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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414화 (415/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14화>

화르르르-

붉게 달아오른 숯이 토해 낸 불꽃이 눈보라처럼 흩날리는 재의 숲.

재의 숲에 화염과 마력의 폭풍이 다시 한 번 몰아치고 있었다.

김철수는 마력 폭풍 속을 달리며 회중시계를 꺼내 마력 준위를 확인했다.

찰칵, 찰칵-

땅과 숲, 하늘.

모든 곳의 마력 준위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마력은 물과 같다.

물이 수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마력도 준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이것이 2000년에 서울에 게이트가 열린 이유 중 하나고, 게이트 안정화 장치가 던전, 균열 발생을 막는 방법이었다.

이걸 이용하면 지금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

지금 해야 할 것은 마력 준위를 낮추는 것!

이때 중앙 지열봉이 나타나고 추이린과 레이 실트가 달려오는 김철수에게 외쳤다.

“유체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어요! 오래 못 버팁니다!”

“마력 준위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어! 이대로면 이 투영 공간 자체가 원래 마경이랑 합쳐진다!”

“무슨 헛소리야? 마력 준위?”

추이린이 어이없어할 때.

김철수는 깜짝 놀라 레이 실트를 봤다.

1세대 마력 각성자 추이린도 모르는 마법의 비의를 레이 실트가 알고 있었다.

오너의 숨겨진 후계자라는 헛소문의 대상인 레이 실트가!

머리 구석에 밀어 둔 생각이 떠오르자, 레이 실트의 정체에 대한 의문이 불쑥 치솟았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나한테 방법이 있다!”

김철수는 바로 중앙 지열봉부터 확인했다.

30cm 간격을 두고 뚫린 40개의 구멍.

마력회로를 짜서 임시로 막아둔 구멍에서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는 유체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 구멍만으로 지열봉을 끊을 수 있을까!?

김철수는 추이린에게 확인했다.

“추이린! 뇌전으로 지열봉 끊을 수 있겠냐?”

바로 고개를 젓는 추이린.

“안 됩니다! 벼락을 아무리 갈겨도 금도 안 갈 겁니다! 쟤가 아니면 불가능해요!”

추이린이 잿가루 속에서 격전을 펼치는 천문석을 가리켰다.

김철수는 바로 레이 실트를 봤다.

“레이님! 이 지열봉 끊을 마법…….”

“난 마력 무구 제작이 전문이야. 마법도 보조 마법 위주로 배웠고. 이건 물리력이 필요해!”

“…….”

김철수는 문득 천문석을 봤다.

쾅, 콰아아아아-

오러의 섬광과 굉음이 터지고, 화염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넘실거리는 곳.

천문석이 재의 기사와 격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러나 마력 각성자의 눈으로 봐도 버티는 게 고작.

오러는 지배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힘이고, 유형화된 오러 블레이드는 마력과 각성력에 대한 지배력 자체를 약화시킨다.

천문석이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는 재의 기사와 호각으로 싸운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이때 레이 실트의 괴로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롱소드! 내 롱소드가……!”

“야, 지금 롱소드가 문제냐!? 지금 당장 이 지열봉 냉각해야 해! 해결 방법! 그 해결 방법 당장 써야 해요!”

이제는 진짜 다른 방법이 없었다.

김철수 발명가는 품에서 가죽 수첩을 꺼냈다.

마지막 한 장, 모든 준비가 끝나고 마지막 단계만 남았는데 이렇게 되다니…….

이런 게 운명인 건가?

결심을 굳힌 김철수는 입을 열었다.

“이 중앙 지열봉을 단숨에 냉각시킬 방법이 있다!”

“야, 빨리 냉각시켜! 내 롱소드 지켜야 해!”

레이 실트가 버럭 소리치는 순간.

추이린이 눈에 불을 켰다.

“너 이 분이 누군 줄 알고 소리를 쳐!”

“뭐? 너야말로 내가 누군 줄 알아!? 내가 바로 무기 제작자! 마탑을 한두 개도 아닌…….”

“마탑? 풉! 너 간달프 코스프레 하는 거냐? 혹시 절대 반지는 없어?”

“우와! 내가 이런 취급을 받다니! 너 내가 이름만 대면 차원 전체가 뒤집혀!”

……

추이린과 레이 실트가 말싸움을 시작한 순간.

김철수는 바로 움직였다.

찰칵, 찰칵, 찰칵-

회중시계를 눌러 만들어 낸 마력 파동이 중앙 지열봉을 감싼 마력회로를 변화시켰다.

마력회로 곳곳이 가시처럼 솟아오르고, 그 첨단에서 정제 마석이 반짝였다.

차원 좌표 마력회로.

이 마력회로가 차원 좌표를 뽑아내고, 주위 공간의 마력 준위를 낮춘다.

