 천문석이 보였다.

추이린은 천문석의 계획을 다시 떠올렸다.

[서리 늑대를 격벽 반대쪽으로 유인한다. 그리고 서리 늑대를 따돌리고 격벽으로 달려와 넘어간다.]

천문석의 계획은 사실 계획이랄 것도 없는 그냥 서리 늑대 따돌리고 도망치기였다.

하지만 이 계획에는 중요한 디테일, '어떻게'가 빠져 있었다.

어떻게 유인하고, 어떻게 도망치고, 어떻게 따돌릴지.

그걸 묻자 천문석은 첨단에 화로가 붙은 강철봉을 내밀며 당당히 대답했다.

'이게 제 디테일입니다! 제 계획은 완벽합니다!'

연구소에서 부하직원이 그렇게 말했으면 당장 좌천시켰을 거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천문석이 그 말을 하는 순간.

마음속에서 '천문석 이 녀석이라면!' 하는 은근한 기대감이 들었다.

'나도 미쳐 가는구나….'

어이없음에 실소가 새어 나올 때, 추이린은 당당히 서 있는 천문석을 다시 봤다.

재앙급 마수가 곧 나타날 텐데도 긴장도 안 되는지 느긋하게 서 있는 모습.

사람은 보통 둘로 나뉜다.

속이 꽉 차, 알면 알수록 매료되는 사람.

속이 텅 비어, 알면 알수록 잊혀지는 사람.

천문석은 속이 꽉 찬 사람이었다.

문제는 그 속에 차 있는 게 사건·사고·난장판이란 거지만!

하-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헛웃음.

하루 전만 해도 모든 게 계획대로 돌아간다고 좋아했는데.

지금은 공방 도시 지하 깊은 곳 투영 공간의 나무뿌리 아래, 땅속에서 숨죽이고 있다.

개연성 없는 영화처럼 연이어 터진 사건·사고 때문이다.

'그나마 더 나빠질 리는 없는 건 다행인가?'

추이린은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투영 공간에서 재앙급 마수에게 쫓기고 있다.

이것보다 더한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난장판이 벌어질 리는 없었다.

"...."

그러나 어째서일까.

저 멀리 느긋하게 서 있는 천문석을 보고 있자, 빠르게 시간이 줄어드는 시한폭탄을 보고 있는 듯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하아-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쉴 때.

김철수가 말했다.

"가까워지고 있다. 곧 나타난다."

휘이이잉-

거센 바람에 반짝이는 얼음 알갱이가 날아오고, 하울링이 울려 퍼졌다!

우오오오오-

이때 천문석이 서서히 손을 들어 올렸다.

굉천수!

나무뿌리 아래 숨은 세 사람은 재빨리 눈과 귀를 가렸다!

그리고 냉기 폭풍을 휘감은 서리 늑대가 나타나는 순간.

천문석의 하늘로 올려진 두 손이 부딪혔다!

콰아아아앙-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굉음이 터지고, 시야가 하얗게 타들어 가는 섬광이 폭발했다!

* * *

콰아아아앙-

굉천수의 굉음과 섬광이 터지는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몸을 돌려 반대쪽으로 달렸다.

서리 늑대가 나타난 순간 굉천수를 터트려 어그로를 끌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속도다!

어그로가 끌린 서리 늑대를 데리고 최대한 멀리 도망친 다음, 지권인으로 따돌리고 돌아오면 된다!

탓-

내력이 실린 발을 한걸음 내딛는 순간 쏘아진 화살처럼 단숨에 쭉 뻗어 나가는 육체!

이때 예상치 못한 소리가 들렸다.

깨애앵, 깽, 깽-

"....!?"

경악한 천문석은 무서운 속도로 전진하는 몸을 비틀어 뒤를 봤다.

파아아악-

힘이 실린 발이 숯을 바스러트릴 때 보이는 광경!

서리 늑대들!

강대한 냉기 폭풍을 휘감은 서리 늑대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커다란 짐볼처럼 동글동글한 몸으로 데굴데굴 구르며 강아지처럼 울며 눈물을 쏟았다!

깨앵, 깽, 깽-

너무나 익숙한 모습!

굉천수!

그동안 굉천수의 눈뽕에 당한 수많은 피해자와 똑같은 모습이다!

"아니! 무슨 재앙급 마수한테 굉천수가 통해!"

어이없음에 자신도 모르게 외쳤을 때, 천문석은 이미 반전해서 서리 늑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굉천수가 통하다니 전혀 예상 밖의 일이다!

