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15화>
“야, 뒤로 빠져!”
추이린의 외침이 들려오는 순간 천문석은 몸을 날렸다.
천문석이 재의 기사의 오러 공간을 벗어나는 동시에 추이린과 레이 실트가 점멸로 접근했다.
핏-
추이린이 손을 내밀며 외쳤다.
“이 손 잡아!”
데굴데굴 구르던 천문석이 추이린의 손을 잡는 순간.
“연속 점멸한다!”
레이 실트의 외침과 동시에.
빠르게 풍경이 변하고 현기증이 확 올라왔다!
핏, 핏, 핏-
한경석이 했던 점멸 반지 연속 이동과 달리 두 마법사는 2, 3초의 간격을 두고 번갈아 점멸 마법을 사용했다.
쿵, 쿵, 쿵-
육중한 전신 갑옷을 입은 재의 기사가 걷는 소리가 빠르게 멀어지고 있다.
이때 중앙 지열봉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쿠아아아아앙-
잿가루가 폭발하듯 밀려 오고, 한기를 머금은 바람이 훅 불어왔다.
재의 기사가 폭발하는 잿가루에 삼켜져 버리는 순간.
한기를 머금은 바람에 대기 온도가 확 떨어졌다.
그리고 느껴지는 존재감!
중앙 지열봉이 있는 곳에서 엄청난 존재감이 느껴졌다!
천문석은 직감했다.
‘김철수 발명가님이 말한 해결 방법이 이거구나!’
이때 점멸 이동이 멈추고 추이린이 외쳤다.
“급격한 위상전환이 계속되면 탈진할 수 있다! 잠시 달리자!”
“이쪽! 격벽 방향으로 달려야 해!”
천문석, 추이린, 레이 실트는 폐쇄 공간 입구를 향해 한참을 달렸다.
어느새 재의 숲의 열기가 빠르게 누그러지고 있다.
한숨 돌린 천문석은 웃음 띤 얼굴로 물었다.
“중앙 지열봉에 뭔가 나타난 것 같은데! 이거 그놈이 냉각한 건가요!? 아니, 이런 게 있으면 진작에 사용하시지! 김철수 발명가님은 먼저 입구로 가셨습니까?”
“…….”
“…….”
대답 없이 시선을 피하는 추이린과 레이 실트.
“설마…….”
자신도 모르게 멈춰 선 순간.
전율과 함께 머리를 스치는 이름이 있었다.
김철수.
천문석은 설명을 듣지 않아도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이 갔다.
김철수 발명가, 철수 형 이름이 같은 친척인 두 사람.
철수형은 제주도에 거대 괴수가 출현했을 때, 호텔에 혼자 남아 사람들을 구하다가 매몰됐었다.
김철수 발명가도 철수형과 비슷한 일을 한 거다.
나이와 외모, 능력.
모든 게 다른 두 사람이 이렇게 비슷하다니!
역시 두 사람은 친척이었다.
하하하-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질 때.
천문석은 몸을 돌렸다.
“먼저 가세요. 곧 따라가겠습니다.”
“뭐, 너!?”
추이린이 다급히 말할 때, 레이 실트 앞으로 불쑥 다가오는 강철봉.
“앗!”
반사적으로 강철봉을 받는 순간.
천문석은 몸을 돌려 달리며 외쳤다.
“그 롱소드 정말 잘 썼습니다. 레이님 감사해요. 먼저 올라가세요. 그럼 위에서 볼게요!”
“야, 야! 멈춰! 위험해! 저기에 재앙급 마수 있어!”
레이 실트가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손을 크게 흔들며 대답했다.
“전 건물주 되고 은퇴하기 전까지 무적입니다!”
그리고 잿가루 폭풍으로 들어갔다.
“…….”
“…….”
한참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흐를 때.
레이 실트는 손에 쥐어진 강철봉을 봤다.
작은 흠집 하나 없던 강철봉에 남겨진 격전의 흔적이 보였다.
드릴 형태로 깎아냈던 첨단은 한 뼘은 잘려 있고, 강철봉 몸체엔 오러 블레이드를 막은 흔적이 가득했다.