그리고 그 마수들을 이곳으로 불러오는 역할을 할 것이다.

서리 늑대.

화염을 삼키고 극한의 냉기를 뿌리는 재앙급 마수!

서리 늑대만 이곳에 있다면 이 중앙 지열봉뿐만 아니라 투영공간 전체를 얼릴 수 있었다.

이건 사실 말도 안 되는 해결 방법이었다.

재앙급 마수는 발견하기도 힘들고 발견했다고 마음대로 데려올 수 있는 존재도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나 공교롭게도 서리 늑대를 이곳으로 데려올 준비는 이미 끝나 있었다.

얼음 기둥 벌판에 자신이 설치한 마력 파동 발생장치.

그곳에 이미 서리 늑대 무리가 모여 있을 거다.

김철수는 차원 좌표 마력회로와 손에 쥔 회중시계를 번갈아 봤다.

이제 마력 파동 발생장치의 목적지를 이곳 차원 좌표로 바꾸고, 마력 준위가 변하는 순간 트리거를 가동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

서리 늑대는 순식간에 이곳으로 이동할 테고, 투영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꽁꽁 얼려 버릴 거다.

중앙 지열봉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자신까지도!

어이없는 결말이지만,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다.

김철수 발명가는 번쩍 고개를 들어 여전히 말싸움 중인 추이린과 레이 실트를 봤다.

“냉각 준비 끝났다! 둘 다. 내가 신호하면 바로 천문석한테 달려가라.”

“재의 기사 마법 안 통한다며?”

“네? 그게 무슨…….”

“마법으로 도와주라는 게 아니다. 바로 천문석 잡고 점멸이동해라. 저곳으로!”

김철수는 폐쇄 공간 입구를 가리켰다.

* * *

궁, 궁, 궁-

마력 파동이 잔잔한 물결처럼 퍼져 나가는 얼음 기둥 벌판.

이곳에 십여 마리의 늑대들이 있었다.

서릿발 같은 푸른 광채가 번뜩이는 눈, 새하얀 털 위에 흐르는 마력광과 주위를 얼리는 엄청난 냉기!

그러나 공처럼 동글동글한 체형.

서리 늑대 무리가 마력 파동 발생장치 앞에 누워 뒹굴뒹굴 편안하게 구르고 있었다.

영역을 침범한 적이 찾아 얼음 기둥 벌판에 내려온 지 벌써 3일!

서리 늑대 무리는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주위를 샅샅이 훑었지만, 영역을 침범한 적은 어디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대신 신기한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쿠으으웅-

이때 마력 파동 발생장치에서 퍼져 나오는 파동이 변했다!

순간 뒹굴뒹굴하던 서리 늑대들이 파바밧 몸을 일으켜 마력 파동 발생장치를 에워쌌다.

쿠으응, 쿠으으웅-

진동이 강해지고 대기가 요동치기 시작하자, 서리 늑대의 눈에 기대감이 어렸다!

팟-

그리고 허공에서 섬광이 번뜩이는 순간.

화르륵-

뜨거운 화염을 휘감은 용암 트롤이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크아아아아-

대지에 내려선 용암 트롤이 피어가 섞인 포효를 내지르자 전신에서 화염이 쏟아졌다.

이 순간 십여 마리의 서리 늑대가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용암 트롤은 이 가소로운 늑대들을 단숨에 찢어발기기 위해 화염이 들끓는 팔을 펼쳤다!

휘이이잉-

그러나 극한의 냉기가 담긴 얼음 알갱이 서리혼이 날아오자, 화염이 일렁이던 팔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크아앙-

깜짝 놀란 용암 트롤이 몸을 돌려 도망치려는 순간 용암 트롤의 전신에 박히는 송곳니!

타는 듯 뜨거운 피가 쏟아지고 곧 얼음이 자라났다.

콰드드드득-

용암 트롤은 일렁이는 화염을 품은 채로 순식간에 얼음 기둥이 돼 버렸다.

우오오오오오-

승리의 하울링이 터지고, 몇몇 늑대가 마력 파동 발생장치에 튄 용암 트롤의 피를 혀로 핥아 깨끗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서리 늑대들은 마력 파동 발생장치 주위에 누워 뒹굴뒹굴 굴렀다.

처음에는 영역을 침범당해 분노하며 달려왔다.

하지만 지금 서리 늑대들은 이 이상한 상자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이 상자 주위에서 뒹굴거리면 주기적으로 화염을 품은 사냥감이 튀어나온다!

힘들게 화염을 품은 사냥감을 찾고 쫓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상자를 발견한 3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서리 늑대들은 배가 터지게 먹고 남은 사냥감을 얼음 기둥 벌판에 서리혼으로 가득 얼려 둘 수 있었다!