하지만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놈들 완전히 무력화됐다!

지금 때려잡으면 된다!

카캬카카-

천문석은 통렬한 웃음을 터트리며 사령 화로 강철봉에 내력을 실었다.

저릿저릿한 기파가 흘러나오고, 사령 화로에서 이글거리는 화염이 쏟아져 엄청난 냉기를 밀어냈다!

쿵, 쿵, 쿵-

천문석은 단숨에 냉기 폭풍을 돌파하며 외쳤다.

"추 수석님! 계획 변경입니다! 공격! 빨리! 저 서리 늑대에게 벼락, 번개, 뇌전 전부 때려 박으세요!"

재빨리 나무뿌리 아래서 기어 나온 추이린이 황당해하는 얼굴로 외쳤다.

"뭐?! 야! 도망치는 게 계획이라며?! 공격하라고? 진짜로?"

"원래 전장은 임기응변인 겁니다! 빨리 정신 차리기 번개부터 때려 박아요! 아까 그거! 상황 개판 만든 그 번개 쓰세요!!"

"그거 나 아니라니까! 기다려! 은폐 마력장 사용 중이라 준비에 시간 걸려!"

“준비되면 바로 때려 박으세요!”

마법이 준비될까지 정신 차리지 못하게 폭풍처럼 몰아쳐야 한다!

구인창, 감각을 교란하는 창술!

굉천수가 먹혔으니 어쩌면 이것도 먹힐지 몰랐다!

쿵, 쿵, 쿵-

천문석은 단숨에 생사팔문의 보법으로 접근해 강철봉에 구인창의 내력을 실어 찔렀다!

위력보다 속도!

휘이이잉-

화염을 쏟아내는 강철봉이 가벼운 나뭇가지처럼 공기를 가르고 쏘아졌다!

그리고 임팩트 직전!

깨애애애-

간신히 눈을 뜬 서리 늑대와 시선이 마주쳤다.

순간 서리 늑대의 눈에 스쳐 지나가는 강렬한 감정.

분노!

그러나 그 분노는 순식간에 다른 감정으로 변했다.

곤혹, 의혹, 의문…….

그리고 생각지도 않은 감정이 느껴졌다.

반가움!

이 순간 구인창의 경력이 실린 강철봉이 폭풍처럼 서리 늑대 무리를 찌르며 나아갔다!

구에에에엑-

감각을 헤집는 구인창의 경력에 먹은 걸 모조리 토해내고.

빵, 빠아앙, 빠아아앙-

임팩트 순간 무게가 늘어난 강철봉을 맞고 탄력 있는 고무공처럼 하늘 높이 치솟았다.

십여 마리의 서리 늑대들은 먹은 걸 모조리 토해내며, 높이높이 솟아올라 강아지처럼 울었다.

깨애애앵, 깽, 깽-

이때 천문석은 멈춰섰다.

이 울음소리!

눈에 담긴 반가움!

동글동글한 털을 때리는 순간 느껴지는 이 손맛까지!

모든 게 너무나 익숙했다!!

천문석은 하늘 높이 치솟은 서리 늑대들을 봤다.

털에 감도는 푸른 마력광, 새하얀 송곳니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한기, 수천 도의 유체를 핥고, 냉기 폭풍을 몰고 다닌다.

재앙급 마수, 서리 늑대의 모습에 예전에 만난 늑대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균열이 열린 학교로 가는 산에서 처음 만난,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온 근성 있는 늑대들.

백곰 마수를 잡았을 때 마수 마석을 찾아준 멋진 놈들이자, 마지막에 헤어지며 다음에 만나면 친구가 되자고 약속한 늑대들.

고무처럼 탄력 있는 털과 산비탈로 굴렸을 때 탱탱- 공처럼 튕기며 구르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이름 붙였다.

탱탱볼 늑대.

천문석은 마침내 깨달았다.

"너희들 탱탱볼 늑대였구나!!"

순간 천문석의 얼굴이 환희에 물들었다!

탱탱볼 늑대가 서리 늑대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탱탱- 튕기는 재밌는 몸만 가졌던 늑대 마수가!

무시무시한 냉기 폭풍을 몰고 다니는 재앙급 마수가 되어 돌아왔다!

진화를 뛰어넘는 비상!

삼류 무인이 초절정의 무인이 된 거나 마찬가지다!

저 무시무시한 재앙급 마수 서리 늑대가 이제 친구다!