오늘 마법 화로에서 꺼낸 강철봉은, 어느새 10년은 전장에서 구른 것 같은 무기가 되어 있었다.
“완전 무사하다더니. 이 사기꾼 놈. 하아-.”
짧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들어 천문석이 사라진 잿가루 폭풍 속을 봤다.
천문석은 재앙급 마수와 재의 기사가 있는 잿가루 속으로 달려가며, 유일한 무기인 강철봉을 자신에게 돌려줬다.
약속대로…….
만난 지 하루는커녕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의 진면목은 위기에 드러나는 법이다.
재앙급 마수로 지열봉을 냉각하겠다며 홀로 남은 김철수.
그런 그를 찾아 맨몸으로 잿가루 속으로 달려간 천문석.
두 사람을 생각하는 순간 암울한 상황인데도 너무나 유쾌해진다.
문득 천공탑에서 만난 강철의 기사가 오랜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라며 해 줬던 말이 기억난다.
‘삶은 유한하나 그 본질은 영원히 이어진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던 그 말이 가슴을 간지럽히는 순간.
레이 실트는 풀꽃 반지를 빙글 돌리고 잿가루 폭풍으로 달려가며 외쳤다.
“천문석! 야, 이 미친놈아! 강철봉! 아니, 내 롱소드 망가졌잖아! 어딜 튀어! 이거 물어 줘야지!”
그 뒤로 추이린이 따라붙으며 외쳤다.
“야, 너 내가 맡긴 의뢰해야지! 어딜 혼자 가는 거야!”
* * *
후드드득-
전신에 쏟아지는 숯과 잿가루!
남은 강화 전투복 마력은 10% 정도.
하지만 숯과 잿가루는 어느새 열기를 잃어 충분히 버틸만했다.
자욱한 잿가루에 시계가 확 줄어든 게 더 큰 문제였다.
기감을 뻗어 보지만, 미친 듯이 충돌하는 상이한 마력에 기감이 뻗어 나가지 못한다.
그러나 너무나 분명하게 육감을 자극하는 존재가 둘 있었다.
쿵, 쿵, 쿵-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걸어오는 재의 기사!
휘이이잉-
한기가 실린 바람이 불어오는 곳, 중앙 지열봉에 뭉쳐 있는 존재들, 재앙급 마수!
재앙급 마수가 재의 숲에 가득한 열기를 빠르게 흡수하고 있었다!
냉각에 실패해서 끊으려던 지열봉을 이렇게 빠르게 냉각하다니!
이 재앙급 마수 놈들 정체가 뭐야!?
혹시 철수 아저씨 벌써 쓱싹 당한 거 아냐!?
불안감이 드는 순간
분명 철수 아저씨는 살아 있을 거라는 직감이 왔다!
철수형의 친척이라면 당연히 끈질기게 살아남아 버티고 있을 거다!
천문석은 오감과 기감을 넘어 느껴지는 육감에 의지해 중앙 지열봉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중앙 지열봉이 얼핏 보이는 순간 재빨리 바닥에 엎드렸다.
휘이이이잉-
한기를 머금은 바람이 계속 불어오자 곧 시계가 트이고 중앙 지열봉이 선명히 보였다.
지름 10미터의 거대한 기둥, 중앙 지열봉!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던 지열봉에 새하얀 늑대 마수 십여 마리가 달라붙어 있었다!
보호 마법 없이는 잠시도 버티지 못할지열봉에 붙어 있다니!
이것만으로도 놀라운데, 이 늑대들은 지열봉을 핥고 있었다!
할짝할짝할짝-!
마치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핥아먹듯 미친 듯 혀를 움직이는 늑대들!
자세히 보니 자신이 뚫어 놓은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유체를 핥아먹고 있다!
수천 도의 지열 교환용 유체를!
‘와, 뭐 저런 미친 마수가 있어!?’
자신도 모르게 감탄하는 얼핏 눈이 마주쳤다!
김철수 발명가!
동글동글한 늑대들에게서 20미터 정도 떨어진 위치, 김철수 발명가가 숯과 잿가루 속에 몸을 숨긴 채 눈만 보이고 있었다!
역시 철수형 친척!
귀신같이 숨어서 버티고 있었다!