숙적 도토리 숲의 악마와 천공의 제왕을 찾아서 숲과 산악, 계곡을 힘겹게 누빌 때와는 달리 너무나 편했다!

서리 늑대들은 이렇게 빈둥거리며 화염을 흡수하고 배불리 먹으며, 체형이 공처럼 동글동글하게 변해 가고 있었다.

이때 마력 파동 발생장치가 다시 울리고, 깜짝 놀란 서리 늑대들이 파바밧 몸을 일으켰다!

쿵쿵, 쿵쿵쿵-

전과는 달리 몇 배나 강해지고 빨라진 파동!

게다가 파동 너머에서 엄청난 열기가 전해진다!

파동이 강할수록 대단한 놈이 튀어나왔다.

당연히 엄청난 화염을 품은 사냥감이 튀어나올 거다!

서리 늑대의 푸른 눈에 기대감이 생겨나고, 빙하처럼 새하얀 송곳니가 드러난 입에서 침이 뚝뚝 떨어져 대지를 얼렸다!

서리 늑대들은 마력 파동이 울려 퍼지자, 종소리를 들은 파블로프 개처럼 조건반사 반응을 보였다.

처음 김철수 발명가가 마력 파동 발생장치를 설치한 의도 그대로!

* * *

찰칵-

김철수는 회중시계의 용두를 눌러 차원 마력회로를 작동시켰다.

3차원 적층식 마력회로가 작동하고, 정제 마석에서 하나둘 마력광이 빛나는 순간.

쿵쿵, 쿵쿵쿵-

거대한 마력 파동이 생겨났다!

순간 머리가 터질 듯 쏟아지는 엄청난 정보량, 차원 좌표!

시야가 붉게 물들고, 코피가 주르륵 쏟아지는 순간.

휘이이잉-

마력회로가 마력과 열기를 머금은 바람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연결됐다.

이제 이곳의 마력 준위는 낮아지고 서리 늑대가 있는 곳의 마력 준위는 높아질 거다.

김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시작이다. 바로 움직여라!”

이미 모든 설명을 들은 추이린과 레이 실트는 천문석을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김철수는 힐끗 뒤를 돌아보는 추이린에게 손을 흔들며 외쳤다.

“부탁한다. 가족한테 꼭 전해 줘. 네가 알고 싶은 이야기는 김 과장이 모두 해 줄 거다.”

추이린은 복잡한 얼굴로 김철수를 보다가 마주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김철수는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수첩에 적힌 마지막 일은 실패했지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왔다.

게다가 마지막 작품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김철수는 중앙 지열봉에 만든 차원 마력회로를 보며 말했다.

“오너, 어깨너머로 본 거로 이 정도면 잘 만든 거 아닙니까?”

마치 대답하듯 공간을 잇는 마력 파동이 빠르게 강해졌다.

쿵쿵, 쿵쿵쿵쿵-

이곳 은폐 마력장 안의 마력 준위는 빠르게 낮아지고, 반대로 서리 늑대가 있는 얼음 기둥 벌판의 마력 준위는 높아지고 있을 거다.

두 공간의 마력 준위가 역전되는 순간 트리거를 작동시키면, 화염을 삼키는 서리 늑대들이 이곳 재의 숲에 떨어지게 된다.

마치 수문을 여는 순간 댐에 가득 찬 물이 낮은 곳으로 쏟아지는 것처럼.

그렇게 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

서리 늑대 무리의 서리혼으로 재의 숲은 얼어붙고 중앙 지열봉은 단숨에 냉각된다.

당연히 지상의 공방 도시는 무사할 테고 재금 그룹과 W. S. 인더스트리의 협상도 계획대로 진행될 거다.

오너는 뒤늦게 자신이 사라진 걸 알고 어이없어하겠지만,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다.

오너라고 해도 말이다.

하하하-

어쩐지 유쾌한 기분에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폭음이 들려왔다.

파아아앙-

천문석이 잿가루를 차서 시야를 가리고, 번개같이 몸을 던져 땅을 구르는 게 보였다.

데굴데굴-

엄청난 속도로 구르는 천문석.

쿵, 쿵, 쿵-

육중한 걸음으로 천천히 그 뒤를 쫓는 재의 기사.

핏-

점멸 이동해 천문석에게 다가가는 추이린과 레이 실트.

천문석, 추이린, 레이 실트 세 사람이 만나는 순간.

핏, 핏, 핏-

세 사람은 연속 점멸로 빠르게 멀어졌다.

쿠웅, 쿠우웅-

이때 마력 파동이 거대한 종처럼 공간을 울렸다.

그리고 엄청난 냉기를 머금은 바람이 쏟아져 나왔다.

마력 준위가 역전됐다!

김철수 발명가는 트리거, 회중시계 용두를 눌렀다.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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