이세기가 무림 맹주가 됐을 때 이상의 희열이 몰려온 순간.

천문석은 참을 수 없는 희열에 소리쳤다.

"와! 어떻게 이런 일이 있냐! 너희 어떻게 된 거야!? 다시 만나 반갑다! 우리 친구 하기로 했던 거 기억하지!?"

카캬캬캬캬카-

그리고 미친 듯 웃음을 터트릴 때.

들려와서는 안 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비 끝났다! 바로 벼락 때려 박을게!"

"네!? 잠…."

콰아아아앙-

하얀 번개 추이린의 특기 새하얀 벼락이 공중에 뜬 서리 늑대들을 지졌다.

파지직, 파직, 파직-

서리 늑대들은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는 뇌전을 휘감고 땅으로 떨어졌다.

탱, 탱, 탱-

탄력 있는 털로 공처럼 튕기며 구르는 순간.

레이 실트의 외침이 들려왔다.

"내 롱소드는 내가 지킨다!"

촤아아악-

서리 늑대의 털에 물이 쏟아지고 파직, 파지직 전신을 지지는 전격이 확 강해졌다.

"야, 뭐해! 빨리 공격해! 저놈들 정신 못 차리잖아! 지금이야!!"

"...."

천문석은 말없이 추이린과 레이 실트를 봤다.

이 순간 깨달았다.

천문석, 추이린, 레이 실트, 김철수.

이 4인 파티는 손발은 잘 맞는데 뭔가 굉장히 재수가 없었다.

깨앵, 깽깽깽-

서리 늑대 무리가 슬프게 울면서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굉천수를 보고 쓰러진 후, 구인창을 맞아 먹은 걸 토하고, 강철봉의 힘으로 하늘로 날아갔다.

하늘에선 하얀 번개에 지져지고, 땅에선 물에 젖은 채로 탱탱, 공처럼 구르고 있다.

이 모든 일을 순식간에 겪은 서리 늑대의 눈에서 반가움이 사라지고, 당혹과 의혹이 자라나고 있었다.

"...."

* * *

"아유- 착하다! 아유 착해!"

애견 카페에서도 에이스였던 천문석.

천문석은 애견 카페 강아지 달래듯 말하며, 연신 목덜미를 긁어주고 있었다.

서리 늑대를!

천문석이 내력을 담아 털을 뽀송뽀송하게 말리고 손가락 빗질까지 해준 서리 늑대들.

어느새 깔끔해진 서리 늑대들은 천문석 주위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강아지처럼 울고 있었다.

컹, 커엉-

이 모습을 세 사람이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서리 늑대가 친구라고? 재앙급 마수가?!"

"지금 보고 계시잖아요? 얘네랑 전에 만났을 때 친구 먹기로 했습니다. 야, 우리가 백곰 마수같이 잡은 거 기억하지?"

배를 툭 치며 묻는 순간.

우오오오-

서리 늑대들은 대답하듯 일제히 하울링 했다.

"...."

김철수의 말문이 컥 막히는 순간.

추이린이 김철수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했다.

"...재앙급 마수랑 친구라고?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지금 중요한 건 말이 되냐가 아닙니다!"

카캬카카카-

천문석은 크게 웃음을 터트린 다음에 손을 내밀었다.

"손!"

탁-

천문석의 손 위에 놓이는 서리 늑대의 앞발!

"보셨죠?"

"어떻게…."

“ 강아지도 아니고….”

“...너 뭔가 이상해!”

표정은 경악했으나 이 일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김철수, 추이린, 레이 실트.

천문석은 혀를 찼다.

쯧쯧쯧-

그리고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

레이 실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 땅을 가리킨다.

"땅?"

추이린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 빙글 손을 돌려 주위를 가리켰다.

"설마!"

김철수가 무언가 깨닫고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외쳤다.

"이 투영 공간, 재의 숲! 이제 서리 늑대가 왕입니다!"

카캬카카카-

천문석의 악당 같은 웃음이 터져 나왔을 때 모두는 깨달았다.

공방 도시의 위기는 끝났음을.

냉기 폭풍을 몰고 다니는 재앙급 마수, 서리 늑대.

한두 마리도 아닌 열 마리가 넘는 서리 늑대가 천문석 말대로 움직이고 있다!

마력 폭풍, 재의 기사 그 무엇도 이걸 막을 수 없었다!

서리 늑대가 재의 숲의 제왕이 됐다.

그리고 천문석은 제왕의 친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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