이때 김철수 발명가가 미친 듯 눈을 깜빡였다.
깜빡, 깜빡, 깜빡-
짧고 길게 깜빡이는 두 눈.
바로 눈치챈 천문석은 입 모양으로 말했다.
‘모스 부호?’
맞다는 듯 크게 한번 깜빡이는 눈!
천문석은 입 모양으로 대답했다.
‘모스 부호 몰라요.’
당연했다.
지금은 2020년!
군대서도 카톡으로 지시를 하는 시대인데 누가 모스 부호를 알겠는가!?
‘구하러 갈 테니까 기다려요.’
천문석이 입 모양으로 말하는 순간.
다시 미친 듯이 깜짝이는 눈!
모스 부호는 몰라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 수 있었다.
늑대 마수가 위험하니 오지 말라는 의미.
그러나 천문석에겐 이런 상황에 딱 맞은 기술이 있었다.
상대가 재앙급 마수라고 해도 걸리지 않고 숨어 있는 김철수를 빼낼 수 있는 기술!
발도 스님과 함께 마신의 강림체를 차원 너머로 날려 버리다가 강제 성불할 뻔했던 기술!
천문석은 지권인, 번뇌를 끊는 수인을 짚었다.
그리고 천천히 아상(我相)을 지웠다!
점차 물속에 물을 떨어트린 듯 영혼육백과 세계의 구분이 흐릿해졌다.
갑자기 사라진 천문석에 김철수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 때.
천문석은 김철수를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쓰윽, 쓰으으윽-
단단한 숯 위를 기어가는 소리.
후으, 후으으-
깊은 호흡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럼에도 늑대 마수들은 천문석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
늑대 마수들은 문득 고개를 돌려 김철수가 숨어 있는 장소를 보며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대놓고 기어 오는 천문석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당연했다.
지금 천문석이 펼치는 기술은 나와 세계의 경계를 없애고, 업을 흩어 버리고, 무명을 밝혀 근원으로 돌아가는 기술이었다.
그래서 천문석은 극도로 조심했다.
아차 하여 지혜의 륜이 생겨나 삼생을 관(觀)하여 깨달음이라도 얻으면, 성불 당하거나 천마 신공에 입문할 수도 있다!
둘 중 뭐가 됐든 좆돼는 건 마찬가지다.
천문석은 곧 숨어 있는 김철수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지권인을 펼친 손을 뻗어 김철수의 이마를 짚었다.
갑자기 나타나 천문석을 보고 경악한 김철수.
그 뒤로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새하얀 늑대가 보인다.
그러나 시선은 향했으나 그 눈에 담긴 것은 살기가 아닌 의아함이었다.
늑대 마수는 보고 있으나 보지 못하고 있었다.
천문석은 다른 손을 숯 속으로 넣어 옷을 잡았다.
그리고 조심조심 천천히 김철수 발명가를 빼냈다.
파스스, 깡-
잿가루가 흘러내리고 숯이 부딪치며 쇳소리를 낼 때마다 몸을 파르르 떠는 김철수 발명가!
그러나 김철수가 완전히 빠져나올 때까지 하얀 늑대들은 두 사람을 인지하지 못했다.
천문석은 한껏 목소리를 낮춰 잿가루를 뒤집어쓴 김철수에게 말했다.
“말하지 말고 듣기만 하세요. 제 옆에 있으면 저 늑대들 인식 못 합니다. 이대로 조용히 빠져나가면 됩니다. 바로 옆에 붙어서 기세요.”
김철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천문석과 김철수는 숯과 잿가루가 가득한 대지를 빠르게 기었다.
쓰윽, 쓰으윽-
깡, 까깡, 풀썩-
수북한 숯이 쇳소리를 내고 가라앉은 잿가루가 풀썩풀썩 일어나 얼굴에 쏟아졌다.
그러나 두 사람은 쉴 새 없이 기어 중앙 지열봉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거리에 도착했다.
천문석은 땀으로 가득한 김철수를 보며 말했다.
“천천히 일어나세요. 이제 걸어도 될 것 같습니다.”
파사삭-
두 사람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순간.
쿵, 쿵-
육중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잿가루 속에서 나타나는 재의 기사!
재의 기사는 천문석을 향해 직선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
김철수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 때, 천문석은 재빨리 말했다.
“저놈 우리 인식 못 합니다.”
아마도…….
천문석은 뒷말을 삼킨 즉시 숯을 하나 들어 멀리 던졌다.
휘익, 깡-
10여 미터를 날아가 떨어지며 쇳소리를 내는 숯 조각!
순간 재의 기사의 움직임이 변했다.
쿵, 쿵, 쿵-
바로 방향으로 돌려 숯 조각이 떨어진 장소로 향한다.
그러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
후드드드득-
늑대 무리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하, 시바! 이렇게 걸리는 건가!?’
바짝 긴장해 고개를 돌리자 보였다!
재의 기사를 향해 달리는 십여 마리의 늑대들.
늑대가 재의 기사를 적으로 인식했다!
‘재수가 좋다니!’
김철수를 보자 희열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심전심!
설명할 필요도 없다.
재의 기사와 늑대 마수가 싸우는 동안 빠져나가면 된다!
천문석은 김철수는 조심조심 앞으로 걸었다.
그리고 자욱하게 일어난 잿가루 폭풍이 바로 앞으로 다가왔을 때.
천문석은 멈춰 서 몸을 돌렸다.
늑대 무리와 재의 기사가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저 두 놈 붙으면 바로 달리죠.”
고개를 끄덕이는 김철수.
그리고 늑대 무리와 재의 기사가 격돌하려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쿠르르르르르-
갑자기 하늘이 으르렁거리며 섬광이 번뜩였다.
콰직, 콰지지직-
검붉은 연기에 생겨난 뇌전이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다!
이 뇌전에 몰려드는 엄청난 힘!
전신의 솜털이 모조리 일어서고, 매캐한 오존 냄새가 천지에 진동한다!
그리고 북처럼 진동하기 시작하는 대기.
쿠르, 쿠르르릉-
어느새 달리던 늑대와 재의 기사가 멈춰 서 하늘을 보는 순간.
한껏 낮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뇌전 터지면 바로 나가서. 걔들부터 찾는 거다.”
“알았다니까. 빨리 때려 박아. 난 준비 끝났다.”
그리고 뭘 어떻게 할 틈도 없이 한 줄기 섬광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팟-
기울인 도화지에 물감을 흘리듯이 천천히 떨어지는 벼락.
마치 나무가 거꾸로 자라나듯 벼락은 굵직한 가지를 만들며 자라났다.
그리고 늑대 무리와 재의 기사에게 닿는 순간.
쾅쾅, 쾅쾅쾅-
하늘이 터질듯한 굉음이 울리고 불벼락이 끝없이 떨어졌다!
파스스스슥-
벼락에서 생겨난 푸른 구전광이 사방으로 날아다니자.
펑, 펑, 퍼어엉-
사방에 깔린 숯과 잿가루가 폭탄처럼 터져 나갔다!
추이린의 뇌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위력의 불벼락!
이 엄청난 위력의 불벼락이 가만히 내버려 뒀으면 서로 싸웠을 늑대 마수와 재의 기사를 지지고 있었다.
“…….”
“…….”
뭐라 말할 수 없는 장대한 삽질에 천문석과 김철수 모두 할 말을 잊을 때.
잿가루 속에서 달려 나와 두 사람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빨리 달려!”
“지열봉! 중앙 지열봉으로 가자! 분명 거기 있을 거야!”
추이린과 레이 실트였다.
“…….”
천문석은 지권인을 풀고 말했다.
“지열봉이 아니라 여기 있습니다.”
으흐헛-
흐어억-
기겁한 두 사람은 곧 천문석과 김철수를 알아보고 외쳤다.
“야, 어떻게 된 거야!?”
“왜 둘 다 여기에 있어!? 언제부터 여기 있던 거야!?”
수많은 의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중요한 건 의문을 푸는 게 아니다.
천문석은 손을 들어 두 사람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바로 외쳤다.
“도망쳐!”
쾅쾅, 쾅쾅쾅-
늑대 마수와 재의 기사를 지지고 있는 불벼락이 멈추기 전에 최대한 멀리 도망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